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18화 (418/568)

--------------------

우공이산(愚功移山)

그 시각.

"항산은 여전하구나!"

녹림왕, 태부악군 방득패는 북악 항산에 도착했다. 그의 뒤에 딸린 수하만 거의 100명이 넘었고, 이 정도면 나름 대규모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관에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뇌물은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법.

"본좌의 선물은 잘 받았겠지?"

"예. 최소한 항산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불문으로 둘 것입니다."

"그래. 생각 있는 놈들이라면 항산에 올라오지는 않겠지."

방득패는 항산 주변에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그냥 나무를 대충 박아넣고 거기다가 녹색의 풀을 엮어놓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항산에 왔다는 것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말뚝은 도끼자루요, 나뭇잎은 도끼날이더라.

방득패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말뚝을 설치했고, 이제 강호의 모두가 말뚝이 있는 곳은 피해다녔다.

누가 녹림의 왕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고 지나갈 수 있을까! 제정신이 박힌 존재라면 항산에 발을 디디지 못할 것이다.

녹림왕이 오악을 찾는 이유는 이미 중원의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여기 산채는 누구네 땅이지?"

"강골채이옵니다."

"강골채? 그런 이름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녹림 72채의 대표조차 이름을 떠올리기 가물가물한 이름. 방득패는 머리를 긁적이며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놈들은 왜 본좌가 왔는데 아무도 배웅을 나오지 않아? 최소한 산 중턱까지는 내려와서 허리 숙이고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습니다!"

"놈들이 아주 간덩이가 부었군요."

"크흐흐, 아니면 태부악군이 오신 것 조차 모르는 놈들 아닙니까?"

"그러면 72채 현판 떼야지."

방득패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도끼를 움켜쥐었다. 눈앞에 누가 보이든 머리를 으깨버리겠다는 시늉을 하며, 그는 성큼성큼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턱을 넘어선 순간.

"...정지."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방득패는 무리를 멈춰세웠다. 녹림왕이 먼저 느끼고, 간부들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표정을 굳히고, 녹림왕의 딸이자 산주봉인 방철수가 봉을 집어들었다.

"피 냄새...!"

"짐승의 것이 아니다. 사람의 것이야."

"저희가 먼저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이번에는 다 같이 간다. 항산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요즘 하도 강호의 정세가 흉흉해서, 어떤 놈들이 튀어나올 지 몰라."

방득패는 도끼를 만지작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화경까지면 대가리 깨고, 현경이면...일단 대화부터 시도한다."

녹림왕의 무리가 무기를 든 채 서서히 산 위로 올아가기 시작했다.

"만약.... 나한테 바칠 세금...건드렸으면 현경이라도 대가리 깬다."

방득패의 눈에는 짙은 살기가 가득했다.

* * *

사공희가 태극혜검으로 선녀를 상대하는 동안, 나는 동굴 안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제법 큼지막한 상자를 열어젖혔다.

"오오."

안에는 엄청난 양의 장물이 있었다. 딱히 유명한 보검이나 보물이라고 할 것들은 아니었지만,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만 하더라도 집 한 채는 살 수 있을만큼 제법 많은 양의 금은보화가 가득했다.

'이건 챙겨야지.'

이런 걸 챙기기 위해서 이 동굴을 오지 않았던가! 선녀와의 비무는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가는 길에 장물아비에게 팔아치우고 좋은 술과 선물을 사갈 만큼의 여비는 충분히 챙길 수 있었다.

카앙, 카앙!

뒤에서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검기와 수십 갈래로 퍼져나가는 도기가 서로 맞부딪힐 때마다 날카로운 기세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저 도법은...처음 보는 도법인데."

혈겁난세까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생전 처음 보는 도법이었다.

여인의 몸으로 휘두르기에는 다소 거칠고 흉악하지만, 선녀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를 휘둘렀다.

'도가 안 맞는 것 같기도?'

도법의 패도적인 모습을 보면 꼭 태도(泰刀)나 참마도(斬魔刀)와 같은, 양손을 사용하는 넓적한 도에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팽가와는 달라.'

팽가의 무공과는 조금 다르다.

팽가의 도법이 철갑을 두르고 직진으로 달리는 군마와도 같다면, 여인이 휘두르는 도법은 길들여지지 않은 초원의 야생마와도 같은 거친 맛이 느껴지는 도법이었다.

'과거로 돌아오니까 이런 재미도 있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무공이 나왔다! 비록 내가 저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여러 도법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배우고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이려고 했는데, 혹시 비급이 있으면 물어봐야지."

팽가에 도법에 관한 비급을 선물로 가져간다? 그것도 태극혜검의 어검술을 상대로 맞수를 펼칠 수 있는 무공을?

팽도황이 나를 위해 팽유월보고 며칠동안 방 밖으로 나올 생각을 말라면서 모든 식사를 가져다 줄 것이다. 어쩌면 팽가의 무사들을 동원하여 별장에 호법을 세우고 아무도 들이지 못하게 할 수도 있을 터.

"슬슬 결착이로군."

"아아악...!"

선녀는 뒤에서 날아오는 태극혜검을 피하지 못했다. 사공희는 선녀에 대한 배려인지, 검신을 넓게 펼쳐 검신으로 선녀의 등을 때렸다.

"크으윽...!"

선녀는 녹색 안광을 번쩍이며 앞으로 달렸다. 사공희의 네 검은 밖을 향해 나와있었고, 그녀는 무방비 상태였다.

"하하하! 끝이다!"

선녀의 뒤를 쫓는 검은 분명 빨랐으나, 선녀는 귀신과도 같은 걸음으로 거리를 좁히며 도를 들어올렸다. 뒤에서 검에 찔리는 한이 있더라도, 사공희를 베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죽일까?'

나는 앞으로 슬쩍 발을 디뎠으나, 사공희의 움직임을 보고 손을 내려놓았다.

스륵.

사공희는 아주 유연하게 칼날을 피했다. 위에서 내려찍는 도기에 옆으로 비스듬히 빗겨서며 바깥으로 다리를 뻗었고, 뒤로 넘긴 팔에 내기를 불어넣었다.

태극권!

적의 공격을 흐르듯이 맞받아치며 역공을 펼치는 유(流)의 무공은-

"아."

퍼---억!

...태극권이 닿기도 전에, 뭔가가 먼저 선녀의 얼굴을 때렸다. 몸이 태극을 그리며 흔들리는 과정에서 무게가 실린 두 개의 덩어리는 앞으로 고꾸라지는 선녀의 면상을 강하게 가격했다.

"...유(乳)로 제압했구나."

"상공!"

"태극권으로 대처하려는 건 잘했다. 하지만...역시 익숙하지 않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지만, 남자가 상대라면 내가 슬플 것 같구나."

"앞으로는 검 하나는 손에 남겨둘게요...."

사공희는 흔들리는 자신의 가슴을 팔로 지긋이 눌렀다. 그러면서도 다리로는 아래로 고꾸라진 선녀의 등을 지긋이 눌렀다.

"그래도 잡았으니 되었다."

나는 바로 선녀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찔렀다. 선녀는 떨어뜨린 검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으나, 나는 곧장 그녀를 안에서 준비한 끈으로 묶어 제압했다.

"너, 이름이 뭐냐."

"닥쳐라, 이 악적!"

"나는 악적이 아니라 악붕이라니까."

"어차피 녹림의 새끼가 아니더냐! 나를 범하려고 하는 것이지! 녹림의 개새끼들처럼!"

"......."

범하는 건 맞는데, 녹림의 개새끼들처럼은 아니다. 나는 색마답게 범할 뿐.

"상공."

사공희는 내게 눈짓을 보냈다. 나는 그녀의 눈짓을 받고 바로 고개를 끄덕인 뒤, 저항하는 선녀를 일으켜세웠다.

"잠시 오해가 있었군. 미안하오. 농이 과했소."

"농...?"

"저는 무당파의 태극화, 사공희라고 해요."

"뭣...."

선녀의 눈에 의아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하기 짝이 없는, 홍기조차도 입지 않을 복장을 입은 사공희가 무당파의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겠지.

"나는 천무명이라고 하오. 우리는 맹에서 내려온 임무로, 이곳에 있는 녹림의 무리를 죽이고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왔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구나! 내 다리를 강제로 벌리게 만든다고 한 너! 그리고 나를 계속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너! 어디서 사기를 치려는 것이냐!"

"......안 믿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상공. 가시죠."

"그래. 흣차."

나는 선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그녀의 다리를 강제로 들어올리게 만들었다. 정상위의 자세에서 교배천근추로 이어지는 자세였고, 나는 밧줄을 이용해 허벅지와 골반을 하나로 최대한 단단하게 묶었다.

"무림맹을 사칭하고, 여인을 범하려고 하다니.... 네놈들은 미친 것이냐!"

"나, 색마."

"저는 색마부인이에요."

제압이 끝났으니 이제 전리품을 챙겨갈 차례. 나는 황당해하는 선녀의 골반을 붙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너, 너 설마...!"

"넣기 전에 한 번 볼래?"

나는 바지 앞을 슬쩍 내렸다. 고환에 걸린 덕분에 아기색마는 더욱 위로 솟구쳤고, 선녀의 녹색 눈동자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그만둬...!"

"그만둘 거면 애초에 붙잡지도 않았다. 죽였겠지. 근데 난 시간은 싫어서 말이야."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받쳐들었다. 그리고 남은 손은 선녀의 속옷 사이로 밀어넣었다.

백보(白寶)!

역시 선녀다웠다. 그리고 선녀답게, 벌써부터 슬그머니 몸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젖었군. 흐흐, 얼마나 오랫동안 굶주린 거지?"

"아니야...!"

"그럼 두려워서 지린 건가? 크흐흐, 어느쪽이든 관계없다. 희야!"

"바로 해드릴게요."

사공희는 선녀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천을 씌워 나를 이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아니, 입을 맞추지 못하게 막은 건가?

그리고 선녀의 뒤로 엉덩이를 받치듯 비단천을 둘러, 내 허리 뒤로 묶었다.

"예전에 시아랑 할 때 이런 거 있었으면 했거든? 역시 편하구나. 계속 들고 있지 않아도 천으로 받칠 수 있어서."

"후후, 다음에는 저도 해주세요. 그럼 저는 안에서 보물을 가져올게요."

"오냐."

"미, 미쳤어...! 시, 싫어...!"

분명 재갈을 묶어뒀을텐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은 사공희가 잘못 묶은 게 아니다. 입을 가린 천 아래에서 웅얼거리듯 말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명백히 자신의 의사를 언어로 표현해냈다.

"선녀라고 무슨 입이 자유로운 것도 아닐텐데.... 뭐, 상관은 없다."

스륵.

속옷 위로 양물이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는 속옷을 강제로 옆으로 밀어냈다. 습기에 젖은 천조각은 둔덕의 살에 밀려 옆으로 떨어졌고, 열기가 가득한 동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자연적으로 반응하는군. 크흐흐, 남자에게 개발되어진 몸이야. 그런데 한동안 쓰여지지 않았어. 맞지...?"

"다, 닥쳐라! 여자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이냐!"

"여자가 여자지. 다를 게 있나?"

스륵.

나는 선녀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엉덩이를 단단히 붙잡고, 냅다 양물을 쑤셔박았다.

"어, 허억...?!"

선녀는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아랫입을 막아버리니, 이제야 조용해진 것이다.

"견희야, 가자."

"네, 상공."

사공희는 보물을, 나는 선녀를. 누가 더 무겁냐고 따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상자가 큼지막한 것도 아닌 적당한 크기인데다가, 나는 사람 한 명을 직접 품에 안고 동굴을 나가지않는가?

"여기말고 어디 깨끗하고 좋은 곳으로 가자.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으니."

"어머, 정말요?"

"그래. 항산에 아주 절경인 폭포가 하나 있지."

혈교주가 항산에 왔을 때 항상 요양차 몸을 담그던 폭포가 하나 있다. 나는 그곳의 위치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앞으로 걸었다.

"오흑?!"

주물주물.

앞으로 걸을 때마다 위아래로 들썩거리는 맛이 일품이다. 사공희는 혹시나 자세가 흐트러질까봐, 상자를 한손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 선녀의 등허리를 잡아 눌렀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견희야. 상자 드는데 무겁잖니."

"괜찮아요. 이러려고 무공을 배운 거니까요."

"흐흐, 그래. 나도 마찬가지다."

무공의 힘이 아니라면, 여자를 안아들고 어찌 두 다리로 걸어갈 수 있을까!

"다음에 저도 꼭 해주시는 거예요. 알겠죠?"

"물론이지. 흐흐흐."

사공희는 다른 방법으로 체위를 잡아야하겠지만.

"자...선녀여. 얌전히 네 선기를 내놓아라. 만약 풀려나고 싶거든...."

나는 그녀의 몸에 깃든 선기의 기력을 읽어낸 뒤,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녹림황의 유산이 어디에 있는지 실토해라."

"!!"

선녀의 눈동자는 혼란으로 가득찼다.

"호오."

찔러봤는데, 역시나.

어떻게 알았냐고?

'박아보니까 알겠구만.'

수백년 묵은 영물들이나 선녀들이 딱 이런 느낌이더라.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찔러봤는데, 역시나.

이 여자.

어쩌면 녹림황의 그녀일지도...?

"오흑, 어허헝!!"

"......."

나는 찌걱찌걱 동굴을 빠져나왔다.

산적을 털고, 보물을 들고 나온다.

"완벽한 날이군."

찌걱찌걱.

[작품후기]

색마군림보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