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41)

색기발랄 > 외전 - 윤성현, 그리고 박을 下 외전 - 윤성현, 그리고 박을 下 

외전 - 윤성현, 그리고 박을 下

어느덧 우리는 고등학생이 됐다.

현아와는 아직 연인의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뭐 사귀자고 말했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으니 연인인 거고, 그 상태로 쭉 지내왔으니 유지하고 있는거지. 별거 있나.

현아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퉁명스러운지 궁금한가?

딱히 이유랄 것도 없다. 다만...

"있다 끝나고 책사러 갈래?"

...연인이라는 느낌이 별로 안드는게 이유라면 이유랄까.

솔직히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왔다. 그래서 이렇게 연인으로 발전했어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방법을 모른다는 소리가 아니다. 현아를 볼 때마다 두근거리는 이 감정은 분명 진짜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고 해야 할까. 아직은 연인을 대한다는 느낌보다 친구를 대한다는 감정이 더 크다.

......

현아의 말대로 방과후 서점으로 향했다. 책사러.

참고서 같은거 사는 건가 하고 봤더니... 만화잡지나 소설책을 구경하고 있다. 취미는 좋다만... 살 돈은 있는거냐.

"나 이거 사줘."

...저럴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버릇을 잘못 들여논 거다, 이건.

물론 난 군소리없이 지갑을 열었다. 현아보다는 내가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현아의 취미거리들을 사가지고 서점 문을 나설 때였다. 맞은편에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같은 교복이다.

"어? 을이잖아?"

현아가 아는체를 한다. 을이라고? 사람 이름인가?

그쪽도 현아를 알아봤는지, 슬쩍 미소를 띄운다. 그리고는 그렇게 현아의 곁을 스쳐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

뭐지 저새끼는. 왠지 나랑 비슷한 냄새가 난다. 어딘가 동질감을 느끼기에 딱 좋은 그런 인간이 방금 내 옆을 지나갔다. 막상 뭐가 비슷한 건지는 하나도 모르겠다만.

내 눈초리를 느꼈는지, 현아가 부연설명을 했다.

"박을이라고, 같은 반이야. 넌 처음보지?"

...박을? 뭐 얼마나 잘박길래 이름이 박을이냐?

흠...

나름 생기긴 했네. 나정도 되려나?

그래서 그런가, 현아는 그런 박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뭘까, 저 눈빛은.

뭔가 기분이 슬쩍 더러워질려고 해서 헛기침을 했다. 그제서야 현아가 나를 바라본다.

"왜?"

"왜는 뭐가 왜냐. 언제까지 쳐다보고 있을 꺼야? 안가?"

"후움..."

뭔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띄우는 현아의 얼굴. 저렇게 눈을 내리깔아도 예쁘다. 이거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구나.

"너... 질투해?"

"...왠 질투?"

"내가 남자 쳐다보고 있어서 지금 화낸거 아니야?"

"이게 무슨 화낸거냐. 너 내가 진짜 화내는거 한 번도 본 적 없지?"

"...그래?"

현아의 표정이 쌜쭉하게 바뀌었다.

"나 그럼... 쟤랑 놀아도 돼?"

"...뭐?"

"왜. 싫어? 질투 안한다매?"

"......"

"니가 안풀어주면 내가 알아서 풀어야지 뭐. 안 그래?"

......

사실 이건 언젠가 터질꺼라고 생각했다.

무슨 소리냐고? 난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현아를 안은 적이 없거든. 쉽게 말해서 우리는 1년이 넘게 연인이란 이름으로 사귀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떡친 적이 없다는 거다. 

이건 내 쪽의 문제가 크다.

그렇게 강간당하듯 버려진 현아의 다리사이를 본 것이 꽤나 큰 충격으로 작용했다.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현아와 섹스하는 것이 꺼려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내가 현아와의 연인사이를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건 이것 때문일 수도 있겠지. 그러니 자연히 현아는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것이다. ...근데 무슨 여고생이 욕구불만에 걸리는 거냐. 

아무튼 현아는 그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스킨쉽 같은거 없어도 항상 웃어주던 현아였는데... 얼마나 쌓였길래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래... 그렇게 해. 쟤랑 실컷 놀아. 암말 안할께."

...그래서 이런 말을 해버렸다.

물론 바람피라거나 하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지금의 난 정상적으로 현아를 안아줄 수 없으니까,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다른 사람한테서 그 기분을 잠깐이나마 맛보라는 뜻이다. 그렇게 욕구를 충족시킨 현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올꺼 아니야? 또 욕구불만이 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거 진짜야?"

"어. 신경 안쓸께. 하고싶은 대로 해."

"......"

현아는 대답대신 고개를 홱 돌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뭐야 도대체. 하고싶은 대로 하랬더니 왜 또 저러는 거야?

* * *

내가 했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정말로 현아는 그 박을이라는 녀석을 대동해서 노래방으로 들어간 것이다. 맥주캔이 담긴 봉지를 손에 들고, 그렇게 현아는 박을과 함께 지하에 있는 노래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론 저 둘만 노는 건 아니다. 현아는 나도 불렀다. 말하자면 셋이 놀자는 거다.

현아가 바라는대로 재밌게 놀려면 내가 없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런 내 물음에 현아는 '니가 직접 보고 느껴야 돼' 라는 의미모를 말을 남겼다.

그렇게 그 둘은 지하로 사라졌고, 뒤따라가던 난 태우던 담배를 마저 피우고는 그 뒤를 따랐다.

......

현아는 정말로 신난 것처럼 보였다.

박을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현아는 은근슬쩍 그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기도 하고 박을의 손을 자신의 몸으로 유도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놀고 있었다.

...보는 내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원래는 내가 해줘야 정상인데 말이지... 내가 고자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보니 저렇게 다른 남자의 품에서 욕구를 풀어내야 하는 거다. 

하지만... 왜 저런 걸 나한테 보여주는 거지?

뭘 보고 느끼라는 거냐. 그냥 둘이서 재밌게 놀면 그만이잖아?

......

답답한 마음은 계속됐다. 

어느덧 현아는 내 눈을 의식하던 것도 잊은 듯, 박을과의 스킨쉽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짧은 교복치마 속으로 박을의 손이 들어가고, 현아는 그 손길에 허벅지를 베베 꼬면서 박을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더이상 보고 있기가 괴롭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말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

나도 안다.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거.

섹스를 못하겠다면 그 직전까지라도 간다던가, 얼마든지 현아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상황을 연출하게 냅두는 걸까? 현아가 원하니까? 분명 그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 후우... 모르겠다. 이 좆같은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난 정말 현아의 남자친구가 맞는 걸까?

......

어느덧 담배를 세 개나 피웠다. 머리가 어지럽다.

슬슬 방으로 들어갈까 하고 문을 열었다.

...박을의 자지가 현아의 다리 사이로 밀고 들어가려 한다.

"...거기까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진짜. 이건 아니지. 지금 뭘 하려고 한 거냐?

"......"

쇼파에 누워있던 현아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뭐가 웃긴 거냐. 지금 웃음이 나와?

근데... 조금 이상하다. 평소에 내가 알던 현아의 미소가 아니다. 

뭔가 꺼림칙하다고 해야 하나? 같은 얼굴인데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

결국 박을은 돌아갔다.

그새끼, 굉장히 열받은 것 같더라. 딴에는 장난감처럼 굴려졌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뭐, 그 말도 틀린 건 아니다. 현아의 장난감으로 굴려진 거니까. 어디까지나 대타의 개념이지, 정말로 현아랑 뭐 어떻게 해보려고 한 그 순진한 생각이 잘못된 거다.

"...어땠어? 나랑 을이 본 소감이?"

"...뭔 소리가 듣고 싶은거냐?"

"응? 그냥 느낀 그대로가 듣고 싶은데."

"......"

설마 장난감처럼 굴려지고 있는건 내가 아닌가?

내 반응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걸 물어?

"...별로. 앞으로도 그렇게 놀아. 상관 안할테니까."

"......"

현아가 입을 다물었다. 어둑어둑해져서 그런지 표정을 살피기가 힘들다.

"...니가 이렇게 하라고 한거야. 니가 허락한 거야."

"......"

"그러니까... 나중에 딴소리 하지마. 더럽다느니 제정신이냐느니 이딴소리 했다가는... 목졸라 죽일꺼야."

......

왠지 농담으로 들리지가 않는다. 정말로 목졸라 죽일 기세다.

말없이 걷던 현아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멍청이."

* * *

그 이후로도 현아의 변태행각은 계속됐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꺼다.

나를 대동한 자리에서 다른 남자를 끌어들이고, 그 남자와의 스킨쉽에 열중한다. 노래방에서 박을과 했던 그것과 똑같은 패턴이다. 현아와 엉키는 입장인 남자들의 반응도 항상 똑같다. 내 눈치를 보면서 쭈뼛하다가도, 내가 가만히 있는 것에 자신감을 얻어 현아를 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끝이 섹스로 이어지진 않는다. 내가 아무 말없이 가만있는다고 해도 나를 앞에 두고 자지를 꺼낼 생각은 못하는 거지. 그렇게 플레이는 끝이 나고, 남자들은 뭔가 아쉬운 표정으로 현아를 힐끔거리다가 사라진다.

현아는 만족하는 것 같았다. 다른 남자와의 스킨쉽에 만족을 느끼는 현아의 모습이 달갑지는 않지만... 나는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킨쉽이 끝난 후의 현아는 평소보다도 더욱 밝은 미소로 나를 대해주었으니까. 본능적인 욕구가 풀려서인지, 아니면 양심의 가책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냐. 현아가 바람을 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욕구를 풀고 있을 뿐인데. 욕구를 풀고 나면 다시금 나에게 웃어주리란 내 생각이 그대로 들어맞고 있으니, 나 또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지만, 현아는 이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현아의 플레이는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길 가던 남자한테 추파를 던져 으슥한 곳으로 이끌기도 하고, 알바하던 곳의 점장과 썸씽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현아의 플레이는 갈수록 진화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더이상 나를 대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새 현아의 플레이는 자기 혼자 남자를 끼고 놀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즐기고 온 현아는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뭐 어디까지 갔느니 뭘 했느니 등등. 

그렇게 경험담을 늘어놓던 현아의 입에서 어느 순간부터 따먹혔다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다. 내가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제와서 회의를 느낀다거나 그만두라고 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

사실 딴소리를 할 수도 없다. 애초에 현아가 이렇게 돼버린 것도 내 탓이고,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도 나였으니까. 만약 내 기분만을 내세워서 현아를 제지한다면... 아마 나와 현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지금까지 나 이외에도 여러 남자들을 맛본 현아였으니, 굳이 내가 아니라도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표현은 틀리다. 현아가 만족하는 것처럼, 나도 이 상황을 만족하니까.

충분히 잘난 남자를 고를 수 있을 텐데도 나를 버리지 않는 현아가 좋다.

아무리 바깥에서 놀아난다고 해도 결국 내 옆으로 돌아오는 현아가 좋다.

돌아오고 나면 언제나처럼 나에게 웃어주는 현아가 좋다.

나는... 현아가 좋다.

그래서... 견딜 수 있다. 이런 것 쯤, 아무것도 아니다.

* *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우리 사이에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겼다. 

현아와 동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이유야 뻔하지. 현아를 옆에 두고 싶었으니까. 

아무리 연인사이라 해도 결국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현아를 챙겨주고 싶다. 현아를 껴안고 달콤한 꿈을 꾸고 싶다. 이런 생각이 점점 구체화되어 결국 나는 동거라는 카드를 꺼냈다.

부모님께는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물론 현아의 방탕한 플레이 부분은 빼고. 설득하는데 조금 애를 먹었지만, 결국엔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나와 현아가 살 집으로 꽤나 좋은 곳을 마련해 주셨다.

현아는 굉장히 기뻐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좋아하는 현아를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나랑 사는게 그렇게나 좋을 일일까? 뭐 일단 나부터가 팔짝 뛸 정도로 좋은데 현아도 마찬가지겠지.

......

하지만 현아의 변태플레이는 끊기지 않았다. 같이 산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현아는 여전히 그 욕구를 풀러 바깥으로 나돌았고, 나는 현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어느새 일과가 돼버렸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현아의 배를 맞대고 누웠을까. 그리고 현아는 그 배에 깔려 얼마나 많은 절정을 맛보았을까. 현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좋았다는 말도 간간히 나온다. 아마 그게 절정까지 갔다는 소리겠지?

......

문득 어릴 적 일이 떠오른다. 그 때의 나는 현아를 가지기를 희망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그저 현아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만족하며 그대로 머물기를 바랬다. 

지금은 어떨까? 현아와 연인이 되었고, 이렇게 떳떳하게 동거까지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하지만, 이것으로 나는 그 때와는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 때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현아가 어떻게 놀아나든, 난 현아의 남자친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렇게 현아와 이어질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현아의 뒤에 서있다는 것 역시 똑같다.

......

당연히 알고 있다. 챙겨주기만 하는 이런 해바라기같은 사랑으로는... 현아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오로지 현아를 뒷바라지하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던... 유년기 시절부터 멈춰있던 나도... 이제는 성장해야 할 때라고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레벨업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난 현아에게 너무나도 부족한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저 알기만 할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여전히 모른다. 현아와 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무언가가 있기는 한 건가? 지금의 이 상황보다 더 나은 상황을 과연 내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무리다. 난 그럴 자신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런 기묘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 뿐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는 나랑 현아가 둘 다 만족하고 있으니까. 

......

생각이란 것은 허무하다.

무엇을 생각하던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치...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처럼 말이다.

* * *

......

모텔을 나왔다.

지금 나는 술에 떡이 된 현아를 모텔방에 눕히고 나오는 길이다.

오늘은 현아의 고등학교 동창회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나는 꽐라가 된 현아를 들쳐 엎고는 한 모텔을 잡아 침대에 눕혀 놓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한 명의 남자를 현아의 옆에 내려 놓았다. 

이것은 현아가 지시한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남자들 중 하나를 데려다 자기 옆에 눕혀달라고. 그럼 그 이후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난 그 말대로 술떡이 된 동창들 중 하나를 데리고 현아가 있는 모텔방으로 끌고 갔다. 

공교롭게도 그 남자는 박을이었다. 

현아의 첫번째 변태플레이의 희생양도 이녀석이었는데, 또 이렇게 엮이다니. 이쯤되면 인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아니지. 인연은 현아한테나 어울릴 만한 단어고, 이 녀석의 입장으로써는 그냥 존나게 재수가 없는 거다. 또 이렇게 현아한테 묶이게 됐으니까.

......

그저 바깥을 나돌면서 일회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여친 행세를 하면서 상대를 가지고 논다. 현아 자신의 욕구는 욕구대로 채우면서, 남자의 반응을 지켜보며 즐긴다. 그리고 그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말해주며 같이 웃고 떠든다.

이것이 지금의 현아가 즐기고 있는 플레이다.

그리고 그 플레이의 새로운 희생양으로 박을이 선정되었다.

...벗어날 수 있을까? 현아라는 마성의 여자한테서.

나조차도 그 그림자에 빠져 헤어나오기를 포기한 그 성현아에게서... 과연 벗어날 수 있겠냐. 박을.

기도나 하는게 좋아.

현아가 변덕을 부려 그 타겟이 바뀌지 않는 한... 너한테 희망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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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의 에피소드는 이렇게 마지막 외전 두 편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조아라의 후기에 적었던 인물설정을 이쪽으로 복사해서 붙여둡니다.

주인공인 박을. 

이름이 을(乙)이라는 것부터 콩라인입니다. 을은 두번째를 뜻하니까요. 이름을 저렇게 지었을 때부터 엿먹을 운명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적인 입장이니 당연히 이쪽에 감정이입을 하신 분들이 많겠지만, 사실 이녀석의 역할은 상황설명과 이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 이외에는 없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NTR을 당한 것도 아니죠. 오히려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려던 것에서 벗어났고, 정소연이라는 일편단심 계집애도 얻었으니 흔한 NTR물의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마 이후의 스토리가 이어진다면 지금의 충격을 벗어내고 정소연과 알콩달콩하게 잘 살겠죠.

다음은 성현아.

글을 소개하는 문구에도 써있는 '변태플레이'의 핵심에 서있는 인물입니다. 모든 것은 이년이 즐겨 하는 그 플레이때문에 일어난 일이죠. 자기가 예쁜걸 알고 있고, 그걸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여자입니다. 자기가 만족한다면 누가 됐든 이용해먹고, 그것을 감추기 위한 연기도 뛰어납니다. 거짓말도 밥먹듯이 해서 거기에 속아넘어간 남자들이 한둘이 아니죠. 여기서도 박을과 박우리가 몇 번이고 속아 넘어갔습니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악의 근원이지만, 박을의 시점으로 진행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이 천천히 부각된 것이죠. 어떤 분은 그저 개쌍년일 뿐인 성현아의 이야기가 아니냐, 그런 떡밥이라도 깔아놨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씀하셨지만... 나름의 떡밥은 있었습니다. 성현아와 박우리의 썸씽은 전부 성현아 스스로 접근한 것이다 하고 박을이 잠깐 생각했다던가, 그런 것들이 떡밥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박우리.

일단 이름은 우리라고 미리 정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언어유희를 하기 좋은 이름이거든요. 성을 뭘로 할까 하다가 주인공이 박을이라는 잘 박게 생긴(?) 이름이니 얘도 그쪽계통으로 짓자 해서 박우리가 되었습니다;

얼핏보면 정상으로 보이지만, 이녀석 역시 어딘가 맛이 간 녀석입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짝사랑해온 성현아를 박을한테 NTR당한 시점에서부터 뒤틀리기 시작했죠. 십년지기 친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박을에 대한 엄청난 열등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표출하지는 않습니다.

본편 마지막의 결과로만 보자면 성현아를 차지한 최후의 승리자는 박우리가 되는 셈이지만, 그게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성현아를 가져갔다는 것만으로도 박우리는 충분히 빅엿을 먹은 셈이죠.

정소연. 또는 윤소정

이 계집의 떡밥은 진짜 많이 풀었습니다. 얘가 바로 그 3개월 꼬맹이라고 말이죠. 

3개월 꼬맹이의 첫 등장묘사와 정소연의 첫 등장묘사를 거의 똑같이 썼다거나, 그 꼬맹이가 한 대사를 정소연이 똑같이 한다거나. 똑같은 귀요미 스타일에 나이도 같고 박을도 종종 그 꼬맹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갔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신 것 같더군요;

얘는 성현아의 변태플레이에 엮인 나머지 넷과는 달리 유일하게 바깥에서 떠돌던 인물입니다. 정소연의 관심사는 오로지 박을 하나였으니까요. 결과적으로 박을이랑 잘 되기만 하면 아무래도 좋았던 정소연이라 가끔은 박우리의 편에 붙기도 하고 가끔은 성현아의 편을 들어주기도 하는 등, 철저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노리고 움직인 캐릭입니다. 거기에 얀이라는 속성까지 붙어 결과적으론 상당히 음침한 꼬맹이가 됐죠. 어찌됐든 정소연의 입장으로써도 해피엔딩입니다. 원하는 박을을 손에 넣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윤성현.

성현아의 이름을 지었을 때 바로 튀어나온 이름입니다. 윤성현의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면 '성현아~'가 되죠. 외전에서 나온 것과 같이, 이 윤성현은 죽을 때까지 성현아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그런 함축적인 의미입니다;

박을의 시점으로 진행됐으니 윤성현의 캐릭은 철저한 악으로 그려졌지만, 외전에서 보셨다시피 제일 불쌍한 녀석임과 동시에 진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캐릭입니다. 사실 윤성현의 성격은 기존 NTR물의 주인공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 소극적인 성격, 현실을 직면하고서도 그것을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좌절, 끝없이 NTR당하는 운명 등등. 만약 윤성현의 시점으로 이 글이 전개됐다면 소프트라는 글자를 떼고 하드를 붙혔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성현아가 어떻게 놀던 결국은 자기 옆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방치한다는 설정입니다. 지금도 성현아는 박우리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 채 끝났지만, 결국 박우리는 빅엿을 쳐먹고 버려지게 되고, 다시 윤성현의 옆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향해 움직이겠죠.

박을도 그렇고 윤성현도 그렇고 서로를 보며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뭔가 비슷한 점이 보이시나요? 일단 둘 다 병신이라는 건 똑같군요;

아... 박하나도 있군요.

사실 얘도 분량감축의 희생양입니다. 원래는 좀 더 나와서 활동할 캐릭이었지만, 단역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주로 박을과 엮일 캐릭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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