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여든 네 번째 과외.
*
“은정누나가 도대체 뭘 해주려는 거야.”
열 시간 동안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공복의 배를 부여잡고 투덜거렸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걸어서 자기가 밥을 해주겠다는 호의에 난 됐다고 하며 거절했지만, 억지로 애교까지 부려가며 우리 집까지 찾아오는 은정누나다.
‘5분 내로 안 오면, 난 열 한시간동안 밥을 캔슬한 굶주린 남자가 되겠군.’
이러다간 내 머리 위에 초록색 글씨로 「 탄수화물에 굶주린 남자 」 라는 원치 않는 칭호가 뜰 것 같다는 불안감에,
어쩔 수 없다, 내가 만들어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주방으로 미끄러지며 걷는 동안,
그 다지 듣고 싶지 않은 초인종 소리가 상큼하게 내 귓바퀴에 퍼졌다.
‘냄비 꺼냈는데.. 제길.’
열 전도율이 높은 양은 냄비를 들고 있었던 나는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며 다시 집어넣고, 현관으로 발바닥을 쓸며 매끄럽게 걸어갔다.
‘덜컥’
“민식아!!!! 오랜만이야!!”
오랜만은 무슨, 누님. 아침에 봤으면서. 풋.
근데, 은정 누나는 내 몸에 달콤한 꿀이라도 발라져있는 지, 포기하지 않고 진득하게 내 품에 안긴다.
물론, 나는 누나를 안으려고 하지 않지만.
그렇게 은정 누나를 들이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은정 누나의 뒤에 있는 한 여자를 보았다.
“어, 룸메 분도 계셨네. 들어오세요.”
“네에.”
은정 누나의 등 뒤에서 수줍게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완전 여자의 모습을 하고 계신 여자 분의 모습에,
들어오시라는 말과 함께, 두 여자가 조용히 살고 싶은 내 집 안으로 입성했다.
아, 이럼 또 시끄러워지잖아.
“민식앙, 배고푸지?”
“응. 누나 때문에 한 시간 더 추가해서 지금 열 한 시간 째 배고파.”
“히히, 그럼 금방 만들어줄게. 효민이랑 놀고 있어. 참고로 효민이는 너랑 동갑이야.”
“응, 제발 부탁인데. 제일 자신있는 걸로 해줘..”
왠지, 은정 누나가 해주는 음식이 인생의 마지막 식사가 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진수성찬은 됐고 제일 잘하는 요리로 부탁하는 나였다.
그러자 은정누나는 알았다며 걱정말라면서 날 안심시키려 들었고, 결국에 그녀가 찾아서 꺼낸 건.
내가 아까 도로 집어넣었던 양은냄비와 라면봉지.
젠장, 기대도 안 했지만 정말 충격인데.
할 수 없이, 저 요리를 쳐먹고 내가 생존하길 간절히 기원하며 요리에서 손을 떼고 티비를 보려는 순간.
거실에 멀뚱멀뚱 서 있는 한 처자.
“효민이라고 했지..? 거기 서 있지 말고, 편하게 여기 앉아.”
“아! 응..”
어색어색열매를 잔뜩 섭취해서 그런지, 나의 폭풍 친화력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내 말을 들은 효민이라는 아이는 밍그적 밍그적 거리며 소파에 다소곳이 앉으며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왜 자꾸 나만 쳐다보니.
날 쳐다본다고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 뻘쭘하면 튀어나오는 개그에 웃음이 나오겠구나.
‘아따, 망부석 같이 있네. 심심한디 은정 누나 하는 것좀 구경하러 가야겠다.’
*
아, 이 놈의 입이 왜 안 떨어지는거지..
민식이의 말에 대답해줘야 친해지는 데, 나. 이래뵈도 폭풍 친화력 효민인데.
결국 민식이는 망부석처럼 가만히 있기만 하는 내 모습이 답답했는 지,
은정 언니가 요리하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혼자 있기도 꽤나 뻘줌한터라, 새 집에 처음 온 개마냥 주변 탐색을 하며 레이더 망을 펼쳤다.
어디 내가 물 수 있는 떡밥이라도 있으려나.
민식이의 집의 거실에는 여러가지가 많이 놓여있다.
가식인지, 진실인지는 몰라도 여러가지 소설 책들이 책장에 쫘르륵 나열 되어 있었다.
‘드래곤 라자’,‘하얀 늑대들’..‘뮤지컬’..?
뮤지컬이라는 책을 꺼내 저자를 들추어 보았다.
W. 장민석 이라니, 대충 내용을 훑어봐도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확 들어, 나는 몰래 가져온 가방에 샤르륵 숨기고는
안 숨긴 척 해야지.
일단 책 한 권을 챙기고 다음 물품도 탐색을 해보았다.
책장 위에 올려져 있는 찍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광이 나는 사진.
멀리서 봐도 학급 단체 사진이라도 되는 지 인원 수가 꽤나 많았다.
가까이서 보니, 소녀시대 애들이 갖가지 오묘한 표정을 짓고 아스트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민식이가 소녀시대 팬이었구나. 라고 대충 넘기며 가려는 데, 사진 옆에 꽂혀있는 편지봉투 하나를 발견한 나 였다.
TO. 소녀시대 ?
읭? 뭐지 하며 그 봉투를 뜯어보려는 순간.
주방에서 거실 쪽으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일단은 들고 있는 사진을 후다닥 메고 있는 가방에 집어넣어버렸다.
‘하아.. 들키지 않았겠지?’
*
“음? 왜 그렇게 힘들게 서있어. 편하게 소파에 앉아 있어.”
“히히히. 알았어.”
갑자기 저 여자가 왜 저래.
뭐, 내 알 바는 아니니 앉아있는 효민의 반대편에 앉아 멀뚱히 꺼져있는 까만 화면의 TV를 켰다.
티비를 켰는 데도, 효민이 있으니까 하도 어색해서 이건 뭐 내 집 인데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고,
왜 이렇게 불편하지.
“민식앙, 저녁 다 했어!”
“응?”
“횸탱. 와서 이것 좀 옮겨줘!”
“아, 응!”
환영합니다. 존니스트 정적인 우리 집의 소파에 -
라며 어디선가 읽은 글의 내용을 속으로 인용하고 있던 나는 솔솔 불안한 냄새가 풍겨오는 요리를 들거오는 은정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만들어준 요리는 계란을 풀기라도 했는 지, 국물이 약간 허연 라면이었다.
그리고 은정 누나의 부탁에 주방에 갔다가 다시 온 효민이 들고 온 음식은 계란 후라이.
제길, 국민 요리 투 셋을 들고 오다니. 내가 졌습니다..
“아, 이제 이 요리에 내가 젓가락만 들고 먹으면 됨? 누나는 안 먹어?”
“나는 먹었으니깐, 효민이랑 같이 먹어.”
“아,아니야. 나도 먹었어. 나는 티비 보고 있을게.”
마트에서 싸게 구입한 쇠젓가락을 들고 정체불명의 라면을 한 젓가락 접시에 옮기고,
계란 후라이를 찢어다가 라면 위에 돌돌 만 다음, 후루룩 쩝쩝.
음..? 맛있다!? 두 처자의 대화는 신경 끈 채로 거의 진공청소기 마냥 라면을 흡입하는 나 였다.
도대체 라면 스프를 듬뿍 넣은 것도 아니고, 여기에 무엇을 넣었길래 이렇게 맛있는고.
“라면 맛 어때?”
“후르릅- 괜찮네. 후루루룩-”
“그래? 근데, 라면 보니까 옛날에 먹었던 치즈라면 생각나네.”
“치즈라면..? 어떤 얘기인데..?”
“음.. 그러니까..”
***
때는 우리 그룹인 티아라와 소녀시대 애들이 단체로 휴가를 떠난 날이었어.
“은정이하고 태연이. 게임에서 졌으니까, 저녁 지어!”
“힝. 내가!? 이거 내가 엄청 불리한 게임이었자나!! 키 때문에 닿지도 않는다구.”
“태연아, 어쩔 수 없어. 난 그 전에 간단한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져서 처량하게 이 신세 잖아..”
게임을 통해서 저녁 당번을 뽑았는 데, 불운의 잣대가 더럽게도 태연이와 나를 향해 위치 해 있었어.
나는 간단한 가위바위보에서 처량하게 발리고, 태연이는 점프해서 천장 닿기해서 발리고.
물론 순규가 태연이보다 더 작기는 했다만, 운 좋게도 순규는 가위바위보팀 이였지.
우리는 ‘우우우..우우..우..우우우..’ 소리를 내는 두 마리의 구울이 된 채,
좀 까리한 별장에 들어가서 주방에 있는 식재료를 확인 했지.
“음? 뭐야, 만들 식재료라곤 요구르트 하고 계란 몇 개랑..”
“박스에 라면 가득 쌓여있다!”
우리는 식재료의 내용물들을 대충 확인하고 눈빛을 교환했어.
그래, 그렇게 엄청난 양의 라면을 제조하기로 결정을 내린 나와 태연이였어.
“일단 우리가 이 솥을 들고가기엔 너무 벅차니까 매니저 오빠 부르자.”
“오키, 잠만 기달려.”
그래서 일단은 물을 끓여야 되니까 엄청난 크기의 솥을 꺼냈긴 꺼냈는 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라서, 일단은 매니저 오빠들을 긴급 호출했지.
해변가에서 놀고 있는 다른 애들을 보고 있던 매니저 오빠들은 우리들의 긴급 호출에 빛 보단 느리게 헐레벌떡 우리 쪽으로 뛰어왔어.
그리고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무거운 솥을 들어서 야외 정원으로 옮겨주는 고마운 오빠들이였지.
장작 패는 것도 덩치 좀 있는 티아라 매니저 오빠가 해결 해줬고.
“우리는 다 도와줬으니까, 놀러 가볼게. 얘들 딴 길로 새지 않게 감시 잘해라.”
“고마워요, 매니저 오빠!”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치고 근처 횟집으로 술을 마시러 가시는 매니저 오빠들의 그 때의 뒷모습은.
누구보다도 듬직한 뒷모습이였지. 우리는 수고한 그들을 바라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하던 라면 제조를 계속 진행 했지.
“히히. 맛있겠다!”
물 여섯 바가지와 여섯 봉다리의 분말스프는 잘 어우러져 맛깔난 색을 보였고,
우리는 열 다섯개의 라면을 통째로 솥에 붓고는 보글보글 끓어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지.
“하. 치즈 라면 먹구 싶다.”
“응? 치즈라면?”
나는 보글보글 끓어가며 맛있는 색깔을 보이는 라면을 쭈그려서 앉아서 보며 혼잣말을 했어.
근데 태연이가 즉각 반응을 하며 씨익 웃더니 다시 펜션을 향해 그 짧은 다리로 야무지게 뛰었지.
‘저 꼬마가 뭘 가져올려고.’
항상 같이 놀 때마다 비범한 짓만 골라서 했던 탱구여서, 나는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가 가져오는 것을 지켜봤지.
그녀가 팔로 뭔가를 가져오대.
“뭐야?”
“요구르트.”
“이거 유통기ㅎ..”
내가 말할 새도 없이, 태연이는 요구르트 봉다리를 야무지게 꺼내서 요구르트를 꺼내고는 솥에 그것을 콸콸 붓더라.
다 된 라면에 요구르트 빠지는 격이라니. 그것도 유통기한이 야무지게 지나버린 요구르트를 말이야.
“김탱구, 너 도대체 왜 그걸 집어넣는거야!”
“히히. 언니가 치즈라면 먹고 싶다며, 치즈가 없어서 이거 붓고 있지.”
어이없는 탱구의 말에 단순한 한 문장이 내 뇌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어.
‘김탱구, 이 미친 냔.. 이번에도 또 사고를 저지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