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수는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 시간에 돌아온 김우영 부장에게 곁눈질을 한다. 마치 자신에게 할 말 없냐는 둥 일부러 돌아와는 자신의 노고를 알아달라는 것처럼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자리에 앉아 싱글벙글 웃고만 있다.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 황혼 빛으로 물들었던 사무실도 어느새 적적한 어둠이 깔린다. 강렬한 형광등 불빛 때문에 시간 감각이 마비되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안정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딴 짓 하던 김우영 부장이 다가오는 자신을 보곤 의문과 흥미가 섞인 얼굴로 바라본다.
“음? 안 사원 할 말 있나?”
“……흠. 오늘 저녁 한 끼 어떠신가요?”
순간적으로 김우영 부장의 눈에 빛이 스쳐지나간 것처럼 보인 건 자신의 착각일까? 김우영 부장은 자신이 이런 제안을 하길 기다렸다는 듯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김우영의 뒷모습을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보던 안정수는 외투를 챙겨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저녁 시간이 살짝 지난 음식점은 적당한 열기에 휩싸여있다. 술이 들어가 기분이 고조된 사람들의 웃음소리, 음식이 내뿜는 맛있는 향기와 열기는 하루의 피곤을 싹 날려주는 것 같다.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묘하게 붕 뜬 하나의 테이블이 있다.
“…….”
“흐음~술이 맛있네.”
안정수와 김우영이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곳. 흔하디흔한 광경이지만 어쩐지 둘 사이에 흐르는 기류 때문인지 다른 테이블들과는 주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쳐져 있는 느낌이다.
또한 그 둘의 태도도 묘하기 그지없다. 경계심이 서린 안정수와 그의 태도를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은 김우영의 모습이지만 묘하게 그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옆에서 다른 사람이 본다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도 경직되어 있다.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간다 싶으면 어느새 정적이 흐르고, 기울여져 가는 술잔과 지글지글 익고 있는 고기만을 의무적으로 입으로 가져가 우물우물 씹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정신없는 음식점 풍경 속에서도 시선을 모은다.
“……그나저나 안 사원이 먼저 저녁을 먹자고 하자니 무슨 일일까?”
술이 잔뜩 들어간 두 남자. 그 숨 막히는 저녁 자리에서 가장 먼저 패를 꺼내든 건 김우영이었다.
명백히 위에서 보는 시선과 태도.
운을 떼 줬으니 자기가 가진 패를 꺼내보라는 상급자의 시선에 안정수의 얼굴에 살짝 인상이 써졌지만 곧이어 짐짓 모른 척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흐음……아무래도 일이 힘들어서인지 스트레스가 상당히 쌓인 것 같습니다. 아내와의 사이도 그렇고…….”
짐짓 일상에 치이고, 가정에 치이는 것처럼 이야기를 조금씩 전개해 나간다. 빙 돌려 말하는 그의 말과 모습에선 마치 꺼내기 어려운 말을 꺼내며 부탁하는 입장을 연기한다.
‘순진하고 덜렁거리는 모습만을 보여줘야 하는데……늦었나?’
아직 품 속에 숨긴 이빨을 들이밀 때가 아닌데도 자꾸만 튀어나오려는 뜨거운 본심 때문에 표정 관리가 잘 안 된다. 김우영 부장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마치 더 해보라는 듯 그 역시 모른 채하며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허허~요새 일이 그렇지 뭐…….”
주거니 받거니.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간다. 단 한 가지 주제로 넘어가는 것이 어찌나 힘든지, 김우영 부장의 시치미 어린 모습도 한 몫 하지만 자꾸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본심 때문에 먼저 그 날의 약속을 언급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 없다. 테이블 아래로 꼭 쥔 주먹은 펴질 줄 모르며 쓰디쓴 술만 물처럼 들이부으며 결심을 굳힌다.
‘후우……한심한 놈아 언제까지 고민만 할 거냐.’
한 번 실패했다는 것 때문일까? 차갑게 식은 가슴에 억지로 불을 지피며 굳은 가슴을 억지로 두들겨 패 말을 꺼낸다.
“그래서 말인데……지난번에 있었던 하룻밤의 불장난을 또 할 수 있을까요?”
안정수는 사늘하게 식으려는 가슴을 억지로 두들겨 움직이게 하며 태도는 최대한 약자를 얼굴은 너무나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연기다.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소중한 자신을 향한, 가슴 속 작은 배덕감을 향한 연기를 쥐어짜낸다.
그리고 김우영 부장은 자신의 연기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듯,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모습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춘다. 술잔을 기울이던 그는 조용히 빈 술잔을 내려놓곤 자신에게 시선을 던진다.
“…….”
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며 두 남자는 서로의 마음을 읽으려는 듯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을 훔쳐본다. 두 남자는 얼마나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최초의 변화는 김우영 쪽에서 먼저 흘러나왔다.
‘……?!’
안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언제나 봐오던 김우영이란 남자의 얼굴에는 처음 보는 가면이 떠올라 있었다. 껄렁껄렁하던 태도도, 능글맞으면서 비릿한 미소도, 여직원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혐오어린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넘기는 사람 좋은 얼굴도 아니었다.
그저 김우영 부장의 입은 길고 긴 초승달 같은 호를 그렸다.
조용한 미소.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그의 진정한 미소를 엿본 것 같다. 사람의 웃는 얼굴이란 건 이렇게 소름끼치는 것이었던가? 음식점의 시끌벅적하고 뜨거운 열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정적어린 그 작은 미소를 보자 안정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으려는 걸 겨우 참아냈다.
“……좋지. 응. 그럼 시간과 장소는 그때처럼 따로 알려주도록 하겠네. 언제가 좋을까……그래 가능하면 이번 주 금요일이 좋겠군……다음날이 주말이니 좋지 않겠는가?”
“……그러도록 하죠.”
“그럼 오늘은 이만 일어나기로 할까?”
그 말을 끝으로 김우영 부장은 냉큼 일어서서 저녁 값을 계산하곤 먼저 자리를 떠버렸다. 안정수는 다시금 타들어가는 속을 달래려는 듯 남아 있는 술을 자신의 술잔에 털어 넣곤 단번에 들이키곤 자리에서 일어선다.
“…….”
술 취한 사람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밤의 거리. 음식점에서 나온 안정수는 기분 좋게 취해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 행복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가는 김우영 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금 전 보았던 그의 미소를 몇 번이고 되새겨 본다.
결국 주사위는 던져졌다.
시간이라는 것은 각각 상대적으로 느낀다. 어떤 이는 굉장히 빠르게, 어떤 이는 굉장히 느리게.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괴로운 시간은 느리게. 그렇기에 약속한 날까지의 시간은 각 3명에게 있어 서로 다르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느끼고 있던 시간은 착실히 흘러 약속한 날이 되었다.
금요일.
다음날 출근하는 사람들도, 주말을 잊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도, 오히려 주말이기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은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려는 듯 길거리는 활기로 넘치고 있다.
부드러운 황혼 빛이 조금씩 사라져가며 스멀스멀 어두운 밤의 장막이 하늘에 드리우기 시작하는 아직 이른 시각. 활기찬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속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정장 차림의 두 직장인 남녀도 길거리를 거닐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능글맞은 미소가 입가에 드리운 중년 남성은 사람들이 넘치는 길거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뒤 따라오고 있는 여성을 힐끔 곁눈질한다.
‘드디어 오늘이군.’
능글맞은 미소가 특징인 김우영은 오늘 밤을 생각하면 밤잠까지 설칠 정도였다.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그녀는 시원시원한 걸음걸이에서 자신감이 절로 뿜어져 나오는 커리어우먼이며,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이자 유부녀인 정나은이다.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사나운 눈매가 그녀의 자존심 강한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정갈하게 틀어 올린 머리하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깔끔한 옷맵시를 자랑하는 검은색 정장은 그녀의 사회생활 됨됨이를 상상케 한다.
검은 정장에 이어 검은 스타킹에 검은 하이힐까지 신어서인지, 상의 마이 안으로 보이는 티 하나 없는 순백의 하얀 와이셔츠가 유독 시선을 모은다. 그 외에도 붉은 립스틱으로 칠해진 두툼한 입술에는 오랜만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 있다.
‘이제 일주일 정도만 참으면 돼.’
정나은은 흘러내린 반무테 안경을 손으로 추켜올리며, 자신의 앞을 걸어가고 있는 남자와의 내기를 떠올린다.
오기와 치기 어린 자존심으로 시작된 한 달간의 내기.
1, 2째 주가 너무나 힘들었던 것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난 주말 사랑하는 남편과 기분 전환으로 외출을 다녀온 것 때문이었을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몰려있던 그녀는 일주일 새에 몰라보게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아마도 이번 주를 편하게 보냈기 때문이겠지.’
자신을 함락시키기 위해 하루, 하루가 아쉬울 그는 이상하리만치 이번 주는 자신을 불러내지 않았다. 그 덕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그녀로써는 그동안 빛을 잃어가던 여성으로써의 매력을 다시금 활짝 피워내고 있다.
아니, 김우영과의 잦은 잠자리 탓이었을까? 여성으로써 아직 풋풋함이 남아있던 그녀는 이젠 농익은 색기까지 한층 진해져 뭇 남성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짙은 분위기까지 두르고 있다.
그렇게 여성으로써의 매력이 물씬 풍겨져 오는 정나은의 입가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라 있다가 무언가를 불안해하는 것처럼 일자를 그리며 굳어진다.
‘오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불러낸 거지?’
속셈이야 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저녁 무렵이 다되어서야 자신을 불러냈다. 이번 주 내내 조용했던 것도 그녀를 묘한 의심과 불안을 샘솟게 하는데 충분한 변화다.
마치 폭풍 전의 고요처럼 조용하고 순탄했던 세 번째 주.
묘한 불안감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지만 이제 내기도 일주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절로 힘이 솟는다.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1, 2주에 터무니없이 시달려 한계에 다다랐던 정나은은 짧지만 소중한 휴식을 통해 본래 컨디션을 되찾았다. 무너져가던 그녀는 지금에 이르러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양되어 마치 김우영과의 내기를 하기 전 도도하고, 콧대 높았던 정나은을 떠올리게 한다.
“…….”
다시금 높은 절벽 위의 꽃처럼 정복할 욕구가 샘솟게 하는 정나은의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보던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함께 어둑어둑해지는 스산한 바람이 부는 밤거리로 모습을 감췄다.
시가지에 살짝 벗어난 곳에 자리 잡은 전경과 시설 좋은 호텔은 상당히 많다. 적당한 자연과 적당한 도시의 야경이 조화를 이룬 이곳은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 정나은이 창문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이 호텔 방도 그런 분류인지, 적당히 우거진 자연과 인공적인 도시의 야경이 적절히 배합되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어째서 이런 곳으로 온 거지?’
시가지에서 살짝 벗어났다곤 해도 시설도 상당하고 내려다보이는 전경마저 아름다운 이런 호텔은 구태여 한 번의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찾아오기에는 상당히 비싼 값임에 틀림없다.
명백하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김우영의 행동에 정나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의중을 짐작해 보지만 딱 이렇다 할 정답이 나오지 않아 가슴 속 작게 피어났던 불안감과 의심은 더욱 그 몸집을 불리고 있다.
‘상관없으려나?’
힘겨운 1, 2주를 보낸 그녀는 그 시간보다 더 힘든 건 없을 거라 여기고 있다. 지난번처럼 화장실이나 집 같은 장소에서 조마조마한 상태로 관계를 갖는 것보단 단연 이 편이 좋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최고조인 그녀로써는 가슴 속에 피어난 불안이나 의심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평소의 그녀라면, 아니 지칠 때로 지쳤던 그 때의 그녀만 하더라도 한 번 피어난 의심과 불안을 계속 쥐고 그의 의중을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냈을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간의 휴식은 그녀에게 본래의 좋은 상태를 만들어 주었고, 잃어가던 자존심과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이제 내기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겹쳐지면서 이런 상황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긴장의 끈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사랑하는 남편이 올 리도 없는 떨어진 시가지. 이젠 익숙해져 버린 김우영과의 육체적 관계. 여러 가지 요인이 절묘하게 맞물리며 경계가 옅어지고, 긴장의 끈이 풀려버렸다. 그저 오늘밤도 똑같이 그의 상대를 해주고 돌아가면 된다고…….
“일단 함께 목욕부터 할까?”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하자는 대로 몸을 편히 맡겼다. 김우영과의 목욕도, 그의 절묘한 마사지로 인해 노곤해지는 자신의 육체도, 아름다운 절경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달달한 와인도…….
정나은은 전부 그저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슬슬 놀아보자고.”
김우영은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정나은을 침대에 눕혀 더욱 긴장을 풀게끔 마사지와 절묘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적당히 오른 취기, 싸구려 여관이 아닌 좋은 시설과 아름다운 전경이 주는 묘한 분위기. 정나은은 이런 것에 약하다는 걸 김우영은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암고양이는 여자로써 처음 만족했을 때를 기억하려나?’
김우영은 그녀와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그녀를 관찰했고, 여자로써 처음으로 만족해버렸던 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억지로 쾌락을 때려 넣어도, 반쯤 자발적으로 가랑이를 벌리게 해도 그녀는 결코 여자로써 만족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국 만족하기 시작한 때가 있었으니, 바로 처음 엉덩이를 뚫었을 때였다. 다른 쪽 처녀를 가져갔기에 그녀가 마음의 문을 열고 만족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만족한 그 때는 김우영이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그녀를 배려하며 간지러운 곳을 살살 긁어주듯 조심스럽게 안았을 때였다.
강압적이었던 예전과의 관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녀의 반응. 오히려 엉덩이 쪽으로의 관계는 여자로썬 쾌락을 느끼기 힘들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만족하기 힘듦에도 그녀는 만족한 이유를 김우영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현관문에서의 진득한 키스로 시작한 단 한 번의 조심스러운 관계에서도 그녀는 만족했다. 안정수가 마련한 무대, 즉 얼마 전 요요한 달빛 아래 분위기 좋은 베란다에서의 관계도, 안방에서의 정사에서도 그녀는 결국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주는 일부러 푹 쉬게 해줬지. 짧은 휴가는 즐거우셨나?’
김우영은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마사지하며 그녀의 긴장의 끈을 더욱 가늘어지게 한다. 때때로 진한 키스를 나누고, 달콤한 와인을 자신의 입에서 그녀의 입으로 넘겨주는 등 분위기에, 술에, 열기에, 몸에서 피어나는 작은 쾌락에 취하게 한다.
“으음…….”
점점 몽롱하게 풀려가는 정나은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는 그 반짝임이 살짝 줄어들었다. 김우영은 첫 번째 주 그녀의 몸을 끊임없이 괴롭힌 건 그녀의 약한 부분, 잘 느끼는 부분, 피곤이 잘 쌓이는 부분 등을 철저하게 외워 놨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만족스럽다. 마사지를 하며 피곤이 쌓인 부분을 풀어주고, 잘 느끼는 부분이나 약한 부분을 절묘한 손놀림으로 계속해서 자극하자 차근차근 기분 좋게 몸이 달아오르는 정나은은 자신이 조금씩 달콤한 비음을 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눈치다.
“만족스러운가봐? 이제 나도 좀 즐겨보자고?”
“…….”
침대 위에 노곤하게 풀린 유부녀의 여체는 적절한 열기를 담고 있어, 흐트러지게 핀 요염한 꽃의 자태는 달콤한 체취를 양껏 피워내며 수컷을 유혹하는 금단의 과실처럼 달콤한 과즙을 잔뜩 머금고 있다.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는 흑단 같은 머리카락은 흰 시트 위에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고, 살짝 풀린 흑요석 같은 눈동자는 허공을 헤맨다. 복숭아 빛으로 물든 양 뺨은 새색시처럼 귀여움을 뿜어내고, 화장을 지워 뺨처럼 연분홍빛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은 열기가 담긴 숨결을 조금씩 토해낸다.
가느다란 목선과 전체적으로 기분 좋은 열기를 머금은 뽀얀 살결은 그 열기를 배출하듯 땀방울이 한, 두 방울 맺혀있어 그녀의 체취를 더욱 농밀하게 해준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탐스러운 가슴은 부드러움을 증명하듯 가슴이 오르내릴 때마다 작은 출렁임을 간직하고 있고, 부드러운 가슴 능선 위에 작게 핀 꽃은 달아오른 그녀의 기분을 증명하듯 조금씩 솟아오르고 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만큼 매끄러운 복부라인과 여성임을 증명하는 잘 발달된 골반과 정면으로 누워있어 아쉽게도 보이지 않지만 탄력적인 엉덩이는 새하얀 시트 속에 파묻혀있다. 걸어 다니는 일이 많은 만큼 육덕지지만 건강미가 돋보이는 양 허벅지와 가랑이 사이의 계곡은 묘한 열기를 내뿜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매끄럽게 뻗은 다리라인과 깨끗하고 앙증맞은 발은 꼼지락거리며 기분 좋게 풀려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김우영은 그런 정나은의 몸을 끈적한 눈으로 감상한 뒤 그녀의 얼굴에 커다란 안대를 씌운다. 몽롱한 정나은의 눈빛에 살짝 빛이 돌아오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기분 좋은 열기에 취한 것처럼 그저 저항도 않고 받아들였다. 그녀의 양 팔목을 머리 위로 올린 뒤 장난감 수갑으로 침대에 구속하는 것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역시 별다른 저항감은 없군.’
두 번째 주 공중 화장실이나 남편이 있는 회사 화장실에서의 일을 떠올리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도 자연스럽게 그저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김우영은 그녀에게 이정도 일은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받아들이게끔 하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재미있는 장치를 더 해볼까?”
김우영은 그녀가 벗어둔 검은 스타킹 한 짝을 가져와 그녀의 한 쪽다리에 쓱 씌운다.
“……?”
앞이 보이지 않고, 손이 구속된 정나은은 갑작스레 자신의 다리에 스타킹이 신겨지자 의아해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냥 기분 좋은 열기에 푹 퍼진다. 김우영은 의아해하는 정나은의 모습을 아랑곳 않고, 스타킹 밴드부분 바로 아래를 의도적으로 찢는다.
“……뭘.”
정나은의 입에선 뭘 하는 거냐는 의문이 새어나왔지만 자신의 입만 아플 뿐이라고 결론짓곤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으며 기분 좋은 열기 때문에 갈증어린 입술에 수분을 보충해준다. 김우영은 검은 스타킹의 밴드 바로 아랫부분을 쭉쭉 찢곤 만족스런 얼굴을 한다.
‘이걸로 ‘끼워 넣을 곳’은 다 됐고.’
김우영은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그녀의 왼쪽 손에 손을 뻗는다. 푹 퍼진 몸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이 힘없이 처져있는 걸 놓치지 않고 김우영은 재빨리 그녀의 왼손 약지의 끼워져 있던 심플한 디자인의 은색 결혼반지를 빼앗아 버렸다.
“……응?! 자, 잠깐! 뭐 하는?!”
기분 좋은 열기에 휩싸여 있던 그녀는 한 박자 늦게 화들짝 놀라며, 빼앗긴 반지를 되찾기 위해 손을 뻗어보지만 침대에 고정된 차가운 장난감 수갑의 소리만이 허무하게 들려오며 그녀의 손을 구속한다. 이 와중에도 끊어지지 않은 장난감 수갑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던 김우영은 특유의 능글맞은 말투로 그녀를 안심시킨다.
“자자, 누가 뺏어간대? 꼭 돌려줄 테니 걱정 말라고. 옆에 두지.”
김우영은 마치 들으라는 듯이 빼앗은 결혼반지를 침대 곁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소리를 낸다. 정나은은 반지가 놓이는 듯 탁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녀의 몸에선 항의 어린 분위기가 풍겨져 나온다. 김우영은 그녀의 항의를 무시하고, 테이블 위에 두는 척 한 빼앗은 그녀의 결혼반지를 ‘준비해둔 물건’과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 잘 놔둔다.
‘자 이제 다시금 날 선 암고양이의 기분을 풀어줄까?’
김우영은 다시금 날 선 그녀의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며 그녀를 애무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그가 준비한 것은 끝이다.
첫 번째 주를 이용해 그녀의 몸을 양껏 탐닉하며 철저하게 조사했고.
두 번째 주를 이용해 그녀는 이런 취급이 아무렇지도 않게끔 의식을 바꿔 놨다.
세 번째 주를 이용해 그녀의 팽팽하게 당겨진 의심과 경계의 끈을 느슨하게 했다.
그리고 오늘.
이제 마지막 퍼즐 조각만이 남았다. 김우영은 그 마지막 퍼즐 조각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그녀의 몸을 탐닉하며, 그녀를 더욱 깊고 깊숙한 쾌락의 늪으로 조금씩 끌어내린다.
그녀가 마지막 퍼즐 조각의 존재를 끝까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안정수는 인생을 살아가며 이렇게 초조하게 지낸 적이 있을까?
일주일이란 시간이 그렇게 피 말리는 줄 몰랐다. 현관문 앞에서 김우영 부장과 아내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헐떡이는 걸 본 이후보다 더욱 힘든 한 주였다. 안 그래도 심란한 상황에서 피 말리게 하는 당사자인 아내가 의외로 집에 일찍 들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안정수는 눈치껏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지쳤다.
‘결국 아내의 의도는 못 알아챘지만…….’
굉장히 지쳐보였던 아내는 시간 나는 대로 휴식을 취하고,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서인지 오히려 점점 활기차졌다.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외출이 잦고, 늦은 귀가가 당연해야 할 터인데 자신이 눈치 챈 걸 알기라도 하듯 마치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때맞춰 자신과 시간을 보내고 귀가가 빨라지니 오히려 안정수는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한 시간 전쯤 스마트 폰으로 온 김우영 부장의 문자에 안정수는 시가지에서 살짝 벗어난 호텔 앞에 당도해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전화 해볼까?’
안정수의 초조함 마음이 드러나기라도 한 듯 그의 손은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가 집어넣기를 반복하며, 아내의 연락처에 연락을 걸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고생이다. 만약 지금 전화를 걸어서 아내가 받는다면 그녀는 이곳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연결이 안 된다면?
“후우…….”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동시에 이 호텔 안에 아내가 있을 거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것도 사실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담배를 피우느라 가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자위하며 담배를 태우고, 또 태운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이 피를 돌게 하고, 그 어느 때보다 피로에 지친 그의 몸에 아드레날린을 돌게 해 억지로 두들겨 깨우고 그의 몸을 움직이게 시킨다. 쾌쾌한 담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머릿속에 펼쳐지는 아내의 관능적인 모습 때문일까?
안정수는 바짝바짝 마르는 입안 때문에 강한 갈증을 느끼며, 지친 몸과는 달리 그 어느 때보다 피가 쏠려 껄떡이려고 하는 하반신을 외면하고 천천히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안정수는 하룻밤을 불태우기 위해 찾는 모텔과는 달리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의 복도를 거닌다. 다행스럽게도 주위에 유명한 관광지는 없는 모양인지, 가족단위로 여행 온 이들은 보이지 않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하룻밤을 불태우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모양인지 묘하게 달콤함이 느껴지는 공기가 안정수를 반긴다.
“…….”
문자로 온 호텔 방에 다가갈수록 갈증은 더욱 심해지고, 귓가에 울리는 시끄러운 자신의 고동소리는 짜증이 날 정도다. 자신이 바람 피웠을 때 모텔 복도를 거닐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이 안정수를 짓누른다. 자꾸만 자신의 의지를 배반하고 돌아가려는 다리를 억지로 놀려 문자에 쓰인 호텔 방 앞에 도달했다.
“후우우~”
깊게 숨을 들이쉬고 안정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 목울대를 크게 울리며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연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안정수의 시야에 호텔 방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남성용 구두와 검은 하이힐이었다.
“……꿀꺽.”
안정수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 방 안으로 들어선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곤 그는 못 박힌 듯 검은 하이힐을 내려다본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그 검은 하이힐은 신는 사람의 깔끔한 성격을 나타내듯 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다.
숨이 가빠지려는 걸 참곤 자신도 신발을 벗고 발소리를 죽이며 방 안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뗀다. 모텔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고, 탁 트인 창문 너머로는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안정수에겐 그런 좋은 시설을 감상할 여유 따위는 티끌만큼도 남아있지 않다.
방 안쪽으로 들어서자 이 방의 주된 가구인 커다란 침대 위로 모든 신경이 단숨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느낀 건 얼굴에 닿는 묘한 열기였다. 그 열기 속에 담긴 은은한 체취에 이끌리듯 안정수의 시선은 침대 위로 향했고, 가장 먼저 본 것은 나른하게 풀린 여인의 두 다리였다. 하지만 특이하게 한쪽 다리에만 잔뜩 찢어진 검은 스타킹이 신겨져 있었다.
“…….”
잘빠진 다리 라인을 타고 올라간 곳에는 옅은 열기를 머금은 여인의 알몸이 은은한 조명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매력적인 매끄러운 복부 라인은 둘째 치고 탐스럽게 부풀어 있어야 할 가슴은 터무니없는 것에 짓눌려 있었다.
바로 김우영 부장이었다.
그는 여성의 위에 앉아 다리를 넓게 벌리고 자신의 가랑이 안으로 두 손을 내려 무언가를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자신이 선 위치에선 김우영 부장의 큰 몸 때문에 가랑이 사이에서 오가는 무언가가 절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읍, 흐웁.”
김우영 부장의 가랑이 사이에선 무언가를 입 안 가득 머금은 것처럼 억눌린 여성의 신음이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안정수는 보이진 않지만 단번에 알아차렸다. 지금 그의 아래 깔린 여성의 입속에는 김우영 부장의 욕망의 결정체가 입 안 가득 쑤셔 넣어져 있다는 걸.
“…….”
안정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발자국도 못 움직인 채 점점 거칠어지려는 숨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김우영 부장은 자신의 양 손을 열심히 흔들며 쾌락을 탐하는 데 열중이라 자신이 들어온 것도 모르는 눈치다.
“웁, 하웁! 으으읍…….”
김우영 부장의 가랑이 사이에선 질척거리는 소리가 한층 짙어질 무렵 김우영 부장은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조용히 뒤를 돌아봤다. 못 박힌 듯 서 있던 안정수와 욕망으로 물든 김우영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김우영 부장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뒤 다시금 고개를 돌려 더욱 거칠게 자신의 양 손에 붙들린 여성의 머리를 앞뒤로 흔든다.
“크웁!”
놀란 여성의 억눌린 목소리가 그의 가랑이 사이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한층 거칠고 질척한 소리가 마치 안정수에게 들려주듯 흘러나온다. 이젠 허리까지 써가며 거칠게 쾌락을 탐하는 김우영의 행동에 침대는 미미한 출렁임을 보인다. 안정수는 그 장면을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고 정신없이 바라본다.
하지만 한 장면이라도 더욱 자세히 보고 싶은 안정수를 놀리듯 김우영은 자신의 몸을 이용해 여성의 얼굴을 더욱 가랑이 사이로 파묻으며 보여주지 않는다. 김우영 부장 아래 깔려 얼굴도 모르는 그 여인도 김우영 부장의 행동이 괴로운지 나른하게 풀렸던 몸이 살짝 버둥거려보지만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남성의 무게 때문인지, 그것마저 개의치 않다.
“웁! 크훕, 하음, 후우웁?!”
김우영 부장의 가랑이 사이에선 억눌린 목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더니 김우영 부장의 거친 행동이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춤과 동시에 그녀의 목소리도 더 이상 새어나오질 않는다. 다만 나른하게 풀렸던 여성의 아름다운 몸은 살짝 경련하듯 움찔거린 것이 당황한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김우영 부장은 여성의 머리를 더욱 가랑이 사이로 강하게 파묻으며, 마치 자신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허리를 과장되게 움찔댄다. 그렇게 김우영 부장의 허리가 움찔거림에 따라 그의 가랑이 사이에 파묻힌 여성은 무언가를 꿀꺽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아, 아아…….’
안정수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조금 전 마주쳤던 욕망으로 물든 김우영 부장의 시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금 그의 아래 깔린 여성의 입 안으로 하얗고 끈적한 그의 욕망이 그녀에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반쯤 넋이 나가려는 안정수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누구냐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 동시에 자신의 바지 앞섬이 터질 듯이 부푼 것 때문에 짜증이 마구 솟구침과 동시에 타오르는 갈증과 두근거리는 심장은 이젠 자신이 제어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자리에 뿌리내린 듯 움직이지 않던 그의 다리에 조금씩 힘이 돌아온다. 힘겹게 발걸음을 떼려는 안정수였지만, 자신이 못 박힌 듯 서있던 시간이 더욱 길었던 탓일까? 김우영 부장이 욕구를 해소하고 여성의 몸 위에서 일어서는 게 먼저였다.
“……콜록!”
지금까지 억눌렸던 숨이 단번에 터져 나오듯 여성의 콜록거림과 동시에 그녀의 머리는 김우영 부장의 가랑이 사이에서 자유로워진다. 김우영 부장이 그녀의 위에서 일어섬에 따라 그의 다리 사이로 엿보여지는 여성의 얼굴.
안정수는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지며 지저분한 김우영의 다리사이로 핏대라도 설 것 같은 눈으로 여성의 얼굴을 노려본다.
“……아.”
하지만 안정수의 입에선 실망어린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연분홍빛 두툼한 입술 위로는 커다란 검은 안대가 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의 양 팔은 머리 위쪽으로 모여져 침대 맡에 수갑으로 묶여있었다. 마치 자신이 김수진이란 여인을 안았을 때와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입에 재갈은 안 물려져 있네?’
김우영 부장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터벅터벅 자신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안정수는 그녀의 입에 재갈이 물리지 않았단 사실에 아내의 이름이 목구멍 아래까지 올라와 제멋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걸 깨닫곤 황급히 입을 다문다.
“잠시 재미 좀 보고 있었네. 이쪽으로…….”
김우영 부장이 최대한 목소리를 죽인 채 실망감에 휩싸인 안정수를 데리고 호텔 방 구석으로 데리고 간다. 능글맞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 김우영은 안정수가 듣건 말건 이야기를 시작한다.
“조건은 지난번과 같네. 목소리를 내지 말고, 말도 걸으면 안 되는 걸 알 테고……콘돔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지난번과 다르게 한 가지 재미있는 걸 하려고 하네.”
안정수는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걸 느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다 쓴 콘돔은 그녀의 스타킹 밴드에 끼워 놓게나. 몇 번 했는지 알 수 있게끔. 이번엔 지난번과 다르게 번갈아가면서 하도록 하지. 재미있지 않겠나?”
안정수는 그의 말에서 숨겨진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지금 침대 위의 여성을 마치 물건처럼 취급하자는 소리다. 서로 모른 채로 하룻밤의 불장난을 하는 것과는 취지가 먼 그의 제안에 안정수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저 침대 위의 여인은……이야기가 끝났단 소린가?’
저 여인이 아내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지난번처럼 한사람이 계속해서 여자를 안은 뒤 후에 다른 사람이 여자를 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여자가 눈치 챌 수밖에 없는 그런 말에 의아함이 샘솟는다.
‘의아하겠지. 하지만 이건 몰랐을 걸?’
김우영과 정나은이 이 호텔 방에 들어온 지는 벌써 2시간이 훌쩍 넘었다. 안정수가 도착하는 시간을 일부러 늦춘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김우영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그녀의 몸을 푹 퍼지게 하고, 나른함에 취하게 했다.
달달한 와인도 한 몫 단단히 했다. 달달하기에 끊임없이 들어가는 와인. 동시에 그녀의 몸을 애무하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입에서 입으로 와인을 넘겨줬기에 그녀는 자신이 취하는 것도 모른 채 꼴딱꼴딱 다 받아먹었다. 알맞게 달아오른 열기 때문에 갈증이 심해진 그녀는 그가 넘겨주는 와인이 갈증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을 달아오르게만 했지 끌끌끌.’
첫 번째 주에 그녀를 괴롭혔던 것처럼 김우영은 계속 그녀를 달아오르게만 했기에 이젠 쾌락을 만족시켜주는 일만 남았다. 그녀는 뜨거운 물속에서 함께 목욕하며 마사지를 받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나른함에 취하고, 쾌락에 잔뜩 취해 그녀는 지금 비몽사몽이다. 달아오른 몸을 달래주면 달래줄수록 그녀는 더욱 체력을 소모할 것이고 누군지도 모른 채 그저 쾌락에 취해 행복에 겨워할 것이다.
그것이 남편의 품이건, 자신의 품이건…….
김우영은 사악한 뱀처럼 안정수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속삭인다.
“예전과 같이 이 여인 역시 양 쪽 다 가능하다네.”
김우영의 말에 안정수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쩍하고 굳으며 기름칠 안 된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목을 돌려 자신과 침대 위를 번갈아 바라본다.
‘야, 양 쪽 다라니?’
안정수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만약 저 여인이 아내라면……정말 아내라면…….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아내는 자신에게도 절대 엉덩이를 내준 적이 없다. 아니 용납 안 할 것이다. 그런 아내가 양 쪽 다라고? 저 여인은 아내가 아니란 말인가?
안정수는 혼란스러움에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걸 느끼며, 숨이 거칠어진다. 이건 흥분일까? 아님 분노? 모르겠다. 저 침대 위의 여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욕정은 안정수의 이성을 끊어버리기엔 충분했다.
‘확인해주겠어.’
피가 쏠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 때문에 이성이 제 역할을 못한다. 그렇기에 온 몸을 휩쓸고 다니는 욕망과 가슴 속에 피어난 배덕감을 더 이상 짓누르지 않고 만개시킨다. 아내의 의도를 알아본 다는 본래 목적이 단번에 날아가는 걸 느꼈지만 이 괴로운 욕망을 토해내지 않고는 아무런 생각을 못할 것 같다.
거친 분위기가 샘솟는 안정수에게 김우영은 씩 웃으며 콘돔을 건넨다.
“한 번씩 명심하게.”
“…….”
그의 손에서 콘돔을 낚아채듯 받은 안정수는 옷을 뜯어내듯 벗어버린다. 정말 아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미하게 남은 이성이 그의 머릿속에서 그에게 필사적으로 외쳐 콘돔을 하게 하는 것을 끝으로 이성은 사라져버렸다.
마치 한 마리의 짐승처럼 거침없이 침대로 올라선 안정수는 침대 위의 여인의 양 다리를 잡곤 크게 벌린다. 자신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몽롱함에 취한 그녀는 큰 반응이 없다. 안정수는 눈앞에 펼쳐진 여인의 자태에 더욱 타들어가는 열기에 휩싸인다.
“……꿀꺽.”
마른침을 꿀꺽 삼켜 타들어가는 갈증을 줄여보지만 바닷물을 마신 것 마냥 갈증은 더욱 심해진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건강미 넘치는 다리의 감촉. 적당한 열기를 머금은 여체는 안정수의 욕정을 더욱 부채질한다. 안정수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밀착하며 허리를 천천히 내린다. 무언가 잘 안 들어가는 듯 잠시 멈춘 안정수는 여인의 다리를 더욱 안쪽으로 밀어 둥그렇게 만들자 여인의 허리가 침대에서 살짝 떠오른다.
그리곤 단번에 허리를 내려찍는다.
“……흣?!”
나른한 숨결만 토해내던 여인의 입에선 깜짝 놀라 숨이 턱 막히는 소릴 낸다. 나른함만이 느껴지던 여인의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몸을 꿰뚫은 그 감각에 숨이 막히는 지 끊어지는 숨을 힘겹게 토해낸다.
“아, 흐으……후으음…….”
여인이 그렇게 놀란 이유는 갑작스런 삽입도 주된 이유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엉덩이 쪽을 단번에 꿰뚫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안정수는 고통인지, 희열인지 모를 감정으로 후들후들 떠는 여인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약간 힘들었지만 들어갔어.’
안정수는 그녀의 몸이 주는 쾌락보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보다 약간 힘들었지만 자신의 욕망을 그녀가 뿌리까지 집어삼킨 것이 분한 모습이다. 안정수의 눈동자는 하염없이 흔들리며 자신 아래 깔린 여인을 관찰한다.
자신이 바람피울 때 안았던 육감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던 김수진이라는 여인과는 정반대의 여인. 마치 자신의 아내처럼 자기관리가 철저하지 않는 한 이렇게 매끄러운 몸매 라인을 자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걸 알 수 있다.
‘그렇다고 20대 정도의 어린 여인도 아닌 것 같으니.’
비록 얼굴은 안대에 가려 볼 수 없지만, 은연중에 풍겨져오는 성숙함과 농익은 여인의 매력은 절대 20대의 여인에게서 볼 수 있는 자태가 아니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가 풍기는 페로몬 같은 체취도 안정수의 가슴을 쉴 세 없이 두들긴다.
“…….”
살짝 벌어져 드문드문 숨결을 토해내는 연분홍빛 번들거리는 입술을 보자 방금 전까지 저 입속에 김우영 부장의 하얀 욕망이 잔뜩 쏟아져 들어간 걸 생각하자 안정수는 생각이란 걸 그만뒀다. 허리를 한계까지 들어 올려 마치 잘못한 아이를 벌주는 것처럼 강하게 허리를 내려찍는다.
“하읏!”
힘이 잔뜩 들어간 자신의 다리와 여인의 탄력적인 엉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둔기처럼 강렬하게 울려 퍼진다. 살짝 벌어져 있던 여인의 입은 찢어질 듯 벌어지며 그녀가 느낀 쾌락을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수컷에게 전해주듯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것이 아닌 쾌락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표정.
‘……제길.’
안정수는 검은 안대 너머를 뚫어버릴 듯 내려다보며 다시금 허리를 내려친다. 파르르 떨리는 다리의 반응은 그에게 자신이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고, 출렁이는 탐스런 가슴은 수컷이 더욱 힘을 낼 수 있도록 그에게 눈요기를 시켜준다.
그리고 결국엔 검은 안대가 씌워진 여인의 얼굴에는 침대 위에서 수없이 보았던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겹쳐져 보이기 시작했다.
“웁! 후웁! 으음…….”
안정수가 흡사 초식동물을 덮치는 육식동물처럼 재빠르게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포개며 키스를 나눈다. 그가 잡고 있던 여인의 두 다리는 자신의 몸으로 짓뭉개듯 자신의 양 팔 안쪽에 가둔 뒤 힘을 줘 그녀의 몸을 더욱 둥그렇게 말아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둔다. 동시에 뒤를 생각하지 않는 듯한, 여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듯 마치 동물의 교미를 연상케 하는 기세로 강렬하게 허리를 연신 내려찍는다.
침대 위의 여인은 완전히 둥그렇게 말려 안정수 밑에 깔린 채 버둥거리는 것마저 허락되지 못하고 짓눌린 채 애처롭게 떨리고 있다. 침대에서 반 정도 뜬 그녀의 허리는 강렬한 안정수의 허리의 힘을 받아들이느라 애처롭게 떨리고 있고, 버둥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두 다리는 힘이 바짝 들어가 뻣뻣하게 선 채 침대 시트에 닿을 듯 덜덜 떨리고 있다.
흡사 좁은 통 안에 우겨넣은 모양새에 호텔 방의 소파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김우영의 눈이 반짝인다.
‘이거 참…….’
김우영은 미칠 듯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삐걱대는 침대와 달리 침대를 흔들리게 하는 주범들은 오히려 움직임이 거의 없다는 게 신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정수가 내려찍는 강하고 빠른 허리놀림 외에는 그걸 받아들이고 있는 정나은은 버둥거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아 움직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부서질 듯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침대의 비명 소리를 시작으로 광란의 밤은 시작되었다.
“읍! 하음, 하악! 하악! 후웁!”
두 사람이 나누는 키스는 이젠 키스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농밀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서로의 입 안을 오가는 뱀과 같은 혓바닥이 서로를 유린하며, 침으로 범벅된 두 사람의 입가는 질척거리는 소리와 입이 잠시 떨어질 때마다 부족한 숨을 탐닉하는 달콤한 헐떡임으로 가득하다.
이와 같은 모든 소리를 압도하는 강렬하면서도 둔탁한 소리는 두 사람의 하반신에서 울려 퍼지고 있으며, 그 소리에 맞춰 밑에 깔린 여인의 몸은 애처롭게 떨리며 쌓이기 시작하는 쾌락을 열기로써 분출하듯 점점 달궈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몸이 뜨거운 쇠처럼 달궈져 감에 따라 샘솟기 시작하는 투명한 땀방울은 살갗에 송골송골 맺히며, 서로의 몸이 부딪힐 때마다 허공으로 흩날리는 모습이 은은한 조명 빛 아래에 아련히 빛난다.
“하아! 하아! 하아! 웁!”
잠시 두 사람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두 사람의 숨결은 허공에서 얽히며 은은한 체취를 더욱 짙게 만들어준다. 남녀가 살을 섞을 때만 풍기는 그 아련하고 야릇한 체취가 뜨거운 공기와 섞이며 하얗던 침대 시트에 잔뜩 배어드는 것도 모자라 서서히 호텔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한다. 안정수는 그 야릇한 공기에 취한 것처럼 조금이라도 여인의 체취를 취하려는 것처럼 또 다시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그녀를 빨아들일 듯 탐닉한다.
두 번째는 없다고 선언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안정수의 거친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아내에 대한 분노? 자신에 대한 분노?
아니면 끊어진 이성이 있던 자리를 차지한 원초적인 본능?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내의 의도를 파악한다는 그런 시시한 자기를 위한 변명은 깡그리 날아가고, 그저 한 결 같이 욕망을 터트리며, 쾌락을 탐한다.
가슴 속에 뿌리 내린 채 숨어있던 배덕감이 활짝 만개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침대 위의 여인이 누구든지 간에 상관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인 정나은이다.
“크흑! 후욱! 후우!”
그렇기에 안정수는 그동안 쌓였던 모든 감정을 토해내듯 격렬하게 그 감정을 침대 위의 여인에게 부딪히고, 또 부딪힌다. 꼴사나운 헐떡거림도, 붉게 달아오른 얼굴도 상관없다.
“하악! 으읏?! 햐으으!”
안정수는 그저 자신의 배아래 깔려 자신이 토해내는 울분을 사랑스럽기라도 하듯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감정에 헐떡여 주는 여인의 모습에 아내를 겹쳐보고 있다. 아니 아내이길 바라며,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이런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가슴 속 더러운 배덕감도 아내를 사랑하는 이 감정도 마음껏 호소한다.
짧은 시간에 모든 걸 토해내는 안정수와 그 모든 걸 받아내며 쾌락으로 환원해 헐떡여주는 정나은의 모습을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고 있다.
‘좋아. 첫 번째 고비는 넘길 수 있을 것 같군.’
김우영은 자신이 생각한 고비가 몇 개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안정수가 정나은과 관계를 나누지도 않고, 이 관계가 파토 나는 것. 그걸 막기 위해 그녀의 입에 재갈을 물릴까도 싶었지만 도박을 할 거면 철저하게 크게 하자고 결심하고 모든 판돈을 걸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행히 첫 번째 고비를 넘겼다. 마치 말을 걸어보란 듯 열어둔 정나은의 입에선 달콤하기 그지없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며 안정수의 호소를 그저 쾌락으로, 욕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강렬하고, 거칠었던 안정수의 호소는 모든 감정을 단번에 쏟아내는 만큼 금세 파국을 맞이했다. 짐승처럼 낮은 목소리를 내며 허리를 강하게 내려찍은 안정수는 정나은과 깊고, 깊게 이어진 채 그의 욕망을 마음껏 그녀에게 토해낸다.
하지만 그의 간절하면서도 수많은 울분은 콘돔이라는 막에 가로막혀 그녀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그의 뜨거운 마음을 받아들인 그녀는 남편이 보내는 간절함도 모른 채 쾌락이라는 감정으로 바꾸어 헐떡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깊게 연결된 두 부부였지만, 둘 사이를 막고 있는 얇디얇은 벽은 너무나도 견고해 그 어떤 것도 서로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그저 질척하고, 끈적한 욕망과 쾌락이라는 감정만이 둘 사이에 남았을 뿐이다.
“…….”
“하아, 하아, 하아…….”
짧디짧고 한 번뿐인 관계였지만, 그동안 가슴 속 응어리 져 있던 음습하면서도 아름다운 감정을 모두 토해낸 안정수는 힘겹게 그녀의 위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마치 작은 통 안에 우겨넣어진 것처럼 짓눌려있던 정나은은 자유로움을 느끼며 뜨거운 몸을 주체 못하고 헐떡이며 침대 위에 널브러진다.
“…….”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안정수의 얼굴은 그림자가 져 보이지 않는다. 이제야 침대 위의 여인의 정체를 알아보려는 생각이 든 것일까? 아니면 이미 알아차리곤 저렇게 있는 것일까?
그의 의도가 어떤 것이던 김우영으로썬 아무래도 좋다. 그저 오늘 밤만 무사히 넘어간다면 닿지 않던 높은 절벽 위의 꽃은 자신의 손에 꺾일 것이 틀림없다.
김우영은 안정수에게 다가가 그가 딴 생각을 못하도록 자신과 바꾸도록 시킨다. 그가 쓴 콘돔을 찢어진 검은 스타킹 밴드에 끼워 넣으라는 눈치를 주자 안정수의 눈빛은 상당히 살벌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하란대로 해주겠다는 표정으로 쓴 콘돔을 그녀의 검은 스타킹 밴드에 끼워 넣는다.
‘이로써 1회…….’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콘돔을 하며 침대를 내려오는 그와 자리를 바꾸듯 올라간다. 푹 퍼진 그녀의 몸을 안정수에게 보란 듯이 징그러운 손길로 쓰다듬는다.
‘아까의 모습을 보니……아내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 같은데……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지.’
그녀가 더욱 쾌락에 헐떡이며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안정수는 자신과 번갈아가며 그녀를 안을 것이고, 그렇게 쾌락에 헐떡이는 정나은을 번갈아 안을수록 자신이 준비한 덫은 더욱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남편이 이성적인 생각을 못하도록 놀려볼까?’
김우영은 어차피 그와 번갈아가며 그녀를 안을 때 그처럼 모든 걸 토해내듯 안을 생각이 없었다. 남편 앞에서 아내를 탐한다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자신에겐 그런 쾌락보단 이 도도한 고양이를 굴복시키는 것이 더욱 선결 과제이기에…….
그렇기에 김우영은 마치 안정수에게 그녀의 모습을, 그녀의 작은 반응을, 헐떡임조차 쾌락에 떠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겠다고 놀리듯 자신의 품에 그의 아내를 가둔다.
그리곤 남편 앞에서 그의 아내를 천천히, 천천히 침식해 들어가듯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화려하던 도시의 야경도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웠던 자연 풍경은 진즉에 어둠 속에 숨어 시원한 고요함만이 깔려있고, 고요한 자연 속에 우뚝 솟은 멋들어진 호텔에도 드문드문 불이 꺼지기 시작한다.
어느 호텔 방은 불이 꺼진 뒤에야 이 긴 밤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하는 곳도 있고, 어느 방은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하며 꿈의 나라로 떠난 방도 있다. 그 수많은 방들 중 밤이 깊도록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방도 있었으니…….
사우나처럼 숨 막히는 열기가 아닌, 아무리 뜨겁고, 더워도 기분 좋은 그런 열기로 가득 차 있는 방. 그 방의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는 밤이 깊어도 멈출 줄 모른다.
“후욱! 후욱! 후욱!”
“흐으……으응, 하으…….”
깊고 거친 남성의 숨소리와 지친 여인의 신음소리가 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울려 퍼지고 있다. 방 안 가득 숨 막히는 열기는 더 이상 들어찰 곳도 없는지, 방 밖으로 새어나가는 기분이 들고, 그 열기 속에는 비릿함과 야릇한 향기가 진하게 숨어있어 방 문 밖을 지나만 가도 안에선 남녀가 살을 섞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이다.
침대를 삐걱거리게 하는 둔탁한 타격음은 처음과 달리 많이 지쳤는지, 속도나 힘이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이 둔탁한 타격음을 연주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안정수였다. 처음부터 힘을 뺄 생각이 전혀 없던 김우영과 달리 안정수는 침대 위의 여인에게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 붓듯 한 번, 한 번의 관계를 철저하고 강렬하게 쏟아냈기에 많이 지친 모습이다.
‘흐음 슬슬 때인가?’
안정수의 얼굴에는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 침대 위의 여인을 아무리 봐도 자신의 아내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데, 아내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함인지, 자신의 이런 감정의 호소를 그녀 스스로 깨달아 주길 바라는 걸로 마음을 바꾼 것인지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김우영으로썬 모를 일이다.
‘사람이란 건 필사적으로 말로써 자신의 감정을 전해도 자신의 감정이 제대로 전해질지 모르는 것인데, 두 부부가 참 답답하군. 아니 오히려 어리석을 정도로 닮았기에 부부가 된 건가?’
안정수가 정나은을 몇 번이나 탐하며, 문득 그녀의 왼손 약지에 결혼반지가 없다는 걸 눈치 채곤 굉장히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속으로 삭히는 것인지 그가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모습은 김우영에게 굉장한 즐거움을 줬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두 부부 모두 기묘할 정도로 똑같다.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끌끌끌 그 덕에 내가 저 자존심 쎈 년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일까? 안정수의 입은 거친 숨을 토해내는 것 외에도 때때로 벌어지며 입안에서 어떤 말을 우물거리더니 결국 삼키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그는 애끓는 눈빛으로 여인을 내려다보지만 그녀는 오랜 정사로 지칠 때로 지쳐,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탄 사람이 누군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우리 암고양이도 술도 많이 깬 것 같고.’
그녀 한 쪽 다리에 신겨진 검은 스타킹 밴드에는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사용한 콘돔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숫자만큼 정나은은 쉬지 않고 그들의 욕망을 받아낸 셈이니 정신이 들만도 하다. 그녀의 푹 퍼진 모습은 지금에 이르러선 소모된 체력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큭!”
“……흐읏.”
안정수가 많이 지친 목소리를 내며, 다시금 그녀 위에서 일어선다. 안정수는 묘하게도 엉덩이 쪽만을 고집했다. 아내이길 확신한 모습인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엉덩이 구멍만을 고집한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내의 두 번째 처녀가 범해진 것에 대한 울분일까?
‘그가 어떤 생각을 하던 상관없지만.’
김우영은 이제 시작될 자신의 무대를 그녀가 어떤 반응으로 받아줄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지금 이때를 위해서 체력을 온존한 것이다. 안정수와 번갈아가며 정나은을 탐할 때에도 그녀가 절정에 오르기만 하면 미련 없이 일어서서 자신도 사정한 것처럼 그녀의 스타킹 밴드에 콘돔을 끼워 넣었을 뿐 그가 정말로 절정을 맞이한 건 안정수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그녀의 입안에 싸지른 것 한 번 뿐이다.
‘미리 준비 해둔 게……여깄군.’
김우영은 안정수가 아직 침대 위에서 축 처져 늘어진 아내를 내려다보는 사이 미리 정나은에게서 뺏어둔 결혼반지와 콘돔을 보이지 않게 손에 쥐고 안정수에게 내려오라고 눈치 준다. 안정수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침대에서 내려와 소파에 쓰러지듯 앉는다.
“자, 그럼…….”
안정수에겐 안 보이게끔 자신의 몸을 이용해 그에게 보이지 않게끔 준비한 것이 들키기 않게 한다. 그녀를 무너뜨릴 마지막 수단으로 결혼반지와 콘돔을 택했다. 이래도 안 된다면 자신은 깔끔하게 물러날 생각이다.
김우영은 이제까지와 똑같지만 그녀의 얼굴을 안정수에게 절대 안 보이도록 자세를 틀며 그녀의 몸 위로 자신을 포갠다. 그리곤 마치 정나은에게 느끼라는 듯이 천천히 허리를 내리며 그녀를 꿰뚫는다.
“하아…….”
지칠 때로 지친 그녀의 신음소리. 하지만 아직도 그 신음소리 속에 열기가 묻어나는 걸 보면 쾌락이란 감정은 어처구니없는 녀석이다. 김우영은 그런 그녀의 달콤한 신음소리에 보답하듯 천천히 그녀를 탐닉한다.
찌걱찌걱 거리는 이젠 너무 익숙한 질척한 물소리를 들으며, 김우영은 그녀의 탐스런 젖가슴을 움켜쥐며 살살 애무해준다.
“흐으응, 흐음…….”
섬세한 손놀림으로 지친 몸에 다시금 쾌락이라는 열기를 불어넣는다. 김우영이 허리를 잠시 멈추고, 고개를 내려 그녀의 탐스런 능선 위에 우뚝 솟은 작은 과실을 살짝 머금자 그녀의 허리가 움찔거리며 들썩거린다.
“쩝, 쩝, 쭈웁!”
“햐아앗?!”
게걸스럽다 할 정도의 빠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그녀의 젖가슴에서 들리자 그녀는 허리를 튕기며 작은 비음을 내지른다. 까슬까슬한 혓바닥으로 그 작은 과실을 입 안 가득 머금고 그녀의 체취가 잔뜩 밴 땀방울을 갈증어린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삼키며 가슴 가득 그녀의 향기로 채우려는 듯 탐닉한다. 그리곤 그 작은 과실을 이빨을 세워 살짝 자극하는 그 순간 그녀의 온 몸은 뻣뻣하게 힘이 들어가며 떨리기 시작한다.
“…….”
김우영은 그런 그녀의 반응이 만족스럽다는 듯 부드러운 가슴에서 입을 떼고, 가냘픈 목선에 이를 세워 살짝 깨물어 자극을 줌과 동시에 다시금 허리를 놀리기 시작한다. 김우영의 귓가에 지쳤지만 절대 멈추지 않는 달콤한 유부녀의 헐떡임이 김우영을 즐겁게 한다. 그녀의 몸이 주는 열기나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진 그녀 특유의 체취를 피부로 느끼며 그녀의 몸이 주는 쾌락을 척추를 통해 머릿속에 새기듯 느끼고 있다.
매끄러운 복부를 매만지는 그의 손길에선 잘게 떠는 그녀의 움찔거림도, 허리를 내려찍을 때마다 자신의 허벅지에 부딪히는 그녀의 육덕지지만 건강미 넘치는 잘 빠진 다리의 감각도, 남자와는 차원이 다른 뽀얗고 부드러운 그 여인의 살결도 다 그녀의 남편인 안정수라는 남자의 것이지만.
‘지금만큼은 아니, 앞으로는 내 것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