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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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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 윤성현, 그리고 박을 上

내가 현아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초등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아는 이미 그 시절부터 남들과는 다른 비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 외모에 홀려 의식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뭐 초딩 얼굴이 비범해봤자 어느정도겠냐만은.

그렇게 같은 반으로 계속 지내다 보니 현아는 간간히 내 짝꿍이 되어 옆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아는 꼭 뭔가 한가지씩을 빼먹고 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거리낌없이 내 준비물을 현아에게 넘겨주었다. 당연히 준비물을 안챙겨왔다고 혼나는 것도 내 몫이었지. 왜그랬는지는 모른다. 아니, 생각해보면 하나밖에 없잖아? 현아를 좋아했으니까 그렇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준거지.

결국 난 현아의 준비물까지 두 개를 챙겨서 등교하기 시작했다. 안가져올께 뻔하고, 내껄 넘겨주면 내가 혼나니까. 그래서 현아의 몫까지 내가 준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당시에도 우리집은 굉장히 잘사는 축에 속해서 그깟 초딩 준비물 하나 더 준비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음엔 '나쁜 애들한테 준비물 가져오라고 협박당하는거 아니냐' 라고 하시던 부모님도 내 입에서 현아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무소리없이 준비물을 챙겨 주셨다.

자연히 나와 현아의 사이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저학년때부터 현아의 준비물셔틀을 했으니 당연하다. 근데 이게 고학년으로 올라가서도 계속되니까 반 애들의 시선이 달라지더라. 너희 무슨 사이냐, 둘이 사귀냐, 현아 꼬붕이냐 등등. 난 대답하지 않았고, 현아는 베실베실 웃기만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됐다.

놀랍게도 현아는 나와 같은 중학교에 들어왔다. 뭐 사실 그리 놀라울껀 없지. 남중 여중으로 나뉘지 않는 이상 그 근처에 있는 중학교로 떨어지니까.

중학생이 되니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일단 난 키가 엄청 자랐다. 초등학교때는 그저 보통키에 불과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키가 쑥쑥 자라더라. 근데 키만 컸지 그에 걸맞는 덩치가 되질 못해서 멀대같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변화가 온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현아도 점점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중딩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부풀었고, 허리도 잘록하게 들어가는 등... 더이상 현아는 내가 알던 꼬맹이가 아니게 됐다. 여자냄새를 풀풀 풍기고 다니는 이 계집을 보면서 나는 전에없던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감정인지는 그때의 나로써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몸매는 그럴듯한 계집이 되었지만, 그 정신머리는 초딩때의 현아 그대로인 것 같았다. 브래지어를 사야 하는데 뭘 사야 좋을지 모르겠다면서 상담을 해온다던가, 생리를 시작했는데 기분이 더럽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다. 흔히들 저런 이야기는 엄마한테 한다거나 또래 여자애들끼리 하는거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었지만, 그 때의 나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내가 편하고 좋은 거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현아를 생각하는 마음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교복을 입은 현아를 보며 뭔지 모를 감정을 느꼈던 것도 전부 알게 됐다. 난 현아를 좋아하고 있던 거다. 친구로써가 아니라 이성으로써.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내가 현아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쑥쓰럽고 쪽팔렸거든. 비록 같이 브래지어 사러 가기도 하고 생리대를 사다주기도 했지만, 이건 그것과는 격이 다른 개쪽이었다. 만약 현아의 입에서 '야, 너 나 좋아하냐? ㅋㅋㅋ' 같은 말이라도 나와봐. 그날부로 난 학교에 나가는걸 포기했을 꺼다.

그렇게 난 현아의 베프를 자처하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어느덧 나는 그런 생활에 익숙해졌다. 사실 현아한테 고백해서 사귄다고 해도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지금도 현아랑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굳이 쪽팔림을 무릅쓰고 고백같은 걸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 * *

그 날은 졸업식이었다. 내가 졸업하는게 아니라 3학년들이 졸업하는 거다. 나와 현아는 이제 막 3학년으로 올라간 참이지.

중3이 된 현아는 고등학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쭉빵한 몸매에 예쁘장한 얼굴을 달고 있었다. 그런 현아에게 접근하려는 남자들도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현아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왜냐고? 남자들이 현아에게 접근하기 전에 내가 사전에 전부 차단해 버렸거든. 그래서 현아는 종종 자기는 인기가 없다느니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남자친구도 없다느니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그것을 듣는 나는 뭔지 모를 희열과 씁쓸함을 둘 다 맛봐야 했다. 현아에게 놈팽이가 달라붙는 것을 막는 것도 나고, 그런 현아에게 제대로 된 고백도 못하고 있는 것도 나니까.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모든 남자를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생이 된 선배가 현아에게 기습적으로 고백을 해버린 것이다. 쭉 지켜봤다고. 너같은 예쁜 애랑 사귈 수 있으면 정말 행운일 꺼라고.

눈 앞에서 다른남자에게 고백당한 현아를 바라보며, 나는 그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까 노심초사했다. 아무리 평소에 남친소리를 입에 달고 살긴 했지만... 저렇게 면식도 없는 남자의 고백을 냉큼 받아낼 정도로 머리가 빈 건 아니겠지? 

애매하게 웃던 현아가 별안간 나를 돌아보았고, 난 그 시선에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내가 이렇게 안달난 모습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요. 나라도 좋다면요."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현아가 고백을 받아들인 건가?

뒤늦게 고개를 돌려 현아의 시선을 쫓았지만, 이미 그 눈은 내가 아닌 선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보여주던 환한 미소가 선배를 향해 있다. 

...그리고, 그 둘은 보란듯이 팔짱을 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나... 오빠랑 키스했다?"

"......"

현아에게 이상한 취미가 생겼다.

선배와 있었던 일들을 나한테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로 현아와 선배가 사귀게 된 지 사흘째. 불과 3일만에 현아는 그 귀여운 입술을 빼앗기고 말았다.

...뭐, 다 좋다. 사귄다고 했으니 키스정도야 할 수도 있지.

근데 그걸 왜 나한테 와서 말하는 거냐.

"첫키스였는데... 나쁘지 않았어. 또 하고 싶더라. 헤헤."

수줍게 웃으며 입술을 만지작거리는 현아의 모습에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아니, 알 수 없기는 개뿔. 이건 분명 열받고 있는 거다. 깊은 빡침이 머리끝까지 솟구쳐 뚜껑이 열릴 지경이다.

하지만...

"좋았겠네. ...난 어디서 여자친구 안떨어지나."

...이러고 말았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화를 내냐. 막말로 현아가 지금 나랑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 남친이랑 키스했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어? 거기에 내가 간섭할 자리는 없다.

그래도 화를 내야 겠다면... 진작에 현아를 내것으로 만들지 못한 이 병신같은 머리통을 욕해야 겠지.

"응. 성현이 너도... 진짜 잘생겼는데. 왜 여친이 안생길까...?"

"그러게."

그러게는 무슨. 내가 만들 생각이 없으니 안생기는 거지.

솔직하게 말해볼까? 나한테도 고백같은거 간간히 들어온다. 방금 현아가 말했다시피 나도 좀 얼굴이 되거든. 그래서 내 얼굴보고 달려드는 여자들이 종종 나오긴 한다.

가끔은 나도 눈 딱감고 아무 여자나 골라잡아서 여친으로 만들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한다. 현아도 그 옆에 남친이란 녀석이 자리잡고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것도 없잖아? 그리고 혹시 알아? 내 옆에 여자가 달라붙어 있으면 현아가 조금은 질투라도 해줄지.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안가 접고 말았다.

저렇게 선배와의 일을 늘어놓는 현아를 보자 그럴 마음이 싹 가셨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왜 저런 말들까지 전부 나한테 늘어놓는 거지? 

예전부터 나한테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녀석이긴 했지만... 이건 성격이 다르잖아? 좋아하는 사람과 있었던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한테 발설해도 되는 건가?

혼자서 머리 싸매고 끙끙대봐야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왜그러냐고 말하기도 뭐하다. 여기서 정색해버리면 그동안 쌓아왔던 '친구' 로써의 이미지마저도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그냥 그렇게 말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쿨한 척 넘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

현아가 들려주는 그 둘의 스킨쉽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다.

지금까지 내가 들은 바로는, 현아는 키스한 다음날 가슴을 허락했고, 그 다다음날은 치마 속으로 손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그새끼의 자지를 빨았다고 한다. 이쯤되면 거의 끝까지 가기 직전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현아는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나 오늘... 오빠랑 하러 가."

"...뭘?"

"섹스. 오빠는 예전부터 계속 하고싶어 했는데... 내가 미뤘거든. 그러다가 결국 오늘 하기로 했어."

"......"

결국 이런 날까지 온 건가.

현아는 오늘 그 선배한테 자신의 처녀를 갖다바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을 여지없이 나에게 보고했다.

...이젠 뭐 이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냐 같은 생각도 안든다. 

그래, 맘대로 해라. 그새끼랑 떡을 치던 뭘 하던 맘대로 하라고. 더이상 나혼자 앓는 것도 지쳤고, 널 신경쓰는 것도 지쳤다. 내가 언제까지 니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면서 챙겨줄 것 같냐? 나도 이제 더이상 그런 건...

"...집에서 하는 거야?"

...겨우 나온 말이 저거다.

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혼자 사니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

그 말을 끝으로 현아는 등을 돌렸다. 

현아는 혼자 산다. 중3짜리가 왜 혼자 살고있는가 하고 의아하겠지만, 현아의 가정사가 좀 불우하다. 지금 살고있는 집도 먼 친척이 마련해준 거라고 한다. 생활비는 한달에 한번씩 들어오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전부 현아가 자력으로 해야 한다.

그러니 집에 남자를 끌어들여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태클 걸 사람이 없으니까. 집에서 뭘 하던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

현아도 많이 컸다.

코찔찔이 초딩때는 덜렁이에 울보에... 혼자 내비두면 불안한 그런 꼬맹이였는데. 이제는 머리좀 컸다고 혼자 알아서 다 한다. 현아는 더이상 준비물을 빠뜨리지도 않고, 힘든 일이 있어도 울지 않으려 꾹 참는다. 그리고 이제는 남자친구도 만들어서 애정행각을 자랑한다. 더이상 내가 기억하는 그 현아는 없는 거다.

현아가 저렇게 성장할 동안... 난 뭘 했을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꼬맹이라고 놀리며 그 뒤를 봐주던 것도 예전 일이다. 지금의 현아는 내가 간섭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잘 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여전히 현아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여자애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현아의 그림자를 밟았다. 만약 내가 그것을 인정해 버린다면... 더이상 나는 현아에게 필요없는 존재가 되는 거잖아? 

어쩌면 나는 내 스스로 성장하기를 거부했던 걸지도 모른다.

현아가 기억하는, 언제나 자신을 챙겨주는 그런 사람. 난 그런 '친구' 로써도 좋다고 만족해버렸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현아의 뒤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

이걸로 좋은 걸까.

그냥 이렇게 병신같이 뒤에 서있는 것으로 만족하는게 옳은 걸까.

[난 혼자 사니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문득 현아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 힘없는 목소리와 축 처진 어깨가,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

아... 그런가. 

현아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 있잖아...?

간섭하는 것도, 챙겨주는 것도, 예전부터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내 몫이다.

현아는 그런 내 이미지를 떠올리며 나에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흘러가버리는 자신을... 간섭해 달라고 말이다.

......

역시... 이걸로 좋다.

성장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이대로 멈춰버려도 좋다.

현아가 기억해주는 내 모습...

전혀 성장하지 않은 그런 내 모습을, 현아는 바라고 있는 거다.

"......"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늦지 않았을까? 시간이 좀 흘러가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현아에게 가야 한다. 가서, 이 병신같은 짓거리는 그만두는 거라고 '간섭' 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 * *

똑똑.

현아의 방 문을 노크했다. 아무 기척도 없다.

나는 지금 현아의 집으로 달려온 참이다. 집은 그다지 멀지 않다. 전력으로 뛴다면 한 십 분 정도의 거리니까. 그렇게 나는 개처럼 달려서 현아의 집에 도착했고, 스페어로 가지고 있는 키로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면서 현관을 봤는데, 남자 신발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 그 선배가 여기에 없다는 말이다. 아니면... 현아는 애초에 선배와 이 집을 온게 아니라던가.

몇 번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결국 나는 문고리를 잡고 그것을 돌렸다. 아무 소리없이 스르륵 열리는 방문에 내 심장마저 쫄깃해지는 기분이다. 

"......"

다행히도 현아가 있다.

침대에 누워있는 현아는 잠이 든 모양인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설마.

남친이랑 떡치러 간다고 한 건 뻥이었던 건가?

실은 이렇게 집에 혼자 돌아오는 신세인데, 괜히 나 열받으라고 그런 거짓말을 한 건 아닌가?

하하... 귀엽다 정말.

성장했다고 생각했더니, 너도 별 수 없는 꼬맹이구나. 이렇게 나한테 응석도 부릴 줄 아는 계집이었...

......

뭔가를 밟았다.

왠지 흐물거리는 감촉이 전해지면서, 질척한 무언가가 내 양말을 적시고 스며든다.

"......"

...콘돔이다.

그것도 정액이 가득 담긴 콘돔이 내 발 밑에 있다.

뭐지 이건.

왜 이런게 현아의 방에 떨어져 있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거... 방금 떡치고 난 후에나 생기는 그런 음란한 물건이잖아?

......

역시 현아는...

그새끼랑 해버린 건가...?

몇 번이나 침을 집어삼켰는지 모르겠다.

저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현아의 이불을 들춰내야 하는지에 대해 수도 없이 고민했다.

...결국 나는, 현아의 이불을 들추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보고싶지 않았던 것을 보고야 말았다.

현아의 다리 사이는... 그새끼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

이거...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지??

정말 이거... 진짜라고?

현아가...

다른 남자랑 했다고...?

"......"

수건이... 어디 있더라. 화장실에 있으려나...?

어떻게 다리를 움직여서 겨우 욕실로 갔다. 수건이 벽면에 걸려 있다.

그것을 꺼내어 세면대에 놔두고 수도꼭지를 올렸다.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물들이 현아의 수건을 조금씩 적셔 나간다.

......

현아는 아직도 잠들어 있다.

왜 자고 있는 걸까. 첫경험이 너무 힘들었던 걸까? 

아니 그보다... 현아를 이렇게 방치해 놓고 어딜 사라진 거야, 그새끼는.

현아를 바로 눕혀서 살짝 다리를 벌려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현아의 꽃잎이 그대로 내 눈에 각인된다. 그것만 눈에 들어오면 좋았을 텐데... 저 역겨운 액체가 시야를 방해한다. ...얼른 닦아내자.

......

제길. 왜 자꾸만 눈이 흐려지는 거냐. 현아를 닦아줄 수가 없잖아.

잠들어 있는 현아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닦아야 하는데... 이래서야...

"...으응..."

...깬 건가? 내가 너무 힘을 줬나?

이런... 이런 모습을 보이면...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걸 들키면 안되는데...?

"...어? 언제왔어...?"

잠에서 막 깬 현아가 부시시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본다. 그러다가 아랫도리가 허전한 것을 느꼈는지 그 시선을 아래로 향한다. 

"나... 해버렸어... 헤헤..."

...그 표정은...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어떠한 말을 갖다붙혀도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슬픔이다.

"...내가 그랬어."

"어...?"

"너... 나랑 한거야. 기억 안나? 내가 여기 와서 그새끼 돌려보내고 나랑 한거라고..."

"......"

현아의 입이 다물어졌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물론 그럴꺼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나, 예전부터 너랑 쭉 이러고 싶었거든. 근데 갑자기 나타난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너한테 들이댔잖아? 존나 꼴받고 있었는데 결국 오늘 터트린 거야. 알았어? 너랑... 너랑 한 건 그새끼가 아니라 나야... 내가 너랑 한거라고..."

......

여기서 눈물이 나오면 어떡하냐, 이 등신아. 거짓말같은 얼굴로 태연하게 대꾸했어야 하는데... 이래서야 현아한테  씨알도 안먹히잖아.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터져나와 더이상 현아가 보이지 않는다. 눈을 질끈 감으며 눈물을 떨어뜨려도 어느새 또 솟아나와 뺨을 적신다. 

"울지마... 남자가 바보같이."

"......"

"응... 맞아. 그랬던것 같아. 날 안아준 건... 다른 남자가 아니라 바로 너였어."

"......"

"나... 너랑 해버린 거네? 내 처음 니가 가져간 거네... 헤헤... 좋다..."

......

현아가... 내 장단에 맞춰주고 있다.

속아주는 척 하는 건가...? 그새끼와의 경험은... 현아로써도 기억하기 싫었던 건가?

아니면...

"이제부터는 말이야... 이렇게 몰래 와서 나 안덮쳐도 돼. 나랑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

이제야 비로소 현아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물이 말라버린 건가... 덕분에 저 예쁜 미소가 눈에 확실히 들어온다.

"우리 이제... 사귀는 사이니까. 그치...?"

......

젠장.

또 현아가 안보인다.

내 현아를 가리지 마라...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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