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21화 (52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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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청춘이라고

"강호의 양심, 이래도 괜찮은 건가."

"뭐래. 생사경이 여장까지 하고 봉술로 애들 패러가는게."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울분이 속에서 들끓었다.

"애들을 패다니? 내가 그런 한량인 줄 알아? 엄연히 다르다. 이건 정의구현이야. 내 아내에게 누구랑 놀아났는지도 모르는 여자라고 욕하고, 내 딸에게는 애비 얼굴도 모르고 태어나는 아이라고 욕하더구나."

"그러니까. 주제도 모르고 빽빽거리는 닭 잡는데 굳이 나서실 필요가 있어? 내가 주먹으로 때리려고 했거든."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며 씩 웃었다. 이제는 어깨 아래까지 자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이 소천마 이시아가 감히 내 호적수와 조카를 욕한 녀석들을 직접 다스리겠다 이거야."

사라락.

머리카락 끝에 금빛이 물들어있다.

체내에서 하늘로 솟구쳐야 했을 기운이 미염신공의 힘으로 머리칼에 이르렀고, 머리칼 끝에 망울지듯 맺혀 금빛으로 물든 셈이다.

독고연과 비슷하다.

독고연이 백발에 선기와 천년자패의 기운이 섞여 머리끝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면, 눈앞의 이 여인은 하늘의 기운이 금빛으로 머리 끝에 물들어있는 셈.

"언니들은 어때? 다들 괜찮아?"

"하루 하루가 조마조마하다. 언제 나올지 몰라서 긴장돼."

"흐응.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중요한 비무 순간에 아이가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럼 결장해야지."

비무보다 아이가 더 중요하다. 천무명이라면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떠날 것이며, 연붕이라면 지체없이 자리를 이탈할 것이다.

장외든 뭐든.

"그러니까 빨리 올라타. 재촉해서 미안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산통을 겪고 있을 지도 몰라."

"와...아주 팔불출 다 되셨어. 내가 임신해도 이렇게 해줄 거야?"

"그래. 천가장에 꽁꽁 묶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기대가 되는 걸. 나 진짜 숨만 쉴 거다?"

바야흐로, 천마태교의 시간이다.

"수마 타고 가면 어디까지 가는 거야? 하북?"

"아니. 중간에 산서 즈음부터는 걸어서 이동할 거다. 그래야 걸어온 티가 나지. 아무리 소천마라고 해도 하늘을 날고 달리는 짐승을 타고 나타나면 주인공이 누가 되겠어?"

"그건 그렇네."

[옳소.]

수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도 올라와. 중간에 내려서 이동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편하게 가야지."

나는 아래를 발로 가볍게 두드렸다. 사선으로 펼쳐진 접이식 계단은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쉽게 계단을 올라올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사, 살면서 이런 경험도 할 줄은...."

아래에 있던 세 명의 여인, 천마망교의 비천여삼마가 수마차에 올랐다. 주변에는 천마망교 이외에 그 누구도 없었다.

비천삼마는 마교에서 천마를 보좌할 것이다. 마교에서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이는 공식적으로 단 한 명 뿐이다.

마교 소공녀. 이제는 소천마라고 당당히 이름을 밝혀도 될 마교의 후계자.

이미 무림맹주 독고자영은 벌써부터 독고연과 이시아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만약 사공희가 참전한다고 했으면 삼파전 구도를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독고연과 이시아가 양강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실상은 거기에 혈소예까지 포함하고 있지만.

"하북에 도착하면 그 때부터 바로 전쟁이다. 이전에는 비천삼마가 너를 곁에서 보좌해줬지만, 하북에 가면 혼자서 다 해야돼."

"저희가 그래도 최소한...."

"아니. 아예 접근 자체를 하지 않는게 좋아. 내가 뭐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도 아니고."

비천여삼마는 지난 용봉지회 때 처럼 소공녀를 보좌하지 못한다.

빙마 유설라는 빙백봉이 되어야 한다.

염마 당서희는 사천당문의 여식이자 염제가 되어야 한다.

검마 왕소현은 검각주 왕소현이 되어야 한다.

여기있는 그 누구도 '마인'이 아니게 되는 셈이다. 이시아를 제외하고.

"괜찮아. 어쨌든 지난 번처럼 같은 상황이 연출될 거 아냐. 독고연과 같은 곳에 머물게 되겠지."

"...그래."

독고연.

그녀는 현재 하북팽가를 잠시 떠났다. 모두가 하북팽가로 모이는 사이, 정작 독고연만 하북팽가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무림맹 하북 북경 지부.

한 때는 추색살이 머물던 본거지에 독고연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다름아닌 독고자영의 명령에 의해. 독고자영은 하남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하북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직접 독고연을 지킬 것이라며 독고연을 데려갔다.

만약 독고자영 말고 다른 이가 독고연을 지킨다면, 독고자영은 단 한 명만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무림맹주 말고 또 하북에 모이는 사람 있어?"

"많지. 각 문파의 수장급은 모두 모일테고, 그 자도 올 가능성이 높아."

"그 자? ...그 아저씨?"

이시아가 '아저씨'라고 애매하게 표현하는 자. 해남에서 봤을 때는 진중한 멋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이시아는 천산에서 그의 실체를 보고말았다.

"그래. 혈교주. 사파도 아니고 월영신교의 후예도 아니니, 혈교의 교주로서 참가할 가능성이 높지."

어디까지나 참관자의 역할이지만.

"...슬슬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는군."

무림맹주도 하북에 왔다. 모두가 하북에 모인 때, 나는 깎아지른 절벽 위를 향해 말했다.

"장인 어른, 정말 같이 안 가실 겁니까?"

휘이잉.

절벽 위, 금발이 찬란하게 흩날린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서있었고, 나는 좀 더 소리를 높여 그에게 말을 전했다.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장인 어른."

"......."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등으로 말할 뿐이었다.

무사히, 다치지 않고 잘 다녀올 것을 알기에,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시아."

"응."

나는 이시아와 손을 맞잡고 허리를 숙였다. 수마는 금방 하늘 높이 떠올랐고, 나는 높은 하늘 위에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더 숙였다.

천마는, 그저 서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와아아! 엄마들이 잔뜩!"

하북팽가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마중나온 월아는 네 여인을 반겼다. 나는 월아를 안고 한 명 한 명 다시금 소개했다.

"이쪽은 염엄마. 이쪽은 염마마. 이쪽은 빙마마. 이쪽은 검마마. 이쪽은 천마. 밖에서는 엄마인 거 비밀이야. 알지?"

"응! 근데 마마? 여기 마마는 엄마 맞아? 엄마들은 다 큰 데?"

"......."

이시아는 마음이 꺾였다. 나는 차마 이시아의 편을 들 수가 없었다. 천마망교에서 이시아는 과연 무슨 마망인가?

천마다.

천마는 천마다.

누가 감히 천마에게 흑천마망 따위의 우스운 별호를 붙인단 말인가?

"나는...천마...마망이...아니야...."

이시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월아는 여전히 자신이 이시아의 가슴을 후벼판 것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월아를 안아들고 이시아에게 손을 내밀게했다.

"월아야, 시아 엄마도 엄마야."

"진짜? 엄마야?"

"그럼. 다른 엄마들도 엄마가 될 거야."

"저 언니는 엄마 아닌데...."

소천마 내전에서도 그 어떤 굴욕도 마다하지 않고 굳세게 앞으로 당당히 나아가던 이시아는 그만 월아의 한 마디에 그만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야, 네가 생각하는 엄마는 도대체 뭔데?"

"추하네요."

"체통을...."

"소공녀, 아이한테 그렇게 따지면…."

"야! 너희들은 지금 엄마 인증 받았다고 거리두는 거지?! 이것들이 진짜! 나도 아직 기회가 있어! 견희가 말했다고! 아이 생기면 가슴 더 커져!"

사실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중단전의 차이는 극복할 방법이 없다.

그것은 마치 삼류가 이류로 오르는....

"엄마? 음...여기가 크고 상냥한 사람! 아니면 월아 동생 낳아주는 사람!"

이시아는 눈을 빛내며 사근사근 웃었다.

"그럼 언니가 월아 동생 낳아주면, 언니도 월아 엄마가 되는 거야?"

"음…."

월아는 이시아의 가슴을 복잡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나를 번갈아보며 이시아를, 그녀의 가슴을 가리켰다.

"아빠, 어떻게 해야해?"

"월아 동생 낳아준 분이면 다 엄마지."

"그럼 언니도 엄마야!"

"그래, 시아 엄마라고 불러볼래?"

"근데 언니가 낳은 월아 동생은 어디있어?"

"......."

추가타가 이시아를 꿰뚫었다. 이번에는 나도 조금 아팠다.

"아, 아직은 안 낳았는데…."

"그럼 아직 엄마 아니야! 아빠, 맞지?"

"......월아가 벌써 논리를 깨우쳤구나. 암, 그래."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논리정연하고 똑똑할까? 분명 월아는 희대의 대현자로 거듭날 것이다.

"그치만 엄마가 될 사람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되겠지?"

"나 함부로 대했어?"

"월아는 그럴 의도가 아닐지 몰라도, 월아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거든."

"아...작으면 상처가 되는 거야? 미안해, 아직 엄마 아닌 언니!"

"하, 하하...."

이시아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붉은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

시아와 월아. 둘 중에 누구의 편이냐고 하면 나는 월아편이다.

이시아는 (전생에) 나의 처음을 가져갔지만, 월아는 나의 딸이니까. 삼생의 은혜라고 해도 딸은 이길 수 없다.

"두고봐.... 내가 나중에 애 낳으면 보자고. 월아 동생한테 맘마 양쪽으로 주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될 테니까...!"

"맘마? 안 돼! 한쪽 맘마는 아빠 거래! 연이 엄마가 그랬어!"

"......연이 엄마?"

"......."

* * *

그 시각.

하북 북경 무림맹 지부와 계약을 맺은 현천객잔에는 세 명의 남녀가 두 개의 방을 구해 들어왔다. 구석진 곳에 위치한 두 방은 특별히 천막까지 펼쳐져 외부에서 감히 누가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곤륜(崑崙)!

그들의 문 앞에는 곤륜이라는 단어가 당당히 박혀있었고, 그 누구도 감히 그 근처를 지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곤륜이 용봉지회에 나온게 거의 20년만인가?

-아니지, 30년이지!

-으으, 이번 곤륜도 역시 육봉쟁패에서 1등을 하겠지? 크윽, 나 독고연한테 인생 걸었는데!

그저 수군거리기만 할 뿐.

“후후후.”

그리고 바깥의 소란을 들으며, 양갈래 머리의 여인은 조용히 실뜨기를 하며 옅게 웃을 뿐이었다.

“...스승님, 진법을 짜놓았습니다.”

두 여인을 인솔하기 위해 따라온 곤륜의 화경 고수이자 도사, 보현진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여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화야. 진법을 설치했다. 아무도 듣지 않으니 편히 말해도 된다.”

“스승님, 제가 어찌 함부로 스승님을 대하겠어요?”

양갈래 머리의 여인, 백천화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보현진인은 속이 잠시 뒤틀렸지만 애써 참았고,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청하, 너도 뭐라고 해봐라.”

“싫습니다. 태사부께 언제 또 오라버니 소리를 듣겠습니까?”

청년, 백청하는 머리를 묶은 끈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검지를 입술에 붙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곧 그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둑, 우두둑.

백청하는 순식간에 백천화와 닮은 여인이 되었다. 아니, 백천화가 백청하를 닮은 듯 보였다.

“천화야. 곤륜산 밖에서는 정말 편하게 대해도 되는 거지?”

“그럼요, 오라버니. 저희는 친.남.매.아니겠어요?”

“그럼 물 좀 떠와라. 저기 숙수께 가서 고기를 뺀 만두도 좀 달라고 하고.”

“.......”

백천화는 잠시 표정이 굳었으나, 곧 애써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보현진인은 바로 백청하의 머리를 붙잡으며 이를 갈았다.

“네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감히…! 감히!!”

“아, 본인께서 이런 걸 원하시잖아요. 스승님이 자꾸 그렇게 불편해하니까 저도 불편해지거든요? 흥.”

백천화는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태사부께서 명하시길, 자신을 진짜 곤륜의 후기지수로 대하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뭐가 문제인 거죠? 자꾸 그렇게 태사부를 태사부라고 생각하는 거야말로 태사부의 명령에 대한 반항이에요!”

“이, 이게…!”

“그리고.”

백천화는 쓴웃음을 지으며 옷감을 가리켰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림에 나오신 분이에요. 그분을 위해 이 정도는 해드릴 수 있잖아요? 그래요, 이건 마치 아미파를 상대로 목숨을 걸었던 천무명 공자와도 같은...그런 상황이라구요.”

“너는, 정말 이게 맞다고 생각하느냐? 태사부께서….”

“그 태사부께서, 마음을 주신 분이에요. 믿어야죠.”

백천화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용봉지회하면, 역시 사랑 이야기가 최고 아니겠어요!”

“...너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느냐?”

“네? 하하, 설마요.”

백천화는 손사레를 치며 웃었다.

“남장한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세상에 그런 미친 놈이 어디있겠어요?”

백천화.

곤륜파 12선인 중 한 명, 보현진인의 제자인 그녀는 첫 강호행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만두 가져왔어요, 오라버니.”

“소면을 빠뜨리다니, 동생아!”

“......이번에는 오빠가 가요!”

“......원시천존이시여.”

보현진인은 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 * *

그리고.

드디어.

"여러분! 오래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대회는 없었습니다! 군말 필요없이!"

"여러분들의 뜨거운 함성, 환호와 함께!!"

"용봉지회를ㅡㅡㅡㅡ"

시 작 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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