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421화 (404/730)

〈 421화 〉 421. 노스페라드(2)

* * *

질병, 또는 역병이 돌기 시작한 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사든 마법사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피를 토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그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노스페라드의 능력은 인간 신체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리고 그 몸속에 병원균을 퍼뜨려 몸의 내부 기관을 망가뜨린다.

공기를 타고 전염되는 그 역병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리오드는 은현이 본래의 고대 마수화를 한 노스페라드를 보게 된다면, 무조건 도망을 치라는 이유를 실감했다.

명확하게 물질적인 실체가 존재한다면, 검을 들어 그 실체를 찌르고 베어 넘기며 죽이는 것은 리오드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질병이라면.

기사들은 검으로 도대체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걸까.

­너로는 무리야.

은현은 단호하게 리오드에게 말했다.

­하지만 너라면 내가 이렇게 말해도 가겠지.

쓴웃음을 지으며 굳건하고 우직하면서도, 요령이 없어 미련한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리오드는 그런 남자다.

처음부터 은현은 그에게 포기를 권유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예전부터 항상 말했던 게 있지? 싸움에서 극도로 불리한 상황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억해?

­…그 불리한 상황을 최소한 대등하거나, 또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역전시키는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수단의 정석이라고 이야기했었지.

리오드는 이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 타개책을 찾는 것이 서툴렀다.

언제나 자신의 검술을 신용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것은 좋지만, 항상 선봉에 서서 직진으로 정면 돌파하는 기사 중의 기사를 커버하는 것은 은현과 팀원들이었다.

그렇기에 리오드는 이번에도 ‘너로는 무리야.’라는 친구의 무례한 조언을 듣고도 이후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자신의 친구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자신에게 돌파구를 제시해주는 길잡이였다.

­맞아. 그러니까 만약에 노스페라드와 조우하게 된다면, 최소한 네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상황 정도는 만들어 주도록 해볼게. 그 이후는 네 역할이야. 알지?

­알았다.

리오드는 언제나 길잡이의 역할을 자처해주었던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 ◆ ◆

키아아악!

하늘 위에서 바닥을 때리는 듯한 마수의 강렬한 굉음.

피부가 찌릿해질 정도로 강력한 위압감을 느낀 엘레노아는 본능적으로 구호소 창밖의 하늘을 응시했다.

거대한 박쥐 마수의 등장은 이미 은현에게서 들어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음을 의미한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돌풍이 불어 폐허가 되어버린 영지의 건물이 무너지고, 먼지 바람은 부상자들을 케어하고 있는 임시 구호소의 건물 안으로 들어와 부상자들을 덮쳤다.

“…진정해.”

엘레노아는 노스페라드의 포효소리를 들어 벌벌 떨리는 자신의 팔을 꽉 붙잡아 강제로 진정을 시켰다.

현재 자신은 이곳에서 부상자들의 케어를 전담하고 있는 사제들과 사제들을 호위하는 기사들을 지휘하는 지휘자다.

그런 자신이 혼란에 빠져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못한다면, 이 구호소는 마비가 되어버린다.

억지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높은 톤의 목소리로 사제들과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당황하지 마세요! 먼저 부상자들의 상태를 살피세요! 기사분들은 혹시 모를 흡혈귀의 습격에 더욱 경계를 강화하세요!”

방금의 노스페라드가 내지른 포효소리는 멀쩡한 엘레노아의 전신마저도 위축시킬 정도로 강렬한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저 위압감을 귀와 피부로 체감한 부상자들의 몸이 위축되면서 무슨 이상 사태가 벌어졌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아, 알겠습니다!”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기 위한 엘레노아의 지시에, 사제들과 기사들은 마음속의 동요를 최대한 억누르며 자신들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엘레노아님!”

“엘레노아님!”

이윽고 건물 안으로 들어와 급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두 여성의 목소리에 엘레노아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응시했다.

에이라와 차한성이 함께 들어오고, 이어서 에린이 들어와 엘레노아에게 다가왔다.

“에, 엘레노아님. 밖에 커다랗고 박쥐처럼 이상하게 생긴 마수가…!”

“에린. 나도 알아. 진정해.”

엘레노아는 잔뜩 동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린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에린은 은현에게서 저 마수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만약의 사태를 가정하여 큰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엘레노아에게만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

“…그 사람이 예견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어.”

“어? 현이가요?”

“…그분이요?”

에린은 은현이 현재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거대한 박쥐 마수의 존재를 예견했다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이라와 차한성 또한 비슷한 표정으로 동요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응.”

엘레노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짧게 대답하고는 등을 돌려 부상자들의 케어를 하고 있는 사제들에게 다가갔다.

“저는 전선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그런…! 위험합니다!”

당연히 호위가 붙겠지만, 연약한 여사제의 몸으로 거대한 마수가 날뛰고 있는 저 전장의 한복판에 뛰어들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에, 엘레노아님이 계시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이곳의 지휘를…!”

엘레노아는 이미 생각해둔 사람이 있었기에 곧장 그를 바라보았다.

“메르딘님.”

“…엘레노아.”

아르티아 기사단의 도움 요청에 응하여 편성된 아르미타스의 기사들을 통솔하는 역할로, 이곳에 파견된 메르딘은 엘레노아를 자신에게 무엇을 부탁하려는 것인지 깨닫고 인상을 찡그렸다.

“난 못해. 차라리 다른 사제님께….”

“아니요. 부탁드릴게요. 이 구호소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기사님들을 통솔해주실 분으로는 메르딘님 밖에 부탁드릴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나는….”

“저는…가야 해요. 그 사람이 저에게 맡긴 역할이 있거든요.”

은현이 부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전선으로 가고자 하는 엘레노아의 마음은 확고했다.

정말로 내키지 않았지만, 메르딘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렉스에게나 그 남자에게나 볼 낯이 없어.”

“괜찮아요. 저는 그 사람의 아내인 걸요.”

엘레노아는 미소지으며 자신했다.

“…그래.”

쓴웃음을 지으며 배웅하는 메르딘을 뒤로하고, 엘레노아는 다시 에린과 에이라, 차한성에게로 돌아왔다.

“에린. 나는 리오드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해. 나를 호위해줄 수 있겠어? 그리고…두 사람에게도 부탁해도 될까?”

에린에 이어, 에이라와 차한성에게 묻는 엘레노아의 질문에, 세 사람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 ◆ ◆

­저한테도 가능할까요?

­글쎄.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물어보는 엘레노아의 말에도 아니에스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베스타님이 직접 너를 지명하셨는데,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

베스타의 의도는 확실했다.

은현을 옆에서 도와 그가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충실히 보조하라는 뜻.

예전에는 그저 추측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계에 현현하게 된 베르단디에게서 직접 베스타의 의지를 확인까지 했다.

때문에 엘레노아는 은현의 아내로서, 아니에스의 뒤를 잇는 차기 성녀로서 자신의 사명을 확실하게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은 만큼, 엘레노아는 부담감도 가지고 있었다.

­뭘 그렇게 초조해하고 있는 거야. 넌 이미 그 녀석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잖아.

­공작 가문의 여식으로서는 그렇죠.

그가 의도하고 움직여줄 수 있도록 아버지와 오라버니, 자신까지 공작 가문의 일원 모두가 그를 돕고 있고, 대외적으로 나서서 그의 방패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래도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은현의 뒤를 받쳐주고 있을 뿐, 사제로서의 엘레노아는 은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일은 생기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런데도 엘레노아의 마음은 복잡했다.

­여신께선…저의 물음에 답해주셨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사제의 소양을 더 쌓고, 어떻게 하면 더욱 강한 신성력을 품을 수 있는지, 베스타 여신은 자신에게 길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베르단디는 하계에 신들이 간섭할 수 없는 제약이 있으므로, 지금의 현 상황이 베스타의 최선이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엘레노아를 위로했다.

­흥. 그게 어디 쉬운 줄 아냐? 세상에 모든 사제의 기도에도 여신은 말로 답해주지 않아. 오로지 신성력으로 답해줄 뿐이지.

­하지만 아니에스님은….

­그래. 나나 너는 조금 특별하니까.

막대한 신성의 축복을 받는 아니에스나 엘레노아는 현재 베스타 여신의 특혜를 받는 현 성녀와 차기 성녀다.

아니에스는 귀찮은 듯 표정을 보이면서도, 남편인 은현을 돕기 위해 자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는, 자신의 뒤를 이을 후배를 내버려 두지 못했다.

­기도해.

­네?

­기도하는 거야. 네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걸 베스타님께 말해봐. 네 그 기도에 베스타님이 답해주는 순간이….

아니에스는 살짝 말끝을 흐리고는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은퇴와 동시에 네가 성녀로 인정받는 순간이니까.

◆ ◆ ◆

“끄으으!”

“쿨럭! 쿨럭!”

입에서 대량의 피를 토하는 것도 모자라, 눈과 코, 귀에서 피가 흐르는 다수의 사람을 목격한 에린과 에이라, 차한성은 얼굴을 굳혔다.

“이건….”

많은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세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노스페라드가 흩뿌린 질병의 영역 안에 도착한 엘레노아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자신의 양손을 모았다.

양 무릎을 바닥에 꿇으며 기도를 시작한 엘레노아는 자신의 몸속에 존재하는 모든 신성력을 끌어모아 하나의 기도를 읊기 시작한다.

[나의 신앙으로, 나의 믿음으로, 나의 여신께 감히 간청드립니다.]

그것은 여신에게 직접 간청을 드릴 수 있는, 현 성녀에게만 허락된 유일한 권리.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으로부터, 당신을 믿고 섬기는 어린 양들을 지킬 수 있는 축복을.]

한 치의 사심도 없이, 경건하고 순수한 자신의 염원을 담아 기도를 읊어 나간다.

엘레노아의 몸에서 흘러나온 은색의 신성한 기운이 점점 부풀어 올라 엘레노아의 몸을 감싸며 동그란 구체를 형성했다.

은색으로 빛나는 동그란 구체 속에서, 엘레노아는 자신의 기도를 마무리 지었다.

[나의 여신께 간청합니다.]

[베스타의 축복]

[강신(??)]

[후후, 정말 당돌하기도 하지.]

기도를 마치자마자, 엘레노아의 머릿속에 울리는 하나의 상냥한 목소리는 순간 엘레노아의 몸을 움찔 떨게 할 정도로 급작스러웠다.

[‘정말로 저에게 도움을 주실 생각이라면, 제 아내에게 힘 좀 팍팍 밀어주시죠?’라고 나한테 강요를 해왔지 뭐니?]

여신에게 당돌하게 강요를 해오는 반신(半?)의 무례함에도, 여신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한번 힘내보렴?]

“아….”

단 한 번도 자신의 기도에 답을 주지 않았던 여신이 처음으로 자신의 기도에 답을 해주었다.

그것이 설령 은현의 개입과 조력 때문에 성립된 결과라 할지라도.

여신을 모시는 사제에게 여신이 답을 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스러운 일인지, 엘레노아는 기쁨에 몸을 떨었다.

이윽고 엘레노아가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은색의 구체 속에서 꿇고 있던 무릎을 일으켰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녀의 몸이 천천히 하늘 위로 떠 올랐다.

막대한 신성의 기운이 응집되어 등에 돋아나는 것은 새하얀 깃털이 가득한 한 쌍의 날개다.

“와아…. 천사 같다….”

옆에서 엘레노아를 호위하고 있던 에린이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순백의 깃털을 떨어뜨리며 하늘에 떠 있는 성녀의 모습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천사를 연상시키는 성스러움이 가득했다.

[엘레노아 강신(??)]

[치천사 세라핌]

엘레노아는 아니에스의 강신인 황금 사자와는 다른, 자신만의 염원을 담아 천사의 날개를 형상화시켰다.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순백의 깃털들이 질병으로 가득한 공기를 정화하고, 피를 토하고 고통을 호소하던 사람들의 몸을 데미지를 입기 전의 상태로 되돌렸다.

이윽고 자신의 질병들을 모조리 정화해 나가는 천사를 발견한 노스페라드가 자신의 천적을 발견하고 적개심을 불태웠다.

키아아아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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