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3화 〉 563. 타락한 사제(4)
* * *
“끄아악!”
“살려…. 살려주세요…!”
살점이 뜯겨나가고 찢어지는 끔찍한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들이 바람을 타고 도시 전체를 적시듯 울려 퍼져 나간다.
이 도시에 사는 인구수만 해도 몇만 명.
그런 이들이 일제히 언데드의 습격을 받아 죽고, 마리우스의 사기(死?)를 주입받아 사망한 시체들을 또 다른 언데드들로 만들어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들은 점점 불어났고 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좀비들은 그저 흉포한 공격성을 가진 채로 또 다른 사람들을 습격한 악순환의 연속.
“이럴…수가…!”
“이건 악몽이야…! 악몽이라고…!”
처리해도 끝도 없이 밀려드는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병사들,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경악했다.
일반 병사들은 몰라도, 상성 상 신성력을 사용하든 사제와 성기사들을 확실히 언데드를 상대로 하기엔 천적이 맞았지만, 그 기적을 발휘할 수 있는 신성력은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싸움이 지속되면 될수록, 그들의 체력과 신성력은 고갈되는 반면, 언데들의 숫자들은 줄어들지를 않으니 그들로서는 미칠 노릇.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깎여나가는 것은 그들의 체력과 신성력 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친구이자, 가족, 연인이었던 언데드들을 마주하고 대적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마저 깎아버릴 정도로, 그저 적을 물리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적하기를 주저하고, 망설이고, 포기하는 이들을 덮치며, 도시 전체를 점거한 마리우스의 언데드들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신전의 병력을 압도했다.
아무리 신성력과 체력, 정신력 등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는 했지만, 끝없는 인해전술로 무작정 들이받듯 밀어버리자, 이 도시의 중심이었던 콜로라스 지부의 신전은 너무나도 간단히 언데드들에게 장악당했다.
그것은 순전히 신전의 병력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콜로라스 지부의 신전 인사들은 모두 중앙 신전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도태되어버린 평균이나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 도달하는 장소.
하물며 전쟁은 물론 언데드라는 존재를 겪어보는 경험 또한 없다시피 한 그들이 갑작스레 습격해온 언데드를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긴가.”
마리우스는 간단하게 신전 안으로 들어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번 와보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벤터가 있을 터인 주교실.
쾅!
부서질세라 있는 힘껏 주교실의 문을 걷어 차버리자, 경첩이 뜯겨나간 문이 하늘을 날았다.
“흡!?”
발길질로 허공을 나는 문이 천장에 부딪히자, 안에 있던 누군가가 어깨를 들썩이며 흠칫하는 숨소리를 내었다.
이윽고 이어지는 침묵은 난리가 난 바깥의 상황과 달리 매우 고요했지만, 마리우스는 곧바로 숨을 죽이고 숨어있는 존재를 눈치챘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고 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억누르지 못한 공포와 동요를 그대로 표현하듯 그가 숨어있는 책상이 덜덜 떨렸다.
“…….”
크르륵!
마리우스는 아무런 말도 없이 거칠게 떨리고 있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의 명령을 받은 데스하운드가 사나운 소리를 내며 책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쿵!
머리를 들이받자 허무하게 분쇄되는 책상은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사제를 더는 지켜주지 못했다.
“여기에 있었군요. 벤터 주교.”
“마, 마리우스…!”
마리우스에게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바닥을 기어 뒤로 이동하는 벤터의 두 눈에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얼굴을 본 마리우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을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기쁜 것이 당연하다.
“히, 히익…!”
언데드들의 습격으로 인해 참혹하게 학살당한 인간들의 피로 얼룩진 마리우스의 웃음을 본 벤터가 기겁했다.
한없이 기쁜 자신의 감정을 꾸밈없이 드러낸 마리우스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솔직했으나, 너무나도 섬뜩하고 잔혹하다.
“혼자서 이곳에서 뭐 하고 계신 겁니까?”
마리우스는 물었다.
“모두가 밖에서 지금 목숨을 걸며 싸우고 있는데, 당신은 지금 뭘 하는 건가요?”
많은 사제와 성기사들, 병사들이 언데들을 막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버티지 못하고 모조리 사망했다.
재앙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있는 이 와중에, 이 도시의 책임자라는 인간은 고작 이 건물의 책상 아래에서 몸을 숨기고 벌벌 떨고 있는 게 고작.
“이런 게 주교라고?”
이런 자가 어떻게 도시를 대표하는 관리자이자 고위 사제라는 지위를 가진 인물이 될 수가 있었을까.
의문은 간단하다.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부정을 저지르고 은폐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지위와 부를 쌓아 올렸을 터.
아무리 메디아의 힘으로 발현된 사령술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가 사용하던 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도시가 겨우 마리우스 하나에게 방위가 뚫리고 점령을 당했다는 것은 그동안 이 도시의 방위 체계가 얼마나 허술하고 나약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한마디로 이 도시의 주인인 벤터가 너무나도 무능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사, 살려줘….”
싸늘한 마리우스의 웃음에서 살기와 다양한 감정들을 느꼈는지 공포로 몸을 덜덜 떨던 벤터가 마리우스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왜 그러시죠?”
마리우스는 벤터에게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벤터와 눈높이를 맞춘 채로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벌벌 떨고 계신가요?”
“…….”
“저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 그의 질문은 마치 솔직하게 말한다면 용서해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거무칙칙한 사기(死?)는 벤터의 온몸을 소름 돋게 만드는 끔찍한 기운이었다.
덜덜 떨리며 이빨을 부딪치게 만드는 벤터는 바로 마리우스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저질렀으며 그에게 지은 잘못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은 그 스스로가 잘 알고 있는 일.
자칫 입을 잘못 놀렸다간 그 순간 바로 목이 날아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기에 때문에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크르르
마리우스의 뒤에서 벤터를 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검은색의 무언가조차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오한이 들게 만드는데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크르륵!
마침내 충동을 참지 못한 데스하운드가 벤터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악!”
콰직!
바닥을 기어 뒷걸음질을 치던 벤터의 팔을, 그를 향해 달려든 데스하운드의 커다란 입이 집어삼켰다.
무시무시한 턱의 힘으로 물어뜯긴 팔에서는 피가 쏟아져나와 바닥을 적셨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져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닫지 못했던 벤터는 공허해진 한쪽 팔의 감각을 찾아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으, 으아악!”
피를 쏟아내고 있는 자신의 팔 상태를 뒤늦게 확인하고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팔…! 내 팔…! 내 팔이이이…!”
마리우스는 발작을 일으키는 벤터의 가슴을 짓밟았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사정없이 얻어맞고도 제대로 된 치료와 밥도 없이 그 지하 감옥 속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겨우 그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서야 마리우스의 분노에 더욱 불을 지필 뿐이었다.
“사, 살려…. 용서해줘!”
“용서?”
데스하운드에게 물어뜯긴 팔 한쪽에서 피를 쏟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용서를 구걸하는 벤터를 보며 마리우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을 용서해달라는 건가요?”
자신과, 자신의 마을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하였는가.
대강의 사정은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저 벤터가 자신과 마을 사람들을 속였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지,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문득 궁금해졌다.
벤터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였던 것일까.
“…….”
조용히 답변을 기다리는 마리우스를 보고, 벤터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한 짓을 자신의 입으로 말한다는 것을 차마 실행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데스하운드.”
크륵?
기다리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마리우스는 충직한 부하를 불러 다시 명령을 내렸다.
손을 뻗어 바닥에 쏟아낸 피로 흥건한 벤터의 몸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의 한쪽 다리.
“먹어 치워.”
크륵!
데스하운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벤터의 한쪽 다리를 물어뜯었다.
“크아악!”
살점과 뼈가 통째로 끊어지는 생생한 감각에 참을 수 없는 격통이 밀려와 전신이 갈라지는 듯한 비명을 낳는다.
“크…으윽…!”
생전 처음 겪어보는 그 고통의 연속은 정신을 잃게 만드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고, 죽음을 형상화한 것만 같은 사신을 눈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목숨을 구걸하는 것뿐.
하지만 그것을 마리우스가 용납할 리 없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죽여…줘….”
그저 이 끔찍한 고통이 이어지지 않도록 편안한 죽음을 바라는 것뿐이다.
수많은 부정과 부패를 저질러 지금의 지위와 재물을 쌓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어질 정도로 끔찍한 고통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길 바랄 수준으로 참혹하기 짝이 없다.
“말해.”
마리우스는 더는 벤터에게 존대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벤터와 자신 사이에 이어져 있던 모든 관계를 끊어버렸고, 그의 생살여탈권을 확실하게 쥐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
그 강압적인 말투에 이기지 못한 벤터는 천천히 자신이 마리우스의 마을 사람들에게 했던 짓을 스스로 입에 담았다.
“너가 마을 떠난 뒤….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하여 마을 주민들과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그리고…보육원의 관리자인 여자를 널 후원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고위 인사들에게 성 접대를….”
콰직!
“크아아악!”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하고 있는 벤터의 남아있던 한쪽 다리까지 거칠게 물어 뜯어버린 데스하운드의 돌발행동에 또 한 번 벤터가 비명을 질렀다.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구태여 데스하운드가 행동을 옮긴 것은 자신과 동조되어 있는 주인의 사령술이, 네스가 당했을 일을 상상해버린 마리우스의 감정에 격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주먹의 떨림을 꽉 쥐며 억지로 무마시켰고, 벤터에게 계속 말을 이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사교의 세력임을 나타내는 휘장과 문서를 위조하여, 관리자인 그 여자가 없는 사이에 보육원에 숨겨두었고, 그것을 명목으로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체포했다.”
“…그리고.”
꾹 참아내고 있던 것은 주먹의 떨림 뿐만이 아니다.
감정이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목소리의 떨림이 이빨을 꽉 깨문 마리우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필요 없어진 남자들과 노인들은 모조리 방치하고, 마을의 여자들은 모조리 노예로 팔아넘겼다….”
“…….”
마리우스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네스가 어떠한 미래를 맞이했을지.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리고 눈앞의 벤터를 당장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저, 정말 이게 다다…! 이제, 이제 그만 죽여줘!”
마지막 남은 한쪽 팔로 마리우스의 팔을 붙잡은 벤터는 애원했다.
제발 이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자신을 해방해달라고 이성을 잃고 애걸복걸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마리우스는 그의 애원에 답했다.
“아직 하나가 남았어.”
“뭐…?”
“네스에게 그 더럽고 추잡한 짓을 시켰던 남자들. 모두 이 도시 안에 있나?”
“두, 두 명은 아직 이곳에 있어…! 하지만 한 명은…!”
“한 명은?”
“이, 이미 이 마을을 떠났다…!”
“그게 누구지?”
“레, 렌디르 왕국의 제 3왕자…. 데칸 렌디르다…!”
“…그래.”
듣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들었던 마리우스는 몸을 일으켰다.
이 마을에 있다는 그 두 명은 아마도 자신의 사령술로 만들어낸 언데드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네스의 몸을 만지고 추잡하고 더러운 짓을 했던 이들을 곱게 죽여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이미 죽여버린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으니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죽여야할 대상이 한 명 더 남아있다는 사실에 짜증과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자신이 있다.
“이제, 이제 그만 죽여줘….”
벤터는 양쪽 다리를 잃어 설 수도 없는 상태.
마지막으로 남은 한쪽 팔을 마리우스를 향해 뻗고는 편하게 죽여줄 것을 애원했지만, 처참한 몰골의 그를 내려다보는 마리우스는 그가 바라는 것을 내려주지 않았다.
“난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어.”
“그…런…!”
드디어 편해질 수 있다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던 벤터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색의 짙은 기운을 눈치채고 몸서리를 쳤다.
“오지 마….”
마치 벌레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가득한 혐오을 불러일으키는 사기(死?)는 이내 뜯어먹힌 양다리와 한쪽 팔을 잠식해나갔고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읍…! 으읍…!”
그것은 마리우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기운 그 자체.
벤터의 전신을 뒤덮은 사기(死?)는 그의 몸에 남아있는 모든 살점을 파먹고, 그리고 하반신의 성기는 물론 심장과 내장을 모조리 물어뜯어 형체가 남지 않을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하하….”
언데드들의 습격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마리우스의 승리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몇만 명이나 되는 대규모의 인원들을 학살하였음에도, 죄책감 하나를 느끼지 않는 자기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사람들의 절망스러운 비명으로 가득했던 그 순간이 너무나도 즐겁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명백히 줄어든 수명과 함께 자신의 정신과 영혼은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면서, 마리우스는 웃었다.
그리고 벤터에게서 들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죽여야 할 대상이 있는 곳을 떠올렸다.
“렌디르 왕국이라….”
그곳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 그저 좁디좁은 변두리의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조차 없는 마리우스는 모른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명확히 존재했다.
하나는 자신의 소중한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던 네스를 범한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아, 어서 일을 마치고. 내가 ‘내 사랑’을 만나러 갈 수 있도록, 열심히 움직여주렴?
자신의 여신을 이곳으로 불러올 수 있는 무대에 딱 맞는 장소였기 때문.
“여신의 뜻대로.”
마리우스는 자신의 여신을 불러오기 위한 그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