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22화 (505/730)

〈 522화 〉 522. 천일야장(?一??)(5)

* * *

어디선가 새어나간 오란의 소문은 ‘인간에게 천일야장의 기술을 전수하기로 했다.’라는 소문으로 와전되어 드워프 마을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들은 드워프들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말도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천일야장의 기술을 전수하다니요!”

자신들이 아닌 다른 드워프에게 기술이 계승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인간에게 천일야장의 기술이 계승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드워프들의 항의는 거셌다.

심지어 마을에 체류하고 있는 은현은 언젠가 이 마을을 떠날 예정인 외부인.

그런 그에게 기술을 전수한다는 것은 드워프의 대장장이 기술이 외부로 유출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런 것보다도 그 누구보다 천일야장의 제자라는 자리를 열망하는 자신들은 매몰차게 쫓겨났는데,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인간이 자신들을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다는 자존심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시끄럽다! 네놈들의 말을 들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인간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 겁니까!”

“에이이! 다 꺼져!”

쾅!

오란의 대장간으로 찾아온 모든 드워프들을 문전박대하고, 문을 세차게 후려치고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잠갔다.

“…그냥 저렇게 하셔도 되는 겁니까?”

“무엇을?”

“오란을 찾아온 저 드워프들 말입니다.”

“흥. 니 걱정이나 해라. 네 수준에 남을 걱정할 여유도 있다니, 주제를 알아야지.”

코웃음을 치며 신경 쓰지 말라는 오란의 말에도 은현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에게 호통을 치며 간섭하기 좋아하는, 그냥 그저 그런 대장장이인 줄 알았는데.

오란의 정체를 듣고 다니 더더욱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를 가르치시려는 겁니까? 저는…언젠간 이 마을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술을 가르쳐주신 대가로 무언가를 드릴 수도 없습니다.”

“흥. 내가 네 놈 같은 호리호리한 놈한테 뭘 뜯어가겠다고. 네 놈은 내가 무언가를 대가로 나의 기술을 전수하는 속물적인 드워프로 보이느냐?”

“…그렇진 않습니다.”

은현은 솔직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란이라는 드워프는 이 마을 안에서 제일가는 대장장이이며 그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능력과 영향력을 갖춘 자이다.

게다가 대장장이라는 자신의 직업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큰 만큼 무언가 대가를 받았다고 해서 자신의 기술을 누군가에게 전수할 만한 성격도 아니다.

그렇기에 은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그냥 변덕이다. 네놈이 지금까지 그 산더미만 한 쓰레기들을 제련하면서 날려 먹은 소재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화병이 나서 깨어날 지경이야.”

오란은 코웃음을 치며 은현을 올려다보았다.

“설마 네놈. 내가 나의 기술을 전부 가르쳤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고 제 것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느냐?”

“…그렇진 않습니다.”

‘겨우 네까짓 게?’라는 눈빛을 쏘아보고 있는 오란의 얼굴을 보며, 은현은 쓴웃음을 지어 부정했다.

자신의 야금술 수준은 은현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다.

설령 아무리 훌륭한 스승을 만났더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은 이미 뼈저리게 온몸에 새겨져 있다.

자신에게 체술과 검술, 창술을 가르쳤던 친구, 스승, 파트너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에 달하는 천재들이었으나, 그들의 가르침 일부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했던가.

“흥. 알면 됐다.”

오란은 자신의 거친 언행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은현의 태도에 김이 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금속을 제련한다는 것은 굉장히 심오한 작업이다. 망치질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모든 힘과 기력을 담아내어 금속에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지.”

당연히 체력적인 요건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대량의 마력을 보유하고 그것을 운용할 수 있는 센스와 장시간 유지할 수 있는 정신력이다.

“다행히도 네놈은 이 조건을 갖추고는 있다.”

약 2주간을 가까이 몇 시간 동안 미친 듯이 망치만을 두들기고 있는 체력과 집념은 확실히 웬만한 드워프들보다도 낫다.

오히려 은현에 대해 괴상한 소문이 퍼졌던 만큼, 은현을 보고 질린다는 반응을 보이는 드워프들이 더 많았다.

가르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으니, 은현 정도라면 자신이 약간의 조언만 해줘도 많은 문제점이 개선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극적인 변화와 성장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은현은 여러모로 오란의 예상을 벗어나는 존재였다.

“다시.”

맨 처음보다야 당연히 나아졌다지만, 그런데도 자신이 상정했던 수준보다는 한참 떨어졌으니 이런 상황은 전혀 상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오란은 계속해서 은현에게 금속의 제련을 시켰다.

“다시!”

제련을 끝낸 금속의 질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부러뜨려 다시 화로 속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아예 대장간의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 은현을 가둬두었던 적도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철을 만들어 봐라.”

본래라면 자신이 만족하는 수준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은 오란의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 타입이었다.

만들어낸 결과가 전혀 시원찮다면 들어간 시간과 노력, 재료가 아깝다거나, 손목을 잘라버린다거나, 심하게는 왜 살아있냐는 등의 폭언과 매도를 일삼았다.

쓰레기만도 못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대장장이는 쓰레기 그 자체라고 생각할 정도로 냉혹하며,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오란의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도대체 뭐냐. 저놈은?”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을 뒤흔드는 유일한 예외가 나타난 것에 오란은 당혹스러운 생각을 품었다.

“재능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대장간 안에 은현을 가둬두고 나온 오란이 주점으로 와, 약 2주 만에 만난 술꾼 친구 드워프에게 내뱉은 첫마디다.

“자자, 진정하고! 일단 마시자고!”

최근 들어 인간에게 야금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해서 은현의 존재를 알고 있는 술꾼 친구 드워프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오란에게 계속 술을 권유했다.

마을 안에 나돌아다니는 재미있는 소문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이며 그것을 맛깔난 입담으로 재미있게 표현하면서 술을 얻어먹고 다니는 그이니만큼, 오란의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인간이 그렇게나 재능이 없나?”

“없어! 없어도 더럽게 없어! 어떻게 그딴 놈이 존재할 수가 있냐고! 살다 살다 저렇게 미련한 놈은 처음 봤어!”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은현은 재능이 없다.

마치 대장간으로 나와 수습으로 잡일을 시작하면서 야금술을 막 배우기 시작하는 10살 먹은 어린 드워프를 가르치는 것 같다.

“아니. 어린 애들도 저거보다는 낫지.”

몸만 성숙한 어른이지, 사용하는 기술 자체는 어린 드워프와 비슷하거나 그만도 못하다.

“흠? 그런데 나는 그렇게 답답하다고 얘기하고 있는 자네가 더 이해가 가지 않는데.”

“…뭐라고?”

“아니. 그럴 게, 그렇게 재능이 없다면 진작에 내쳤으면 될 일이 아닌가. 어째서 그렇게 꾸역꾸역 가르치겠다고 고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만?”

“…….”

술꾼 드워프 친구로서는 오히려 지금 취하고 있는 오란의 태도가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천일야장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오란이 이 드워프 마을 안에서 어떠한 위치에 속해있는지는 그 자신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아래에서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지금까지 많은 드워프들이 그에게 가르침을 청했으나 모조리 문전박대를 당하는 하나같이 똑같은 결말을 맞이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오란의 행동은 심각한 모순이다.

어째서 가르침을 청했던 드워프들은 그들의 실력을 벌레만도 못하다고 매도하고 윽박지르며 무시하면서, 드워프보다 한참이나 수준이 낮은 인간에게는 답답함을 꾹 참으면서도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가.

“어째서인가?”

궁금함에 못 이겨 다시 한번 재촉하여 묻는 술꾼 드워프 친구의 물음에도, 오란은 입을 꾹 닫으며 답하지 않았다.

“이만 가보겠네.”

“오, 오란? 자네!”

무언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을 나온 오란은 ‘술값은 계산하고 가라고오오!’라는 친구의 말조차도 듣지 못한 채 깊은 생각에 잠겨 길을 걸었다.

“나는 왜 그놈에게 계속 기술을 가르치려 했을까.”

묵묵히 자신의 집으로 가는 중에도 오란은 계속 생각했다.

자신에게 아부를 떨고 어떻게든 기술을 전수받으려는 속내가 가득한 동족들의 행동에 질렸던 것에 대한 반동일까.

아니면 은현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무언가 특별함을 느낀 것일까.

오란 자신도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술꾼 드워프 친구의 말대로, 다른 드워프였다면 저 형편없는 실력에 신물을 느끼며 당장이라도 내쫓았을 텐데 어째서 은현에게는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걸까.

계속해서 미친 듯이 망치를 두들기던 은현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놈은…달라.”

형편없는 재능에 상관없이, 그의 두 눈에 깃들어 있는 것은 끊임없이 위를 향하기 위해 마음을 불태우는 향상심으로 가득하다.

남들보다 성장이 뒤처질지언정, 그는 느린 발걸음으로라도 계속해서 앞을 걷고 있고, 위를 향하고 있다.

대충하거나, 요령을 모르고, 오직 기술의 향상만을 위해서 오란의 가르침을 가슴속에 새기고 또 새기며 그것을 조금씩 개선해 나간다.

오란이 답답해하는 것은 그렇게 몸과 열정을 불태워가며 미친 듯이 망치를 휘두르고 있는데, 어째서 그렇게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 때문이다.

“저렇게나 노력하는데. 어째서?”

마치 하늘 위의 신이 은현에게서 재능이라는 요소만을 쏙 빼내어 가져간 것만 같다.

“…음?”

깊은 생각에 감겨 걷더니, 오란이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니라 은현을 가두어둔 자신의 대장간 앞이었다.

평소였다면 모두가 잠드는 이 시간까지 은현의 망치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기이하게도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고요했다.

“왜 이리 조용해?”

오란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잠금장치를 풀어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은현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외쳤다.

“이, 이봐! 은현!”

황급히 그의 몸 상태를 살피려 가까이 다가갔던 찰나, 오란은 멈칫하여 바닥에 산처럼 쌓여있는 수많은 고철 더미들과 모루 위에 막 제련을 끝낸 하나의 검날을 발견했다.

“이건….”

얼마나 많은 철을 두들겨 제련을 시도했고, 많은 실패 끝에 만들어낸 단 하나의 결과물.

처음으로 완성된 검날은 아직 엉성하여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오란이 속으로 세워두었던 합격점에 도달했다.

“…웃어?”

피로가 누적되어 수척해진 은현은 기절해있는 와중에도 입꼬리가 호선으로 그어지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에서 받는 달성감과 뿌듯함으로 가득한 장인의 얼굴 그 자체다.

은현은 힘겨운 여정과도 같은 대장장이의 기술을 전수받는 이 시간 자체를 즐기고 있다.

남들보다 더딘 성장 속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조금씩 성장해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는 스스로에게 깊은 감사와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하, 이놈 봐라?”

오란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지만, 만족한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은현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 ◆ ◆

“조부는 항상 술을 마실 때면 나를 앉혀놓고 그때 가르치셨던 백은발의 적안을 가진 특별한 인간에 대해 말씀하셨소.”

도란은 머릿속의 기억을 더듬으며 오란이 이야기해주었던 은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은현이 떠나야 할 시기가 다가왔던 때, 오란은 은현을 붙잡지 않았다.

결연한 얼굴로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맡은 사명이 있다.’라고 말하는 은현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받아 천일야장이 되라고는 권유할 수 없었다.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모두 들은 릴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란님의 조부님…. 오란님께서는 주인님께 무엇을 기대하셨던 걸까요?”

도란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그저 은현이라는 존재에 대해 흥미를 느꼈을 뿐, 지금까지 천일야장의 시험이라는 것을 매개로 그의 후손들이 은현을 기다리게 만든 것과는 딱히 연관성이 보이지는 않았다.

“조부께서는 뒤늦게 깨달으셨다고 하오. 그 인간의 본질은 대장장이가 아니라, 검사라고.”

은현은 그때 당시에 오란에게서 야금술의 교육을 받으면서도 시에테가 주입해둔 훈련을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야금술만큼이나, 그보다 더 노력하여 검술의 향상에 몹시 목이 말라 있다는 은현의 몸속에 배어있는 검사로서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그때부터 조부의 목표는 그 인간이 스스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검을 제작해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하오.”

“주인님이…스스로 어울리는 검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카아앙!

릴리는 순간 머릿속으로 스치는 생각과 함께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대장간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최고의 대장장이란, 최고의 무기를 만드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와도 같지.’”

무기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쥐어지면서 싸움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 효용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에는 무기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는 그 가치를 판별하기에는 쉽지 않으며, 누군가의 손에 쥐어졌을 때 비로소 빛이 나는 법.

“‘그렇다면 최고의 무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

“조부께서 유언과 함께 남기셨던 말씀이오. 그 대답이 무엇이었을 것 같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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