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2화 〉 562. 타락한 사제(3)
* * *
어두운 밤하늘 아래, 아무도 오지 않을 터인 고요한 지하 감옥의 입구를 지키는 것은 두 명의 병사다.
“하~암.”
경계 근무로 지하 감옥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는 지루함의 연속으로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하품을 했다.
“뭔 하품을 그렇게 찍찍 해대?”
함께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가 동료 병사의 하품에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전염이라도 되듯이 자신까지 지루하다 못해 졸음이 몰려오는 것만 같다.
“아~. 좀 봐주라.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한데 하품이 안 나오고 배기겠냐?”
“나까지 옮잖아. 안 보이게 하든가.”
“그게 말이 쉽냐고.”
낄낄거린 병사는 이내 벽면에 등을 기대고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여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야. 병사장께서 보면 어쩌려고 그래.”
“아, 안 와. 안 와. 조금만 이러고 있자고. 넌 다리도 안 아프냐?”
약 2시간의 근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어서 있던 것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동료 병사를 보며 다른 병사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혹시라도 사제님이나 성기사님이…. 보시기라도 하면….”
그렇게 되면 근무 태만으로 징계를 받는 것은 연대책임으로 자신까지 포함이 될 터.
투덜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는 두 병사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신전 쪽의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신전에 고용된 형태로 도시와 신전의 시설들을 관리하는 사병이었다.
이 콜로라스라는 도시를 관리하는 것은 현재 콜로라스 지부 신전의 관리자인 주교 벤터.
당연히 도시 전체를 관리하는 일인 만큼, 그의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제나 성기사들과 같은 신전 쪽의 사람들 이외에도 다수 존재했다.
말만 다를 뿐이지 벤터는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영주와도 같은 존재였으며, 비록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변두리의 도시였지만, 이 도시 안에서 벤터의 지위와 권력은 확고하며 막강하다.
“아니. 오겠냐고.”
절대로 확신하는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아예 앉아버린 병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다른 병사는 표정과 경계를 풀지 않았다.
이미 ‘사교의 세력’으로 의심받는 마을 주민들을 모조리 지하 감옥 속에 투옥하면서 성기사들과 마주친 사례가 있었던 만큼, 앞으로도 몇 번을 더 찾아올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금의 편안함만을 생각하며 태만한 근무를 서고 있는 자신의 동료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포기했다.
이미 그가 이런 태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그나저나…. 우리 정말로 괜찮은 걸까?”
바닥에 주저앉은 병사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뭐가.”
“감옥에 투옥된 사람들 말이야. 사교의 세력이라면서?”
“그런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
짧게 중얼거리는 병사의 말에 동료 병사를 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품고 있었던 의문으로 자신들뿐만이 아니라, 이 지하 감옥의 입구를 교대 근무로 지키는 병사들 전원이 같은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다.
억울하다며, 살려달라고, 아내와 딸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하던 죄수들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 행동과 표정들이 너무나도 진짜 같아서, 도저히 사교의 세력들이 거짓된 말로 자신들을 속이려는 것 같지 않았다.
벤터 주교와 성기사들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죄 없는 사람들을 가둬두고 방치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의심이 가슴 속에 싹틀 수밖에 없었따.
“시체들…. 어떻게 처리하지?”
“…….”
바닥에 주저앉은 병사의 중얼거림에 다른 병사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문제였다.
본래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하루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지하 감옥 안으로 들어가 사망한 사람들의 사체를 꺼내어 불에 태우고 정리하는 것.
하지만 투옥된 사람들이 보내오는 시선이, 그 안에 담겨있는 감정들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워서 병사들은 그것을 외면했다.
그것은 그 병사들을 통솔하는 병사장 또한 마찬가지.
이 도시는 너무나도 평화롭다.
그 평화 속에서 사람들의 증오 어린 감정이나 시체들을 처리하는 방법이 익숙지 않았던 병사들은 시체들의 썩은 내가 진동하는 감옥 안으로 발을 들이밀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하, 씨…. 제발 우리 근무 때 처리하라는 명령만 내려오지 마라.”
자신이 아니라 다음 근무자의 임무 안에 포함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바닥에 주저앉은 병사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 어지간히….”
콰직!
“어…?”
바닥에 주저앉았던 병사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시선을 그에게로 옮겼던 동료 병사는 멈칫했다.
강제로 일으켜 세우려 했던 병사의 머리가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치 짐승에게 거칠게 뜯어먹힌 것 같은 모양새.
새까만 무언가가 병사의 머리를 덮쳤고 빠르게 사라졌다.
동료 병사는 전신에 가득해진 오한으로 몸을 벌벌 떨면서,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아보았다.
새까만 무언가가 사라진 지하 감옥의 입구를 보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명확히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무언가는 확실히 있었다.
크르륵!
“히, 히익!?”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빛이 드리워지지 않은 어둠과 동조하듯 전신이 새까맸기 때문에.
명확하게 실체를 가지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그것은 그 붉은색의 눈동자로 정확히 자신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 살려…!”
머리가 뜯어먹힌 병사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그와 같은 꼴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동료 병사는 자신의 무기였었던 창조차도 바닥에 던져버리고 꼴사납게 도망을 치려 했으나.
콰직!
동료 병사는 다른 동료 병사와 마찬가지로 검은색 짐승에게 머리를 뜯어먹혀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다.
“…….”
이어서 지하 감옥 안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온 것은 마을 사람들의 사체가 산처럼 쌓인 곳에서 홀로 살아남아 있었던 마리우스다.
끼잉
그 지옥 같았던 지하 감옥에서 마침내 걸어 나온 마리우스에게, 사람 두 명의 머리를 단숨에 뜯어 먹어버렸던 언데드, 데스하운드가 다가와 그의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마치 자신의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반려견과도 같은 태도.
“…그래.”
10대 중반의 소년 소녀는 가볍게 뛰어넘는 큰 덩치를 가진 데스하운드는 생전 처음 보는 잔혹성을 가진 언데드이자 괴물이었지만, 마리우스는 전혀 개의치 않고 데스하운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응해주었다.
마리우스도 데스하운드도 서로를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둘이 이렇게 전혀 거리낌 없이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메디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 받아들였구나.]
“…잘 된 건가요?”
[그럼. 그 아이는 지금 너를 주인으로 여기고 있잖니.]
실제로 큰 덩치를 가진 데스하운드가 마리우스에게 이쁨을 받기 위해 애교를 부리고 있는 것은 마리우스의 육체와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메디아의 사기(死?)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
마리우스는 어느새 자신의 코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아내었다.
메디아의 사기를 받아들인 자신의 몸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힘을 받아들이기 이전, 메디아에게서 들었기에 이미 상정하고 있던 결과.
자신의 끝과 결과가 정해져 있더라도, 마리우스는 자신의 목적을 완수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이번엔 나의 힘을 빌려주도록 할게. 하지만 다음부턴 네가 직접 하렴?]
“알겠습니다. 저에게 은혜를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여신이시어.”
이 데스하운드는 메디아가 직접 소환시켜준 강력한 언데드로, 사령술의 기초를 이제 막 영혼에 각인시킨 마리우스에게는 아직 직접 소환하기엔 역량이 부족했다.
아마도 이번 일이 끝나고 소환을 해제한다면, 데스하운드를 소환하는 것은 마리우스로선 자신의 역량을 성장시키지 못한다면 불가능하리라.
“일단은….”
마리우스는 머리를 뜯어먹힌 두 구의 병사 시신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메디아에게서 받은 사기를 천천히 흘려 넣어 사령술을 발동시키자, 우드득 소리를 내며 머리 없는 시체들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두 발을 딛고 일어선 병사들의 시신을 언데드로 만들었다.
“모두 죽여.”
마리우스는 무감정한 투로 자신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언데드와 데스하운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도시의 모든 인간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뱉고도, 자신의 마음이 무척이나 담담하다는 것에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명령은 자신의 진실한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임에는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과 자신의 마을 사람들은 불합리한 이유로 감옥에 투옥되었고, 마을의 여자들은 모조리 잡혀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는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상상이 갔다.
그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는 이 도시, 콜로라스가 너무나도 평화롭고 고요하다는 것에 분노와 증오가 치솟았다.
이런 거짓된 평화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사는 인간들 모두를, 이 도시를 관리하는 벤터 주교를 포함한 전원을 모조리 죽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리우스는 생각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줄 언데드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
그것은 상성 상 언데드들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신전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 물량을 최대한으로 늘려놓을 필요가 있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언데드의 천적인 것은 맞지만, 절대적인 승리를 가져다주는 차이가 아닐 터.
그들을 상대로 언데드들의 전력이 반감된다면, 그 패널티를 압도할 정도로 규모를 배로 불리면 된다.
게다가 이 도시의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평균이나 그 이하일 터.
중앙 신전에서 경쟁을 통해 받은 성적에 따라서 수준 높은 사제와 성기사들은 모두 중앙 신전에서 가까운 곳에 배치된다는 신전 내부의 생태에 대해 마리우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신성국의 영토에서 가장 변방에 있는 이 변두리 시골 도시는 경쟁에서 밀려나 도태된 사제들과 성기사들이나 좌천된 인사들이 오는 오합지졸의 허접한 도시라는 뜻이기도 하다.
“벤터 주교. 기다리세요. 곧 찾아가겠습니다.”
그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마리우스는 확신했다.
◆ ◆ ◆
“꺄아악!”
“무슨 일이냐!”
신전 쪽의 인사들이 도시 안의 상황을 파악한 것은 늦은 새벽 즈음, 많은 사람들의 비명을 들은 이후였다.
쿵! 쿵!
도시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는 비상을 알리는 커다란 북소리는 구색만을 갖춰두었을 뿐, 이 평화로운 도시에서 단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던 방위체계였다.
급하게 무장을 착용하고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혼란이 가득한 도시의 길거리로 나온 병사와 사제, 성기사들은 들끓기 시작하는 수많은 언데드들을 보며 경악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언데드 무리들을 보며 절망했다.
“여, 여보…!”
“아버지…!”
언데드로 전락한 이 도시의 주민들은 어떤 병사에게는 부모였고, 어떤 사제에게는 형제와 남매였으며, 어떤 성기사에게는 아내였다.
팔다리와 몸의 살점을 뜯기고, 뼈가 보이는 끔찍한 몰골로 방황하며 살아있는 인간들을 공격하는 가족의 모습에 크게 절망하였고, 위협적인 존재들로 변해버렸지만, 한때 가족이었던 언데드들을 배제하는데 망설였다.
그 짧은 순간의 망설임과 주저는 치명적인 빈틈을 보이며, 사람들을 덮치는 재앙의 규모를 더욱 키워나갔다.
“벤터 주교는 어디있지?”
수많은 학살을 행하는 언데드의 중심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리우스가 사제들에게 물었다.
“악마…!”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경멸과 혐오, 증오의 감정을 가득 채운 이들의 눈빛이다.
그 감정을 직시한 마리우스는 오히려 피식 웃었다.
“그런가. 지금 너희들의 눈에는 내가 악마로 보이는 건가.”
사제 연수를 받기 위해 중앙 신전에 있을 때, 사교의 세력으로 몰려 성기사들에게 체포당할 당시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보냈던 시선, 감정들과 똑같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그렇게 억울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도시의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하고 언데드로 만들어 더 많은 주민들을 습격하고 있는 자신은 악마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은 자기 자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
사실이 맞는데 억울한 기분이 들 리가 없다.
“그런데 말이야.”
마리우스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사제와 성기사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눈에는 너희가 악마로 보였었어.”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마을의 여자들을 모조리 잡아갔으며, 사람들을 감옥 속에 가두어 기아로 죽도록 방치했다.
“벤터 주교…. 아니. 벤터에게 가서 전해주었으면 좋겠네.”
그래서 마리우스는 악마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당신이 말했던 ‘사교의 세력’이 정말로 나타났다고.”
이 빌어먹을 거짓된 신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위해서 자신의 몸과 영혼을 팔아넘긴 재앙은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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