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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화 〉177화 - 이길 수 없는 싸움 (178/190)



〈 178화 〉177화 - 이길 수 없는 싸움


"이안!!"

그리고 청아한 아내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나의 눈동자에는 은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카이산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카이산은 그레이스의 자그마한 주먹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마자 표정을 굳히고 허리를 틀어 양팔로 막으려 했지만 그녀의 작고 하얀 주먹에 닿는 순간 무엇인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날아갈 수 밖에 없었다.

쾅!!

꾸드득...!

"큭...!"

"여보...!!"

경악어린 카이산의 신음소리, 난 남자답지 못하게도 그녀를보자마자 참아왔던 죽음의 공포가 물러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에 난 황급히 눈가를 소매로 감추며 일어섰다.

아내는 카이산이 야만인들 사이로 튕겨져 날라간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카이산을 날려버린 뒤로 야만인들의 찌릿찌릿한 살기가 느껴진다.

분명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순간 저들은 우리를 향해 달려들겠지.

하지만 희안하게도 난 지금 이 상황이 무섭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살며시 시선을 돌려 아내의 작은 몸을 바라봤다.


그럼에도 나의 눈에는 너무나도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럽게 보이기만 했다.

"괜찮아?"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은채 아내가 물어봤다.

"응..."


"좋아..."


".... 응"

난 아무런 말도 할  없었다.

 앞에 서있는 아내를 바라보고 뒤늦게마음속의 평안을되찾고 난 뒤 자신이 무슨 짓을 한것인지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슬퍼할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않고 죽을 것이 확실한 전투를 향해 나아가다니...

내가 이런다고 기뻐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도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미안..."

".... 뭐가 미안해?"

"그냥... 전부 미안해."


"킥킥킥 지가 잘못한건 알고있나봐?"


여전히 시선을 야만인들에게 고정한채 장난스럽게 웃는 아내의 모습에 나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졌다.

심장이  죄어오는 것만 같은 죄책감에  천근만근 무겁기 그지없는 입술을 간신히 들어올려 말했다.


"응...  욕심 때문에 슬퍼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어.."


"...."


진지하기 그지없는 내 말이 끝나자 아내는 힐끗 눈동자만 돌려 죄책감으로 엉망인  얼굴을 바라보다 재빠르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흐으음..."

"...."


"당신... 항상 바보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 후후후 바보같긴하네."

살며시 미소를 띄는 아내를 바라보던 나는할말이 없었다.


나르시즘에 빠져 역량 차이도 신경쓰지 않고 달려드는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니 짐승보다 못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뭐..그래도 내 마음에는 들어. 나 당신같은 사람 싫어하지 않거든. 후후후후 솔직히 그렇게 머리에 핏대 세우고 달려들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리고... 후후후 그렇게나 내가 좋았어?"

"미안... 그래도 당신을 포기할 수 없었어.... 그리고 다시 그때가 오더라도..."


아마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난 다시 카이산에게 도전했을거야."


"아... 진짜...!"

나의 고백에 투덜거리는 그녀의 볼에는 옅은 홍조가 띄워져 있었다.

"흥...  그래도 멋졌어 당신."


".... 그레이스"

"그래도 아직은 안되지 나한테도 못이기면서 저런 놈에게 덤벼들다니... 일 끝나면 지옥훈련 기대해..."


"응, 언제든지"


 그녀의 말에 마음속이 따스하게 댑혀지는 것을 느끼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저벅 저벅 저벅


 순간 카이산이 날려진 곳에서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2미터가 넘는 야만인들 사이에서도 특출난 신장, 그의 얼굴은 서릿발 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야만인들은 자신들의 대족장의발걸음을 막지 않고 좌우로 비켜섰으며  그는 우리들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굉장히긴 굉장하네...'

그리고...  카이산의 양팔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의 양팔은 약간 부어오른 모습만 보이고 있을 뿐 움직이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어보였다.

카이산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무슨 짓 이지?"

"무슨 짓 이지?"


카이산의 말을 똑같이 따라한 그레이스가 피식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 지금은 장난칠 기분이 아닌데?"


"아 그래요? 저도 그래요. 그리고... 저도 물어봤잖아요.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요?"

"뭐...?"

"지금 왜 제 남편과 싸우고 있는거죠? 그리고... 지금 죽이려한거 맞죠?"

한쪽 눈썹을 들어올린 카이산이 이어진 그레이스의 말에 무표정하게 침묵했다.


"뭐야... 대족장씨 입에 꿀이라도 바르셨나요? 왜 말을 못하시죠?"


"...."

"지금 이러는거 계약 위반 아닌가요?"

".... 흥"

"무시로 끝인가요? 대족장씨?"

"이건 결투다."


점점 더 그레이스의 눈초리가 차가워지자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카이산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남자와 남자간의 목숨을 건 결투, 거기에 네년이 끼어들 구석은 없다. 계약을 지키지 않을 생각도 없다. 저 도시는 우리들의 행군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정도면 충분히 약속을 지킨다 생각하는데?"


".... 뭐? 약속? 지금... 나랑 장난쳐?"

카이산의 대답에 그레이스가 평정심을 잃고 적의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희들의 약속은 아이를 한명 낳아주는 것으로  아니었나요? 그런데 왜 제가 당신의 아내가 되야하는 건가요?"

".... 흥 일어나 있었나?"


"그럼 씨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는데 자고 있겠냐?"

다시 분노로 가득 차 반말로 외치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결국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이 깨달았다.


지금 그녀를 막지않으면 대족장과 아내는 맞붙게 될 것이고 이로인한 여파는 아무리 대단한 아내라 할지라도 막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대족장을 죽이고 도시를 위해 이곳에 모인 야만인들을 모두 죽이려 해도 수만명에 육박하는 야만인들을 나를 보호하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선택해야 하는 수는 단 하나 뿐이었다.

대족장을 죽이고 나를 데리고 전장을 이탈하는 것.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도시는 구심점을 잃은 야만인들의 분풀이 대상이 된다.


도시가 막을 수 있을까?


전망은 부정적이었다.

당장 우리가 바삐 뛰어다니며 야만인들을 막은 것도 이들이 대족장의 반려를 구하기 위해 봐주었다는 것을 보면 결과는 너무나 분명했다.

분명 단 몇분도 버티지 못하고 도시는 야만인들의 손길에 무너져내리겠지.


그리고 세실과 클로디아는 도시와 함께 죽을 것임이 분명했다.


클로디아가 세실만큼은 살리기 위해 보낸다 하더라도... 난 그런 결말은 원하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저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중앙의 토벌군이 도착할 정도의 시간은 벌어야 한다.


결심을 다졌다.

야만인들에게 보여지는 카이산의 모습은 방금 전 그들의 외침을 듣고 파악했다.


카이산은 힘만으로 그들을 굴복한게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었다. 물론 그 유대관계가 믿을만한 구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약속의 소중함을 지키지 못한 대족장에 대한 불안감을 그들의 마음속에 심는다 해도 아무런 의미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족장은 예비에서 진정한 그들의 리더로써 지금 막 올라선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 일말의 의심이라도 남겨두는 것을 꺼려하지 않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어쩌면 저들은 약속따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서야했다.

분명 카이산에게 이기지 못한다.

방금 전 카이산에게 왼손만으로 처참하게깨진 모습을 보면 모른척 할려해도   밖에 없다.

그리고 계획대로 잘 풀린다 하더라도 카이산이 약속따위는 무시하고 주위 야만인들에게 나와 아내를 붙잡으로 명령할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나서야 한다.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앞으로 나서야 한다.

동시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 밖에 없었기에 나는 형편없기 그지없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피식 자조섞인 미소를 지은 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내는 카이산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카이산은 남자의 일에 여자는 끼어들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고 아내는 능글맞게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는 카이산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리며 점점 언성을 높여가고 있었다.


난 카이산과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논쟁을 벌이던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내가 고개를 돌린 순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서며 카이산을 바라봤다.

카이산은 미소를 지운채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런 카이산에게 말했다.


"다시 약속하죠."

".... 무슨 약속을?"

"저희들이 요구하는  도시의 안전... 그리고 당신이 요구하는 건 그레이스... 맞으신가요?"

".... 그렇다."


이미 카이산의 생각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은 그레이스였다.


아마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의 생각이 바뀌는 일은 없겠지.

내 제안을 받아들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판돈을 더 키울 필요성을 느꼈다.

"더 추가할게요."


"... 더 추가한다고?"

미간을 찌푸리는 카이산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죄책감으로 심장이 옥죄인다.


난 바짝 마르는 입술을 침으로 적신 후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감추며 말했다.

".... 아내와 도시에 있는 세실... 스이 두 여자도 계약조건에 놓도록 할게요."

그러자 그레이스는 놀란표정으로 카이산은 저의를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눈동자를 굴리던 카이산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 나에겐 의미없는 제안이다."

"아니요. 의미... 있어요."

"무슨 말이지?"

눈썹을 꿈틀거리는 카이산을 바라보며 떨리는 심장을 최대한 가라앉혔다.


그리고 방금  카이산이 야만인들을 향해 외치는 소리를 되새김질 했다.


분명 카이산은 어젯밤 전까지 동정이었다.


이유는 다름아닌 그의 커다란 물건때문...

그런그였기에 아무른 의미없다는 말은 지당한 의견이다.


하지만  사람은... 가능하다.

받아들이게 해야한다.

카이산이 나를 믿고있는 세실과 스이를 첩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야한다.


 사실이 칼날이 되어 내 몸 이곳저곳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난 말해야한다.

모두를 위해서... 말해야 한다.

꿀꺽 침을 삼킨 나는 다시금 말했다.

"스이는 산의 도시에서 만든 최고급 섹스로이드라서 당신의 물건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세실은... 여신님의 종복인 수녀에요. 아마 도시에서는 당신의 물건을 받아들일  있게 만들 방법 정도는 가지고 있겠죠."

".... 네놈이 지켜야 할 것도 내기판에 걸어서 얻으려는건 뭐지?"

"......"

숨을 골랐다.


분명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도를넘은 제안일 것임이 분명했으니깐.

내 제안을 듣고 격분한 카이산과 야만인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신... 제가 이긴다면..."

".... 이긴다면?"

"되돌아가주세요."

"...... 뭐?"

순간 잘못들었다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뜬 카이산이 되물었다.


"돌아가라고?"


"네"

"... 고향으로?"

".... 네"


"...... 큭큭큭큭큭큭 푸하하하하하!!!!"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던 카이산이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올리며 호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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