〈 144화 〉 역지사지
* * *
"열려라! 차원에 문!"
"""오오오오!!"""
일단은 유명해지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대단하십니다, 은인님!"
"역시, 은인님!"
"[대규모 전이진]을 이리도 쉽게..! 최고십니다, 은인님!"
늘 있는 신혁의 바보 짓을 짜게 식은 눈이 아닌, 박수와 갈채를 보내고 있으니까.
게다가 마법의 시전자는 나다.
전혀 알고 싶지 않았던, 재주 부리는 곰의 기분을 알게 되었다.
'곰이 참 기분 나빴겠다.'
좋아, 베어허그가 무엇인지 보여주자.
잠깐동안 시청 연령대가 바뀌겠지만, 딱히 상관은 없다.
어차피 이 세상은 청소년관람불가다.
"잠깐! 잠깐만요, 사장님. 참으세요. 지금, 신혁은 엘프의 은인이라구요!"
"올리비아, 말리지 마렴. 이 사장님은 저 행동을 용서할 수가 없구나."
저 높아진 콧대를 물리적으로 낮추지 않으면 계속해서 건방질 거다.
이건 신혁을 치료일 뿐, 절대로 화풀이가 아니다.
"남편, 마력 아껴. 일단 보내야지."
"하아.. 하아.. 알았어."
두고 보자, 내가 반드시 베어허그를 하겠다.
박수치던 엘프중에는 신혁의 대탈출 당시에 그를 찾던 엘프들도 있었다.
역시 유명세가 최고다.
☆☆☆
신혁이 앞장서서 전이진을 지나가자, 엘프들도 하나씩 그를 따라나섰다.
마지막 엘프가 전이진에 들어갔고, 아직 들어가지 않은 인물들은 단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
'올리비아, 프레디, 그리고... 누구?'
나와 닉스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나중에 간다고 전했다.
그러면 남아야 할 것은 두 명이어야 한다.
저자는 엘프도 아니었다.
인족.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인족 하나가 서 있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들고 저항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서 있는 남성.
'사냥꾼... 인가?'
만약 그렇다면 저 항복의사 따위는 받아드릴 생각은 전혀 없다.
"마왕? 나는 일단 포..."
슈욱.
손을 곱게 피고, 투력을 두른 상태로 레이피어처럼 그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로... 하하... 니드호그 언니? 막아줘서 고마워, 죽을 뻔했네."
닉스에 의해, 목끝에서 멈추지만 않았다면.
뺨을 타고 흐르는 한 방울의 식은땀이 그가 긴장을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그레고리, 포로로서의 가치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죽이면 곤란할지도 몰라 마왕, 난 저항도 포기하고 이렇게 항복했으니까."
양손을 흔들지만, 그는 마법사.
손을 올린다고 공격을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할 거면 앨리스 때처럼 마력을 봉인할 구속구를 채워야지.'
"안 보여."
"뭐라고?"
"안 보인다고, 항복한다고 올린 네 손이."
굳이 찾아서 채워 놓을 필요는 없다.
항복의사 따위는 못 봤다고 하면 그만이다.
'증인이 되어 줄 사람도 없으니까.'
"남편."
"미안, 닉스. 잠깐이면 되니까, 놔줄래?"
그녀가 고개를 흔들면서 부정의 의사를 보였다.
"아니야, 남편. 그거 사냥꾼 아니야."
'아니라고?'
"소피아, 확인이 우선입니다. 그레고리 도련님이랑 엘프들과의 친분까지는 확인되었습니다."
닉스의 만류.
프레디의 설득.
올리비아의 당황.
그리고.
"뭐야, 다들 왜 이리도 늦게.. 어?! 잠깐만 이게 무슨 상황이야?!"
엘프들의 인도를 마친 신혁과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 그레고리.
그레고리.
로마노프의 자식.
날카롭게 만들었던 손날의 모양을 바꾸면서 그레고리의 목을 움켜쥐었다.
"큭..!"
"엘프와 친분이 있다라... 그래? 실험을 위한 거짓된 친분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나?"
그 정신 나간 실험중독자의 자식이다.
그레고리가 그를 닮지 않았을 거라는 장담도 못 하는 상황에서 쉽게 살려주기는 힘들다.
'맥박.'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
감각기관에 투력을 흘려 넣어서 미세한 변화조차 감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그마한 거짓말탐지기.
내 질문에 조금이라도 거짓을 말한다면 즉시 목을 꺾겠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났지.'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걸?"
뜸들여도 꺾겠다.
"하.. 하하.. 그 미치광이처럼? 순수한 친분관계야, 덤으로 세계수 잎 좀 받기도 하지.."
'변화는... 없네...'
그의 말이 높은 확률로 진실이라는 것이겠지.
'거짓말을 해도, 변화가 없는 사이코패스만 아니면 말이지.'
움켜쥐었던 목을 놓아주었다.
"하아.. 죽을 뻔했네, 정말로.."
포로 대우를 해달라고 했으니, 그렇게 해주자.
'적어도 마력을 봉인한 뒤에.'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고, 앨리스에게 채워져 있었던 마력봉인구를 찾았다.
'어디 있더라..? 분명히 넣었던 것 같은데?'
무기가 너무 많아.
왜 무기만 잡히는 걸까나?
"남편?"
"찾았다! 이거 차고 있어."
마력봉인구, 보통은 범죄를 저지른 마법사에게 채우는 물건.
무기에 연연하지 않는 마법사를 무력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구속구이다.
"설마, 마법사를 그대로 둔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리고 이거는 개량판, 시전중인 마법까지 취소시키는 구속구야."
앨리스에게 채워지고도 마력만 흘러나갈 뿐, 시전중인 마법은 취소되지 않았다.
조건발동형 마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개량한 구속구, 이것으로 그는 저항할 수 있는 칼날을 모두 잃을 것이다.
'마력만 봉인된다고 다는 아니니까.'
"..아니지, 하아... 지금까지 들킨 적이 없었는데.."
'뭘 숨긴 건가?'
철컹.
상관없다.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마왕성에 잠입한 것이어도, 그 수는 무용지물이 되었으니까.
"아니, 한 사람은 눈치챘었던가?"
'어? 목소리가..'
가늘어졌네?
조금 줄어든 신장.
부풀어 오른 가슴.
줄어든 어깨.
흔들리는 나의 동공.
신혁을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
또다시 높아진 신혁의 콧대.
'음.. 어라? 불량인가?'
아니면 착용하면 여체화가 되는 저주라도 생겨 버린 건가?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어..? 도련.. 아니, 아가씨.. 도련님?"
프레디조차 당황하면서 호칭을 정정하고 있었다.
에이 설마... 아니, 정말로?
"분명히 여자라고 했잖아! 내 촉은 틀리지 않아!"
"하.. 하하... 일단, 전부 마왕성으로 돌아가. 나중에 이야기하자."
뇌가 상황을 못 따라가게 생겼으니까.
☆☆☆
사람들을 모두 옮긴 뒤에 전이진을 닫았다.
이 이상 열어두는 것은 쓸모없는 마력 소비이고, 자칫 예상 못한 누군가가 마왕성으로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우와... 신혁이의 말이 맞을 때도 있네?"
가끔은 믿어 주는 것도.. 아니, 대부분이 쓸모없는 이상한 소리이다.
함부로 믿지는 말자.
"남편은 몰랐어?"
"응? 닉스는 알았어?"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냄새가 수컷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었어."
오... 역시, 남다른 후각
어떻게 냄새를 맡아야, 성별구분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오.. 벌써 한 무리가 잡혔네.'
빠르기도 해라.
"닉스, 가자."
"응, 남편."
"사냥할 시간이야."
이곳에 오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
사냥꾼을 사냥할 시간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
"흐윽..! 하아.. 뭐야, 왜 엘프는 안 보이고.."
미친 살인마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영감에게 돈을 받았을 때도 몰랐다.
아니, 이 숲에서 미치광이 살인마가 돌아다닌다는 것부터 처음 들은 소식이다.
자신들은 십수년간 노예사냥을 해온 자들이다.
사냥터의 소식은 항상 빠르게 찾아보며, 조사없는 사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번에도 어느 정도는 조사를 마치고 들어왔었다.
그런데, 숲에 들어온 뒤에 간간이 보여야 할 엘프들은 머리카락 한 올 조차 보이지 않았고, 한동안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가 싶더니, 거대한 파괴음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뒷세계의 일을 하면서 발달된 감이 경종을 울리면서 우리는 후퇴를 선택하려고 했다.
'따라온 병사나 기사만 아니었어도..! 뭐가, '인수자'라는 거야?! 그냥 감시였잖아!'
이제 와서 후회해도 늦었다.
같이 온 동료들은 이미 살해당하였고, 감시로 따라온 자들도 미치광이 살인마에게 심장이 뽑혀서 절명했다.
처음 살인마와 마주쳤을 때는 아름답다고 느꼈다.
자신들에게 지어 주는 미소를 보면서 매혹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것의 가격을 매기고 있었다.
불안감도 사라져 버릴 만한 욕망.
'혼자 다 해처먹으려는 생각까지 했는데..!'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생각이 욕망에 완전하게 잠식되기도 전에 그 살인마의 모습이 사라졌고, 다시 나타났을 때는 맨 앞에 있던 동료의 머리를 들고서 그 '매혹적인' 미소를 짖고 있었다.
즐겁다는 듯이.
재미난 놀이는 하는 것처럼.
그래, 그건 마치 귀족들이 작은 동물들을 사냥하면서 즐기는 '사냥 놀이'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시작이었다.
모두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을 때, 두 번째 '사냥'이 시작되고, 순식간에 두 명째의 희생자가 나왔다.
'애초에 이딴 의뢰는 받으면 안 됐어! 처음부터 불안했었는데!'
나름 제일 감이 좋았던 자신은 두 번째가 시작되고부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를 선택했다.
세 번째는 맨 뒷 쪽에 있던 기사였다.
일반사람을 뛰어넘은 영웅급은 잘 제련된 검으로 갑옷을 입은 병사를 베는 것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영웅을 초월한 자는 같은 급의 차이가 악질적으로 나뉘어도 하나같이 얇은 레이피어만을 쥐여 줘도 갑옷 따위는 쉽게 뚫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그 살인마는 대체 무엇인가.
두꺼운 갑옷을 매우 얇은 종이처럼 맨손으로 뚫어 버리고, 심장을 뽑아내는 장면은 지금도 머리 한구석을 맴돌고 있다.
상식을 가볍게 벗어난, 초월급도 못할 것 같은 기괴한 장면.
이곳에서 살아남아도 평생을 기억 속에 맴돌며 자신을 괴롭히겠지.
'그 미친년이 초월급 이상이라는 거야?! 서.. 설마 저.. 전설...'
후대에도 전설적인 존재로 길이 회자되는 존재들.
하필이면 그 미치광이가 그런 존재일 수도 있다니,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 그래, 난 잘 숨었어..! 못 찾을 거야, 도.. 돈도 전부 가지고 있어! 은퇴하자.. 이런 짓은 더 이상 못..'
그 순간 멀리서 자그마한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냥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흡!"
혹여, 숨소리조차 들리면 안 된다.
사냥꾼의 은신이다.
저 살인마는 절대로..
"사냥꾼~ 잡으러~ 숲으로 갈까나~"
노랫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살면서 이 정도로 긴장한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사냥감을 기다릴 때도 들킨적은 없어! 이대로만 있으면 절대로 들키지 않아!'
"이 병에 가득히 넣어.. 아.. 병이 없네, 상관없겠지. 랄랄랄라랄랄랄라 온다야~"
'됐다! 소리가 멀어지고 있어!'
노랫소리, 낙엽소리, 발소리.
전부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명색의 십수년을 사냥해온 자신이다.
마지막까지 안심을 할 수 없다.
'조금.. 조금만 더.. 지금이다!'
숨어 있던 뿌리 아래에서 뛰쳐나왔다.
이 정도 떨어졌으면 도망칠 수 있다.
이제는 정말로 살 수 있다.
"하하..! 시발..! 돈만 아니었어도..! 어..?"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마수만 아니었다면.
"하.. 하하... 니드호그.."
니드호그가 앞발을 치켜들었다, 마치 자신을 내려찍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꿈일 거야, 그래 분명히 꿈이야. 꿈에서 깨면 은퇴해야지.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효도도하고, 모아 놓은 돈으로 집도 사고, 결혼도...'
콰직.
☆☆☆
"남편?"
"응, 왜 그래?"
닉스가 품에 안기면서 물어보았다.
"왜 무시하고 그냥 간 거야? 알고 있지 않았어?"
"응, 당연히 알고 있었지."
사냥꾼이 숨어 있어 봤자다.
내가 그들을 포착했을 때부터 마력실을 달아 놓았는데, 어떻게 찾지를 못할까.
그냥 사냥당하는 자의 기분을 느껴보라고 놓아 주었던 것이다.
'사냥하던 자들이니까, 반대의 입장도 되어봐야지.'
역지사지를 당해 봐야 한다, 안 그러면 너무 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닉스? 또 한무리가 걸려들었어. 대어네, 대어야. 아하하하."
마력을 얇은 실처럼, 방사형으로 퍼트린 그물에 또 다른 무리가 걸려들었다.
과연 이번에도 사냥꾼들일까?
아직은 모르지만, 부디 사냥꾼들 이기를 빈다.
'메인디쉬, 라인하르트를 소스만 찍어 보고 떨어뜨린 격이니, 디저트라도 알차게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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