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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화 〉176화 - 이길 수 없는 싸움 (177/190)



〈 177화 〉176화 - 이길 수 없는 싸움

"그리고!!"


그 순간 귓속을 파고들어오는 우렁찬외침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카이산에게 시선을 돌리니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결혼 또한 선포한다. 불만있는 놈들 있나?"

카이산의 선포에 야만인들은 낄낄 웃으면서 외쳤다.

"불만 없다!!"

"흐하하하! 빈약하게 대접하면 두고해라!"

"오래간만에 카이산 대접 받는다!"

"하하하하!"


"기대해도 좋다! 흐흐흐 불만있는 놈들은 남자답게 앞으로 나와 나에게 도전해라!!"


 주위 야만인들의 호의적인 방응에 카이산의 선포가 누구를 향해 겨냥된 것인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카이산이 감히 너 까짓게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겠냐는  바라보며 웃는 모습에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울컥!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 카이산에게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차가운 손이 내 목을 쥐고 꽈아악 쥐는 것만 같은 공포가 밀려들어왔고 난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굳힐 수 밖에 없었다.


'무, 무슨...!'

쿵! 쿵! 쿵! 쿵!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처럼 거칠게 떨려온다.


"헉... 헉... 헉... 헉..."


시야에는 카이산만 보이기 시작하고 숨은 호흡곤란이라도 걸린 듯 가빠진다.

온몸은 석화라도 당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괄약근을 꽉 조여 간신히 지리는 것만은 피한 나는 마른침을 꼴깍삼켰다.

마치 포식자의 앞에  것만 같은 감각.


지금 앞으로 나서면 죽는다.


카이산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난 주위에서 살기를 느끼지 못하고 웃고있는 야만인들을 보고 카이산이 지금 무슨 짓을했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지금 나에게만 집중해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도 마력을 담아서.


정교하기 짝이 없는 마력조작과 기세를뿜어대는 카이산을 보고 난 강제로라도 그와의 역량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


그와 맞붙게 되면 나는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절망적일 정도의 격차, 난 뒤늦게 스스로의 힘을 갈고 닦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동시에 나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다.

난 당장이라도 혼절할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으득 씹었다.


입술에서 퍼져나가는 아릿한 통증을 느끼던 나는 곧 입가에 감도는 비릿한 피를 목구멍 너머로 꼴깍 넘겼다.


조금이지만 정신이 맑아진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쓰으으읍.... 후우우우우.... 쓰으으으읍... 후우우우우...."

한번 숨을 들이마쉬고 내쉴 때 마다 간헐적으로 거칠게 뛰던 심장이 평온을 되찾았다.


"후우...."

다시 깊게 숨을 몰아쉰 나는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말없이 카이산을 바라봤다.

두렵다.

다리는 당장이라도 힘이 풀릴  처럼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이성은 지금 앞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죽는다고 요란하게 경고했다.

나도 카이산과 맞붙게 된다면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피떡이된다는것 쯤은 이미 알고있다.

하지만... 하지만...!


난 도망칠  없었다.


내 이성은 카이산도 분명 약속은 지킬거라고 저 도시만큼은 야만의 해일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니 지금이라도 뒤로 돌아 도망치라 말하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

그러자 이성이 그레이스를 포기하기 싫으냐고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몸을 탐하지도 못하면서 어째서 그리 집착하냐 소리를 쳤다.

그리고 내 이성은 초커의 저주 때문에 그레이스가 나에게 아무런 애정이 없지 않은 것을 알고있지 않냐고 회유하듯 속삭였다.

혹시라도 그녀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것이냐고 조롱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미 모든 애정이 사라진 그녀는 절대 너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라 단정지었다.


도망칠 수 없다.


그럼 도대체 무얼 위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장소를 향해 나가냐고 내 이성이 버럭 화를 냈다.


난 차분한 눈동자로 카이산의 뒤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커다란 천막,  안에는 분명나의아내 그레이스가 있다.


두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코속 깊숙한 곳까지 죽음의 냄새가 느껴진다.


"하아....."

깊게 숨을 내뱉은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한점의 두려움도 없는 눈동자로 카이산을 똑바로 바라봤다.

분명 지금 앞으로 나서면 난 죽는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분명 슬퍼할 사람들만 있겠지.


어쩌면 나의 주제넘은 결정으로 인해 간신히 평화를 되찾은 도시도 이들의 습격을 받아 몰락할지도 모른다.


나도 바보는 아니다.

아내의 미소에 나를 향한 애정이사라졌다는 것 쯤은... 알고있다.

어쩌면 그녀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나의 시체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그 장면을 상상한 것 뿐이지만...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내 이성이 조용히 속삭였다.


[..... 도망가자 어차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시에 있으니깐그레이스를 잊고 행복을 찾아 떠나자. 그레이스도... 저 남자의 옆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거야.]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감성이 이성을 향해 조용히 설득하듯 속삭였다.

도망칠 수 없다고.


그녀가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도망칠  없다.

어째서... 도망칠  없을까.

난 차분한 눈동자로 카이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째서... 난 도망칠 수 없을거라고 단정지을  있을까.

'아...'


그리고  깨달았다.


'난... 그레이스를 사랑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난 그레이스를 포기할  없어.'

 마치 대단한거라도 깨달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레이스에게 다시 사랑을 받고 싶어.'


자그마한 소망을 품는다.


'다시 그녀와 한 이불 안에들어가 체온을 나누고 싶어.'

자그마한 결의를 품는다.


'그리고....'

어느새 나의 마음속에 두려움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저 호수 위에 자그마한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따스하기 그지없는 마음  파문은 부드럽게 나의 등을 떠밀었다.

'다시 나의 아내와....'


지금 앞으로 나서면 분명 난 후회하게 될 것이라 이성이 힘없이 속삭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나의 발걸음에 주저함은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탁....

순간 고요함이 공터에 맴돌았다.


카이산은 의외라는 듯 약간의 놀람을 눈동자에 머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잘못봤군."


한참을 침묵하던 카이산은 마치 자신의 생각이 전면으로 부정당하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곧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을 뿜어내며 무표정하게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나를 위협하듯 짐승처럼 목구멍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나에게 도전하겠다는건가?"


엄청난 위압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처음 그에게 살기를 받았을 때와는 다르게 가슴에 한점의 동요도 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그때보다 더한 압박감일터인데...  몸이 잘게 떨리는 것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참.... 세련된 자살방법이네 큭큭큭 그래도...'

그와 동시에 나는 자학적인 미소를 띄웠다.


'왜 질것같지가 않지?'

똑바로 카이산의 눈을 바라보며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 큭큭큭큭"


내 눈에 담긴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듯 카이산은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에 배여있는 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포악함과 흉흉함 그리고... 즐거움을 느낀 나는 부들부들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내 이성은 다시 비명을 내지르며 당장 물러나라고 소리쳤지만... 난  외침을 무시하고 속삭였다.


'너도 이미 알고있지? 절대 도망칠 수 없다는건. 하하하... 정말이지... 이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이 불리하다니깐...'

그레이스를 상상한 나는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좋다... 룰은 간단하게 가지... 맨손으로 상대방이 죽을때 까지 시간은... 제한없음. 동의하나?"


"상관없어."


두 손을 들어올리며 말하자 카이산은 호쾌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흐하하하하! 좋아! 좋아!! 사내새끼도 아닌줄 알았는데... 어제의 나를 쳐죽여버리고 싶을 정도구만! 흐흐흐흐! 좋아... 붙어보자고 죽을때까지..."

우드득...! 우득! 우드득...!

고개를 좌우로 꺽으며 팔을 빙빙 돌리면서 몸을 풀기 시작하던 카이산은 꾸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그래도... 나도 약한  괴롭히면서 즐기는 놈은 아니니깐... 흐흐흐 지금부터 왼손만 사용해서  죽여주마..."

"...."

난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두눈을 날카롭게 뜬 후 카이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런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걸까 카이산은 피식 웃으면서 터벅터벅 나에게걸어왔다.


그리고 카이산이 사라졌다.

"!!!!"

카이산이 사라지는 순간 온몸의 털이 비쭉 서는 것을 느낀 나는 곧바로 주저하지 않고 옆으로 몸을 내던졌다.

파아아앙!!!!


'미... 친!!'


공기가 폭발하는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어느새 나타난 카이산은 입꼬리를 실룩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덩치와는 차원이 다른 민첩함.

나는 직감적으로 단 한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는 순간 내 몸이 박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흙먼지를 들이키며 바닥을 구른 나는 단 일초도 허투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듯 허리를 사력을 다해 비틀어 그의 종아리에 발차기를 날렸다.

퍽!!


'들어갔다!!'

살이 터지는 듯한 소리, 난 분명 대미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눈동자를 들어올렸지만... 카이산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은 나는 다시 온힘을 다해 데굴데굴 옆으로 굴러갈 수 밖에 없었다.

콰아아앙!!!

대지가 흔들리고 땅이 갈라진다.


난 카이산의 왼손을 타고 땅거죽이 훤히 들어난 모습을 바라보며 모골이 송연해졌다.

엄청난 위력... 그의 왼손이 꽂힌 곳을 중심으로 땅에 금이 간 모습이 꼭 나의 미래를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여기까지 단 1초... 핏물이 세어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문 나는 튀어오르듯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잠깐의 지체도 없이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향해 왼손을 내지르는 카이산의 모습에 질겁을 했다.

빠르다!


하지만...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곧바로 고개를 젖혀  주먹을 피한 나는 파열음과 함께 볼에상처가 나는 것을 느끼며 오른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주먹을 꽉쥐고 단단하게 하체를 땅에 고정시킨 나는 곧바로 허리를 틀며 그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퍼어억!!!


두번째 타격, 하지만 카이산의 얼굴에서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살짝 내지른 쪽으로 더 주먹을 내뻗은 카이산이 내쪽을 향해 채찍처럼 왼팔을 휘둘렀다.

난 머리를 당장이라도 으깰것 처럼 휘둘러지는 손등에서느껴지는 압박감에 다시 온몸을 내던졌다.

등뒤에 느껴지는 단단한 땅바닥과 함께 다시 한번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무언가 땅바닥을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치이이익!

그의 왼발과 오른발이 땅바닥을 스쳐 움직이며 나를 다리 중앙에 두고 순식간에 다시 자세를 잡은 카이산이 채찍처럼 휘두른 왼손을 물 흐르듯이 회수해 높게 들어올렸다.

난 그의 커다란 주먹이 높게 들여올려지자 마치 거대한 바위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서는 것을 느낀 내가 황급히 구르려 했지만...  움직임은 카이산의 철근과도 같은 두다리에 막힐 수 밖에 없었다.

 0.1초의 시간안에 나에게 주먹을 내리꽂는 카이산을 보고 난 입술을 깨물으며 스스로의 죽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레이스..."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얼굴에 후욱 불어지는 뜨거운 열풍과 같은 마력의 분사를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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