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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524화 (507/730)

〈 524화 〉 524. 천일야장(?一??)(7)

* * *

까아앙!

불카누스의 망치와 충돌한 오리하르콘 칼날이 망치 안에 내포되어 있던 은현의 신력을 흡수하며 거칠게 울부짖었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을 강타하면서 흡수되는 신력의 양은 듀란달을 복구했을 당시 때려 넣었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

은현이 그 신력을 끊임없이 생산해내어 공급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영혼에 각인된 또 다른 신의 무구 때문이다.

[신의 무구]

[코르누코피아]

그것은 도데카테온의 일원 중 하나인 명계의 신 플루토의 신물인 풍요의 뿔.

이것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활력은 물론 막대한 양의 신력을 끌어다 쓸 수가 있는, 은현이 신들에게 하사받은 또 하나의 신물이다.

비약적인 체력의 상승으로 주로 침대 위에서 아내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효능을 톡톡히 보고 있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효과일 뿐, 코르누코피아의 진짜 능력은 끊임없는 신력의 생성이다.

이 코르누코피아를 활성화하여 생성된 신력의 양은 마치 절대로 마르지 않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영구한 샘물과도 같다.

이것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은현의 정신력이다.

몇 시간을 가까이 반복하여 끊임없이 두들겼던 망치질로 인해 쌓인 육체적인 피로와 달리, 신의 무구를 소환하여 유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은현의 머릿속에 쌓이는 정신적인 피로의 수준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까아앙!

철을 두들기는 은현의 망치질은 여전히 힘이 넘쳐났다.

은현이 드워프 마을 안에 머무르면서, 오란에게 배웠던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천일야장이라는 칭호를 거머쥐고 있는 마을 최고 장인의 수준은 너무나도 높았으며 기술을 전혀 익히지 않았던 은현과의 격차는 너무나도 컸다.

그렇기에 은현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천일야장의 기술이랄 것도 없는 가장 기초 중의 기초인 것들뿐.

­제일 중요한 것은 한계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구지. 그래. 그런 면에서는 너는 나보다도 뛰어나다.

검사로서든, 대장장이로서든, 어느 분야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향상심.

대장장이로서 가져야 할 소질 중 모든 면에서 우월했었던 오란이 유일하게 은현을 인정했던 부분이자, 계속해서 은현에게 야금술을 가르쳤던 이유이기도 하다.

까아앙!

이윽고 망치질을 계속해서 견뎌냈던 두 자루의 칼날들이 주입받던 신력들이 수용의 한계에 도달했다.

우우웅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모루 위에서 거칠게 떨리며 진동하는 칼날들은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신력의 수용 한계를 맞이했다는 것은, 더는 금속이 은현의 제련을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며, 실질적으로는 제련이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난 건가….”

불카누스의 망치를 역소환하고, 머릿속에 지끈거리는 두통을 선사해주고 있는 코르누코피아의 활성화를 억제했다.

정신력을 갉아먹고 있었던 두통이 사라지자, 은현의 공허한 머릿속과 몸을 짓누르는 것은 극심한 피로감과 탈력감.

“크…윽….”

제련이 끝나자마자 맥이 탁 풀린 듯 전신에 힘이 빠져나가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이를 꽉 깨물며 쓰러지는 것을 억지로 버텼다.

“아직…. 아직이야.”

아직은 칼날의 제련만이 끝났을 뿐, 손잡이를 비롯해 제대로 된 마무리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타이르며 은현은 칼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

“…뭐?”

은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모루 위에 고정된 칼날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손길을 느끼고 그에 호응하듯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은 미묘한 형태.

“제대로…된 건…가?”

수차례 검을 만들어보았지만, 말만 거창하지 신검(??)이라는 것은커녕 성검(??)조차도 만들어본 적 없었던 은현은 자신이 제작한 검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은현이 생각해낸 신검이라는 이름 자체가 자신이 애용하는 파트너, 브류나크의 이명인 신창(??)에서 가져온 것이다.

두 자루의 칼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내뻗은 은현의 손이 칼날과 맞닿은 순간.

우우웅

“큭!?”

칼날에 내포되어 있던 신력이 뿜어져 나와 대장간 안을 밝은 은색 빛으로 가득 메웠다.

은현은 급작스러운 변화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팔로 얼굴을 가려 눈 부신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했다.

피로에 절어있는 그의 몸으로는 겨우 그것이 한계일 뿐.

이윽고 칼날에 접해있는 손가락의 피부를 타고 무언가가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건…?”

정확히는 자신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에 흘러들어오는 무언가의 존재를 느끼며 은현이 작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낯설면서도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굉장히 친숙함이 가득하여 자신의 영혼 속에 녹아드는 그것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챘다.

“검이…내 영혼 속에 들어왔다고?”

무리 없이 자신의 영혼에 각인되었다는 이 상황은 은현으로서는 몹시 예상외의 상황이었다.

하계에 속해있으며, 질량이 존재하는 금속이 자신의 영혼으로 녹아들어 합쳐졌다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기묘한 기분이었다.

이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엄밀히 따지자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부여한 신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두 자루의 검은 이미 은현의 영혼의 일부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칼날만이 자신의 영혼 속으로 들어와 허무한 끝을 맞이한 은현은 이번에야말로 끝났다는 것을 실감하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아…. 모르겠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이 변수의 상황에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것보다도 전신을 덮쳐오는 피로감에 휴식을 취하고 싶은 욕구가 은현의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일단…자고 생각해야지.”

◆ ◆ ◆

조금씩 의식이 각성하기 시작한 은현은 뒤늦게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무거운 눈꺼풀은 열리지 않고 있었지만, 정신을 잃기 전 딱딱한 바닥에 드러누웠던 감각이 은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상한 것은 현재 자신의 머리맡에서 자신이 편안한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해주고 있는 부드러움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무릎이라는 것을 자각한 것은 의식을 각성시킨 이후였다.

“…릴리?”

무거운 눈꺼풀을 열고 위를 올려다보자마자, 은현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릴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일어나셨군요.”

릴리는 밝은 미소로 은현을 맞이했다.

은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대 하나 놓여있지 않고, 그저 간단한 부엌만이 설치되어있는 단칸방.

대장간이 아니라, 도란이 빌려주었던 검은 모루 부족의 빈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이 잠든 이후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를 빠르게 파악했다.

“…내가 잠든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어?”

“5시간 정도요.”

“5시간….”

그 시간을 조용히 곱씹으며 은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괜찮으신가요? 아직 몸의 피로가….”

“괜찮아. 계속 이렇게 무릎을 베고 있으면 릴리가 아프잖아.”

이곳에는 제대로 된 침대를 비롯한 침구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드워프들은 인간들보다 좀 더 튼튼한 육체를 타고나 딱딱한 바닥에서도 아무렇게나 잘 자는 종족들.

일과를 끝내고 밤이 되면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서 대자로 뻗어 누워도 숙면을 취하는 그런 동족들이 드워프다.

말 그대로 ‘땅의 요정’이라는 단어가 이만큼이나 어울릴 수가 없는 특별한 종족들.

은현은 릴리를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릴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은현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반강제적으로 다시 무릎에 머리를 베게 된 것은 은현에게는 불가항력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제 팔 힘 하나도 떨쳐내지 못하면서요?”

“…….”

아직 몸의 피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뜻일까.

그저 육체의 피로가 누적되었을 뿐이지 저항하려면 얼마든지 저항하고 몸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릴리의 배려를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릴리는 은현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이렇게 주인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걸요.”

머리맡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천과 가녀린 무릎의 감각이 몹시 기분이 좋아서, 은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포기했다.

“…고마워.”

“천만에요.”

“내가 어떻게 이곳으로 옮겨졌어?”

은현은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의 상황을 떠올렸다.

시험을 마치긴 했지만, 피로로 인해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바람에 시험의 결과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

심지어 시험의 통과 여부를 판단해야 할 천일야장의 유작은 완성과 동시에 은현의 영혼 속으로 흡수되었으니 물건을 보고 판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드워프 분들이 옮겨주셨어요.”

“…드워프들이?”

그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소식이다.

“네. 계속해서 들려왔던 주인님의 망치 소리가 갑작스레 끊겨서 들리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시험의 결과는 어떻게 됐어?”

“후후.”

릴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만을 흘릴 뿐이었다.

하지만 실패라면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져 아쉽다는 표정을 가득 드러냈을 터였다.

그것은 곧 시험을 통과했다는 의미.

“…어째서?”

은현에게는 그것이 더 이상했다.

자신은 완전히 마무리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시험 과제였던 천일야장의 유작은 자신의 몸 안으로 흡수되어 실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모든 드워프 분들이 피부로 느꼈다고 하네요. 주인님의 실력을.”

벽으로 가려져 있다고 해서, 직접 작업의 과정을 볼 수 없다고 해서 드워프들은 그저 하염없이 밖에서 은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강하게 내리쳐지는 금속의 충돌음.

그리고 망치가 내리쳐질 때마다 대장간 내부를 들썩이며 외부로 튀어나왔던 강력한 마력의 파장들.

한 두 시간도 아니고, 열 시간이 넘도록 계속 금속을 두들기는 은현의 집념은 대장장이로서도 일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드워프들은 소리로, 피부로 은현의 기술을 직접 체감했다.

“주인님을 못마땅하게 여기셨던 붉은 화로 부족의 족장님이신 조르님도 마지막에는 미안했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인간이라고, 단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주인님을 무시한 것을 나중에 사과하고 싶다고요.”

조르뿐만이 아니라, 은현의 존재와 등장을, 자신들을 제치고 천일야장의 시험을 보는 인간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드워프들은 끝내 은현을 인정했다.

마지막 순간, 마력보다도 상위의 기운에 해당하는 신력의 강력한 파동을 몸소 느낄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며 떨고는,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입을 떡하니 벌리고만 있었던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주인님이 그분들의 표정을 보셨어야 했는데….”

보기 드물게 잔뜩 들뜬 듯 보이는 릴리는 무척이나 기쁜 듯 드워프들의 표정들을 설명했다.

비록 전대 천일야장이 준비해둔 과제이자 결과물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져버렸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열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망치를 두들겼던 은현을 그저 그런 인간 대장장이라고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정신을 차리시고 휴식을 취하시고 난 뒤, 도란님이 다시 한번 뵈어서 시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릴리는 또 다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은현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뜸을 들이면서도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려 죽겠다는 그 태도를 보아, 아마도 도란이 전하려는 이 말이 가장 중요한 건이라 은현은 짐작했다.

“천일야장의 계승을 축하드린대요.”

“…그렇구나.”

은현은 릴리의 말을 듣자마자 작게 숨을 내쉬며 편하게 릴리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동안 경직되어 있던 마음과 긴장이 단번에 풀어져 지그시 눈을 감는 은현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릴리는 작게 속삭였다.

“고생하셨어요. 주인님.”

드워프 마을의 역사상 최초로 벌어진 전대미문의 사건

천일야장의 칭호를 계승한 인간이 탄생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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