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아는 사람이 주는 것도 먹지말자
* * *
지구의 설화에는 불사신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이야기가 있다.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으로, 발뒤꿈치를 제외하고는 약점이 존재하지 않는 영웅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킬레스건의 유래.
단순한 이 힘줄을 부르는 유래에 거창한 설화를 담아냈다.
그 외에도 사람의 약점을 담아내는 데에 아킬레스건이라는 표현도 쓰인다.
어떤 영웅의 설화를 찾아보아도 약점이 전혀없는 영웅은 없었으니, 동서고금을 막론한 영웅 설화의 규칙적인 서사일 수도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의문일 것이다.
"아윽..! 살려 줘! 죽기 싫어..!"
"응, 너희가 마지막이야. 나도 빨리 돌아가야지."
나에게 그곳이 잘려 나간 한 사냥꾼이 바닥을 기면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늦었다가는 뒷감당이 안 돼.'
가정이.
"남편, 저기 갑옷 입은 인족."
닉스의 부름에 사냥꾼을 처리하고, 숲속에 남은 '마지막' 사냥감에게 다가 갔다.
늙은 외모.
그와 비교되는 반짝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갑옷.
통통.
'실제로도 좋은 재료만을 쓴 것 같네.'
그 고급스러운 갑옷이 피로 물들었고, 늙은 기사는 곧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하악.. 하악.. 마왕.."
거기에 나를 아는 사람.
"너는 네가 왜 죽는지 잘 알겠네?"
"하.. 항복..!"
톡.
늙은 기사가 무어라고 말하려고 하기에 손가락 끝을 이마에 대면서 말을 끊었다.
"쓸데없는 목숨 구걸은 하지 말기를 바라."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인간은 해서는 안 될 행위니까.
"차라리 기사답게 당당하게 죽으렴."
"살려..!"
푸슝!
손가락 끝에서 투력과 마력이 섞인 순수한 힘의 덩어리가 쏘아졌고, 늙은 기사의 머리를 뚫고 지나가면서 그의 생에 마침표를 찍어 주었다.
☆☆☆
마지막을 처리한 뒤로 처리하지 못한 사냥꾼들이 없는지, 며칠은 더 숲을 조사했다.
"더는 없는 것 같네, 아니면 운이 좋아서 내게 걸리지 않고 도망친 자들이 있던가."
상관없다.
군이 그린우드 방면으로 빠르게 진군하고 있기에, 도망친 사냥꾼들은 결국에는 붙잡힐 것이다.
지금 같이 즉결처분은 불가능하더라도, 적어도 자유가 있는 삶은 끝을 볼 것이다.
'한 가지 방법있다면, 평생을 도망다니면서 누구도 만나지 못하는 숲속에서 틀어밖힌다면 피할 수도 있겠지.'
그것도 사는 게 사는 거 같지는 않을 것 같다만.
"닉스? 이제 돌아가자."
'사체는... 치울 필요는 없겠지. 길을 잃으면 '사체도 찾지 못하는' 세계수의 숲에 발을 들인 거니까.'
함부로 사체를 찾으려는 사람은 안 나올 것이다.
"응, 남편. 날아서 갈 거야? 아니면, 그냥 전이로?"
"음.. 전이로 가자, 더 늦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마왕성에 있는 세 분이나, 눈앞에 있는 한 분이나.
"남편? 역시 밖에서 하는 건 싫어?"
한계다.
"응, 야외는 조금.."
시산혈해가 이루어져 있는 곳에서 행위라니, 여간 미친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참고로 난 정상인이다.
야외도 무리인데, 이런 장소 하는 건 절대로 무리다.
"넓고 깨끗한 곳도?"
네.
그렇게 시무룩해지지마라.
안 되는 건 안 된다.
"가자."
☆☆☆
마왕성의 정원.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엘프들이 있었다.
"마왕님."
프루나를 안고 있는 남성 엘프가 내게 말을 걸었다.
"감사드립니다."
여성의 엘프와 함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남성.
"저희의 딸을 찾아주셔서 정말로.. 크흑!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습니다. 이 은혜는 아내와 함께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래, 부모와 만났구나.'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에게 안겨 있는 프루나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하다는 듯한 미소를 짖고 있었다.
미네르바는 이런 장면을 만들려고 노력을 해왔던 것 같다.
보고 있는 이쪽까지 행복한 기분이 드는 가족상봉이다.
"프루나, 이제는 떨어지지 말아야지?"
"네! 아빠랑도 함부로 외출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어요!"
외출금지까지는... 그냥 호기심에 위험한 다리만 안 건너면 된다.
☆☆☆
한 가족의 상봉에 한 명의 아이는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레이나."
"응, 소피아 언니."
내 동생.
"혹시, 피가 이어진 가족이 보고 싶은 거니?"
프루나와 부모들의 만남을 지켜보는 레이나에게 이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감이 있었다.
기뻐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외로워 보이는 감정이 느껴졌고, 그 모습은 나에게 씁쓸한 기분을 안겨 주기에는 충분했다.
태어날 때부터 교국의 '제물'로 자라온 레이나의 진짜 가족은 찾아주기는 힘들 것이다.
'가족과 떨어져서 납치당한 프루나와는 경우가 많이 다르니까.'
그래서 이 아이에게 더욱 애착이 갈 수밖에 없었고, 이 가증스러운 동정심에 레이나를 아끼는 것만 같아서 자신이 미워질 때도 많았다.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란 건 알아도 이럴 때는 어쩔 수가 없이 그리 느껴진단 말이야..'
어쩌면 어른의 죄책감이란 걸 수도 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레이나가 내 소중한 동생이란 것만은 확실하다.
이 아이가 만약에 피가 이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뭘 어떡해? 당연히 전 대륙을 뒤져서라도 찾아줘야지.'
"응? 내가 왜?"
"응?"
레이나에게 나온 대답은 예상과는 다른, 의문형이었다.
"아니.. 프루나의 가족을 뭐랄까.. 굉장히 외롭고,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봐서..."
내가 당황하고 있자, 레이나는 한숨을 쉬면서 나를 불렀다.
"에휴.. 소피아 언니야."
"응."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면서 질문했다.
"언니야가 나를 못되게 굴어?"
"아니지."
이 귀여운 생명체에게 못되게 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만약에 있어도 없는 존재로 만들어서 없는 일로 만들 것이다.
"그러면 아빠는?"
'그 딸바보 아저씨라면, 사윗감과 첫 대면에서부터 칼침부터 놓을 것 같은데?'
장담할 수 있다.
기억을 찾기 전에 나에게 접근하던 마을 남성들을 전부 머리만 내놓고 화단에 묻어 두었던 양반이니까 확실하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엄마, 아빠보다. 지금의 언니야하고 아빠가 더 좋아. 나를 너무도 소중하게 대해준다는 걸 잘 아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왜 그리워해야 돼?"
"읏!"
미소가 해맑다.
너무도 순수한 미소이다.
"헤헤헤... 난 그냥, '요즘은 언니나 아빠랑 같이 있기 힘들구나' 해서, 바쁘니까 그런 거지? 언니랑 아빠는 우리 같은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바쁘게 일해서 그런 거니까, 나는 괜찮아!"
"하하.. 우리 착한 동생.."
어느새 어른이 다 되었다.
<소피아보다, 어른이구나.=""/>
<정말로요, 너무="" 기특한="" 거="" 있죠?="" 맨날="" 일이="" 많다고="" 때쓰는="" 소피아님보다="" 백="" 배는="" 나아요.=""/>
'크흠! 그건..'
어른일 수록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저노동의 아름답고, 달콤한 욕망은 삶에 쩔어 버린 어른일 수록 탐내는 최고의 과실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만 줄이자.
기특하게 자란 레이나가 본받을 만한 어른이 되려면.
"자! 소피아 언니! 항상 고생하니까, 준비했어!"
레이나가 품속에서 한 병의 물병을 꺼내 들었다.
'어흑!! 감동...!'
이런 맛에 아이를 키운다고 하는 건가?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니, 아이가 고생했다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먹을 걸 준다.
"이거, 이마~안큼 힘이나는 음료라고 한다네? 피곤함도 싹 달아나는 피로회복제? 같은 거라고 했어."
거기에 내게 쌓여 가는 피로를 생각해서 준비한 음료.
"흐윽..! 너무 고마워 레이나, 잘마실게."
"응! 꼭 다 마셔야 돼?"
내가 안 마실까 봐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본다.
걱정할 거 없다.
이런 기특한 마음으로 준비한 음료인데, 내가 안 마실 수가 있나?
없다.
아니, 당장에 들이킬 수 있다.
"그럼..."
병의 뚜껑을 열고 단내가 나는 음료를 들이켰다.
...달다?
아니, 새콤!
새콤달콤!
딸기다.
이 맛은 최상급의 딸기에서 나는 맛이다.
거기에 부드러우면서 걸쭉함이 목을 천천히 적셔들어갔고, 나는 이 이상하면서도 새콤한 맛에 단번에 중독이 되는 것만 같았다.
"파하! 오.. 우와.. 하하하! 달콤하네? 아하하! 근대, 이거 조금만 덜 걸쭉하면 좋겠다. 목에 자꾸 걸리네? 이히히히!"
"응! 그렇게 전할게!"
"응? 아구! 고마워요. 에헤헤헤.."
뭘, 누구한테 전하는 건지는 몰라도 기특하다.
아무튼 기특하다.
<어.. 음...="" 이거..="" 술이지="" 않느냐?=""/>
"응? 술? 아니야, 술맛은 전혀 안나는걸."
왜 우리 착한 레이나가 나에게 술 같은 걸 먹인다고 하는가.
<하지만, 소피아님..="" 지금="" 상태가..="" 아니,="" 고작="" 그걸로도="" 취할="" 수="" 있어요?!=""/>
"음.. 레이나? 이거 술이니?"
레이나가 내 눈을 피했다.
식은땀도 흘린다.
"어.. 음... 아니! 아닌데?! '딸기스무디'인데?!"
아니란다.
"봐바! 아니라잖아! 왜 우리 레이나 기를 죽이고 그래!"
몹쓸 무구들.
카르마도 로자리아도 아주 못됐다.
힘들게 일하고 온 언니를 챙겨 주는 이 착한 동생의 기를 죽이려 하고.
<오.. 이건="" 말을="" 들을="" 수준이="" 아니구나.=""/>
<저 술이="" 얼마나="" 독한="" 건지는="" 몰라도="" 이="" 정도로="" 취할="" 줄이야...="" 소피아님도="" 정말로="" 대단하네요.="" 아하하..=""/>
"흥!"
<얼씨구./>
<멍청이, 아는="" 사람이="" 주면="" 맹독도="" 쉬원하게="" 들이킬="" 사람.=""/>
나도 술정도는 맛으로 구분한다고!
누굴 아주 바보로 안다.
'내가 술맛도 모를까.'
"소.. 소피아 언니! 혹시 막, 졸리고 그래?"
"응? 아아니? 전혀! 오히려 더 쌩쌩해졌는 걸?"
날 밤을 새고도 눈이 똘망똘망 해질 자신이 있는 쌩쌩함이다.
오늘은 절대로 안 잘 자신이 있다.
"다행이다! 닉스 언니, 저 잘했어요?"
"응, 레이나 최고."
닉스도 레이나가 기특했던 것인지, 엄지를 치켜들면서 미소를 지어줬다.
<짰구나./>
<전부 한통="" 속이었네요.="" 그래요,="" 취한="" 소피아님은="" 절제가="" 사라지니까요.="" 그럴="" 수도="" 있죠.=""/>
아까부터 뭔 소리...
"언니들!"
레이나가 내게서 빠르게 떠났다.
"소피아 언니가 안졸리대요!"
'어.. 다 모여 있네?'
뭘까.. 저 해냈다는 표정은...
"쓰읍.. 이상하게 달아오르네.. 이히!"
...대쉬!
슈쾅!
"우왓..! 남편?!"
당황한다.
당황했다.
세상만사가 다 지겹다는 듯이 늘 눈을 반쯤은 감고 있는 닉스가 당황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그런 표정으로 있지는 않지만, 표정이 적다는 것만은 비슷했는데, 지금은 당황하면서 어딘가 두근 거린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채로워져야 해.'
그러면 이렇게 보기 좋다.
"응! 히히히.. 아..! 돌아와서 할 일 많은데.. 에이, 몰라! 내일 하면 되지!"
마왕성의 내 프라이버시한 공간.
그곳으로 간다.
"오늘은 딴거 하자! 다른 사람들도 데려가야지, 아히히히히!"
마침 저기 모여 있네? 일일이 찾으러 갈 필요 없겠다.
'뭔가, 용기가 막 샘솟네? 기분 나빠할 까 봐서 못한 것도 해 봐야지!'
가는 김에 레이나가 준, 이 걸쭉한 '딸기스무디'도 더 마셨다.
'캬하! 맛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