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으음, 하읍……흐으음…….”
강압적이었던 처음과 달리 갑작스레 김우영의 키스는 마치 연인이나 나눌 법한 진하지만 배려가 느껴지는 키스로 변화한다. 정나은은 갑작스런 키스에 당황해 여전히 버둥거리느라 그런 걸 느낄 새가 없었지만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점점 길어지는 키스 시간에 숨이 모자란 그녀로써는 버둥거리는 것보단 차오르는 숨을 조금씩 탐하는 쪽으로 변한다.
김우영 그로써는 드물게 키스를 나누면서도 일체 그녀의 몸에는 손대지 않고, 키스로써 사랑을 확인하는 것처럼 길고, 진하지만 서로를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게 천천히 진득하게 그녀를 탐한다.
거실에는 한데 엉킨 두 남녀가 키스를 나누는 질척한 소리가 TV소음과 함께 곁들여지기 시작한다. 이따금 정나은의 다리가 버둥대는 모습이 보이지만 점점 그녀의 다리가 잠잠해질 무렵. 달콤한 유부녀라는 과실을 잡아먹을 듯 덮쳤던 김우영이 그녀의 위에서 입을 떼며 일어난다.
“……지, 지금 뭘?!”
정나은은 그가 떨어지자 부족한 숨을 몰아쉬며 서둘러 상체를 일으킨다. 서로의 입술은 길고 긴 키스 때문에 침으로 번들거리고, 당황하고 모자란 숨 때문에 양 뺨이 복숭아 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에 떨어졌기에 금세 가라앉을 정도의 열기.
“끌끌끌. 귀여운데?”
“자, 자, 장난치지 말고!”
평소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도 매력적이지만 완전히 화장을 지워 풋풋한 연분홍빛의 입술이 빛을 받아 빛나고, 살짝 달아오른 복숭아 빛 뺨은 그녀의 풋풋함을 한층 끌어올려 준다. 그런 끈적한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정나은의 눈매는 한껏 치켜 올라가며 날카로움을 품는다.
“그야~남편도 없겠다. 술도 떨어졌겠다. 잠시 갈증이 나서 말이지?”
“그게 무슨! 그러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어쩌려고!”
“그건 알 바 아니지. 나야 한 달 동안 이 맛있는 과실을 탐하는 게 목적인데.”
김우영의 질척한 시선이 노골적으로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간다. 정나은은 그런 시선에 몸서리를 치며 일어서려고 하자 김우영이 그런 그녀에게 지나가는 투로 말한다.
“이거~맛있는 과즙을 잠시 탐했더니 한 발 빼고 싶은데……어떻게 하지? 이대로 두면 분명 오늘 저녁에 그 과즙을 탐하기 위해 침대로 숨어들지도 모르겠는데?”
김우영이 빙 돌려서 침대에 숨어들 거라는 이야기를 하자, 정나은은 화가 나 격하게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그 날처럼은 절대 안 될 줄 알아!”
얼마 전 현관문에서 이뤄진 정사를 떠올리기라도 하는 지 그녀의 얼굴은 진정될 기미가 없이 오히려 더욱 붉어진다. 김우영은 그녀가 흥분해 소리치건 말건 자신의 부풀어 오른 바지 앞섬을 손으로 툭툭 두들기기만 할 뿐 별 다른 말을 안 한다.
“이, 이이익!”
그런 김우영의 태도가 더 열 받는 정나은은 감정을 주체 못하고 터질 것 같은 분노어린 소리만 내뱉는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지만 그의 성격이라면 정말 할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 그가 안자고 갈지도 모르지만 남편이 또 술을 사러 갔으니 술자리가 길어지는 건 당연하고, 그 날처럼 잠시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탈 시간은 충분할 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하지?’
정나은은 급하게 머릴 굴린다. 그라면 정말 숨어들 거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어떻게든 그의 욕구를 풀어줘야 한 단 소리다. 그걸 알고 있기에 그도 저렇게 능글맞은 미소를 지은 채 그저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보고 있는 거다.
“……어,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데.”
“응? 안 들리는데?”
정나은은 수치심으로 물든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김우영은 능글맞은 태도로 되묻는다.
“좀 있으면 남편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고! 절대 안 돼!”
수치심을 이기고 자신이 먼저 말을 꺼냈지만 김우영이 못들은 척하자 정나은은 참지 못하고 꽥 소릴 질러버린다. 김우영은 수치심에 떠는 그녀의 모습을 즐기면서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뭐 당연하지. 남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한 발 빼달라는 건 말이 안 되지.’
이건 저런 그녀의 태도를 즐기기 위한 장난일 뿐이다. 설령 진짜 지금 이 짧은 순간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 준다 해도 그로써는 오늘 밤 그녀의 침대에 숨어들 생각이다. 남편이 준비해준 무대에 올라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깐.
“끌끌끌 그럼 이렇게 하지. 오늘 밤 내가 즐길 거리를 하나 줘. 그걸로 물러나지.”
“즐길 거리라니?”
김우영의 영문 모를 소리에 정나은이 되묻자, 김우영은 장난기 어린 태도로 그녀의 핫팬츠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정나은은 그의 손가락이 자신의 핫팬츠를 가리키고 있자 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지금 입고 있는 속옷. 이 자리에서 벗어서 줘.”
“……뭐?”
정나은은 그의 말에 살짝 얼이 빠진다.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정나은의 머리가 김우영의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지 그녀의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분노일지 수치심일지 모를 감정으로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 그건…….”
그를 만나기 전의 정나은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도 지금 이 제안을 거절할 처지가 아니다. 실제로 정나은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김우영은 보란 듯이 바지 벨트에 손을 가져가며 빨리 결정하라고 그녀를 채근한다.
“아, 알았어. 그런데 꼭 이 자리…….”
“여기서 당장.”
정나은이 떨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김우영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단칼에 끊어먹으며 강하게 말한다. 김우영의 강한 어조에 정나은은 더 이상 그가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닫곤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TV소리만 흘러나오는 거실에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얽히며 불꽃을 튀긴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선 김우영이 포식자인만큼 정나은은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다고 결단하고 목울대를 울리며 마른 침을 삼킨다. 정나은은 어차피 벗을 것이라면 차라리 빨리 벗어서 줘버리잔 생각에 몸을 휙 돌리자 김우영이 다급하게 말한다.
“그건 안 되지. 이쪽 보고 벗어.”
“아니, 그런!”
항의하는 정나은의 말을 김우영은 바지 앞섬을 손으로 두들기는 것으로 일축한다. 정나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를 까드득 갈며 활활 타오르는 적의어린 눈빛으로 그를 태워죽일 듯이 노려본다.
“뭘 그리 비싸게 구나? 못 볼 꼴 다 본 사이인데. 응?”
능글맞은 김우영의 웃음소리가 정나은의 불난 가슴에 기름을 붓는다. 정나은은 열이 뻗쳐 이성이 끊어지기 직전임에도 언뜻 시야 한 구석을 스쳐지나간 시계를 보자 결심을 굳힌다. 꽤 시간이 지체된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나은은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을 의식하자 수치심으로 물든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 고개를 숙이려하자 김우영의 안 된다는 어조 한마디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든다. 그의 끈적한 눈과 자신의 떨리는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고개를 들며, 빤히 바라본 채 자신의 핫팬츠에 손을 가져간다.
정나은은 심장이 미칠 듯이 뛰기 시작하는 걸 느낀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배를 맞대고 더한 꼴도 보여줬는데도 이게 뭐라고 이렇게 부끄러운 건지 모르겠다. 자신의 집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편이 곧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일까?
정나은은 사랑하는 남편과의 보금자리에서 외간 남자에게 값싼 여자처럼 스스로 옷을 벗어야 된다는 사실에 굴욕감을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핫팬츠를 서서히 내린다. 김우영은 마치 재미있는 쇼를 감상하는 것처럼 안주를 우물거리며 불룩해진 바지 앞섬을 보란 듯이 매만진다. 그의 시선이 마치 뱀처럼 자신의 피부에 달라붙는 것 같다.
‘사, 사람의 시선이란 게 이렇게 느껴지는 거였나?’
이번 주 내내 화장실에서 부자유한 상태로 감각에 극도로 집중한 탓일까? 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게 된 그녀는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몸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욕망의 불길에 댄 것처럼 몸이 절로 움츠려든다. 정나은은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데굴데굴 굴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그의 시선과 딱 마주치자 쩍하고 몸이 굳는다.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이 시선으로 느껴진다면 이런 시선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시선. 정나은이 그 시선이 몸이 굳자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팬티 하나 벗는데 하루 종일 걸리겠어. 좋아. 뒤 돌아서 벗어도 되지만 이거 찍어도 되겠지? 반찬으로 쓰고 싶거든.”
김우영은 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눈앞에서 흔든다. 정나은은 자신의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찍힌다는 것보다 그의 끈적한 시선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나은은 반쯤 혼비백산 한 채로 재빨리 뒤를 돌자 뒤에서 녹화를 시작하는 알림 음이 천둥처럼 울려 퍼진다.
‘이, 이건 이거대로 부끄럽잖아!’
그 욕망이 묻어나는 시선이 어딜 향하는지 모르니 정나은은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긴장으로 굳으려는 몸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는다. 확실히 그의 눈앞에서 벗는 것 보단 나은지 미동도 않던 손이 조금씩 움직이며, 떨리는 손으로 핫팬츠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한다.
강렬한 형광등 불빛 아래 이 집의 안주인이 외간 남자 앞에서 스스로 옷을 벗고 있는 이 상황에 김우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감상한다.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 딱 달라붙은 육덕진 허벅지가 핫팬츠를 벗는 걸 방해하는 걸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힘으로 벗고 있다. 탄력적이고 부드러울 것 같은 두 개의 뽀얀 찹쌀떡이 천천히 김우영의 눈앞에 드러난다.
“휘익~”
김우영은 일부러 조롱하듯 휘파람을 불자 정나은의 몸이 크게 움찔한다. 곧이어 살짝 돌아본 그녀의 옆얼굴에선 활활 타오르는 시선이 그를 태워죽일 듯이 쏘아져오고 있다.
‘그렇게 수치심으로 물든 얼굴로 쏘아봐도 말이지.’
오히려 수컷의 욕망을 부추기는 몸짓이라는 걸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김우영은 그녀의 시선에 화답하듯 노골적으로 자신의 바지 앞섬을 매만지자 그녀가 휙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러자 아까보다 한층 빨라진 속도로 핫팬츠 째 팬티를 벗어재낀다.
완전히 들어난 엉덩이 골. 이제 허벅지에 걸쳐진 하의는 그냥 그대로 손만 놔도 알아서 흘러내린 터인데, 묘하게 긴장한 탓일까? 그녀는 필요이상으로 힘이 들어간 손에서 하의를 놔줄 생각을 않고 중간에 딱 멈춘다.
‘응? 왜 저래?’
김우영은 이제 손만 놔도 다 벗을 수 있는 데 갑작스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멈춘 그녀의 모습에 의아해 한다. 그리고 곧이어 그 이유를 깨달았다.
‘풋! 이게 뭐라고 저렇게 긴장해서는 스스로 수치스러움을 늘리나 몰라?’
그녀가 필요 이상으로 긴장했기에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팬티 째로 벗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을 것이다. 그 생각은 손으로 하의를 잡은 채 발 아래까지 벗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쪽으로 그 탐스런 엉덩이를 스스로 들이밀어야 가능한 것이다.
한 마디로 그녀는 어서 빨리 그에게 팬티를 벗어 줘야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사고가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곳에서 바보 같아서 귀엽단 말이야?’
김우영은 안정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20대가 궁금해지지만 곧이어 이어진 장면에 그런 생각 따위는 저편으로 날려버렸다. 하의를 움켜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결심한 듯 꽉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리며 벗으려는 것 같다. 김우영은 장난기가 솟아 그녀의 손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상체를 최대한 내민다.
그녀의 떨리던 손이 결심한 듯 필요 이상으로 힘이 잔뜩 들어가는 걸 김우영이 확인한 순간 그는 그녀의 탐스런 엉덩이를 향해 자신의 입김을 강하게 불었다.
“꺄아아악?!”
갑작스런 자극에 정나은은 귀여운 비명과 함께 꼴사납게 앞으로 넘어진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었던 그녀는 오히려 앞으로 넘어짐으로써 엉덩이를 뒤로 뺀 채 넘어져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활짝 그의 앞에 드러내 버렸다. 이 와중에도 그녀가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알려주듯 하의를 붙잡은 손은 여전히 핫팬츠를 쥔 채였다.
“절경인데?”
김우영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정나은이 헐레벌떡 일어난다.
“다, 다, 당신 지금 뭐하는?!”
조금이라도 빨리 몸을 일으키기 위해 놓아버린 핫팬츠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그녀의 하반신은 완전히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나은은 뒤늦게 자신의 꼴을 인식하고 중요부위를 손으로 가린다. 당황과 치욕으로 물든 그녀의 자태를 잘 찍은 뒤 김우영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나뒹구는 그녀의 핫팬츠에서 하얀 팬티를 끄집어 낸 뒤 핫팬츠를 그녀 쪽에 휙 던진다.
굴욕적인 취급에도 신경 쓸 여유조차 없는 정나은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재빨리 핫팬츠를 입곤 씩씩 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우영은 손에 쥔 순백의 팬티를 보란 듯이 손에서 굴리고 있다. 막 벗어 그녀의 체온까지 느껴지는 팬티를 매만지고, 눈앞에서 흔들기도 하는 둥 하는 짓은 어린아이 같아도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더 할 나위 없이 그녀를 부끄럽게 한다.
‘그, 그냥 팬티일 뿐인데……그런데 내, 냄새 같은 건 안 나겠지?’
정나은은 그의 모습에서 터질 것처럼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의식도 못하고 그의 손아귀에서 매만져 지는 자신의 팬티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 더한 꼴도 얼마든지 당했음에도 어째서일까? 겨우 속옷일 뿐인데…….
‘아, 오늘 스트레칭 했는데!’
평소보다 힘든 일주일이었기에 몸의 피로를 풀기위해 한 스트레칭이 떠올라 정나은은 자신의 체취가 잔뜩 머금었을 거란 생각에 이젠 몸까지 덜덜 떨린다. 김우영은 그녀가 수치심으로 떠는 모습을 보며 더 장난기가 샘솟아 손에서 매만지던 그녀의 팬티의 냄새를 맡을 것처럼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다 대자 그녀가 폭발해 버렸다.
“아, 안 돼!”
한 마리의 암 표범처럼 허공을 날 듯 김우영을 덮쳐 그의 손에서 자신의 팬티를 뺏으려는 순간 현관문 쪽에서 철컥하는 금속음에 두 사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의 고개는 동시에 현관문 쪽으로 향하곤 지금까지의 그 어떤 행동보다 빠르게 두 사람은 떨어진다.
김우영 역시 손에 쥐고 있던 그녀의 팬티를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다시피 아무렇게나 집어넣는다. 주머니에서 살짝 흘러나온 팬티가 주머니 속에 잘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를 확인할 여유도 없는 두 사람은 재빨리 자리에 앉으며 크게 숨을 들이쉬며 몸을 진정시킨다.
곧이어 현관문이 열리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두 사람은 안정수를 맞이했다. 세 사람은 다시 이어진 술자리에서 각자의 심정을 달래듯 술을 마신다.
한 사람은 열불이 난 속을 진화하듯, 한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듯, 한 사람은 즐거운 밤이 되길 빌 듯…….
정나은은 알딸딸하게 올라오는 취기를 느끼며 한 발 먼저 안방으로 들어왔다. 철컥하고 닫히는 안방 문에 기대자 긴장으로 팽팽히 당겨졌던 자신의 몸이 흐물흐물하게 풀리는 걸 느낀다.
‘피곤하다…….’
기분 좋게 내려앉은 어둠 속 안방을 바라보던 그녀는 통풍이 잘 되는 핫팬츠 때문에 갑작스레 하반신이 서늘해지는 걸 느낀다. 찌릿하고 울리는 아랫배의 야릇한 감각과 긴장이 풀리자 술기운이 본격적으로 몸을 돌기 시작하는 걸 느낀다.
‘생각보다 마셨나 보네.’
자신의 거실에서 수치스럽게 팬티를 벗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듯 들이킨 술을 그 짧은 시간동안 꽤 마셨는지, 생각보다 몸이 무겁다.
‘……그래도 오늘은 별 일 없겠지. 설마 안방까지 들어오겠어?’
이를 위해서 그 수모를 참아내며 그에게 즐길 거리를 제공해 주지 않았는가? 정나은은 스스로를 칭찬하며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곧이어 기분 좋은 수마가 그녀 위에 내려앉는 걸 느끼며, 그녀는 금세 꿈의 나라로 떠나버렸다.
얼마 전의 자신이라면 이런 걸가지고 자신을 칭찬할 여자가 아니었다는 걸 그녀는 자각하지 못 한 채 행복한 꿈의 나라로 도망가 버렸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짙은 어둠은 더욱 깊어지고, 안방 침대에 잠든 정나은이 내쉬는 숨소리만이 조용하게 새어나온다. 안방 문 밖에서 들려오던 작은 코고는 소리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게 되자 굳게 닫혀있던 안방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조심스레 열린다. 거실 창문 너머로 스며들던 달빛이 안방으로 스며들며 안방에 들어선 사람의 모습을 뒤에서부터 비춘다. 뒤에서부터 달빛이 비춰 안방에 들어선 사람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내려와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두 부부만이 드나들 수 있는 안방. 이미 안방에는 아내가 잠들어 있으니 이제 안방에 들어올 수 있는 건 남편뿐이다. 하지만 안정수라고 하기엔 다른 체격의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침대로 다가선다. 그 그림자는 침대 곁에 선 채 잠들어 있는 정나은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비정상적으로 불룩하게 솟은 이불. 이불속으로 사라진 그림자가 이불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불이 출렁이며 너풀거린다.
“으음…….”
벌어진 이불 틈새로 사락거리는 옷과 이불이 스치는 소리와 더불어 무언가를 핥는 듯 끈적한 소리가 어울어 진다. 편안히 잠들었던 정나은의 얼굴은 기분 나쁜 감각에 찌푸려지며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할짝거리던 소리가 무언가를 빠는 소리로 바뀌자 술에 취해 깊이 잠들었던 정나은은 힘겹게 눈을 뜬다.
“……?”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로 정나은은 들썩이는 이불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새된 소리를 내려는 순간 벌어진 이불 틈새에서 손이 불쑥 올라와 그녀의 입을 막는다. 그리곤 동시에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던 그림자가 쑥 튀어나오자 정나은도 아는 얼굴인지 안도감과 함께 화가 끓어오르는 표정이다.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오늘 밤 안정수가 마련한 무대 위로 올라가기로 한 김우영이었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와 함께 닫지 않은 안방 문을 손으로 가리킨다. 김우영이 그녀의 입에서 손을 떼자 최대한 목소리를 죽인 정나은이 그에게 분노 어린 말을 속삭인다. 한참을 그렇게 침대 위에서 소리를 죽인 채 실랑이하던 그들은 타협을 봤는지, 조심스레 침대에서 벗어나 안방 문 밖을 살핀다.
“…….”
김우영이 거실의 상태를 살피곤 조심스레 베란다 쪽으로 나간다. 곧이어 안방에서 정나은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조심스레 따라 나오더니 안방 문을 꽉 닫곤 베란다 쪽으로 향한다. 살짝 열린 베란다 문을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진 정나은은 재빨리 베란다 문을 닫곤 잠가버린다.
“……?!”
김우영이 베란다 문으로 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항의하지만 정나은은 오랜만에 속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혓바닥을 내밀어 메롱 거리며 그를 조롱한다. 이에 김우영은 그녀의 작은 도발에 재미있다는 듯이 웃더니 그 자리에서 옷을 전부 벗어버린다.
“?!”
갑작스레 김우영이 옷을 전부 벗어던져 버리자 되려 정나은이 당황한다. 늦은 밤이기에 누가 볼 염려는 없지만 그래도 그의 대담한 행동이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리곤 유리창 너머로 김우영이 그녀를 향해 작게 속삭이더니 장난스런 미소와 함께 다리를 살짝 구른다.
쿵! 하는 작지만 묵직한 진동과 소음이 유리창 너머로 스며든다.
“……!!!”
정나은이 당황해 유리창에 달라붙어 다급하게 말하지만 김우영은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녀를 재촉하듯, 조롱하듯 다시 한 번 발을 구르자 한층 강해진 진동과 소음이 베란다를 통해 거실로 스며들자 정나은은 당황하며 재빨리 잠근 베란다 문을 열곤 밖으로 나선다. 문이 열리며 스며든 차가운 밤공기가 두터운 커튼을 휘날리게 하며 거실을 일주한다. 드르륵 하는 베란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지만 완전히 닫히진 않았는지, 커튼 밑자락이 살살 흔들리는 모습이 그 사실을 알려준다.
“미, 미쳤어?!”
작고 가냘픈 정나은의 그림자가 김우영의 그림자에게 다가가며 짜증 어린 말을 외친다. 하지만 김우영의 그림자는 그런 정나은의 항의를 들어줄 생각이 없는지 팔을 뻗더니 확 당기며 그녀의 그림자가 김우영의 그림자와 마치 하나처럼 겹쳐진다.
쿵하는 소리와 유리창에 무언가가 부딪힌 것 같은 작은 진동이 퍼져나가더니 곧이어 머리 쪽에서 끈적하면서도 서로를 탐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보아 키스를 나누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때로는 탐욕스럽게 빠는 소리나 핥는 소리가 나는 것 같으면 한참을 키스만을 진득하게 나누는지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 고요함과 일체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베란다가 고요함에 휩싸이길 기다렸다는 듯 거실에선 안정수가 눈을 뜨곤 안방 문에 다가서서 안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는 등 거실을 오간다. 곧이어 맥이 풀린 표정으로 거실 한 편에 자리 잡은 안정수는 커튼 너머로 보이는 김우영의 그림자를 피곤한 눈으로 노려본다.
“…….”
하지만 안정수의 피로감은 장난이 아닌지. 아니면 맥이 풀리며 긴장의 끈을 놓은 탓인지 그의 눈은 서서히 초점이 풀리고 눈꺼풀이 자꾸만 감긴다. 이윽고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안정수가 잠에 빠져들며 거실 한 편에서 고개를 떨군다.
그리고 그가 잠에 빠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베란다에 겹쳐져 있는 하나의 그림자에선 욕정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처럼 그림자가 일렁이며 춤추기 시작한다.
요요하게 달빛이 내리쬐고 밤이 깊어 고요함까지 내려앉는다. 평소와 다르게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구름은 재빠르게 흘러가고, 차디찬 밤공기에 열기를 실어 날려 보내는 이곳. 바로 베란다다.
김우영의 품에 안겨 옴짝달싹도 못하고 유리창 쪽에 밀어붙여진 채 키스를 나누던 정나은과 그녀를 짓누르듯 품에 가두었던 김우영은 한참을 농밀한 키스를 나누다가 떨어진다.
“하아, 하아, 하아…….”
길고 길었던 키스가 끝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급하게 뜨거운 숨을 몰아쉰다. 달빛 아래에서 두 사람이 내뿜는 뜨거운 숨결이 하얀 입김이 되어 허공에 흩어져 부서져간다.
김우영은 달빛에 드러난 그녀를 내려다본다. 흘러내린 흑단 같은 머리는 달빛에 반사되며 밤하늘과 같은 빛을 머금고 있고, 매섭게 치켜 올라간 눈매는 평소와 달리 부드러움이 엿보인다. 살짝 감긴 눈꺼풀하며 몽롱한 눈동자. 번들거리는 두툼한 입술은 뜨거운 숨결을 내뱉을 때마다 그 달콤한 향기를 토해내며 하얀 입김이라는 형태로써 허공에서 흩어진다.
가냘픈 목선과 노출도가 높은 얇은 민소매 티는 달빛을 받아 그녀의 뽀얀 피부가 비치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기에 벌어진 민소매 티 틈으로 탐스럽게 부푼 가슴의 아름다운 골짜기가 엿보이고, 핫팬츠를 입고 있기에 그녀의 육덕지지만 아름답게 뻗은 두 다리는 달빛을 받아 요요하게 빛이 난다.
달빛이 주는 매력 때문일까? 김우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핫팬츠를 단번에 내려버린다. 차가운 밤공기가 갑작스럽게 느껴진 탓인지 정나은이 움찔해보지만 이미 불붙은 김우영은 그녀의 모습을 아랑곳 않고 한쪽 다리를 잡아 올려 떨어지지 않게 자신의 팔에 걸친다. 그제야 숨이 좀 진정된 정나은이 김우영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가 내렸던 허리를 올려치는 게 한발 더 빨랐다.
“읏!”
평소보다 작은 힘으로 올려쳤음에도 늦은 밤이라는 점과 진득하게 깔린 고요함 때문일까? 두 사람의 하반신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 정나은은 한 쪽 발로 균형을 잡기 힘들어 한 손으론 그의 어깨를 붙잡고 한 손으론 유리창에 기대듯 쭉 뻗어 균형을 잡는다.
“후으음…….”
김우영의 입에선 깊은 숨이 토해져 나오며 평소와 다르게 느긋하게 움직이며 마치 애태우듯 허리를 놀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정나은에겐 큰 자극이 되는지 아랫입술을 악물며 혹여라도 새어나올 신음을 참는 모습이다. 그녀의 눈길이 때때로 등 뒤 창문 너머로 향하는 걸 김우영은 놓치지 않았다.
‘보이려나?’
김우영은 정나은의 얇은 민소매 티를 확 끌러내려 탐스런 두 개의 과실을 달빛 아래에 드러낸다. 그녀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기 위함이다.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탐스런 과실의 부드러움을 마음껏 탐닉하며 허리를 느긋하게 놀리며 그녀를 짓누르듯 유리창에 몸을 기댄다.
“자, 잠깐…….”
숨 막히게 다가오는 김우영의 몸 때문에 정나은이 당황하지만 김우영은 그런 정나은을 내버려둔 채 시선을 두터운 커튼 너머로 던진다.
‘안 보이는데.’
김우영은 생각보다 커튼이 두텁다고 생각하며 틈이 없나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자 커튼과 커튼 사이에 살짝 벌려진 틈을 발견하곤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분명 자신과 정나은이 베란다로 나오기 전에 본 그는 잠들어 있었다. 그로써는 일주일 내내 수많은 고민과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으니 피곤해 잠든 것도 이해가 되지만…….
‘나로서는 일어나 주는 게 좋지.’
김우영은 안정수를 향한 도전장을 던진다. 느긋하게 애태우듯 정나은을 탐하던 그는 젖가슴을 매만지던 손을 내려 가슴과는 또 다른 과실인 탄력적인 엉덩이를 꽉 붙잡곤 그녀의 몸을 고정시킨다.
그리곤 전야제가 끝났다는 걸 알리기 위해 퍼레이드를 시작한다.
“하으윽?! 자, 잠깐! 드, 들려! 들린다니……크읏!”
두 사람의 하반신이 맞부딪히는 찰진 소리가 정적을 깨고 길거리를 내달린다. 동시에 덜컹덜컹 유리창이 흔들리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정나은은 당황해 최대한 유리창으로 향하는 힘을 줄이기 위해 한 쪽 다리에 힘을 줘 힘겹게 버틴다.
“아으?! 아, 안에 남편! 하악! 남편이 있……!”
정나은의 다급한 항의를 듣기 싫다는 듯 김우영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입으로 그녀의 입을 막아버린다. 김우영의 팔에 걸쳐진 정나은의 다리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유리창에 가해지는 힘을 줄이기 위해 힘겹게 버티던 힘이 줄었는지, 유리창의 흔들림은 한층 강해진다.
두 사람의 부끄러운 모습을 내려다보던 달빛이 잠시 자리를 피해주기라도 한 것일까? 흘러가던 검은 구름에 가려져 달빛이 숨으며 짙은 어둠이 내려앉는다.
짙은 어둠 속 둔탁하고 찰진 소리가 한층 강렬하게 울려 퍼지고 덜컹거리는 유리창과 진동. 커튼 너머로 일렁이던 그림자는 달빛이 숨음과 동시에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살짝 열린 베란다 문을 통해 질척함이 묻어나는 끈적한 소리와 헐떡이는 두 사람의 숨소리가 두터운 커튼을 뚫고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거실 한 편에 잠들어 있는 안정수를 깨우듯 울려 퍼지는 소음과 차가운 밤공기 속에 숨은 야릇한 체취가 거실에 들어오지만 아직 그를 깨우기엔 역부족인 모양이다. 그런 그를 깨우듯 점점 격렬해지는 소음과 헐떡임 속에 숨은 가냘픈 여인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
안정수는 눈썹을 잠깐 꿈틀했을 뿐 깨어날 기미가 없자, 누군가가 화라도 난 것일까? 세차게 밤공기가 문 틈사이로 세차게 불어 들어오며 두터운 커튼을 반쯤 휘날린다. 동시에 구름 속에 숨었던 달빛이 비추며 베란다 전경을 훤히 비춘다.
굳건하게 버티고 선 남성의 두 다리와 애처롭게 떨리며 버티고 있는 여성의 다리. 여성의 몸은 유리창에 짓눌리듯 달라붙어 있다. 특히 탄력적인 엉덩이는 두툼하게 퍼진 떡처럼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관능적이다.
동시에 두 사람의 하반신이 맞부딪힐 때마다 아까와는 달리 끈적한 소리가 더해져 한층 질척한 소리를 자아내고, 깨끗했던 유리창에 투명하고 끈적한 물방울이 튀며 달빛을 받아 조금씩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이 관능적인 모습을 더 보여줄 용의는 없는지 세차가 불어왔던 바람은 흩어져 사라지며 두터운 커튼자락을 다시금 내려놓는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하나의 그림자. 그 그림자는 3개의 다리와 3개의 손이라는 기이한 모습을 커튼 너머로 보여주고 있다.
“하악! 하악! 하악!”
어느 순간 머리 쪽에서 들려오던 질척하고 농밀한 키스 소리가 그치자 거친 여인의 숨소리가 다급하게 토해진다. 흔들리는 그림자와 유리창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는다. 그와 동시에 베란다로 스며들던 달빛도 잠시 흐려지며 그림자의 음영도 흐려진다.
“…….”
지금까지 폭풍 같았던 소음의 향연이 거짓말처럼 고요함이 찾아오고, 베란다 너머에선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만이 조용히 들려온다.
“기껏 뚫었으니 이쪽도 써줘야겠지?”
“자, 잠깐 거긴?! 하으읏……!”
그 조용한 정적 속에서 정나은의 달콤한 목소리가 살짝 스며든다. 무언가 깊고, 깊은 곳을 단번에 꿰뚫린 듯 가슴속에서 토해져 나온 야릇한 비음.
동시에 흐려졌던 달빛이 다시 강렬해지며 베란다에 선 두 남녀의 그림자를 비춰준다. 짙은 어둠을 틈 타 그들의 그림자는 아까 있던 곳에서 옆으로 이동했다.
바로 커튼과 커튼 사이 손가락 한 마디정도의 작은 틈 앞으로…….
그 좁은 커튼과 커튼 사이의 틈으로 요염함을 품은 야릇한 살색을 엿볼 수 있다. 그 틈 사이에 정확하게 정나은을 세웠는지, 얇은 민소매 티는 젖은 채 반 이상 흘러내려 그녀의 매끄러운 복부 라인을 엿볼 수 있게 해주고, 유리창에 짓눌려 형태가 일그러진 젖가슴은 그 부드러움을 상상하게 해준다. 그 한없는 부드러운 젖가슴 위에 딱딱하게 솟은 작은 과실 역시 숨 막히도록 유리창에 짓눌린 채다. 탐스러웠던 두 개의 과실이 짓눌려서 일까? 가슴의 골짜기 속에 흐르던 깨끗한 땀 한 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는 게 언뜻 보인다.
“아, 아아……흐으읏…….”
정나은의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옴과 동시에 자신을 꿰뚫은 그 감각을 줄이기 위해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녀의 얼굴 앞의 유리창을 입김으로 잔뜩 흐리게 해 그녀의 얼굴은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커튼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가 눈에 띌 정도로 애처롭게 떨리고 있어 그녀가 느끼고 있을 어떠한 감각을 예상케 해준다.
그렇게 커튼 너머로 그녀의 그림자가 애처롭게 얼마나 떨었을까? 어느 정도 익숙해질 시간이 지나자 그녀 뒤에 서 있던 큰 그림자가 크게 일렁인다. 퍼억! 하는 지금까지의 어떤 소리보다 찰지고 둔탁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정나은의 그림자가 놀란 듯 튀어 오른다.
“크윽!”
“하으으윽!”
쾌락이 절절이 묻어나는 깊은 남자의 탄식과 애처로운 여인의 신음이 하모니를 이룬다. 뒤에선 큰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쾌락을 탐하기 위해 더욱 작은 그림자를 유리창으로 밀어붙이며 달라붙는다.
커튼의 틈으로 욕정이 뚝뚝 흐르는 김우영의 눈이 살짝 거실 안을 엿보았지만 금세 그가 토해낸 뜨거운 숨결로 유리창이 흐려지며 그의 얼굴도 보이질 않는다. 유리창에 짓눌려 터질 듯 달라붙은 두 개의 그림자는 마치 하나처럼 겹치더니 강하고 강하게 부딪히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크흑! 햐으으……끄흐읏!”
“후우! 후욱! 후욱!”
두터운 커튼을 뚫고 울려 퍼지는 두 사람의 깊고 낮은 신음과 헐떡임이 거실 안을 휘젓고 다닌다. 베란다를 터트릴 듯 울려 퍼지는 찰진 소리와 덜컹거리는 유리창의 진동이 절묘한 합주를 시작한다.
작은 그림자는 애처롭게 덜덜 떨리더니 곧이어 큰 그림자 속에 완전히 파묻혀버린다. 하지만 뒤에서 가해지는 힘을 버텨내기 위해 어깨 위로 올라온 그녀의 양 팔의 그림자는 유리창에 달라붙어 계속해서 흔들린다.
커튼의 틈 사이로 보이는 살색은 유리창과 조금의 틈도 없이 밀착해 점점 열기를 띄어가는 그녀의 몸 때문에 살짝 뿌옇게 변하고 깨끗해지길 반복한다. 그녀의 몸이 열기를 더해감에 따라 샘솟는 땀방울은 유리창과 맞물리며 새로운 소리를 자아낸다.
뽀드득, 뽀드득하는 피부와 유리창이 자아내는 새로운 이중주.
베란다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자아내는 오케스트라는 절정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간다.
“끄흐응! 하악! 하악! 하으으윽!”
억누르고 억누르던 욕망이 터져 나온 것처럼 정나은의 헐떡이는 소리가 높아져간다. 이에 호응하듯 베란다에서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는 더욱 빨라지고, 격동적으로 흐른다. 절정을 향해 치닫는 야릇한 향연을 더 이상 보기 힘들었는지 달빛이 구름 뒤로 숨으며 그들의 모습을 잠시 흐릿하게 어둠 속으로 숨겨준다.
어두워졌기에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찰지면서도 질척한 타격음. 덜컹거리는 유리창의 진동과 피부가 맞닿으며 자아내는 뽀드득거리는 소리. 가슴 속 열기를 토해내듯 터져 나오는 두 남녀의 헐떡임은 베란다를 넘어 두터운 커튼마저 뚫고 거실에 잠든 안정수를 농락하듯 휘감는다.
“하아악! 아, 아아앗?!”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오케스트라는 소리 높여 절정에 오른다. 정나은의 달콤하면서도 애처로운 신음소리를 끝으로 격동적으로 연주되던 베란다의 오케스트라는 대단원을 맞이한 것처럼 크게 단 한 번 소리 높여 울려 퍼지곤 고요해진다.
어둠 속에서 커튼의 틈 사이로 엿보이는 짓눌린 살색만이 유일하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구름 속에 숨었던 요요한 달빛이 베란다로 내려온다. 달빛을 가린 구름을 치우기 위해 세찬 바람이 세상을 휘감고, 남은 바람은 벌어진 베란다 문틈을 통해 거실로 강하게 들이닥친다.
세찬 바람 속에는 두 남녀가 뿜어낸 뜨거운 열기와 함께 야릇한 체취를 실고 거실 안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그 세찬 바람은 관능적인 향기를 전해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두터운 커튼을 있는 힘껏 나풀거리게 하며 누군가에게 보여주듯 부풀어 올라간다.
요요한 달빛과 두터운 커튼 뒤에 숨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
정나은은 뒤에서 가해지는 압박 때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리창에 짓눌리듯 그녀의 매끄럽고 탐스런 라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꿰뚫리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었을까? 커튼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발은 까치발이 된 채 애처롭게 버티고 서 있고, 육덕지지만 잘빠진 다리 사이에는 땀일지, 그녀가 가랑이 사이에서 흘린 쾌락의 눈물일지 모를 깨끗하고 투명한 액체가 달빛을 받아 빛나며 유리창에서 서서히 흘러내리고 있다.
곧이어 숨 막히게 유리창에 짓눌린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한 눈에 봐도 지금까지 흘린 액체와는 다른 탁하고 점성 강해 보이는 하얀 액체가 번지며 서서히 유리창 아래로 흘러내린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매끄러운 복부를 따라 올라가니 부드러움을 연상시키는 찹쌀떡 같은 두 개의 젖가슴 사이에는 열기를 품은 모양인지, 나가지 못하는 열기에 의해 살짝 김이 서려있고, 뒤에서 가해지는 힘을 버티기 위해 스스로 밀착한 두 양팔과 쫙 펴진 손가락은 그녀가 느끼고 있을 쾌락의 파도에 맞춰 이따금 크게 떨린다.
“……하아, 하아, 하아.”
두 사람의 작지만 뜨겁기 그지없는 숨결은 계속해서 유리창에 내뿜어지고 있어 목 위로 보이는 두 사람의 얼굴은 흐려진 유리창 때문에 보이지 않아, 어떤 표정으로 물들어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정나은이 유리창에 붙어 애처롭게 몸을 떨 때마다 작은 뽀드득거림이 들리고, 힘차게 너풀거리던 커튼은 바람의 세기가 약해짐에 따라 서서히 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다시 가려준다. 다시금 작디작은 커튼의 틈 사이로 엿보여지는 야릇한 살색.
미동도 않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러자 커튼의 틈 사이로 엿볼 수 있던 투명하고, 깨끗했던 액체와 탁하고 점성 강한 액체의 양이 마치 막아둔 댐을 터트린 것처럼 왈칵 쏟아지며 유리창을 타고 서서히 흘러내린다.
곧이어 주르륵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던 작은 그림자는 밑으로, 밑으로 주저앉듯 천천히 쓰러진다. 작은 그림자가 주저앉음에 따라 보이지 않았던 정나은의 얼굴이 단편적으로 엿보여진다.
열기로 달아오른 뺨과 두툼한 입술은 헐떡임을 간직한 채 여자의 얼굴이 된 그녀는 몽롱하게 눈을 감고 유리창이 주는 차가움을 느끼듯 달라붙은 채 주저앉는다. 그녀가 쓰러짐에 따라 그녀 뒤에 있던 남성의 몸이 커튼의 틈 사이로 단편적으로 나타난다. 김이 서린 유리창 때문에 김우영은 살짝 허리를 숙여 커튼의 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다.
비릿한 미소가 걸린 입과 아직도 욕정이 묻어나는 눈빛이 커튼의 틈 사이로 반짝인다. 거실 안을 엿본 그 눈빛은 곧이어 사라지고 유리창에 기댄 채 주저앉은 정나은의 곁에 김우영의 그림자가 자리 잡는다.
김우영의 그림자는 그녀의 머리 쪽으로 손을 뻗더니 정나은의 고개만을 자신의 쪽으로 당긴다. 커튼의 틈 사이로 보이던 정나은의 단편적인 얼굴은 또다시 두터운 커튼 속으로 숨으며 그녀의 그림자가 커튼 너머로 비춰진다.
힘없이 커튼 너머로 당겨진 작은 그림자는 큰 그림자가 시키는 대로 고개를 쭉 뻗더니 큰 그림자의 하반신과 겹쳐진다. 갑작스레 크게 떨린 작은 그림자는 작은 반항을 하듯 버둥거렸지만 큰 그림자가 양 손으로 작은 그림자의 고개를 짓누르자 힘없이 큰 그림자 속으로 파묻힐 뿐이었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짙게 내려앉은 어둠의 음영은 더욱 진해지고, 세상이 잠든 것처럼 고요함이 감돈다.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두운 새벽녘. 뜨겁게 공기를 달궜던 어떤 베란다에는 그 자취조차 남아있지 않다.
다만 깨끗했던 유리창에는 질척한 액체가 흐른 자국만이 메마른 채 남아있다. 살짝 열려있던 베란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거실 한 편에 자리 잡고 잠든 안정수의 고른 숨소리만이 공기 중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고요한 거실에 때때로 귀를 간지럽힐 정도로 작은 소음이 이따금 들려온다. 작은 소음이 흘러나오는 곳은 다름 아닌 굳게 닫혀있는 안방 문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안방 문에 다가갈수록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음.
일정하게 들려오는 삐걱거리는 소리와 둔탁한 타격음. 그 속에 섞여있는 지쳤지만 어쩐지 달콤함이 묻어나는 여인의 신음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을 방망이질 시킨다. 싸늘한 거실의 공기와는 달리 어쩐지 안방 문은 열기를 품은 것처럼 보이고 스멀스멀 피어나는 묘한 분위기는 남녀 할 것 없이 본능적인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음은 밤새도록 이어졌으며, 어둠이 가장 짙게 깔린 새벽녘이나 돼서야 조용해졌다.
드디어 찾아온 정적.
묘하게 숨 막히는 정적이 깔린 거실에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문이 열리며 안방 속 뜨겁고 야릇한 공기가 서늘한 거실의 공기와 섞임과 동시에 어두운 거실에 불쑥 한 그림자가 안방에서 나온다. 달빛조차 숨은 새벽녘의 어둠은 그의 모습을 완전히 가려주지만 그 그림자의 얼굴에는 개운할 정도로 활짝 핀 미소가 걸려있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안방 밖으로 나온 그림자가 문을 닫는 소리가 어쩐지 스산하다. 문이 닫히기 직전 문틈 사이로 엿보인 안방의 전경. 거실과 마찬가지로 어둠이 짙게 내려있기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안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큰 침대 위에는 노곤하게 풀린 여인의 여체가 야릇하게 퍼진 채 비릿한 밤꽃 향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안방 문을 닫은 그림자는 거실 한 편에 잠든 다른 안정수를 바라보는 것처럼 잠시 우두커니 서있더니 끌끌끌 하는 능글맞은 웃음소리를 낸 후 소파에 눕는다. 곧이어 지친 그림자의 주인은 작은 코고는 소리와 함께 금세 꿈의 나라로 떠나버린다.
서서히 동이 떠오르고, 짙게 깔린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하는 아침.
동이 높이 떠오르지만 주말이기에 평일과 같은 활기참은 느껴지지 않는다. 안정수와 정나은의 보금자리도 비슷한 풍경이다. 두터운 커튼 너머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어도 거실에 잠든 두 사람은 미동도 않고 잠들어 있다.
하지만 곧이어 굳게 닫혀 있는 안방 문 안에서 무언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동이 완전히 떠오를 시간이 지나고 부산스럽던 안방 안에서 곧이어 정나은이 문을 열고 안방을 나선다. 그녀가 나서며 열린 안방 문 사이로 보이는 안방의 전경은 어젯밤에 살짝 엿보였던 퇴폐적인 향기는 일체 남아있지 않고 깔끔하다.
그녀 역시 언뜻 보기엔 어젯밤 자러 들어갈 때와 별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잔뜩 흐트러진 머리칼하며 어쩐지 나른함이 그녀의 온 몸에서 물씬 풍겨 나온다. 살짝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가 어쩐지 야릇함을 품고 있는 건 착각일까?
“…….”
정나은은 씻고 싶은 눈치로 화장실 쪽을 바라봤지만 소파에 누워있는 어떤 인간을 먼저 내보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간단한 세면만 한 채 아침을 차린다. 거실에는 그녀가 아침상을 차리는 부산스러움이 퍼졌음에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두 남자는 잠에서 깨어난다.
“…….”
굉장히 피곤하지만 어쩐지 즐거움이 가득한 김우영과 잠을 푹 잤기에 얼굴이 잔뜩 찌푸려지는 안정수. 두 남자의 표정이 어쩐지 대비된다.
두 남자는 거실에 앉은 채 멍하니 기다린다. 둘 사이에는 잠시 묘한 정적이 흐르는 가 싶더니 김우영이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서며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표한다.
“이거 어젯밤에는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극진한 대접 감사합니다.”
뭔가 찝찝함이 잔뜩 묻어나는 안정수의 얼굴이지만 일이 있어서 돌아가겠다는 손님을 잡을 수 없는지 현관문에 선 채 두 부부를 바라보며 감사를 전하는 김우영을 배웅한다. 안정수의 곁에는 노곤함이랄지, 피로감이 온 몸과 분위기에서 잔뜩 묻어나는 정나은이 반쯤 멍한 채로 김우영을 배웅한다.
‘하여간 자존심은 쎄다니깐…….’
김우영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도 손님이자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원수를 배웅한다는 겉치레를 마다하지 않는 정나은의 모습에 속으로 헛웃음을 친다. 동시에 곁에 선 안정수의 찝찝함이 묻어나는 얼굴에 작은 미소를 지은 채 현관문을 나선다.
철컥하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정나은은 피로한 미소를 지은 채 남편에게 아침 먹자는 이야기를 하며 부엌으로 향한다. 안정수는 그녀가 머물렀던 자리에 은은하게 남아있는 비릿한 밤꽃 향을 깨닫곤 핫팬츠를 입은 그녀의 다리에 안정수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곧이어 묘한 걸 발견한다.
“……?”
집중하느라 가늘어진 안정수의 시선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으로 향한다. 무언가가 잔뜩 메말라 붙은 하얀 자국과 그 자국의 정체로 보이는 탁한 액체 한줄기가 주륵하고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하지만 정나은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임에도 노곤함과 피로감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다.
“…….”
안정수는 아내가 차려준 아침상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피곤함이 묻어나는 아내는 어딘가 놀러가자는 이야기를 하며 꿈꾸는 소녀처럼 즐거워한다. 안정수는 아내와 함께 즐거워하며 놀러갈 곳을 입으로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식탁 아래 굳게 쥔 그의 주먹은 어쩐지 펴질 줄 몰랐다.
둥실둥실 떠가는 뭉게구름. 도시 어딜 가나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콘크리트 건물은 푸른 하늘을 가리고,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을 더욱 옥죈다.
“……하늘은 참 평화롭네.”
건물 사이로 보이는 작은 하늘에 위안을 얻기 위해 올려다보며 그 하늘에 닿길 바라는 듯이 뿌연 담배연기를 훅 내뿜어보는 이가 있다. 이 수많은 건물들에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각자의 일에 종사하며 드문드문 일에 지친 직장인들이 잠시 야외 휴게실로 나와 담배를 뻐금뻐금 피우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풍경 속의 직장인.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전쟁터에서 잠시 피신 나온 그의 이름은 안정수다.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지치는 요일이 찾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주말에 푹 쉬지 못했던 것일까? 안정수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짙게 깔려있다.
“후우~정말이지. 일도 손에 안 잡히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담배를 의무적으로 태우고 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자꾸만 주말에 있었던 일에 정신이 팔리기 때문이다. 안정수는 주말을 계속해서 돌이켜 보며 결국 잠들어 버린 자신을 탓한다.
‘그것도 문제지만…….’
안정수는 그날 밤 잠들어버린 자신보다는 다음 날 아내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한심한 자신을 탓하는 일보단 아내가 신경 쓰여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묘하단 말이야…….”
그날 밤 아내와 김우영 부장이 몸을 섞은 건 확실하다. 그것도 상당히 진하게…….
그 때문인지 아침에 본 아내의 모습은 상당히 피곤함이 배어나왔다. 어색한 자신의 태도와 가랑이 사이에 하얗게 말라붙은 진한 정사의 흔적을 스스로 눈치 못 챌 정도로 피곤해 보이는 아내였다. 그럼에도 자신과 어디론가 놀러가고 싶어 했고, 결국에는 당일치기로 외출을 강행했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왜 아내는 굳이 자신과 외출을 하고 싶어 했을까? 물론 서먹하고 어색해진 부부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덜렁이인 자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그 사실을 어필하며 힘껏 즐겼다.
‘…….’
굳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다음 날 부부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피곤함을 무릅쓰고 외출했다는 점이 안정수의 신경을 계속해서 건드렸다.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정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아내가 자신과 외출해서 거짓으로 즐거워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분명 굉장히 즐거워했지.’
오랜만에 보는 정말로 즐거운 아내의 미소.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며 점점 높아지는 자존심 때문인지, 그렇게 순수하게 즐기는 아내의 모습은 20대 이후 거의 보지 못했는데 마치 자신과 연애할 때의 그때처럼 그녀는 순수하게 즐거워했다.
“……후우우우.”
담배 연기를 토해낸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긴 숨을 토해내며 안정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답답한 의문을 토해낸다. 살을 부비고 살아도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알 도리가 없으니 안정수로써는 그녀의 이중된 모습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우영의 품에 안겨 쾌락에 헐떡이는 아내의 미소와 자신의 품에 안겨 즐겁고 순수한 아내의 미소.
두 미소의 의미를 모르겠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아는 건 간단하다. 그냥 아내를 붙잡고 왜 그랬냐는 말 한마디.
딱 한 마디면 된다.
하지만 그 한 마디를 건넬 용기가 나질 않기에 몰래 지켜보기로 했거늘…….
“두 번째는 힘들겠지.”
김우영 부장의 대담함을 생각 못 한 게 안정수의 패착이다. 아무리 대담한 그여도 또 다시 집으로 초대하는 건 너무나 수상쩍어 할 것이다. 게다가 설마하니 남편이 있는 집에서 정말로 남의 아내를 탐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도 안 된다고 결론내고 마음 한 편으론 아내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나 안도감을 느끼자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감의 끈을 잠시 놓았더니 물밀 듯이 몰려오는 피로감에 컨디션을 조절 못 한 게 또 다른 가장 큰 패착이기도 하다.
“……쯧.”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 아래 깔려 헐떡이는 모습을 기습적으로 들이밀어진 상태에서 본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쉬울 리 없다. 하지만 한 번 실패했기 때문일까? 마음 속 부글부글 끓던 질투심과 같은 뜨거운 감정은 많이 가라앉고 두 번의 실패를 막기 위해 한층 차분히 가라앉은 자신을 느끼고 있다.
“…….”
두 번의 실패를 없애기 위해 냉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주말에 아내와 외출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머릿속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그 방법을 써야하나?”
안정수는 이 방법만은 쓰기 싫었는데, 어떤 의미론 이 방법이 아내의 의도를 알아보는 것엔 틀림없다. 오히려 집에서 확인하는 방법보다 더욱 적합하다.
바로 김우영 부장과의 불장난.
자신이 아내에게 한 가장 큰 잘못인 하룻밤의 불장난.
분명 김우영 부장은 자신에게 그런 자리를 꼭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한 번으로 족할 그런 자리를 종종 이런 자리를 가지자고 구태여 말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그냥 상투적인 누구나가 하는 언제 한 번 저녁 먹자는 직장인들의 겉치레 같은 말. 물론 저녁 한 번 먹자는 말과는 괴를 달리하는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묘할 정도로 안정수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마치 이런 자리가 한 번 더 있을 것이란 걸 확신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이 약속 아닌 약속이 왜 가장 이 상황에 적합하냐고 하면……바로 그 하룻밤의 불장난의 대상이 아내가 될 수도 있다.
상대도 모르고, 그녀를 안는 자신도 상대방의 정체를 모르는 말도 안 되는 하룻밤의 불장난.
“하지만 그걸 가능케 한단 말이지…….”
지금 돌이켜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여자와는 미리 말을 맞춰놨을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여자도 상대방이 바뀌는 걸 모를 수 있는 상황.
그렇기에 안정수는 이 생각을 머릿속 한 편에 밀어놓고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날 밤 아내의 의도를 확인하지 못했기에 이젠 아내 몰래 그녀의 의도를 확인하기엔 이것 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아니, 이 방법이 좋다고 그의 가슴 속 작지만 깊게 뿌리내린 배덕감이 자신에게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처럼 자신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만약 그런 자리에 아내가 나온다면? 그 자리에 나오기 위해 아내는 김우영 부장과 미리 말을 맞췄을까? 아니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처럼 사랑하는 아내는 그 자리에 억지로 불려나온 것일까?
“꿀꺽…….”
안정수는 손에 쥔 담배가 서서히 타들어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아내의 모습에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걸 느끼며 마른침을 삼켜보지만 갈증은 더해져만 간다.
“동시에 아내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겠지.”
아내가 그런 자리에 안 나온다는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전 자신이 마련한 무대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올라가는 김우영의 모습에서 확신을 했다. 그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자기 물건을 과시하듯이 자신이 제안한 무대에 아내를 끌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확인하고 싶은 아내의 의도는 그때 확실히 밝혀질 것이다.
미리 말을 맞추고 나왔을 것이냐, 모르고 나왔을 것이냐…….
자신은 아내의 반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모르겠다. 쿵쾅거리는 심장의 두근거림과 긴장으로 인해 몸이 뻣뻣하게 굳는 걸 보면 아직도 자신은 망설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다시 한 번 그 자리에 자신이 선다면 억눌렀던, 외면했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 넘쳐흐를 건 확실하다.
“하지만 김우영 부장은…….”
다 타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그를 떠올린다. 야외 휴게실로 나오며 스쳐지나가듯 보았던 그의 텅 빈 부장 자리.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를 비웠다.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그의 행동이지만 텅 빈 그 자리를 볼 때마다 아내를 만나러 간 건 아닐까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
“후우…….”
안정수는 작은 한숨을 쉬며 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적인다. 수많은 연락처 중 가장 위에 올라와 있는 메롱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
아내의 전화번호다.
눈매 사나운 마귀할멈이라고 저장해둔 걸 아내에게 들켜 등짝을 시원하게 얻어맞은 뒤 그녀가 바꿔준 이름이다. 서로 사람 만나는 일을 하기에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연락하는 걸 자제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 되어버렸다. 지금에 이르러선 이 암묵적인 룰 때문에 연락하는 것에도 작은 용기가 필요할 정도다. 메롱이라 적혀있는 연락처에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
겨우 전화 한 통. 이런 것에 망설이고 있는 걸 보면 자신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서로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너무 기대고 있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안정수는 자꾸만 마르는 입 때문에 갈증을 해소하듯 마른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절전 기능 때문에 자꾸만 꺼지는 스마트 폰 액정을 하염없이 내려다본다. 액정 위에 굳은 것처럼 영원히 움직이지 않던 손가락이 파란 전화 표시를 꾹 누른다.
“…….”
경쾌한 효과음과 동시에 통화가 연결되는 연결음이 스마트 폰에서 흘러나온다. 짧은 연결음이 한 번 울릴 때마다 안정수의 가슴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자신의 손가락을 말리느라 고역이다. 연결되지 않는 스마트 폰 액정을 외면하듯이 그는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려버린다.
안정수의 손아귀에 쥔 스마트 폰에서 흘러나오는 통화 연결음이 고통이라도 주는 것처럼 그의 손은 움찔거리며 통화 종료 버튼 위에서 까딱거린다.
10초가 이렇게 길었던가? 지금 통화를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난거지?
안정수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도 귓가에 울리는 통화 연결음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흘러가는 시간에 압사 당할 것처럼 긴장이 고조된다. 뻣뻣하게 굳은 손가락은 이 긴장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듯 스마트 폰 액정 위에서 다른 생물처럼 움찔거린다.
“…….”
통화를 시작한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이제 곧 부재중일 때 흘러나오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건 아닐까? 역시 일이 바쁜 걸까? 주말이 아니어도 근래 굉장히 일이 피곤해 보이긴 했는데…….
온갖 추측과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귓가에 울리는 통화 연결음을 더 이상 참기 힘든 것처럼 경련하듯 움찔거리던 그의 손가락은 계속되는 통화 연결음이 끝나는 순간에 맞춰 통화 종료 버튼을 꾹 눌러버린다.
“하아…….”
자신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자신을 옥죄는 통화 연결음을 견디기 힘든 손가락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자기 멋대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것일까?
안정수는 혼란스런 머리와 아직도 진정이 안 되는 가슴을 부여잡고 올려다보고 있던 푸른 하늘을 향해 길고 긴 한숨을 다시 한 번 토해내곤 일터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그의 주미니 속에 들어 있는 스마트 폰.
그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기까지의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외면하듯 하늘을 올려다보았기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직전에 스마트 폰 액정이 순간적으로 초록색으로 변하며 통화 연결이 되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그에게 있어선 어떤 의미론 행운이었다.
아무런 특색이 없는 작은 방. 마치 묵고 가는 것만이 목적으로 만든 상업용 시설처럼 보인다. 한 사람이 앉을 정도의 작은 소파와 탁자. 간단한 샤워시설은 방금 전까지 누군가가 이용한 것처럼 아직 수증기가 자욱하고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다.
방구석에는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그 위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듯 때때로 침대보가 흔들리고 있는데, 그 아래에는 침대 위에 있는 사람이 벗어 둔 것으로 보이는 정장 옷가지가 흩어져 있다.
침대 아래 수많은 옷가지들 중 여성용 검은 정장 치마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마트 폰은 시끄러운 벨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침대 위에서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왼손이 힘겹게 침대 아래로 향한다.
여성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때때로 경련하듯 움찔거리고 있었으며, 약지에는 심플한 디자인의 은색 반지가 끼워져 있어 결혼했다는 걸 알려준다. 여성의 왼손은 어떠한 힘을 받고 있기라도 한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기묘하다.
힘겹게 정장 치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낸 여성의 손은 액정 위에 뜬 덜렁이라는 연락처 저장 이름에 크게 움찔거린다.
곧이어 여성의 손에선 어쩐지 다급함이 묻어나며 자신의 몸을 흔들리게 하는 무언가에 말을 건다. 시끄러운 벨소리에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가 묻혀 잘 들리진 않았지만 벨소리 속에 숨어있던 찰진 타격음이 잠시 멈추는 건 알 수 있었다.
여성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통화 연결 버튼을 누르며 액정의 화면이 초록색으로 바뀌며 연결됐음을 알리는 순간 여성의 왼손은 큰 힘이라도 받은 듯 튕겨져 나갈 듯 흔들린다. 여성의 왼손을 벗어난 스마트 폰은 침대 아래 옷가지에 툭하고 떨어진다.
“……아!”
시끄러웠던 벨소리가 멈추자 격렬히 흔들리는 침대보와 찰진 타격음은 조금 전처럼 작은 방 안을 터트릴 듯이 울려 퍼진다. 이젠 다급함과 초조함까지 묻어나는 여성의 왼손은 재빠르게 침대 아래로 향하지만 무언가에 붙잡힌 것처럼 그녀의 왼손은 스마트 폰과의 거리를 조금 남겨두고 좁혀지질 않는다.
초록색이던 스마트 폰 액정이 금세 붉게 변하며 전화가 끊어진 걸 알리는 걸 확인한 것일까? 아니면 침대 위에서 그 아래로 향하는 그녀를 막는 무언가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녀의 가느다란 왼손은 허공에서 쫙 펴져 부들부들 떨리더니 곧이어 축하고 늘어진다.
이제는 검게 변한 스마트 폰 액정. 그 위에 축 늘어진 여성의 왼손과 약지에 끼워진 은색의 반지는 은은한 방의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다. 마치 도움을 청하는 것 같은 그녀의 손을 스마트 폰과 떨어트리기라도 하듯 축 늘어진 그녀의 손은 무언가의 힘에 의해 잡아당겨진 것처럼 스르륵 침대 위로 사라진다.
스멀스멀 땅거미가 지는 시각. 영업팀 직장인들은 김우영 부장이 온 뒤로는 칼 퇴근이라는 꿀 맛 같은 행복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을 깨부수려는 것처럼 김우영 부장은 저번 주부터 퇴근시간 1시간 전에 슬금슬금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처리한다.
당연한 직장인의 모습이 어색한 김우영 부장.
오늘도 어김없이 오렌지 빛 황혼이 세상을 뒤덮기 시작하자 사무실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보고 있다. 처음에는 영업팀 사원들도 상사의 눈치를 살폈지만 곧이어 그 눈치 보는 일도 얼마 가지 않고, 보란 듯이 퇴근 시간에 초침이 가는 순간 쏜살같이 사라진다.
퇴근 시간 후의 영업팀 풍경은 비슷하다.
일이 남아있어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 몇몇 사원들과 김우영 부장과 어째서인지 항상 남는 안정수 사원. 이것이 이 회사의 영업팀 야근 풍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