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17화 (41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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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功移山)

"그런…!"

신창, 백주흔은 창고 안에 갇힌 남자들이 어떻게 잡혀들어왔는지 소상히 기록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거기서 이렇게 움직였는데 신고를 당했단 말이오?"

"내 말이! 내가 만질 수 있는 각도도 위치도 아니었소! 그런데 나보고 만졌다면서 다짜고짜 뺨을 때리더니…."

"혹시 이쪽에 앉아있다던 여자의 생김새가 어땠소?"

"생김새는 무슨. 여자가 아니라 근육 떡대가 앉아있...어?!"

"아까 전에 객잔에서 여성과 시비가 붙었다고 했던 형님, 당시 시비가 붙었다던 여자의 인상착의가 어땠소?"

"머리는 길고, 눈은 째졌고, 입술이 삐뚤었는데 입가에 상처가…."

"나도 그 여자였소!"

감찰관의 옆에서 그를 호위하며 귀동냥으로 배운 지식은 마냥 술과 함께 넘어가지는 않았다.

"입술에 상처가 난 여자? 혹시 본 사람 더 있소?"

"저, 저요! 제가 색마로 몰릴 때, 저를 도와주려던 친구를 향해 주먹을 들었어요!"

"나는 그냥 지나가다가 보았네. 워낙 인상이 깊었던 터라 기억이 나지. 그런데 그 뒤에…."

하나 둘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추색살이나 다른 이들에 의해 창고로 붙잡힌 모두가 다 특정인들을 봤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형장은 어떻소?"

"...모르겠습니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어머님 심부름으로 술을 하나 샀다가 정신을 차리니 여기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술을?"

"예. 일흔이 넘은 노모십니다. 내일은 기일이라고…."

"......크흑."

백주흔은 울컥한 마음으로 과일장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마시오. 내 반드시 놈들을 일망타진하여, 그대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전력을 다할 터이니."

"저기...형장."

"왜 그러시오?"

"형장은 능력이 된다면...그냥 우리를 풀어주고 그놈들을 쫓아서 뒤를 케는 건 어떻소?"

"밖에 두 놈 있잖아!"

"이 형장...최소한 절정은 되어보이는데. 밖에 지키고 있는 놈들을 잡아다가 본거지를 실토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니오?"

"그...형씨가 그리는 그림은 알겠는데, 우리 입장도 조금 헤아려주시오. 우리, 지금 실종된 상황이라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이오."

"미안하네. 하지만...어떻게 안 되겠나?"

"......."

백주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가…."

그는 너무 잠복에 심취해있었고, 자신의 역할에 집중한 나머지 큰 착각을 하고 말았다.

힘없는 민중이 바라보는 시각과, 잡혀왔지만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는 자신의 상황은 다르다는 것을.

"......."

콰---앙!!

"큭?! 뭐냐?!"

"자물쇠를 부수다니…! 보통 색마가 아니구나!"

"보통 사람도 아니지."

백주흔은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도끼를 슬쩍 피한 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여인들의 등허리를 걷어찼다.

"커헉!"

"크흑…!"

"말해라."

백주흔은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도끼의 날을 발로 떼어낸 다음, 도끼 자루를 봉처럼 쥐고 겨눴다.

"너희들의 본거지를 당장 실토해야겠다."

"네, 네놈! 감히 추색살인 우리를…!"

"하! 네놈들이 추색살이라고? 거짓말 마라. 네놈들이 추색살이면 내가 금의위 장군이다."

"형장, 대단하시구려!"

"이 썩을 놈들…! 감히 사람을 색마로 몰아서 재물을 훔쳐?!"

성난 남자들이 바닥에 쓰러진 여인을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두르려고 했다. 백주흔은 급히 그들을 막아섰다.

"진정하시오! 분노는 이해하겠으나, 우선 이들을 관아에 끌고가는 것이 급선무-"

서걱.

두 여인의 목에서 피분수가 일었다. 백주흔은 급히 사람들을 향해 봉을 밀며 창고 안으로 보낸 뒤, 급히 몸을 돌리며 봉을 세웠다.

카아아앙!

붉은 선혈의 도영이 어둠을 갈랐다. 백주흔은 핏빛 머리칼의 여인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누구?!"

"알 것 없소."

적발의 미녀는 도를 칼집에 집어넣으며 시체들을 가리켰다.

"무고지죄는 죽음으로."

"이런…! 누군지는 모르지만, 뭔지도 모르면서 사람을 죽이다니!"

"알고 죽인 것이오. 이들이 녹림의 무리고, 남자들을 색마로 몰아 물품을 갈취했다는 것을. 이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소."

여인은 검은 무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마치 걸리적거리는 나뭇가지를 꺾은 듯한 행동에 백주흔은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고수가…?"

여인은 분명, 자신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의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알 것 없소."

"잠깐! 지금 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들은 일행이 있소!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야 하오!!"

"......아, 그렇소?"

적발의 여인은 볼을 긁적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왜 뭉그적거리나 했더니…. 답답해서 그냥 죽여버렸는데,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허."

백주흔은 허탈감과 분노에 화가 치밀었다.

"답답하다고 그냥 죽이면 되는 것인가?!"

"주군은 그냥 걸리적거리는게 있으면 다 죽이라고 하셨소."

"그 무슨 사파같은 말을!"

"적의 본거지에 대한 정보라면…."

여인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미안!"

"야!!"

백주흔은 진심으로 화를 내며 봉을 던지려했다. 하지만 여인은 합장까지 하며 빠르게 도망쳤고, 백주흔은 허탈감에 봉을 떨어뜨렸다.

"젠장…. 도대체 저거 뭐야…?"

누군지는 몰라도, 핏빛 머리칼의 여인 때문에 모든 계획이 전부 망가지고 말았다.

백주흔.

그는 공갈로 붙잡힌 남자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했으나, 모종의 사고로 공갈범들의 본거지는 찾지 못하게 되었다.

* * *

누군지는 몰라도 일단 잘 싸운다.

무공의 수위가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 것 같다. 최소한 초절정은 되어보이는 수준.

그럼 강한 건가? 맞다.

주변에 아무리 화경에 현경이 넘친다고 한들, 이런 깡촌 동네에서는 초절정이 다른 동네의 화경이고 현경이다.

특히 이런 소규모 녹림의 무리를 학살하는데는 절정 수준이면 충분하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흠...."

나는 정체불명의 여인을 유심히 살폈다. 신경질적인 눈매와 헝클어진 머리, 흐트러진 옷차림은 급히 달려온 듯한 모습이었다.

"내 아들 어디있어!!"

'아들?'

아들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외모는 아니다. 있다고 해봐야 고작 1~2살 정도 되는 외모일 것이다.

"나, 나는 모르는 일이다!"

살아남은 유일한 산적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곁에 널브러진 다른 이들을 보며 벌벌 떨었고, 여인은 산적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성질을 부렸다.

"대답해!"

"모른다니까! 우리는 영아를 납치하는 쓰레기가 아니야!"

"하! 남자를 무고로 색마로 모는 쓰레기지! 네놈들이 오늘 색마로 몬 사람 말이다!"

"...혹시 나이가, 히익?!"

산적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나는 악귀처럼 일그러진 여인의 모습을 살피며 계속 손을 움직였다.

할짝, 할짝.

소리나지 않게 입 안에서 혀를 움직이는 사공희의 도움을 받아, 나는 여인을 보며 달아오르는 음심을 최대한 낮췄다.

선기가 있는 여인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여인이다. 분명 초야에 묻혀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일 터.

'위험하네.'

초절정이니까 내가 대처가 가능하지만, 혹시나 현경이면 내가 당황하지 않겠는가. 혈마의 힘을 끌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여자니까.

"크으윽...! 너희들이 납치한 남자들을 놓아두는 곳이 있을 것 아니냐!"

"모, 몰라! 나는 여기 관리를 맡은 사람이고, 다른 애들은 네가 다 죽였잖아!"

"큭...!"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마구잡이로 죽이다보니, 납치당했다고 하는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놈만 살아남게 되었다.

"...희야."

"하움."

사공희는 입을 크게 벌리며 내 양물을 반쯤 머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정감을 배출했다.

뷰르르륵.

내가 사공희의 입안에 지림과 동시에,

푸화아악!

산적의 목이 달아났다.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이, 선녀는 남자를 죽여버린 것이다.

"크으, 지릴 것 같구나."

"꿀꺽. 후아아.... 상공, 그거...."

사공희는 단번에 내 정기를 삼킨 뒤, 입을 작게 벌렸다. 나는 그녀의 입안으로 검지를 밀어넣은 뒤, 가볍게 중려신화정을 일으켰다.

입안에 남아있는 정기를 중려신화정의 화기와 함께 몸속으로 밀어넣음과 동시에, 입안을 헹구는 행위.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는 익숙한 과정이었다.

"그럼 이제 어쩐다...?"

"아아악!!"

여인은 아직 우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뒤집으며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인하고 다녔고, 죽은 자는 한 번 더 목을 자르며 분을 토해냈다.

"내 아들! 내 아들 내놔!!"

"...아무래도 미친 것 같은데."

"상공. 저 분이랑 저랑 붙으면 누가 이길 것 같아요?"

"...견희야?"

사공희의 눈에는 뭔가 확신 같은 것이 엿보였다. 아니,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죽거나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보조하마."

"네. 그러면 이렇게 해주시겠어요?"

속닥속닥.

나는 사공희의 제안을 듣고 다시 양물이 솟아나고 말았다.

"역시 색마부인."

과거 용봉지회 당시, 수많은 경상자들을 만들어 의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게 보낸 여자.

"믿고 맡기마."

"제가 제압해서 다리 벌리게 만들어 드릴게요."

사공희는 선녀를 상대로 승부욕을 불태웠고, 나는 뒷짐을 지고 앞으로 나섰다.

저벅, 저벅.

일부러 발소리를 무겁게, 그리고 나의 내력을 퍼뜨리며 앞으로 나아가니 선녀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저런, 저런. 나름 아끼던 부하들이었는데. 몰살이라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닥쳐라! 네놈이 이들의 윗대가리인 모양이로구나!"

"윗사람이라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가리는 조금 그렇군. 초면에 말이 심하구려, 소저."

"소저...!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보이는게 여인이라 여인이라고 말했을 뿐. 흐흐, 본인은 녹림 72채, 우공채의 주인 악붕(岳鵬)이오!"

"악...붕!"

악한 붕이가 아니다. 녹림의 대붕이라는 뜻에서, 악붕이다.

"이 악적! 내 아들을 어디에 가뒀느냐?!"

"궁금하다면 대답해주는게 강호의 도리지만, 남의 영역에 와서 칼부림을 한 여자를 살려보내지 못하는 것도 강호의 섭리. 나오너라."

"......."

저벅, 저벅.

얼굴에 가면을 쓴 여인은 압도적인 중단전을 자랑하며 앞으로 나섰다. 전형적인 여인네의 옷을 입은 선녀는 나를 보좌하듯 나타난 사공희를 보고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이, 이이 파렴치한! 북방 오랑캐들도 그렇게는 입지 않을 것이다!"

"왜? 중요 부위는 다 가리고 있는데?"

목부터 일자로 쭉 떨어지는 길쭉한 비단천은 사공희의 유두나 유륜과 같은 부위를 완벽하게 가리고 있었고, 비단천은 무릎까지 길쭉하게 흘러내렸다.

"옆가슴이 튀어나오고, 골반이 보이고, 심지어 다리는 훤히 드러냈구나! 중요 부위만 가리면 다인 줄 아느냐! 속옷이랑 다를 바가 없어!"

"흐흐, 정답이다."

월녀복이 원래 그렇다. 사공희가 입은 월녀복은 그중에서도 특히 더 노출이 심한 옷으로, 외투를 벗으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뒤로 돌아보거라."

"네."

사공희는 내게 안기듯 몸을 돌렸다. 선녀는 입을 떡 벌리며 굳어버렸다.

"아, 알...."

"알몸이라니? 듣는 사람 섭섭하게."

등 뒤가 전부 파여있기는 하지만, 허리부터는 분명히 천이 이어져 있고 엉덩이 부분을 완벽하게 덮고 있다.

혈교주 왈, 동자살의(童子殺衣).

보이는 것 만으로도 동자공을 익힌 자를 죽이는 사이함을 가진 의복으로, 천하의 혈교주조차 혈강시의 앞에서 말고는 입지 않았던 궁극의 월녀복 중 하나!

사공희는 그걸 내 부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었다.

내가 그녀가 입은 걸 보고 바로 양물을 세운 것 만으로 입었다.

"아무래도 저 여자를 바르게 다스려야 할 것 같구나. 다녀오거라."

"네, 상공."

색마부인, 견희는 맨손으로 선녀의 앞에 섰다. 선녀는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견희를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너는 도대체...?"

스릉.

견희가 앞으로 손을 뻗자, 선녀는 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이, 이건 설마 태극혜검?!"

"호오. 알아채다니. 의외인 걸."

벌써부터 정체가 들키다니, 유감스럽다.

하지만 태극혜검을 썼다는 것은, 우리가 저 여자를 가만히 살려보낼 생각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네가 이기면 저 여자로부터 선기를 뽑아내어, 네게 전부 다 집어넣어주마."

"!!"

견희는 나를 향해 씩 웃으며, 한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금방 끝낼게요."

파---앙!

네 개의 검이 일제히 선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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