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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청춘이라고
용봉지회의 개막이 한 달 남짓 남은 시점.
나는 희아연월검을 좀 더 다듬고 새롭게 개량했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무기를 들었다.
봉(棒).
끝 부분에 딱히 무언가를 달지 않은, 그냥 막대 정도로 보는게 무방한 무기.
이것이 누구의 무기인가하면 바로 '연붕'의 무기다.
부-웅!
봉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그 빠르기는 마치 칼날로 베는 듯한 속도였다.
위력은, 공기를 가르는 정도. 나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지만 용안으로는 확실히 보이는 공간의 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르륵.
내 손이 닿자마자 주변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대기는 서서히 비어버린 공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손을 다시 회수했다.
"와…."
제갈선은 나를 보며 박수를 쳤다. 특별히 그녀가 봉술에 능통한 건 아니지만, 그녀는 나의 힘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어땠어?"
"방금 뭐였어요? 음, 이런 표현이 맞을 지는 모르지만...공간이 뜯겨나간 것 같았어요."
"비슷해."
봉으로 타격한 범위가 전부 찢겨나간 셈이다.
만약 내가 휘두른 범위 안에 적이 있었다면, 그 적은 마치 내가 휘두른 곳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 마냥 뚝 떨어져나간 채 죽을 것이다.
그래, 마치 이리가 살점을 베어문 것처럼.
"이거 그대로 휘두르지는 않을 거죠?"
"당연하지. 어디까지나 육봉쟁패에 나갔을 때 쓰려는 봉술이야. 나름 힘을 억누르고 있기도 하고, 여자를 벨 수는 없잖니."
"그래서 봉으로 패시게요?"
"내 아내와 내 딸을 욕한 놈들을 다스려야지. 남자가 여자를 때릴 수는 없지 않느냐."
그래서 여장을 하고 여자로 출전해서 팰 거다. 나는 제갈선으로부터 한 가지 목록을 넘겨받았다.
"보자. 이게 감히 견희와 태희를 상대로 억측과 악의적인 음해를 한 자들의 명단이렸다."
나는 내가 봉으로 다스릴 자들의 이름을 전부 숙지했다. 사용하는 무공에 대한 것도 익히고, 언젠가 대전 장소에 오를 때 헷갈리지 않고 직접 다스릴 것이다.
"이중에서 혹시 유념해야할 자들이 있더냐?"
"아뇨. 전부 다 거기서 거기...한 명, 있네요."
제갈선은 그녀답지않게 표정을 구겼다.
"팔대세가의 수치. 남궁유린."
"또?"
또라는 말이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나는 책을 앞뒤로 살폈다. 제갈선이 준비한 자료에는 남궁유린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따로 적지는 않았어요. 워낙 많아서."
"많다니? 조직적으로 누군가를 음해하고 다닌다는 거냐?"
"본인이 한다기보다는...조금 미묘하네요. 원흉은 따로 있는데, 악의어린 소문으로 지금 상당히 곤경에 처했거든요."
제갈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갈선은 남궁유린의 검을 상대로 피하기만 할 것이며, 남궁의 제왕검형 앞에 쉽게 패배할 것이다."
"누가 그러더냐? 개방? 하오문에서 그런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요. 요즘 세 명 이상 모이면 죄다 용봉지회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전부 남궁유린을 기준으로 잡아요."
"기준이라. 뭐 남궁유린보다 강하면 육봉이고 비슷하거나 약하면 육봉보다 못하다거나 그러냐?"
"네."
"......."
대외적으로 알려지기를 남궁유린의 무공 수위는, '절정'.
규격 외의 존재인 마교 소공녀나 독고연을 제외한다면, 차기 육봉으로 평가받는 떠오르는 신예였다.
"건방지게."
눈앞의, 초절정은 부채로 입을 가리며 살짝 불쾌감을 드러냈다.
* * *
본디 용봉지회라는 건 절정 이하 신진 고수들, 그러니까 햇병아리에 가까운 이들이 서로 무예를 뽐내는 자리다.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들을 위한 무예의 장!
평균적인 무술 실력은 일류 중반이며, 절정에 오르면 '우승후보'로 점쳐지던게 용봉지회였다.
실제로 지난 용봉지회의 구룡을 면밀히 살펴봐도, 지금은 절정 고수가 태반이지만 당시에는 절정 고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육봉도 마찬가지. 흑백이화를 포함해도 절정 이하의 여인들이 분명 존재했다.
-야!! 일류도 고수야!!
일류도 고수 맞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구파일방 급은 아니더라도 그 아래 단계의 문파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대제자들은 일류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다.
즉, 일류만 하더라도 나름 구룡육봉을 노려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 8년 뒤의 용봉지회라면.
"이번 용봉지회는 미쳤군."
팽도황이 대놓고 '미쳤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참가한 자들의 면면은 쟁쟁했다.
"선룡에 지룡, 거기에 감룡에 탄룡까지 모두 절정 고수라니...심지어 폭룡은 초절정 고수라!"
"그게 다 누구요. 사내 놈들은 관심없소."
"...끙, 너무한 거 아닌가? 그래도 자네가 상대할 청년들인데."
"어차피 우승은 천무명이오. 별호는...그래. 천룡(天龍)이 되겠지."
지상에서 수행을 쌓아 이무기가 용이 되는 게 아니라, 날 때부터 태생이 하늘을 고고히 떠다니는 용이다.
"이미 천무명의 경지는 널리 알려져있소. 자존심 때문에 천무명에 대한 음해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다들 마음속으로는 알게 모르게 인정하고 있지."
"천하제일룡은 천무명이다."
"그렇소."
갑자기 화경에 준하는 청년 고수가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내 승리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가주. 반로환동한 고수가 만약 용봉지회에 출전한다면, 그건 주책이겠지?"
"......."
팽도황은 침묵했다. 그는 팽가의 사내 답지 않게 차만 조용히 홀짝이며 묵묵부답이었다.
"그래. 이미 전대, 아니 전전대에서 용봉의 별호를 얻었던 자들이 외형이 젊어졌다고 몰래 출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야. 다른 젊은이들의 의기를 꺾는 짓이 아닌가? 부정행위야, 부정행위."
"......언젠가, 비천색마의 행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소."
팽도황은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
너무나 당당해서 할 말을 잃을 정도다.
"자네가 팽가의 초고수를 임신시켜 출전시키지 못했으니, 최소한 팽가에서 한 명은 나가서 이름을 널리 떨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왜 이런 자를 출전시키냐고."
팽태양. 20세. 하북팽가 방계의 청년.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인 쾌남으로, 팽가의 비밀병기로 추정됨.
"안 부끄럽소?"
"들키지만 않으면 부끄러울 일도 없지! 이보게, 나는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났네. 물밑에서 누가 자네를 떨어뜨리고 싶어 안달이 났기에, 그리고 동시에 자네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계획에 동참했지. 애초에 나는 '탈락'할 의도로 참가하는 것이야."
"뭐요?"
"나는 천무명에게 패배하는 것으로 되어있네. 무림맹을 위해, 하북팽가를 위해 잠깐의 치욕 정도는 감내할 수 있지."
진심이다.
"화경 고수끼리 붙어서 한 명이 탈락한다. 이 얼마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진표란 말인가?"
이 남자, 진심이다.
"그리고 차라리 구룡쟁패는 사정이 더 나을걸? 흐흐, 육봉쟁패...상황이 어떤지 자네도 알잖나?"
"......."
현재.
육봉쟁패는 이미 신진 고수들의 대결을 넘어선지 오래.
"내가 알고있는 것만 위에서 헤아리더라도 일단 화경부터 시작하는데. 자, 화경이 벌써 몇이나 있지?"
나는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 * *
구룡쟁패는 아무래도 좋다. 남자가 누가 나오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육봉쟁패는 다르다. 여인들이 서로 비무하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현 무공 수준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4년.
지난 4년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현경을 뛰어넘어 새로운 단계에 오를 정도로 다사다난한 일이 있었던 만큼, 그 아래 수준에 있는 여인들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사공희, 절정에서 화경이 되었다. 물론 사공희는 참전하지 않으니까 논외.
이시아. 절정에서 화경으로 넘어서는 단계.
육체는 화경에 이르렀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한 꺼풀 벗을 필요가 있다. 아마 용봉지회가 시작되면 어엿하고 진정한 화경이 되리라.
독고연. 완연한 화경.
비록 화경의 고수를 직접 상대해본 경험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전 용봉지회에서 초절정으로 이름을 날렸던 만큼 사실상 우승자로 점쳐지는 초고수다.
그리고 또 한 명.
"소예야, 너 나갈 거지?"
"당연하지. 우승하면 임신이잖아. 내가 이런 기회를 놓칠 것 같아?"
중최미봉, 혈소예도 참전 의사를 밝혔다.
"괜찮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견희 언니 정도만 화력을 낼테니까."
"정확하게 조절할 수 있으니까 그게 더 무서운데."
"후후, 혈교의 이름을 높이는 건 좋지만 우승은 안 되지. 걱정마. 준우승도 우승은 우승이잖아? 그럼 준임신하면 되는 거지. 오빠는 안에 싸기만 싸. 임신은 내가할테니까."
"...그건 무슨 논리냐."
당연한 소리랑 괴상망측한 소리를 동시에 하니 반론을 제기할 의지가 사라져버렸다.
"그럼 벌써 화경이 셋이네."
"......신진 고수들의 대결이 왜 천하제일 무투대회가 되어버렸지?"
"좋은게 좋은 거 아니겠어. 각각 정파의 대표, 마교의 대표, 혈교의 대표로서 싸우는 거잖아. 그림, 예쁘잖아. 그치?"
"...그래. 저마다 그리는 그림은 다르지만."
혈소예를 제외하면 둘 다 자신이 우승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셋이 이미 3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상, 나머지 3자리를 두고 초절정 고수들이 경쟁을 하게 된다.
이미, 두 자리는 찼다.
유설라.
빙백봉으로서, 북해빙궁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고도 초절정의 힘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제갈선.
그녀는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초절정에 이르렀다. 미래에는 30대에 이르러서야 도달했을 경지를 어느새 20대 중반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비결이 무엇인가?
"음양합일이지. 선녀가 양기를 그렇게 머금었는데."
"크흠."
가만히 누워있었을 뿐인데 제갈선은 초절정이 되었다.
물론 본인도 나름의 무공을 갈고닦았고, 비공식 대련에서 현타도사 사정후의 태극혜검을 무려 삼십합이나 견뎌낸 전적이 있다.
"두 자리 더 찼네."
"그러게."
빙백봉과 와백봉, 둘이 서로 누가 더 위에 오르냐하는 차이가 있을뿐.
이제 남은 자리는 단 하나 뿐이다.
이 자리에 오를 후보는 누가 있는가?
사실상 용봉지회, 육봉쟁패는 '여섯 번째 자리'를 두고 싸우는 여인들의 비무다.
그리고 이 자리에 오르기에 가장 적당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남궁유린보다 약한 애들은 전부 안 되겠네."
"남궁유린을 이기면 육봉이 될 테고."
너무나 간단한 이치였다.
* * *
그 시각.
"아가씨, 꽃도감을 전부 잘랐습니다. 이거로 보시죠."
남궁유린을 자신의 앞에 펼쳐진 수많은 여인들의 신상명세를 살폈다.
펄럭.
남궁유린.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한 가운데에 놓았다.
펄럭, 펄럭.
그리고 다섯 개의 종이를 자신의 위, 또는 왼쪽 위에 올렸다.
"독고연, 마교 소공녀, 중최미봉, 빙백봉, 와백봉. 이상 다섯…."
"아가씨, 그래도 다른 세 봉은…."
"나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자고. 나는 도전자니까."
남궁유린의 위에는 다섯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위에 있어야 할 한 명의 이름은 옆으로 빠져나와있었다.
"태극화, 그 소문이 사실이겠지?"
"개방에서 나온 소문입니다. 그...천 공자의 아이를 가졌을 지도 모른다는."
"...후. 그래. 좋아."
남궁유린은 이를 갈았다.
천무명! 한 때는 서로 다른 존재인 줄 알았지만, 독고연과의 애틋한 관계가 널리 퍼지며 남궁유린은 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깊게 빠져들었다. 그런 남자야말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자고, 다른 남자들은 거들떠도 볼 필요가 없었다.
비록 다른 이들에 비해 무공은 불리하지만, 배우자로서의 남궁유린은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남궁세가라는 이름 덕분에!
"...후우, 일단 구파일방, 팔대세가부터 지워보자. 팔대세가에 누구 있지?"
남궁유린은 종이를 하나하나 자신의 옆에 대고 움직였다.
"모용세가의 모용란. 연희봉이지만...나보다 약해."
모용란, 아래.
"사천당가의 당서희…. 얘 나오진 않겠지?"
"당가에서는 이미 참가 명단을 제출했습니다. 그곳에 염제는 없었습니다."
"그래. 화경 고수가 출전하면 진짜 양심이 없는 거지. 그러면 당가는...당예진? 완전 애기네. 얘도 내리자."
당예진, 아래.
"황보세가 칠공주는?"
"황보혜지가 출전합니다."
"볼 필요도 없네. 아래."
황보혜지, 아래.
"남궁, 모용, 제갈, 독고, 황보, 당가...다른 곳은 논할 필요도 없고. 그럼 이제 구파일방인데."
남궁유린은 새로운 종이를 쭉 펼쳤다.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은 역시, 곤륜.
"지난 십수년 동안 한 번도 용봉지회에 출전하지 않았던 곤륜이 제자를 출전시켰다…."
남궁유린은 꽃도감에도 없는, '곤륜녀'라는 종이를 자신의 위아래로 움직였다가 번외로 놓았다.
"얘는 나중에 알아보는 거로. 그 다음, 아미…. 정자 사태랑 정조 사태가 없어? 후후, 그러면 아미파는…."
남궁유린은 새로운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사 사태 천서아? …이건 또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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