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90/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여든 다섯 번째 과외.

깨끗한 증류수에 퍼지는 잉크 마냥 요구르트는 얼큰해보이는 라면 국물을 뿌옇게 만들어가며 퍼졌어.

색깔은 의외로 더욱 더 맛깔스럽게 보이는 듯 했지만, 코를 찌르는 아스트랄한 요구르트의 향은 부정할 수 없었지.

“어때, 맛있어 보이지?”

“으..응..”

난 일단 저 라면을 내 장에다가 선물해주는 것은 포기다.

그러다간 야무진 파이어 익스플로젼 스킬이 어디선가 불시에 시전될 것 같아서.

그 때의 태연이는 렄오빠가 노리는 완타치 유치원의 일곱 살 꼬마 보다도 더 해맑은 표정을 지었지.

하지만 내면에 자리잡은 사악한 꼬꼬마의 모습은 그녀도 모르고, 수능 이틀 앞둔 비트님도 모르고, 나만 알았어.

“언니, 걱정마. 얘들도 좋아할꺼야. 왜냐면 내가 만들었으니까.”

그건 어느 책에서 튀어나온 논리니.

고등학생의 수학 기본서라고 불리는 수학의 정석에서도, 크리스트교 성서인 바이블에서도 그런 이치는 안 나오는데.

그런 막무가내인 태연이의 모습에 나는 ‘그래. 니 맘대로 해라.’라는 식으로 그 라면에 손을 떼버렸지.

“킁킁, 이게 무슨 맛있는 냄새야?”

열심히 라면을 제조하고 있는 태연이와 이 레시피에서 손을 떼고 태연이를 방관하고 있던 나는,

저 멀리서 향긋한 요구르트의 향기를 맡고 찾아오는 꿀벌 무리의 등장에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어.

“으음..? 뭔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데..?”

“치즈 좀 섞어봤어. 이름하여 태연표 치즈라면~”

이라고 말하고, 헬게이트 입장 아이템이라고 쓴다.

제시카가 그나마 진한 분말스프의 냄새에서 달콤하게 발효된 요구르트의 향을 맡았는 지,

코와 눈가를 찡긋거리며 추측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어.

하지만 태연이는 요구르트라고는 언급을 안 하고, 치즈를 넣었다고 말을 했지.

그래, 쏟아부을 때 약간 응어리 진 게 얼핏 치즈 같이 보이긴 하더라.

“음식은 일단 내가 먼저 먹어볼게.”

“수영아, 맛있게 먹어~”

역시나 식신 수영이가 먹을 것 앞에서는 장유유서에 따르지 않고 자신이 먼저 수저와 접시를 들었어.

그러자 태연이는 해맑게 웃으면서 그 정체불명의 요상한 치즈라면을 국자로 손수 퍼 담아서 수영이에게 건네주었지.

수영이는 뭐가 그리 좋은 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달달한 스멜이 풍기는 치즈라면을 한 번에 많이 집어 후루룩 먹었어.

나머지 애들은 수영이의 반응에 따라 이걸 조금만 먹을 지, 아니면 라면 냄새가 날 것 같은 젓가락 싸움을 벌여야 할 지 망설이고 있던 순간이었지.

“수영아, 어..어때?”

나는 조심스럽게 이미 라면의 어느 정도를 먹고 식도 아래로 넘긴 수영이에게 물어보았지.

“으으음... 이건..이건..이건..”

‘역시나, 태연아 왜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짓ㅇ..’

“라면이 내 입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수영이의 어두운 표정에 난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며, 다시 요리를 해야겠다며 솥을 치우려는 그 순간.

수영이는 요리왕 비룡에 나오는 캐릭터의 표정과 분위기 그대로를 연출해내며, 극평을 쏟아부었지.

“어? 그럼 나도 줘!!”

“탱리다. 어서어서!!”

식신에다가 미식가로 소문난 수영이가 인정한 맛에 지옥의 맛을 선뵐 줄 알았던 치즈라면은 주문이 폭주해서 금방이라도 오링이 날 위기에 처했어.

나 또한 한 가닥 입에 물고는 내뱉는 소녀들의 탄복에 나도 먹어야 겠다고 하며 수 십개의 젓가락이 날아다니는 그 솥에다가 면을 집어

내 접시에 옮기는 데 열과 성을 다했지.

‘아흑, 껍데기로만 이 라면의 맛을 평했다니.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 여튼 맛있다..’

나는 내 혀에서 녹아내리는 치즈라면(이라 쓰고 요구르트 라면이라 읽는다)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이제는 겉모습 만으로는 모든 것을 단정지으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어.

근데, 먹으면서도 약간 의심스러운게 태연이는 자기는 안 먹고, 다른 애들 먹는 것만 지켜봤단 말이지.

난 그 때의 태연이에게 왜 안 먹냐고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뭐 미리 먹었겠지라고 생각하며 상황을 간단하게 넘겼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둑어둑해져서 은은한 달빛이 해변가에 스며드는 밤이 되자,

힘이 빠진 소녀들은 모두 펜션에 들어가 고된 몸을 편안한 침대와 소파에서 녹였어.

그렇게 평화로운 저녁이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바로 그 쯤에,

“윽!? 이 고통은, 내 대장 안에서 무언가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신명나게 리듬게임을 하며 써니와 불붙는 게임 경쟁을 하고 있었던 수영이가 배를 부여잡으며 화장실 쪽으로 뛰쳐 나갔어.

다른 애들은 모두 하나같이 수영이 우리들 몰래 뭔가 쳐묵했구나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렸지.

그렇게 수영만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가려는 순간.

“아아아악!!”

수영이 두고간 게임기를 집으며, 다시 리듬게임을 하고 있던 써니가 게임기를 떨어트리며 배를 부여잡았어.

그리고는 빛의 속도로 달려나가 세 개의 화장실 중 두 번째 화장실에 들어가버리곤 나오질 않았지.

“쟈들 왜 저런다니.. 으응?! 악!”

“써니가 뭐 그렇ㅈ.. 헙!”

1타 2피.

먼저 화장실에 입석한 수영과 순규를 본 큐리언니와 유리는 혀를 끌끌차며 그녀들에 대해 안타까워 하다가,

동시에 배를 부여잡으며 때 아닌 나머지 화장실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며, 마지막 화장실을 향해 달려나갔어.

큐리언니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는 지, 그 화장실 문 앞에서 안쓰러운 유리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지.

이제 남은 화장실이라곤 펜션과 약 백 미터 떨어진 펜션 주인 아주머니의 집에 있는 화장실 뿐.

“유..유리야, 나랑 같이 가..”

유리는 이건 생리보다도 더 심한 고통이라며, 문 밖으로 뛰쳐나갔고.

보람언니도 신호가 왔는 지, 아련한 목소리로 유리를 따라 현관 밖으로 나갔어.

그렇게 치즈라면을 먹은 애들은 모두 하나같이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본 나는 점점 떨려왔어.

잘 버티나 싶었던 팔팔한 막내인 지연이와 서현이도 결국 배에서 느껴지는 아스트랄한 움직임을 견뎌낼 수 없었는 지,

마찬가지로 현관 밖을 뛰쳐나갔어.

“때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힛, 4시간 44분 44초 라면.”

“응?”

태연이의 의미심장한 말에 난 매섭게 똑딱거리고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았어.

지금 시간과 저녁을 먹었던 시간을 계산해보니, 얼핏 5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았지.

난 태연이가 말한 ‘4시간 44분 44초 라면’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바로 눈치챘지.

그래서 그녀의 멱살을 잡고 저항해보려던 것도 잠시.

“서,설마.. 너! 아까 안 먹은 이유가..!! 헙!”

“히히히히히히히.”

배에서 누군가가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사악하게 웃는 태연이를 내비두고 

나는 살기 위해서 문 밖으로 뛰쳐나갔어.

***

“푸하하핫!”

“히힛, 어때 웃기지?”

“웃기네. 푸후훕.”

태연이의 귀여운 모습을 회상하고 있던 나는 왠지 모르게 과장되어 웃음이 터져나왔다.

은정 누나는 내가 정신을 놓은 사람 마냥 미친듯이 웃어대자, 따라서 조신하게 웃어대었다.

“피힛, 4시간 44분 44초라면이라니. 나 빼려고 해도 안 빠지던 살이 그 때 이후로 빠져버렸잖아.”

“킥킥. 아, 라면 참 맛있네. 후루룹- 어? 누나 이거 달콤한 맛도 나네?”

은정 누나는 자신이 빼려고 해도 안 빠지던 살이 빠졌다는 경험담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에 피식하며, 맛있는 라면의 국물까지 통째로 마셔버렸다.

그 국물의 맛은 의외로 달달한 느낌이 혀에 배였다.

나의 감상평에 은정누나는 씨익 웃으며 주방으로 걸어갔고, 주방 싱크대에서 무언가를 치우기 시작했다.

‘어.. 저거슨..’

그렇게 라면을 다 먹고, 은정누나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그 순간.

은정누나의 손에 쥐여진 불투명한 빈 요구르트 병을 본 나였다.

“푸하핫! 푸히히히히히.”

“에이, 설마.. 그럴리가.. 이렇게 맛있는 라면이 어떻게 그렇게 되? 안 그래 은정누나..?”

“민식이 말이 맞앙! 맛있게 먹으면 된거지! 어, 근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민식아 우리 가볼게!!”

소파에서 가만히 내가 라면을 먹는 것을 지켜보았던 효민은 은정 누나의 손에 쥐여진 요구르트 병을 보자

실성한 사람 마냥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 요구르트병을 보고 살짝 불안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고 있다는 게 살짝 느껴졌으나, 누나는 안 그랬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은정 누나 또한 나를 안심시키는 말을 했고, 시계를 보더니 시간이 다 되었네라는 말과 함께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나 또한 그녀들을 배웅해주기 위해서 현관까지 걸음을 옮겼다.

‘짝!’

“민식아, 화끈한 밤 보내!! 푸히힛.”

아까까지만 해도 어색하고 서먹하기만 했던 효민이 내 등짝을 강렬하게 후리면서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효민의 밑도 끝도 없는 따시쿵에 살짝 당황한 낌새를 보였으나, 금방 그 낌새를 없애고, 사라지려는 두 소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주었다.

효민과 은정누나는 두 손을 흔들며 잘있어라는 말과 함께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두 소녀들을 보내고 난 뒤, 뭔가 다리가 풀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거실에 널부러졌다.

때마침, 아직 잠구지 않았던 나의 집의 현관문이 열렸다.

“민식아! 니꺼는 내가 특별히 내 사랑을 담아서 3개 넣었어!”

그리고는 다시 쌩하고 사라지는 은정누나.

나는 은정누나가 내뱉은 저 드립에 곧바로 중앙대학생 다운 면모를 보이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1개를 넣었을 때가, 4시간 44분 44초.

2개를 넣었다면 효과는 제곱수로 증진되고 시간은 반으로 감소되니, 2시간 22분 22초

3개를 넣었다고 치자면 3의 3승이고, 효과는 27배. 시간은 1시간 11분 11초.

머리를 실컷 굴리자, 곧바로 후회가 느껴지면서 은정누나가 갑자기 원망스러워졌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 쓸어담아봤자 소용 없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예방이라도 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수밖에.

그래서 나는 집에 있는 화장지를 모조리 화장실 앞에다가 쌓아둔다음 만반의 준비를 마쳤고,

얼마 더 빈둥빈둥 거리며 가만히 있다가 시간을 쳐다보니 1시간 7분이 지나있었다.

“훗, 이제 4분 남았나. 미리 화장실에 가서 대비ㄹ.. 억!?”

이제 슬슬 화장실에 가서 바지를 내리려는 생각을 하면서 여유를 부리던 나는 예기치 못한 신호에

화장실에 다가가지도 못한 채 땅바닥과 융합을 시도하려 했다.

영화관에서만 느끼리라 믿었던, 4D 효과가 지금 내 장에서 일어나려 하자

나는 힘겹게 땅바닥을 기며 화장실에 다다랐고, 변기통에 엉덩이가 겨우 닿자 전쟁이 난 듯,

엄청나게 커다란 소리가 화장식을 가득 울렸다.

*

‘띵.’

“어, 이번엔 다 있네.”

죽다가 살아난 느낌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아직도 그 여운을 곱씹어보면서 허탈하게 웃던 나는 엘레베이터 문이 열린 뒤 소녀들로 가득 차있는 엘레베이터를 보며 말했다.

그녀들은 나를 보자, 안면근육을 씰룩거리다가 결국엔 못 참을 것 같은 듯, 모두 하나 같이 아줌마웃음을 냈다.

“푸,푸풉! 치즈라면 잘 먹었어? 푸하하핫-”

소녀 일동이 모두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폭풍 웃음을 자아냈고, 

나는 후유증으로 몸이 병약해짐을 느끼면서 1층 버튼을 눌렀다.

이제는 더 이상 그녀들과의 어색함의 벽은 허물해진 듯 했지만, 아직 쓰라린 뱃가죽이 찝찝하기만 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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