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티르얀과의 듀오게임 (68/207)



〈 68화 〉티르얀과의 듀오게임

그녀가 점프를 해서  뒤에 앉더니 곧바로 허리를 양팔로 조여 왔다.

“간다!”

손잡이를 앞으로 밀자 미디어에서 보던 것처럼 말이 달리는 것과 똑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다가닥.. 다가닥..!


“야, 이거 재미있다. 이 아이템 끝내주는데?”

뒤에서 티르얀이 신나서 혼자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처음 타보는 것이라 재미있긴 했다.
말 움직임에 따라 온 몸이 흔들리니 생동감이 있어 달리는 느낌이 새롭고, 또 마치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내가 직접 달리는 느낌인 것 같기도 했다.

헌데 말이 빨리 달리기 시작하자 몸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녀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를 더욱 바싹 끌어안아야 했다.
그러니 자연히 그녀의 가슴이 등을 뭉클하게 눌러 오는 바람에 기분이 조금 야릇하기는 했다.
그녀도 그것을 느꼈는지 두 팔로 감고 있던 내 허리를 느슨하게 잡으며 가슴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한순간 떨어졌다가도 몸이 앞뒤로 흔들리니 다시 꽉 잡으며 몸을 밀착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헌데 한동안 달리고 있는데 그녀가 스스로 찔리는게 있는지 갑자기 내게 느닷없는 말을 했다.

“너 이상한 생각했지?”

“무슨 생각?”

“지금 상황에 대해서 말야.”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말한 뜻을 알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 했다, 네 가슴이 등을 짓눌러 오는데 남자라면 그건 당연한거 아닌가?”

“네가 날 여자로 생각은 하고 있단 말이지..?”

“그럼 네가 남자냐?”


“하긴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난 예쁘기로 소문났으니까, 그런데  날 여자로 보지 않는 줄 알았지.”

“예전에도 말했잖아, 만약 너와 솔로게임에서 만나 나에게 패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이게 정말!”


꽉!


“아얏, 뭐하는 거야 떨어질뻔 했잖아!”


그녀가 거침없는 내 말에 잡고 있던 옆구리를 힘껏 꼬집었다.
물론 지금 한말은 당연히 장난이다.
전에 그런 말을 했을 때는 그 말이 정말 진심이었지만 이제 듀오게임에 같이 참가하고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녀가 조금은 동료라는 느낌이 들어, 만약 정말 솔로게임에서 만나 내게 패한다면 최대한 고통 없이 죽여주기로 이미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방금 전 티르얀이 6급 플레이어 두 명을 죽였던 것처럼 그렇게 최대한 고통 없이 깔끔하고 빠르게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와 허물이 어느 정도 없어졌다고 생각됐는지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또다시 농담이 불쑥 튀어 나왔다.


“어차피 이제 실버 티어로 승급되어 그 맵에서 다시 하위 레벨자로 시작하게 되면 다른 놈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텐데, 혹시 다음에 실버 티어 맵에서 나랑 만나게 되면 내가 먼저 널 강간하고 살려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그 다음  너대로 경험치를 획득하다가 다른 놈에게 패해 혹시 당하더라도 나에게 이미 당했으니 조금은 덜 억울할 것이고.”


“그야 뭐...? 아무튼 넌 강간은 안돼.”


“그럼 알아서 네가 주든가.”


“뭘.. 줘..?”

“니 몸뚱아리.”

“이 쒸.. 정말 이게 못하는 말이 없어, 너 죽을래!?”

꽉!


“아흐악!”


이번에는 정말 장난 아니게 세게 꼬집어 눈에서 눈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헌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가 제안한 것을 잘 생각해 보면 서로 윈윈 아닌가.
혹시라도 다음번에 실버 맵에서 서로 만난다면 시작의 섬에서 처음  것이고 그럼 맵에 떨어지고 난 후 방법을 찾아 서로 만나, 나와 그녀가 섹스를 한 후 다시 각자 헤어져 서로가 경험치 사냥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가 다른 놈에게 패해 혹시라도 강간을 당한다면 이미 나와 섹스를 한 상태이니, 그녀로서는 처녀막이 찢기는 아픔도 없을 것이고 억울함도 덜할 것이 아닌가.
나 또한 물론 그녀의 육체를 즐기니 좋은 것이고.


모르는 놈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것보다는 그래도 아는 나에게 먼저 주고 나면 그녀도 낫지 않을까 하는게 내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지만.


티르얀은  꼬집고 나서 어쩐 일인지 한동안 말없이 등 뒤에서 내 허리만 꼭 끌어안은 채 무슨 생각인가를 골몰히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수는 없었지만 하도 말없이 가만히 있어서 나도 말을 걸지는 않았다.


한동안 달리다가 문득 맵을 열어보니 이제 자기장과의 거리가 다시 5키로로 멀어져 있었고 안전지대와는 44키로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안전지대에 지금 먼저 도착해 있는다고 해도 이제는 겁날 것은 없었지만 남들보다 먼저 가있어 봐야 아무도 없었기에, 이제 속도를 늦추어 다시 대각선으로 방향을 바꿔 다른 플레이어들을 찾아다녀 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숨어 다니며 눈치를 본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만을 찾아다녔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 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9레벨이니 혹시라도 10레벨 파티원을 만날까봐 조금 꺼림직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기는 했다.

빨리 10레벨로 승급 됐으면 좋으련만, 웬일인지 한동안 찾아다녀 보아도 다른 놈들은 눈에 띄지 않고 있었다.
문득 생존자수를 확인해 보니 확실히 맵이 좁아서 그런지 벌써 42명이 죽어 이제 158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플레이어들이 모두 한곳으로 몰렸나..?’

30분을 찾아 헤매 봐도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아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만 흘러가다가 플레이어들이 다른 곳에서 죽어버린다면 실버 티어로 승급하기도 힘들겠군’


천천히 몰며 가던 것을 이제는 속도를 좀 더 높여 빨리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틈틈이 아이템이 있을만한 곳을 둘러보았지만 아이템은 웬일인지 잘 나타나지 않았다.

‘듀오게임에는 아이템이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군.’

아이템이 너무 보이지 않으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티르얀이 죽인 6레벨 두 놈에게서도 아무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드디어 귓가에 어렴풋이 무슨 소린가 들려왔다.


“싸우는 소리야, 그것도 한 두명이 아냐!”

티르얀이 지금껏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잠자코 있다가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자 조금은 진중한 목소리로 조용히 외쳤다.
헌데 그녀의 말에 약간 어이가 없어 내가 한소리 했다.


“이곳이 듀오 맵이니 싸운다면 당연히  두사람이 아니고 기본이 네 사람이잖아.”


“아 참 그렇지, 하도 듀오 게임을 한지 오래 돼서 깜박했어.”

너무 오래 생각을 하다 보니 정신이 멍해진 모양이다.
나와 티르얀은 말에서 내려 정수리의 스위치를 끈 후 인벤토리를 바닥과 닿게 해 말을 그 안으로 밀어 넣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헌데 경계를 하며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는 와중에 티르얀이 속삭이듯 엉뚱한 말을 해대고 있었다.


“쥴수야 네가 했던 말 많이 생각해 봤어.”

“...... 무슨 말?”


“아까 네가 말했던 다른 놈에게 강간 당할 바에야 혹시라도 솔로게임에 너와 같은 맵에 떨어진다면 차라리 너에게 먼저....,”

“이런 미친.. 여태까지 그걸 생각하고 있었단 말야?”

“미친이라니? 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건 농담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괜히 심력 낭비할 필요 없어. 어차피 본체는 니네 행성에 있는데 누구에게 따먹히던 그게 무슨 상관이야.”


“따먹히는건 또 뭐야?”


“니 몸뚱아리 다른 놈에게 강간당하는걸 지구에서는 따먹힌다고도 하거든.”


“아, 그래? 아무튼 누가  따먹기 전에 너한테 먼저 따먹힌다면 내 수치스러움이 조금 덜 할  같기도 해서 말야.”


“그건 모르겠고, 그딴 거는 너 혼자 결정하고 지금은 경험치 올리는 것에나 신경 써. 지금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때냐!”


“알았어. 근데 왜 소리 치고 지랄이야!”

 시답잖은 것으로 지금까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녀가 순진한 건지 바보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완전 백치미군.’


잠시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50여 미터 이상 전진하자, 앞쪽에 움푹 들어간 제법 넓은 공간에서 역시 두 파티원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네 놈들 모두 7-8 레벨 정도 되겠군.’


설사 네 놈이 모두 7레벨이라 해도 모두 죽인다면 나는 10레벨로 승급된다.
놈들을 발견하자 나는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미친 듯이 기뻤다.
드디어 잘만하면 지긋지긋한 브론즈 티어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브론즈 티어를 벗어나게 되면 한달만에 실버 티러로 승급되는 것이니 만큼 짐작대로라면 그건 전무후한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국장이나 지아가 나를  들들 볶겠군.’

한달만에 실버티어로 승급된다면 그건 운이 아니라 본연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완전히 증명되는 되는 셈이다.
하긴 지금까지도 그것은 마찬가지였겠지만.


놈들이 싸운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모두들 체력이 낭비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네 놈의 능력이 비슷하니 한동안 지켜보는 사이에 어느덧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고맙게도 서로의 체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놈들의 싸움을 주시하다가 내가 놈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옆에서 암코양이처럼 엎드려 있는 티르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넌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아까처럼 풀이나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저 놈들은 모두  혼자 처치할 테니까.”

“너 혼자..?”


“그래, 너하고 같이 한 놈씩 맡는다면 나머지 두 놈은 분명 도망치려고 할 거야. 그러니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만 막고 있어.”

“네 말이 맞긴 하겠다. 그런데  혼자 괜찮겠어?”


“괜찮으니까 그러는 거지.”

“알았어, 그럼 나도 도망치지 못하게 막으면서 도와줄게.”

“그건 맘대로 해.”

“정말 항상 멋대가리 없게 말한다니까.”

티르얀은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잠깐 힐끔 쏘아보더니 이내 놈들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의 체력이 어느 정도 소모됐다고 생각하자 이제 결판을 보기 위해 오른손에 오로검을 생성시킨  왼손에도 부적 두 장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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