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1/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여든 여섯 번째 과외.

*

“왔어? 어, 민식이 너. 왜 이렇게 오늘따라 몸이 으슬해 보이냐.”

“말도 마, 오늘 일 보다가 혼이 빠져나가는 줄 알았어.”

어제 그 고통스러운 시련을 견뎌내면서 쏟아부은 덩어리에 영양소도 같이 쏟아져 내려간 듯,

오늘 따라 전신이 후들거렸다.

차게 식어버린 땀은 삐질삐질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나오며 이마를 타고 흘렀고,

그런 내 모습에 카운터에서 노가리를 까던 민정 누나는 날 보더니 곧바로 평소와는 다른 나의 모습을 눈치챘다.

나는 입을 겨우 열며 탄식하는 듯한 어조로 누나에게 하소연했다.

“에휴, 맛있는 치즈라면이 그런 재앙을 불러일으켰다니, 너도 참 운이 안 좋구나. 그래도 어쩌겠어?

  알바는 알반데, 빡시게 뛰어야지.”

‘ㄱ..개냔.. 오늘 하루는 쉬는 게 어때? 라는 말도 안 하다니.. 이게 현대 사회의 개같은 동료의식인가. 우우우우-’

하지만 너무 시니컬하게 대답해주는 민정 누나.

난 그녀의 얼굴이 뜨거워 녹아버릴 정도로 째려보고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붙여져 있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세 개의 캐비넷이 있었다.

‘김민정’‘김유진’‘김민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캐비넷이.

근데 그러고보니, 셋 다 김씨네.

여튼 벗기도 힘든 옷을 벗고, 입기도 힘든 유니폼을 입고 나오자마자 문 앞에 있는 의자에 힘든 몸을 걸쳤다.

“힘들긴 힘든가보네.”

“응. 죽다 살아났으니까.”

“그럼 1분만 쉬어.”

고맙습니다. 1분이나 주시다뇨, 차라리 그냥 아파도 일이나 하라고 하세요.

그래도 민정누나가 일 분이나 휴식시간을 줬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으리오.

나는 잠시 일 분동안 앉아있었다가, 시간이 되자 몸을 일으키고 뻐쭉지근한 어깨를 풀었다.

“근데 너 내일이면 여기서 일한 지 한 달이네.”

“응?”

“한 달이잖아. 오호, 월급 받겠는데? 나 같이 야위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월급 타는 기념으로 먹을 것 좀 사줄래?”

나는 민정누나의 말을 간단히 무시해버리고, 주문 요청이 왔길래 요청버튼을 누른 테이블로 걸어가서 주문을 받으려했다.

“커피는 어느걸로 드시겠습니까.”

“아, 녹차라떼 주시구요. 도너츠는 이걸로.”

“네. 곧 갔다드리겠습니다.”

“아, 잠깐.”

뭔가 촌스럽지만 고풍스러움이 느껴지게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2:8 가르마의 사나이가 고풍스러운 품위를 유지하면서

내게 주문을 했다.

나는 주문을 받고, 다시 카운터로 가려는 순간 그 남자가 내 작업복의 옷깃을 잡았다.

하, 잡으면 옷깃 늘어나는데.

“자네 누구랑 많이 닮았어.”

“아.. 제가 강동원을 닮았다는 소리ㄱ..”

“아니.. 시니컬한 그 눈매, 갖다대면 베일 것 같이 날렵한 콧등과 턱선, 매혹적인 그 입술까지.”

“하하하..”

“이완용을 닮았군.”

아, 방심하다 당했다.

나는 잠시 내가 ‘이완용’을 닮았다는 소리에 멈칫하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리며 다시 카운터로 걸어갔다.

그리고 주문을 받은 주문서를 민정누나에게 건네 준 다음, 거울을 쓰윽하고 쳐다본다.

‘흠, 내가 레알 이완용 닮았나.’

핸드폰을 켜서 웹 어플에 들어가 이완용을 검색해보는 나다.

뭐야, 안 닮았잖아.

**

-3인칭으로 전환.

“하아.. 김민식 이 나쁜 새끼.”

이 곳은 가만히 있어도 무거운 공기가 어깨를 매몰차게 누르는 듯한 분위기가 흐르는 쾌기발랄한 소녀들의 숙소.

하지만 엄청난 스케쥴에 찌들고, 갑자기 뜬금없이 사라져버린 옆 집의 남자 때문에 몇 주째 소녀들의 마음은

평온하기는 커녕, 아침의 답답하게 펼쳐진 자동차들 마냥 온전치 못하다.

유리도 방송에서는 해맑고 밝은 웃음을 보여주지만, 숙소에만 왔다하면 자신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들어낸다.

집에 오자 마자, 유리는 말 없이 떠난 옆집의 이웃을 원망한다.

“유리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우리들은 어떡하라고?”

“뭐, 민식이도 사정이 있으니깐 그랬겠지.”

유리의 욕짓거리에 태연은 당황을 하며 유리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태연이 유리의 근처에 다다르자, 유리는 여태껏 쌓였던 것을 태연에게 하소연하며, 거의 뒷담 식으로 민식을 깠다.

태연이는 유리의 폭풍같은 민식의 질책을 막아내며, 계속해서 그녀와 대화했다.

“김태연, 근데 넌 왜 갑자기 민식이를 감싸줘? 니가 여친이라도 돼?”

“그,그냥. 감싸주는 게 아니라, 자세한 것도 모르면서 그런 말 하지말라는 거야.”

유리는 자신의 의견을 같이 수렴하여 편들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민식을 보호하는 듯한 어투의 태연에게 화가 났는 지,

니가 여친이라도 되냐며 태연을 타박하는 유리였다.

그런 유리의 말에 태연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윽고 자신의 할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불이 꺼져 어둑어둑한 태연의 방에는 달빛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마, 태연이 방에 들어가자 서러운 마음에 우는 듯 싶었다.

거실에 있는 유리도 그저 한 숨을 내쉬며,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민식을 원망할 뿐이었다.

“하, 내가 왜 걔 때문에 이래야되지.”

유리는 소파에 혼자 앉아 고민했다.

민식이가 떠나자, 가슴 속 한 곳에 응어리 진 답답함에 그것을 부수어 보려는 듯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쳐대고,

멍하니 있으면 왠지 모르게 눈물만 흐르고, 찾아보려 하지만 빡빡한 스케쥴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생기려 하지 않고,

그리고 연락을 하려하면, 냉정하게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이라서 밤마다 눈물을 흘리는 유리였다.

그렇게 몇 분을 더 있다가, 머릿 속으로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는 지 손가락을 튕기는 유리였다.

“얘들아 나와봐!!”

불만이 한가득 차여있는 아까의 목소리와 달리, 지금의 유리의 목소리는 매우 쾌활했다.

그런 유리의 목소리가 숙소에 가득 퍼지자, 한 명씩 어기적 거리며 거실로 모였다.

아직 촛불을 세팅하지 않았지만, 세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진지한 모습의 소녀들이였다.

태연은 자신이 눈물을 흘렸던 흔적을 지우고, 제일 마지막으로 나왔다.

하지만 아까 유리와 싸워서 그런지, 껄끄러운 표정으로 거실에 앉았다.

“왜?”

“우리 이대로는 안되겠어. 민식이를 찾자!”

유리의 용기가 가상한 말에, 가만히 멍한 채로 듣고 있었던 시카,서현,효연,수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좋아!”

“안돼.”

유리의 말에 순규,윤아,파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찬성을 외치며 손을 들었다.

하지만 ‘안돼’라는 말에 모두 소리가 나온 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그곳에는 태연이 있었다.

“왜?”

이제는 태연에게 반감이 생겼는지 비꼬는 듯한 어조로 태연을 대하는 유리였다.

“우리 스케쥴은 어떻게 하고, 또 어떻게 찾을 건데? 그리고 그렇게 말 없이 사라지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냥 알아서 할테니까, 참여 안 할꺼면 빠져줘.”

“절대 안돼.”

“뭐?”

유리는 태연을 죽일 듯한 눈빛으로 매섭게 노려보았다.

태연도 마찬가지로 리더의 포스를 내며,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유리를 나무라며 유리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두 명의 대치상황에 멤버들은 입 안에 맺힌 침을 삼키기만 했다.

“니네들 싸우지 말라니깐, 또 싸우려고 하네. 나한테 맞아볼래?”

“...”

“유리 너는 니 하고싶은 대로 하고, 태연이 너도 니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유리는 민식이를 찾되 스케쥴에 지장 안가게 하고, 태연이 너는 민식이를 안 찾되 유리의 일에 간섭하지마.”  

제시카가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은 분위기에 한 숨을 쉬며 두 소녀들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를 했다.

제시카의 논리정연하게 정리된 말에 유리와 태연은 반박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느정도 일이 해결 된 것 같자, 냉정한 결론을 지었던 제시카는 다시 뒤로 빠졌다.

“알았어, 더 이상 유리 하는 일에 안 끼어들게. 그 대신 스케쥴에 무리가면 가만히 안 둬.”

“메에롱-”

태연은 제시카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유리에게 단호하게 말한 뒤 쾅하며 문을 세게 닫았다.

유리는 태연이 문을 쾅하며 닫자, 혀를 내밀며 닫혀있는 문 쪽을 향해 메롱거렸다.

“흐흠, 어쨌든 민식이 찾을 사람?”

그렇게 유리의 ‘민식이 찾을 사람 급구’라는 파티에 윤아,써니,파니로 구성된 파티원 3명이 추가모집되었다.

제시카와 수영과 효연은 귀찮다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오로지 서현이만 갈피를 못잡고 이리 저리 방황하고 있을 뿐.

“서혀언아, 너도 같이 찾을래애?”

“아니요. 저는 이번엔 태연언니 쪽에 설게요. 죄송해요.”

“괜찮아, 그렇게 사과할 필요까진 없어. 안 한다는데 우리가 뭐라고 하겠니.”

티파니가 갈피를 못잡는 서현이에게 같이 찾자고 제안을 했으나, 서현은 정중하게 그녀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태연이 있는 방으로 걸어들어갔다.

유리도 예의 바른 서현이의 말투 때문인지 따지질 않고, 아쉽게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그럼, 일단은 민식이에 대해서 아는 것 부터 읊어보자.”

하지만 유리는 다시 활기를 되찾고는 해맑은 얼굴로 자신의 파티에 들어온 파티원들을 환영해주며,

민식이에 대해 아는 것을 모조리 말하자고 했다.

“나이는?”

“22살”

“성별은?”

“남자.”

“더 아는 건 없어..?”

“..”

유리와 파티원들은 민식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에 꽤나 충격을 먹었다.

몇 달동안 자주 봤는 데, 아는 거라곤 나이와 이름과 성별 뿐이라니.

이 때까진, 친구 보다는 민식이를 섹스 파트너라고 생각한 그녀들이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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