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61화 (544/730)

〈 561화 〉 561. 타락한 사제(2)

* * *

결과적으로 사제 연수를 마치고, 정식 사제가 되어 고정적인 수입을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는 마리우스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험난한 여정과도 같았지만, 사제 연수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던 이유는 자신을 응원해준 보육원과 네스,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게 추천서를 써주었던 벤터 주교에게 자랑스러운 사제가 되기 위함이었고 보답을 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그것을 버텨왔다.

하지만 마리우스의 사제 연수는 그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곳에 사교(?)의 사상을 가진 자가 사제로 잠입했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왔다.”

콜로라스 신전 지부의 성기사가 중앙 신전을 찾아와 다짜고짜 마리우스를 사교의 사상을 가진 반역자로서 체포해 가버린 것이다.

“이, 이거 놔…!”

느닷없이 사교로 몰리게 된 것에 억울해하며 마리우스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평균적인 일반 남성에 불과한 신체 능력을 갖춘 마리우스가 단련을 거듭한 성기사들 다수를 뿌리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얌전히 따라와! 사교의 쓰레기 주제에!”

많은 견습 사제들과 신전의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저항하는 마리우스의 몸을 사정없이 구타하고 저항하지 못하도록 일방적인 폭행이 이어졌다.

“세상에…. 사교라고…?”

“어찌 저런 것이 신전 안에….”

“아니…. 아니야…! 아니에요! 여러분! 저는 사교 같은 게…!”

마리우스는 성기사들의 일방적인 폭행을 견뎌내면서 필사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미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을 직시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혐오와 경멸의 눈빛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역하다는 것을 온몸과 얼굴로 표현하는 감정들이 깔린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마리우스는 저항을 멈췄다.

느닷없이 자신에게 덮쳐온 이해할 수 없는 이 불행에 순응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그 혐오와 경멸의 눈빛들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둡고 칙칙하기 짝이 없는 끔찍한 것들로 처음 경험해보았다는 것에 충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을 뿐이었다.

‘왜…지? 왜 나에게…이런 일이?’

자신을 체포한 성기사들에게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한결같이 똑같은 대답뿐.

“네놈이 더러운 사교의 가르침을 이어받았으면서, 신성한 신전의 사제 행세를 한 신성모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왜 잘못된 것인지, 머릿속으로 수많은 의문이 생겨났지만 무엇하나 해소되지 못하고 마음속에 거무스름한 감정들이 얼룩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마리우스가 성기사들의 거친 연행으로 도착한 곳은 신전의 지하 감옥이었다.

“들어가!”

“크윽…!”

사람으로서의 존중은커녕 마치 잡아넣은 짐승을 우리 안에 던져 넣듯 쇠창살 너머의 감옥에 갇힌 마리우스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작게 신음했다.

구타당한 이후 전신에 멍이 들었고 얼얼한 감각에 통증까지 덮쳐오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너는…?”

“어…?”

이윽고 감옥 안쪽에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마리우스가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응시했다.

남자 쪽도 횃불 하나 없는 어두운 감옥 속에서 감각에 의지하여 마리우스 쪽으로 다가왔고 이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마리우스…!”

“아…!”

같은 마을 사람의 남성임을 알아본 마리우스가 작게 탄식했다.

“어, 어떻게 네가 여기에…!”

“…나뿐만이 아니야.”

“뭐…?”

마리우스는 이내 어두운 시야 안에서 남자가 다가왔던 쪽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았다.

“모두…!”

이 감옥 안에 있는 이들 전원이 마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남자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속았어.”

“속았…다고?”

“우린 속은 거라고! 그 사제와 신전에…!”

분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남자의 얼굴도 그렇게 멀쩡하지 않았다.

자신이 당한 것 이상으로 구타를 당했는지 크게 부어올라 새파란 피멍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마리우스에게 신전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말했다.

마리우스가 사제 연수를 위해 중앙 신전으로 떠나고 몇 주 뒤, 간간이 마리우스의 소식을 전해왔던 벤터를 따라 네스가 급하게 자리를 비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보육원의 관리를 대신 해주기 위해 신전에서 온 하위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문제의 발단.

그들은 보육원의 안에서 사교의 상징인 물건과 문서들을 발견하였고 보육원의 관계자들을 모조리 사교의 집단으로 단정 지어 그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런…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지.”

어처구니가 없는 그 이야기를 믿는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부모가 없어 갈 데가 없는 어린 아이들을 데려와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며 잠을 재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보육원이 사실은 신전에 반하는 사교의 세력을 키우기 위한 곳이라니.

지나가는 개도 웃지 않을 어처구니가 없는 촌극이나 마찬가지.

발견하였다는 사교의 상징이라는 물건과 문서들도 현실의 생활에 치어 기초적인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네스와 보육원 관계자들에게는 굉장히 모순적인 정황 증거들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거야.”

당연히 막무가내식으로 진행되는 성기사와 사제들의 과잉진압에 마을 사람들은 저항했지만, 검을 들고 적을 상대로 하는 전투적인 훈련을 해온 성기사들에게 마을 사람들의 저항은 쓸데없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그 결과, 현재 이 감옥 안에는 어린아이와 노인, 젊은 청년까지 모든 마을 사람들이 투옥되어있는 상태였다.

“마을의 젊은 여자와 여자아이들은…모두 데려가 버렸어.”

“네스는…. 네스는 어떻게 됐어!?”

“…….”

다급하게 네스의 행방을 물었지만, 남자는 입을 꾹 다문 채 마리우스에게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마리우스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럴…수가….”

가슴 속에 조금씩 쌓여있던 감정들이 이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며 그것들을 표현하듯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째서…?”

마리우스의 머릿속에 또다시 떠오르는 의문.

마을 사람들을 포함한 누구나가 마리우스와 똑같은 의문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신과 마을 사람들이 어째서 이런 불합리한 일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실의에 빠져 절망의 순간이 이어지는 마리우스와 마을 사람들의 투옥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다.

진압과 체포의 과정에서 생긴 상처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고, 죄수나 다름없었던 그들에게는 식사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못했다.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감옥 안에서 사상자까지 나왔다.

누적된 피로와 데미지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고 허약해진 노인들, 그리고 아직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앞에 두고 미쳐가는 이도 발생했으며, 그들 또한 최후에는 죽음에 이르면서 지하 신전에는 죽음이 쌓여만 갔다.

제대로 된 처형은 물론 장례조차도 제대로 치러지지 않고 그저 시체로 방치되는 끝에 쌓여가는 감옥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었던 것은 마리우스다.

“…….”

제대로 된 수분조차 섭취하지 못한 목은 마치 절벽이 갈라지듯 쉰 숨소리만이 흘러나오고 죽을 날 만을 기다리면서, 마리우스는 생각했다.

‘신이시어.’

자신에게 신성력의 은혜를 내린 베스타 여신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생각을 이었다.

‘어째서 저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요?’

이 사건의 발단은 사실상 자신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나 마찬가지.

그렇다면 이 참상을 부른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아닐까.

자신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않았다면, 벤터 주교가 자신의 마을로 오지 않았다면, 이 참혹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대답해주십시오. 여신이시어.’

마리우스는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여신의 존재를 믿는 신실한 존재가 아니다.

이 힘은 그저 자신과 보육원,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사용하는 일종의 수단이었지, 자신의 믿음을 관철하고 많은 이들을 구원하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신자가 아니었다.

‘제가 당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그래서 벌을 받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렇다고 라도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다.

지금부터라도 당신의 존재를 믿을 테니, 이 고통스러운 벌을 멈춰주었으면 좋겠다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하고, 당신의 존재를 앞세워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을 핍박하고 있는 거짓된 신자들을 벌해달라고.

하지만 끝내 자신의 부름에 여신은 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도는 여신에게 닿지 않았다.

마리우스는 결국엔 결론을 내렸다.

‘이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아.’

그것은 에레니아 신성국에 속해 있는 영토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마리우스 속의 진짜 속마음이다.

애초에 정말로 이 세상에 신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어째서 고아인 자신과 보육원 사람들을 보살피지 않았을까.

마리우스와 그들은 신의 도움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었고, 오로지 서로만을 믿고 의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렇기에 신의 존재를 내심 속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신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불합리하게 죽음을 맞이한 자신들을, 불합리하게 착취하는 거짓된 신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너는 뭐니?]

그리고 딱 들어맞게 정확한 타이밍에 자신의 영혼에 접근해오는 어떠한 목소리를 마리우스는 느꼈다.

그의 마음이 닿은 것은 여신이 아닌, ‘무형(無?)의 무언가’.

“웁…우웁…!”

감옥 안에 있는 수십 구의 시체들이 썩어가면서 응집된 검은색의 작은 기운은 그것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역하고 구토를 유발한다.

“오, 오지…마….”

거의 다 죽어가는 신체에 위액을 쏟아내게 만드는 그 역겨운 기운이 바로 ‘사교(?)’의 결정체라는 것을 본능이 깨달았다.

움직일 여력조차도 없는 몸을 뒤척이며 뒤로 물러나면서,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하는 마리우스의 전신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머릿속 이성의 한편은 몹시 깨끗한 듯 생각했다.

‘아니. 사교(死)인 걸까.’

[흐응?]

그 검은색 무형의 기운은 마치 흥미를 띄운듯한 목소리로 마리우스의 앞 허공에 멈춰서 일렁였다.

얼굴은 물론 이렇다 할 명확한 이목구비조차 없는데, 그 기운에게서는 틀림없는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여신…이십니까?”

[…응?]

느닷없는 마리우스의 물음에, 검은색의 기운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설마 수많은 시체들의 사기(死?)로 만들어진 자신을 ‘여신’이라고 생각을 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의 흐름이었다.

마리우스로서는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여신의 존재를 만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간절함으로 도달한 결론이었지만, 다른 이의 눈에서 보면 마리우스는 단단히 맛이 간 남자였다.

[아하. 후후.]

이내 검은색 무형의 기운은 자신을 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마리우스의 시선에서 그의 감정을 알아챘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그 눈빛은 간절히 구원을 바라는 것과 동시에, 증오와 분노가 어우러진 부정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나의 이름은 메디아. 과거에는 ‘망자의 여왕’이라고 불렸지.]

그 감정들은 메디아가 아주 좋아하는 감정들이었다.

[마침 이곳에 있는 ‘내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 내 손발이 되어 움직여줄 수족이 필요했는데. 네가 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제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아주 잘 알고 있지.]

이윽고 감옥 속에 쌓여있던 시체들이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망자들을 부릴 수 있는 사령술. 네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유롭게 써도 좋단다.]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마리우스의 육체는 뼈만 남은 듯 앙상했으나 지금까지와는 달리 멀쩡하게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몸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메디아의 기운은 마리우스가 스스로 포기한 신성력을 밀어내고 그의 전신을 장악하여 새로운 육체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마리우스는 스스로 신성력을 버렸다.

자신의 기도와 애원을 들어주지 않는 여신의 힘 따위, 이기적이고 거짓된 부정을 일삼는 신자들을 방치하는 여신의 힘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자신을 새롭게 구원해준 메디아를 자신의 여신으로 모시기로 결심했다.

[자아, 어서 일을 마치고. 내가 ‘내 사랑’을 만나러 갈 수 있도록, 열심히 움직여주렴?]

“알겠습니다. 나의 여신이시어.”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