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화 〉 420. 노스페라드(1)
* * *
린데발트령의 전장을 지휘하던 리오드는 의문을 품었다.
“…이상하군.”
“자네도 그리 생각하나?”
그리고 의문을 품은 것은 사이먼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현재 전선에서 흡혈귀들을 소탕하고 있는 모든 기사들과 마법사들도 어렴풋이 위화감을 느끼고 있을 터이다.
“사이먼님께서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계시군요.”
“그렇지.”
“…어떻게 생존자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건물이 무너지고 영지가 초토화되고 있는데, 아무리 이곳이 망한 영지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모습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리오드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미 이 영지는 끝났군.”
살아있는 생존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영지에 있던 노숙자들, 불량배를 비롯한 무법자들은 이미 흡혈귀들의 먹이가 되어 생을 마감했을 터.
“나도 같은 생각일세.”
오랜 경험 속에서 위화감을 느낀 사이먼은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흡혈귀들의 소탕 작전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무언가 위화감이 존재했다.
“…….”
쿠구구
갑작스럽게 진동하는 바닥의 떨림.
특정의 한 장소로부터 영지 전체에 퍼져 나오는 기운을 느낀 리오드와 사이먼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건.”
마력의 밀도가 심상치 않은 것도 문제지만, 피부로 접한 이 마력은 무언가 기분이 나쁘다.
인간의 몸에 내재되어 있는 마력이 아닌, 마치 마수의 오염된 마력을 접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나쁨.
이것은 흡혈귀가 방출하는 마력이다.
“설마….”
이것의 정체를 제일 먼저 눈치 챈 것은 사이먼이다.
심상치 않은 범위로 퍼져나가는 마력의 밀도를 확인하고, 그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쿠우우
건물이 무너지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건물만큼이나 거대한 무언가다.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몸을 일으킨 그것은 평범한 마수들과는 달리, 상식을 뛰어넘는 크기를 선보였다.
커다랗고 얇은 날개와 가느다란 다리와 팔이 달린 몸뚱이.
리오드는 몸을 일으킨 거대한 마수의 모습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박쥐?”
마치 작은 몸집의 박쥐를 거대화시킨 것만 같은 기형적인 상황에 리오드와 사이먼을 비롯한 모든 기사들이 멈칫거리며 허공을 올려보았다.
이윽고 그 거대한 박쥐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자신의 입을 쩍 벌렸다.
키아아아악!
“크윽!?”
“크!?”
허공을 향해 내지르는 박쥐 마수의 포효에 공기가 찌릿찌릿 뒤흔들려 전신을 떨게 만들었다.
“저…건 도대체…!?”
사이먼은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두 귀를 틀어막아 소리를 차단시켰다.
얇는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강력한 돌풍이 아래를 덮쳐왔다.
먼지 바람에 휩쓸려 흐릿한 시야 속에서 거대한 박쥐형 마수를 계속 응시했다.
70년의 인생을 살면서 저런 마수는 본적도 없었다.
하지만 리오드는 무언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건…. 설마 고대 마수?”
“고대…마수라고?”
“…저도 듣기만 했습니다.”
◆ ◆ ◆
노스페라드. 라고 하지.
“노스페라드?”
은현의 대리로 흡혈귀의 소탕 작전에 참여를 해준 엘레노아와 에린이 건네준 수정 구슬 너머에는 은현의 얼굴이 보였다.
리오드는 그가 언급한 이름을 곱씹으며 되물었다.
최초의 흡혈귀. 아니, 지금의 흡혈귀가 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 마수의 원형.
“…….”
통신으로 은현의 이야기를 들은 리오드는 얼굴을 굳혔다.
본래 흡혈귀의 기원은 박쥐의 형태를 하고 있는 고대 마수가 인간의 형태로 변이한 것이 그 시작이지.
마수가 인간처럼 지성을 가지고, 그 인간을 일방적으로 농락하고 피를 취하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변이했다.
몸체는 작아지고 힘은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변화를 통해서 고대 마수는 인간처럼 지성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흡혈귀가 된 노스페라드는 인간들을 사냥하기 위해 인간들의 피를 탐하고, 그 인간들의 몸속에 자신의 인자를 심었어.
그 결과 노스페라드에게 피를 빨린 인간들은 흡혈귀가 되어 노스페라드에게 절대로 저항할 수 없는 권속이 되었다.
태양에 불타는 평생을 어둠 속에 숨어 살아야 하는 몸과 그 몸속에 가득해진 흡혈 충동은 그들을 인간이 아닌 완벽한 흡혈귀로 만들었다.
노스페라드는 생각한 거야. 인간들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막대한 힘은 필요 없다고.
강력한 육체는 필요하지만 더욱 요구되는 것은 인간들을 몰아넣을 수 있는 지성과 조직력이다.
그래서 지성을 깨우친 노스페라드는 자신과 고대 마수들로부터 몸을 숨기게 된 인간들을 효율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인간처럼 되고자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인간의 목덜미를 깨물어 피를 마시고, 자신의 권속이 되어버린 흡혈귀를 꽁꽁 숨어 있던 인간 사회 속에 잠입시켜 인간들 사이에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고 균열을 불러일으켰다.
대량의 피를 섭취하게 됨과 동시에 많은 권속들을 획득한 노스페라드는 그렇게 인간들을 사냥하기 위한 피라미드 체계의 조직을 만들어냈다.
흡혈귀들의 왕. 뱀파이어 로드. 노스페라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이름으로 불렸던 시기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더라.
그만큼 흡혈귀들의 움직임이 더욱 은밀하고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너는 흡혈귀들과 싸워본 적이 있는 건가?”
세 번 정도. 그래봤자 잔챙이였지.
은현은 과거를 회상하고는 그리 기분이 좋았던 경험은 아니었던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노스페라드라는 흡혈귀의 왕은 만나보지 못한 건가?”
400년 전 쯤에…한번 싸웠던 적이 있어. 하지만 도망쳤지. 그때가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흡혈귀로 변이한 고대 마수, 노스페라드는 차근차근 권속들을 늘려나가기 막 시작하였을 때.
은현과 만나 한 차례 전투를 치렀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힘을 제대로 축적하기 전, 아직 약한 상태였던 노스페라드는 은현과의 전투에서 대패하였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다.
그 놈도 약했었지만, 나도 약했었으니까.
치명상을 입은 몸의 일부를 과감하게 잘라내고 안개화시켜 도망친 노스페라드를 떠올리며, 은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은현에게소 도망친 노스페라드가 다시는 은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흡혈귀의 기원은 이래.
“…그렇군.”
설명을 들은 리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린데발트령이라는 영지에, 그 흡혈귀의 왕이라는 놈이 있을까?”
…확신할 수 없겠는데.
항상 최악을 가정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며 움직이는 은현의 대답은 묘하게 자신이 없었다.
“그 흡혈귀의 왕은 강한가?”
강하긴 하지만 흡혈귀의 모습이라면 너도 상대해볼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이것도 400년 전의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말이니, 그다지 참고가 되지 않을지도. 하지만 본래의 거대 박쥐의 형태라면….
뜸을 들인 은현은 씁쓸했던 표정을 다시 굳히고 말을 이었다.
반드시 도망쳐.
◆ ◆ ◆
“이미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리오드는 허공의 노스페라드를 바라보며 짧게 중얼거렸다.
키아아악!
하늘 위에서 날갯짓을 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아래에 포효를 내뱉고 있는 고대 마수는 아래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몸을 얼어 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저, 저게….”
“저게 대체 무슨!”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경악했다.
살면서 조우했던 그 어떤 마수보다도 커다랗고 공포를 자아내는 그 외양에 다리가 벌벌 떠는 이들 또한 존재했으니.
“…무리야.”
한 기사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전신의 근육이 이완되기라도 한 듯,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은 기사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절망이다.
아르티아 기사단을 동경했고, 그 기사단의 기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였다.
목숨을 건 위험한 일 속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을 각오했던 기사들조차도 하늘 위에 떠있는 거대한 박쥐 마수와 자신들의 격차를 피부로 깨달았다.
기사들의 마음은 죽을 것을 각오하여 저항하자고 명령을 내려도, 그들의 몸은 이미 패배라도 정해진 듯 공포로 몸을 떨 뿐이었다.
“…좋지 않아.”
리오드는 순식간에 뒤바뀐 전황을 파악하며 표정을 굳혔다.
순조로웠던 흡혈귀의 소탕 작전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단 한 마리의 마수가 등장한 것으로 굳건했던 아군의 사기가 급격하게 꺾여나갔다.
우우웅
[여섯자릿수 상위 마법]
[볼텍스 허리케인]
이 상황 속에서 제일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사이먼이었다.
술식의 구성과 마력의 주입으로 전방에 전개된 마법의 진으로부터 튀어나온 돌풍의 소용돌이가 하늘로 날아올라 노스페라드의 몸을 덮쳤다.
대외적으로 일리아나보다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사이먼 또한 대륙에서 손꼽히는 10명의 고위 자릿수 마법사 중 한 사람이며 왕국의 최 중요 전력 중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노인 마법사가 발동시킨 상위 마법은 다른 상위 자릿수 마법사의 마법과는 달리 더욱 정밀한 컨트롤로 강한 위력을 선보일 수 있다.
보통의 일반적인 다른 마수들이었다면, 이 공격으로 피부는 물론 살점이 갈가리 찢겨나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 터이지만.
키아아아악!
날개를 휘저으며 돌풍의 소용돌이를 흩어버린 노스페라드는 찢겨나간 피부 위로 마수의 피를 뚝뚝 흘리며 마법이 발동되었던 사이먼 쪽을 노려보고 포효했다.
“후우….”
마법의 발동을 마친 사이먼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몸 속의 기운을 정갈하게 바꾸어나갔다.
기본적으로 마법사들은 마법을 연속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하나의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 이후에 사용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인터벌이 존재하며, 그것은 상위 자릿수, 고위 자릿수의 마법을 사용하게 된다면 인터벌의 시간은 더더욱 길어진다.
일리아나의 경우가 극도로 예외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마력의 양도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며, 반신의 권속으로 인정받아 고위 자릿수의 마법들을 이중창, 삼중창으로 펑펑 쓸 수 있게 된 그녀에게 인터벌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일리아나와 달리, 마법사로서 명확한 한계를 맞이하고 있는 사이먼은 자신의 숨을 고르며 허공의 노스페라드를 응시했다.
“…퇴각해야 합니다.”
“뭐라?”
심각한 목소리로 퇴각을 지시하려는 리오드를 보고, 사이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자신의 마법은 명확하게 노스페라드에게 데미지를 주었으며, 힘들지언정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아니었다.
직접 마법을 직격시켜본 결과, 사이먼이 느끼는 감상은 그러했다.
현재 각자가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이끌고 있는 이 작전의 공동 지휘관은 리오드와 사이먼.
사이먼은 리오드의 판단을 언제나 존중해줄 의향이 있었지만, 저 마수가 등장하자마자 퇴각을 하겠다는 리오드의 판단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해볼만 하지 않나?”
“물리적인 싸움이라면 충분히 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오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의 노스페라드를 응시하며 은현의 조언을 떠올렸다.
어째서지? 그 정도로 강하다는 건가?
노스페라드의 물리적인 힘 자체는 그렇게 낮지 않아. 하지만 더 성가신 건 그 마수가 가지고 있는 능력 쪽이지. 그 마수는…. 자신을 중심으로 전역에 치사성이 높은 질병을 퍼뜨리거든. 정말로 0.01%의 확률로 그 마수를 처치한다고 해도, 그 범위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어.
“쿨럭! 쿨럭!”
한 기사가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거세진 기침 속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이, 이봐! 갑자기 왜…!? 쿨럭!?”
한 명이 기침을 하며 고통을 호소하면서, 눈과 귀,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하고 마치 전염이라도 되는 듯 주위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똑같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쿠흡!?”
사이먼은 느닷없이 기도를 역류하고 목구멍 안쪽에서 토해낸 피가 자신의 옷에 튄 것을 보고 사고가 정지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