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의 선택 4부
하늘이 참 파랗다.
싱그러운 과일 향기같은 공기가 코끝을 에워싸서 즐거움을 준다.
"후하"
한껏 심호흡을 해본다.
가슴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시원한것이 시골이란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행복감을 주는 곳임에 틀림이 없다.
< 복지요양소>의 벤치에 앉아 뜨게질을 하던 김여사는 문득 아이와 남편이 보고 싶어졌다.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사랑스런 남편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르고, 재롱동이 민영이는 지금쯤 무얼하고 있을까?
김여사의 두 뺨으로 눈물이 흐른다.
자신에게 벌어진 엄청난일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간혹 자신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 망각할때가 있다.
그대마다 다시한번 그때 그일을 기억해야 하는것이 김여사에게는 가장 힘든일이다.
"미친년...갈보.같.은..년!"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욕을 내뱉어 보지만 서글픈 마음을 누를길 없다.
김여사는 눈을 떴다.
하얀 형광등이...어른거리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김여사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한다.
"흑..흑...흑흑"
소파뒤에서 바지를 추스리던 송사장이 한마디 툭 던진다.
"이년이 재수없게 울구 지랄이야?..재미볼거 다 보구서...."
"아..야..너 진짜 대단 하더라....내가 시팔 5분만에 싸보긴 네년이 처음이야."
송사장이 울고 있는 김여사의 어깨를 잡으며 넌지시 귓속말을 한다.
"신고하면 어찌될~까~요?이 씨발년아~히히히"
"빨리 옷 입고 꺼져! 또 따먹기 전에"
송사장이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김여사는 울음이 그치질 않는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흑..흑..흑..."
그러고도 한참을 울던 김여사는 옷을 주섬주섬 차려 입는다.
송사장이 옷을 찢지 않아서 다행이다. 스커트에 정액이 조금묻어 얼룩이 졌지만
그래도 많이 표시나지 않는다.
"개새끼!!!"
욕을 해도 시원치 않고 분해서 견딜수가 없다.
"신고를 해버릴까?. 개새끼! 얼마나 많이 이런식으로 강간을 했겠어?"
그러나 그순간 송사장의 나지막한 귓속말이 떠오른다.
"신고하면 어찌 될까~요?..이 씨발년아..히히히"
김여사는 입술을 꽉 깨물며 머리를 마구 흔든다.
"아..이제..어쩌면 좋단 말인가?."
방형식은 올해 나이 39세의 야심만만한 대기업 중견사원이다
나이차가 좀 나긴 하지만 아름다운 30세 부인과 6살 짜리 아들하나...
자기집과 자동차..전형적인 한국의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다.
가끔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곤 한다.
도대체가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이다.
좋은 일이 많으면 나쁜일도 생겨야 하는데,
방형식은 요즘 너무 좋은일이 많아서 웃음을 달고 사는 것이다.
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승진을 하더니 요즘은 사놓은 주식이 두배로 올랐다.
인생은 길흉화복이 있다지만 자신에게는 어림도 없는소리이다.
화장실에서 방형식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넥타이를 고쳐매고 퇴근준비를 한다.
"자! 이제 가자! 사랑하는 마누라와 토끼같은 새끼가 있는곳으로!"
혼잣말이지만 뱉어놓고 보니 좀 간지러웠다.
띵동~띵동~
"아이..참..어디간거야?"
"여보!문열어!"
"........"
"누구세요?"
"나야 나! 빨리 좀 열어"
방형식은 문이 열리자마자 부인을 껴앉는다.
"하하. 잠 잤어?
"아..예..좀 피곤..해..서요"
방형식은 깜짝 놀라며
"왜? 어디 아퍼?..병원가봤어?"
"아니예요..좀..몸살이 났나봐요...."
"그래..? 쯧쯧 그러길래 내가 그깟 보험회사 당장 그만두라고 했잖아?"
"........"
"어서 들어 누우라구.밥은 내가 챙겨먹을테니...어서."
"......."
남편은 언제나 처럼 집에 오자마자 샤워부터 하러 욕탕으로 들어간다.
김여사는 가슴이 메이고 눈물이 나오려는걸 간신히 참고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쓴다.
"여~보..미안해요."
그때 방문이 열리며
"엄마. 어디 아프세요?"
민영이다!
"응..민영이구나...밥 먹었니?"
"예. 정식이 집에서 밥 많이 먹었어요.근데 엄마 어디가 아파?"
"응. 엄마 아깐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
김여사는 민영이를 쓰다듬다가 나오는 눈물을 이젠 더 막을수 없다.
주르륵~
"어? 엄마. 왜 울어요?"
김여사는 민영이를 껴앉고 마구 울기 시작한다.
"민..영아...흑흑"
"엄마. 왜그래? 많이 아파서 우는거야?"
"그래..민..영아.."
김여사는 남편이 나오기 전에 눈물을 멈추기위해 아이를 일부러 떼어놓으며
짐짓 명랑한 표정을 짓는다.
"민영아. 이젠 엄마 괜찮으니 어서 네방으로 가거라"
"알았어요. 엄마"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이불을 뒤집어 쓰니 아침의 일이 꿈만같다.
방형식은 담배를 한대 물고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후~~
"이상하다! 무엇인가 내게 감추는게 있어...그래! 틀림없어! 그런데 뭘까?..."
방형식은 아내가 의심스럽다.
처음엔 몸이 아파서 그러는줄 알았다.
[어제 밤이었다.
몸살이 좀 나았는지 조금은 나아진 모습의 아내를 보니 방형식은 기뻤다.
무엇보다도 독수공방 신세를 면할수 있어서 더욱 더 좋았다.
침대위에 누워있는 아내뒤에서 아내의 몸매를 감상하던 방형식은
슬쩍 아내의 다리로 손을 가져간다. 차갑고 미끄러운 이 감촉!..
"음..역시 당신 다리는 정말."
순간 아내가 벌떡 일어나면서 방형식의 손을 냅다 치워버린다.
"여~보. 피곤한데 또 왜 그래요?"
"......"
방형식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이게 며칠만인데...아직도 아파?."
"아니요. 좀 피곤해요"
"괜찮으면 딱 한번만 하자구...응?"
"며칠만 좀 더 쉬고 싶어요."
순간 방형식은 은근히 화가 난다.
"아니 뭐야! 이거...내가 뭐 빌면서 까지 그짓을 해야하나? 나원참 더러워서."
아무말 없이 등뒤로 돌아눕는 방형식의 등뒤에서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미안해요...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몸이 아픈게 아니다.
병원에 가보래도 싫다하고. 그럼 뭐란 말인가?
방형식은 골몰히 생각하다 얼핏 이상한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혹시 바람이 났나?
"아내가 바람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방형식의 추측과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점점 확대되어간다.
"그래...어쩐지 좀 이상해...그래!! 바로 그날이었어!!
처음으로 몸이 아프다고 한날....그날밤 부터 잠자리를 거부한게 20일 이나 지났는데,
아직도야!. 회사도 그만두고 말이야..."
방형식은 속이 타는지 연신 담배를 피워가면서 안절부절이다.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설마..아내가..그..럴리가.."
머리속이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답답하기만하다.
김여사는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다.
전철안에서 본 그사람이다!
집을 나서면서 부터 줄곧 자기를 뒤따라 다니며 보이다 안보이다 했던 그사람이 틀림없다.
"여기까지 따라 왔네. 미행이 틀림없어."
"누가 보낸걸까? 혹시 송사장? 아님..남편?"
김여사는 겁이 덜컥 난다.
몸에서 진땀이 흐르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딘가로 숨어야해."
주위를 둘러보던 김여사는 길 건너 공원 한쪽 저멀리에 화장실이 눈에 띤다.
"그래..설마 여자 화장실 까지는 못 오겠지..."
갑자기 휭단보도를 건넌 김여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공원관리실 건물뒤로
뛰기 시작한다. 한참을 뛰다 뒤를 돌아다 보니 사내가 보이지 않는다.
숨이 차고 목이 말라서 견딜수가 없다.
자판기가 보인다.
동전을 집어넣는 순간 자판기 진열창으로 사내가 자신의 등뒤에 서 있음이 보인다.
갑자기 손이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을 할수가 없다.
"김미란...맞지?"
"누..누구...세요?"
사내가 씩 웃으며 두 손을 들어 보인다.
"따라와!"
"누구신지도 모르는데 제가 왜 가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김여사는 앙칼지게 외친다.
"그럼 송사장은 알지?"
김여사는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다방에서는 이름모를 추억의 팝송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커피 한잔이 다 식을때까지 사내는 말이 없다.
김여사는 어지럽다.
무엇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사내가 긴 침묵을 끝내고 입을 연다.
"나 심부름센타 직원이야"
"당신 남편 방형극이가 사무실로 찾아 왔더군. 쯧쯧.. 당신 걸렸어"
"당신 조사해보니까 골 때리더군. 당신 다행인줄알어, 송사장이 그러는데 자긴 한번
먹은 여잔 절대 다시 건드리지 않는데..꼬리가 길면 잡힌다나.."
"어떻게 할까? 내 의무에 충실할까? 당신 남편 지금 나 오기만 기다리고 있어"
사내는 아까부터 묘한 웃음을 흘리며 김여사를 보며 얘기한다.
김여사는 아무말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다.
"말..좀하슈, 답답하네"
"좋아요 아저씨, 원하시는게 뭐예요?"
김여사는 단도직입적으로 정면돌파를 한다.
"오~호, 화끈한데~ 그래! 좋았어. 나도 화끈한걸 좋아하지"
"천만원만 내."
"예?"
김여사의 눈이 크게 떠진다.
"아저씨..너무 많아요, 제가 어디서 그 큰돈을...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사내가 갑자기 화를 벌컥낸다.
"이런 씨발..난 두번 얘기 안해!! 이런 좆같이 굴면 나 그냥 간다!"
김미란은 일단 사내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저씨..알았어요..그러니까 화내지 마세요."
"진작 그래야지..그럼 일주일 여유를 줄테니까 그때까지 못구하면 알지?"
"......."
"얘기 할것두 없네.이걸로 끝이야!"
"나가자구"
다방을 나온 김여사는 사내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히 가세요, 꼭 마련할테니 제발 남편에게는...부탁이예요"
사내가 김여사의 손목을 낚아챈다.
"어라?..너 어디 갈려구?"
김여사는 순간 고개를 든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
"야..이거 골 때리누만, 야! 난 사내아냐? 가긴 어딜가? "
사내의 얘기를 듣는 순간 김여사는 다리가 부들거리고 온몸이 후들거린다.
사내가 요구하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사내는 김여사의 몸을 요구하고 있는것이다.
"그건 안돼요..아저씨"
"아저씨...한번만 봐주세요..제..발..이렇게..빕니다."
길거리에서 창피함도 잊은체 두 손을 싹싹빈다.
"난 두번 얘기 안해. 씨발! 인생이 불쌍해서 봐줄라 했더니.. 나 니 남편한테 갈란다."
"아..아저씨 알았어요..제발..."
"그럼 따라와!"
사내를 따라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김여사의 두 어깨가 축 쳐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