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3화 〉 523. 천일야장(?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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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의 존재와 등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기술과 만들어낸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서만 얽매여 있던 오란의 가치관을 깨부수는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무기란,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고 쓰임으로써 그 명성을 널리 떨치고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오.”
아무리 훌륭하고 심혈을 기울인 노력과 혼이 새겨진 무기라고 하더라도, 그 본질은 사용의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도구다.
누군가가 써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쇠붙이에 불과한 거적때기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오란의 마음속에 새로운 목표가 생겨났다.
“조부는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그 인간이 성장하게 되어 훌륭한 검사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그 인간에게 검을 만들어 주기로 결심하게 되었소.”
그것은 오란에게 야금술을 계속 배우면서도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검의 단련을 이어나가던 은현을 보고 내린 결심이다.
무언가를 강하게 열망하며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눈이 부셨다.
대장장이의 길도, 검의 길도, 현재의 위치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위를 올려다보며 향하는 그 모습은 오란의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만들어냈다.
“그러면…. 주인님에게 계속 야금술을 가르치신 건…. 어째서인가요?”
“아쉬웠기 때문이오. 시간만 존재했다면, 은현이라는 인간은 조부가 가지고 있는 천일야장의 기술을 모두 습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조부께서는 말씀하셨소.”
재능의 유무에 상관없이, 정말로 노력만을 통해서 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은현은 오란에게 있어 정말로 특별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계속 곁에 두고 야금술을 가르쳤다.
차라리 이 마을에 계속 눌러앉아서, 자신의 모든 기술을 습득하고 천일야장의 자리를 이어받아 자신이 만든 무기보다 더욱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주기를 바랐던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오란은 끝내 그것을 권유할 수는 없었다.
드워프의 마을에서도 야금술을 배우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계속해서 검술을 연마하는 것에 몰두하는 은현의 본질은 결국 검사다.
은현은 언젠가 이 지하를 떠나 지상으로 나가서, 계속 연마한 검술로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어떠한 사명을 완수해야만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오란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떠나기 전까지, 자신의 기술을 하나라도 더 이해하고 습득시켰다고 하오. 그리고 떠나기 전, 그 자에게 자신의 후계를 잇는 시험을 치를 자격이 주어지는 표식을 함께 넘긴 것이지.”
그 사실이 밝혀진 것은 오란이 천일야장의 칭호를 내려놓고 대장장이로서의 직업을 공식적으로 은퇴하면서부터다.
많은 드워프들이 오란이 멋대로 벌인 행동에 분개했으며 당장이라도 지상으로 나간 인간을 잡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100년이 넘게 지나버린 시점에서 수명이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지상의 인간을 잡겠다는 것은 비 오는 날에 마른 장작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오란이 수명을 다해 사망한 이후, 그가 벌인 일에 책임을 져야 했던 것은 오란의 가족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조부가 속해있었던 우리 검은 모루 부족을 욕했으며, 인간에게 표식을 넘기면서 천일야장의 칭호를 계승하지 못하게 만든 희대의 어리석은 드워프라고 비아냥댔소.”
“…….”
자신의 조부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스스로 입에 담는 도란의 표정은 무척이나 담담하다.
도란 또한 자신의 조부에 대한 그 평가는 딱히 틀리지 않았다.
대장장이로서는 모두가 그 기술을 탐내고 우러러보는 훌륭한 장인이었지만, 오로지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고 다른 이는 신경도 쓰지 않는 이기적인 드워프라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자신을 비롯한 검은 모루 부족들 전원이 그에 대한 피해를 보고 있었으니, 변명할 길이 없는 팩트다.
“그래서 나 또한 기다렸소. 조부가 그렇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인간은 도대체 어떤 자일까.”
도란은 늘 궁금해했다.
자신과 자신의 부족이 다른 부족의 드워프들에게 욕을 먹어야 했던 원인 중 한 사람인 은현이라는 인간에게 오란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느껴서 그런 선택을 내렸던 것일까.
오란은 손자인 어렸을 적의 도란에게 은현의 이야기를 해줄 때면 항상 즐거운 추억에 잠겨 있었던 듯 웃음을 지었었다.
언제는 한번, 어렸을 적 도란이 오란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인간은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생을 살다가 죽는 종족인데, 어째서 은현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을 할 수 있냐고.
오란은 어린 손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돌아올 것이라 확신하는 게 아니다. 와줄 거라고 믿고 있을 뿐이지.’라고.”
몇 년이 되었든, 몇십 년이 되었든, 젊은 청년이 노인이 돼서라도 올 것이라는 믿음.
아니면 자신이 표식을 후손에게 계승시켰던 것처럼, 은현이 생을 마감하고 그의 자손이 뒤늦게라도 찾아올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조부께서는 끝내 저 인간에게 검을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을 굉장히 아쉬워하셨었소.”
그래서 은현이 떠난 이후로 오란은 두 자루의 검을 제작하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은현이, 또는 그의 자손이 이 마을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하지만 끝내 그 검을 완성하지 못하고, 오란은 생을 마감했다.
“나를 비롯한 이 마을의 대장장이들은 천일야장의 시험의 내용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소. 하지만….”
오란의 생을 지켜보았던 그의 손자, 도란은 드워프 마을 최고의 대장장이가 아닌, 오란 개인으로서의 관점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추측해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들은 릴리도 은현이 치르고 있을 시험이 어떠한 것인지 그 내용을 파악했다.
“저 시험은…. 오로지 주인님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군요.”
“…그렇소.”
오란의 막무가내식 행동으로 약 300년간 이루어지지 못했던 천일야장의 시험은 오로지 은현만을 위해 준비된 안배였다.
“나는 지금도 기다리고 있소.”
까아앙!
망치질 소리가 몇 시간이고 멈추지 않아 계속 울려 퍼지는 문 너머에, 어떠한 물건이 만들어지고 있을지.
모든 드워프들이 숨을 죽이며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릴리는 흘끗 시선을 옮겨 다른 드워프들의 표정을 살폈다.
“…….”
뒤늦게 찾아온 조르와 그의 부족인 ‘붉은 화로 부족’의 드워프들 또한 다른 드워프들과 마찬가지로 문 너머의 망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어젯밤, 부족 회의실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은현을 보며 잔뜩 분개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드워프들이 대장간 안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망치 소리와 울려 퍼지는 마력의 파동을 느끼며 내부의 진행 상황을 가늠했다.
불만도, 감탄도,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은현이 치르고 있는 시험에 대해 신경이 쏠려있는 드워프들은 대장장이의 면모를 보이었다.
종족의 차이와 이방인이라는 것을 넘어서, 드워프들이 은현의 존재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 ◆ ◆
자신이 망치를 손에 쥔 이후로 몇 시간이 지났을까.
몇 번을 두들겨야 끝이 날까.
끝이라는 것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은현은 아무것도 가늠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이 계속해서 오리하르콘의 칼날을 제련하는 것에 몰두했다.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철은, 금속은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단단해진다.
망치질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최대의 힘과 마력을 싣고, 제련하는 금속 안에 자신의 영혼을 담아낸다.
까아앙!
망치를 한 번 내리쳐 오리하르콘으로 제작된 칼날과 충돌할 때마다, 칼날이 그 충격을 흡수하면서 벌벌 떨렸다.
마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금속이 담아낼 수 있는 한계의 한계치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때려 넣기라도 하듯 그 과정을 반복한다.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 그딴 걸 물으니까 너는 아직 멀었다는 거다.
한 번이 두 번으로, 두 번이 네 번으로, 여덟 번, 열여섯 번, 계속해서 쌓이는 횟수의 반복에 은현의 팔은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지르고 장시간 동안 이어진 작업의 반복으로 쌓이는 피로와 반대로, 깎여나가는 정신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웠다.
누구도 너에게 여기서 멈춘다고 뭐라 할 녀석은 없겠지.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망치를 쥔 손은 다시 한번 힘을 실어 칼날을 치기를 반복한다.
까아앙!
이 과정이 끝나지 않고 아직까지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은현이 아직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는 겨우 이 정도에서 만족할 거냐?
두 자루의 오리하르콘 칼날을 제련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란이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르며 오버랩되듯 스쳐 지나갔다.
“설마요.”
은현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오버랩된 오란의 환영에게 답했다.
자신은 아직 더 할 수 있다.
팔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정신력은 미친 듯이 깎여나가 머릿속을 몽롱하게 만들었지만, 겨우 이런 것에 굴할 정도로 자신의 마음은 나약하지 않았다.
“스승님에게 몇백 번을 죽었던 때에 비하면 이게 낫지.”
유피테르에게 완전한 신격을 갖추기 위해 받았던 세 가지 시련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우스운 수준에 불과하다.
뜨거운 화로 앞에 장시간 노출되어 전신에서 흘러내린 땀들이 증발하여 수분을 빼앗아가고, 아득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도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은현이 이렇게까지 시험에 임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이 두 자루의 칼날을 남겨둔 오란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제련하고 있는 두 자루의 오리하르콘 칼날은 오란이 자신이 드워프 마을을 찾아왔을 때, 자신에게 전해주려 했던 천일야장의 마지막 작품.
하지만 오란은 마지막 작품이 될 터였던 이 두 자루의 칼날을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나에게 맡긴 건가요?”
돌아올 리가 없는 대답이지만, 은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은현이 망치질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지금 자신이 제련하고 있는 두 자루의 칼날이 천일야장의 유작이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작품을, 그가 일생동안 만들어낸 그 어떠한 작품보다 더 훌륭하고 위대한 최고의 작품으로 완성을 시키기 위해, 은현은 계속 망치를 두들겼다.
‘이거론 부족해.’
하지만 그런데도, 계속해서 부족함을 느낀 은현은 결국 손에 힘을 풀어 수백 번을 반복하여 두들겼던 망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오랫동안 망치를 쥐고 있던 탓에 이미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던 손을 위로 뻗는다.
[신의 무구]
[불카누스의 망치]
은현의 영혼 속에 각인되어 있던 불카누스의 망치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신력을 품고 있는 신의 일부 그 자체.
은현은 있는 힘껏 오리하르콘의 칼날에 불카누스의 망치를 내려찍었다.
까아앙!
막대한 충격과 함께 불카누스의 망치 안에 깃들어 있던 막대한 신력이 오리하르콘과 호응하여 칼날 속으로 흡수되어간다.
격렬한 에너지의 흡수로 오리하르콘의 칼날이 부르르 떨며 울부짖기를 잠시, 은현은 다시 한번 불카누스의 망치를 내리쳤다.
그것은 흡사 성검 듀란달을 복원했을 때와 비슷한 과정이지만, 은현이 만들려는 것은 성검이 아니다.
머릿속으로 순간 브류나크의 존재가 스쳐 지나갔던 것을 계기로, 그와 같은 동급의 무기를 제작하기 위한 시작점.
‘오란. 오란의 마지막 작품은 제가 신검(??)으로 완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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