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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功移山)
공갈범들은 술과 고기를 사서 산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그들의 뒤를 추적해, 항산 안에 있는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오호호! 그래서 내가 말이야….
-크하하! 이것 참, 성희롱당한 가슴이 이 빨통인가?
-꺄아악! 여기 색마 있어요!
-크흐흐, 신고하시든가!
안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는 분명 산적들의 비명이 분명했다.
"상공,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데요."
"그래. 분명...성을 떠나서 같이 활동하는 놈들일테지."
녹림은 주로 남의 것을 빼앗는 무리들이 함께 활동한다. 쉽게 타인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이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일단 더 들어가보자."
나는 입구에 보초를 서고 있던 이들을 향해 빠르게 검을 날렸다.
푹.
산적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절명했다. 한 명은 내가 처리했고, 옆에 있던 자는 순식간에 활처럼 날아든 검에 목이 뎅겅 날아갔다.
태극혜검의 어검술은 산적을 단칼에 베어버릴만큼 날카로웠고, 사공희의 손속도 사정이 없었다.
"잘했다."
"악인들이니까요. 악한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풀면 안 돼요."
"나는?"
"상공은 자지만 제가 죽이면 되니까 괜찮아요."
그런가. 나는 사공희에게 자지를 살해당하는 건가.
다른 자들은 나쁜 짓을 저지르면 죽여도 되지만 나라는 색마에 대해서는 자지를 죽이겠다는 사공희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분명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사공희는 마냥 착한 여인이 아니다. 강호인들이 생각하는 태극화는 마냥 백도의 의와 협을 생각하는 여인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녀의 실체는 색마부인 견희에 더 가깝다.
오직 나만을 생각해주고, 오직 나만을 우선으로 생각해주는 여인.
"남들이 알면 기겁을 하겠군."
"아무렴 상공만 하려구요."
"그래. 흐흐, 나중에 다 들키기라도 하면 다같이 이국으로 도망이라도 칠까?"
"그것도 좋네요. 중원 땅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살면 힘들기야 하겠지만...저는 상공만 있다면 얼마든지 괜찮아요."
나는 사공희의 손을 잡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적이 나타날 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짜릿함마저 들었다.
"앞에 뭐가 나올지 모른다. 놀라서 비명 지르면 안 된다?"
"후후, 놀랄 게 뭐가 있-"
사공희의 눈이 확 뜨였다.
동굴 안쪽, 우리의 앞에 놓인 건 사공희가 큰 충격을 받아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만큼 심각했다.
"이, 이게 무슨…."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그곳은 짐승들의 향연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녀가 술과 고기를 즐기며, 서로 뒤섞여 마구잡이로 난교를 즐기고 있었다.
"어, 어떻게…!"
"녹림이 다 그렇지 뭐."
비천색마와 천무명이 다르듯, 태극화와 색마부인 견희가 다르듯, 녹림도 앞뒤가 다른 건 마찬가지.
“색마로 사람들을 몰고 구속해서 공갈하여 재물을 빼앗는 자들이다. 하지만 실상은 뒤로 이런 짓거리들을 하고 있었다는 거지.”
역겹다거나 그런 건 없다.
이미 나는 제갈세가를 습격했던 녹림을 제거하면서 그들의 잔인한 행위를 엿보았다.
그 때는 여인들을 납치하여 범하며 이루어진 겁간난교였다면, 지금 우리의 앞에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을 내려 짐승이 된 색광(色狂)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그러더군. 중원에도 분명 씹잔치가 있을 거라고.”
혈교주는 말했다.
“사람이 색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주변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는 법이지. 특히 녹림처럼 성에 대해 개방적인 곳이라고 한다면...더더욱.”
산적 무리에 여자 여럿이 끼어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
“남자들이랑 여자들이 서로 색을 탐하며 뒹구는 모습은 중원 곳곳에 있단다. 단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펼쳐지고 있을 뿐.”
“상공, 저희 그러면 어떻게 하죠?”
“뭐...즐기는 건 내버려 둘 생각이다.”
“왜요? 당장 저들을 죽여야 하지 않을까요?”
“하기 도중에 방해를 받는 것도 불쾌하지만, 하는 도중에 방해 받는 것만큼 불쾌한 게 또 없지 않느냐.”
“아!”
사공희는 단번에 이해했다.
“아무리 못된 자들이라도 자비를 베풀어주시려는 거군요…!”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지 않느냐.”
죽이는 건 확정이다.
다만 죽이기 전에 삶의 마지막 주색잡기를 즐기도록 잠깐의 시간을 줄 뿐.
“일단 도망 못가게.”
나는 동굴 입구에 작은 진법을 펼쳤다. 만약 안에 있던 이들이 밖으로 도망을 친다면, 결코 나가지 못할 얇은 막을 둘렀다.
“견희야. 호흡을 깊게 마시거라.”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사공희가 영향이 가지 않도록 내력을 일으켰다.
“이럴 때를 위해서 준비해뒀지.”
나는 품에서 금창약이 든 작은 함을 꺼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올만한 크기의 함에는 하얀 약이 들어있었다.
다만, 금창약 대신에 다른 걸 넣었을 뿐.
화륵.
삼매진화가 약의 위에 붙었다. 약은 서서히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견희야. 앞으로 한 번 후 불거라.”
“후----”
사공희의 따스한 숨결이 일자, 나는 가벼운 지풍을 일으켜 연기가 동굴 안으로 계속 스며들도록 만들었다.
“어...상공. 이거 설마…?”
“그래. 춘약이다.”
이왕 즐길 인생 최후의 난교, 마지막으로 즐기다 가라고 하지.
“어차피 저 놈들, 동굴 밖으로 절대 나오지 못해.”
나는 사공희를 데리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진법의 주인인 나와 내 정기가 깃든 사공희는 자유롭게 입구를 출입할 수 있었다.
“저 놈들이 색에 미쳐서 날뛰기까지 한 시진 정도 걸릴테니….”
“아, 저 기억났어요. 상공이 지난 번에 가르쳐주셨잖아요. 녹림은 대부분 동굴의 입구를 두 개로 만들어두기 때문에, 반드시 탈출구가 하나 있다고.”
“그래. 잘 기억하고 있구나. 지금부터 우리는….”
나는 칼을 꺼내들었다.
“다른 탈출구로 도망쳐오는 놈이 있다면, 놈들을 죽일 것이다.”
혈교주는 말했다.
“좋은 산적은 죽은 산적 뿐이지.”
* * *
"......."
소복을 챙겨입은 여인은 몰래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랫도리에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남자들의 흔적이 흘러내렸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빨리 챙겨야 해!'
중요한 것은 남들 모르게 따로 빼돌려둔 장물.
'이런 곳에서 걸레처럼 사느니,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제 2막을 펼치는 거야!'
모두가 곯아 떨어졌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지쳐 쓰러졌다.
"콜록."
여인은 기침을 하며 간신히 동굴 중앙을 벗어났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몰래 비상탈출구로 와서 입구의 문을 열었다.
"이제...!"
여인의 손에는 보석과 은자, 재물과 같은 온갖 패물이 들려있었다. 남자들에게서 빼앗은 물건들이 가득했고, 어디 용한 의원을 찾아가서 얼굴을 바꾸기에는 충분한 돈이었다.
"이거로...새 인생을...!"
자신의 공갈로 인해 사로잡힌 남자들?
알게 뭔가. 어차피 그들은 이게 아니었어도 죽었을 운명이다. 자연사든 사고사든 살인 사건이든, 어차피 사람은 죽기 마련.
"키히힛...!"
여인은 힘겹게 앞으로 달렸다. 이제 비상 탈출구는 머지 않았고, 다른 산적들의 비자금까지 몽땅 털어서 인생의 제 2막을-
서걱.
"...어?"
열지 못했다.
여인은 자신의 심장에 박힌 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풀썩. 그녀는 유언을 남길 새도 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지막 순간. 여인은 자신의 앞에 목이 잘린 남자를 보았다. 자신을 향해 허리를 흔들다가, 소피가 마렵다면서 빠져나갔던 남자를.
그리고.
통로 전체에 퍼진 혈향속에, 여인은 눈을 감았다.
* * *
난교를 하다가 정신을 차린 자들은 전부 도망을 쳤지만, 반대쪽 입구를 찾아 틀어막은 우리에 의해 죽었다.
서걱, 서걱.
우리는 태극혜검의 어검술을 이용해 동굴 입구를 여덟 개의 검으로 막았다.
태극혜검이 들킬 위험?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나는 사공희와 함께 남은 석류알을 먹으며 적당한 시간을 보냈다.
“용봉지회에 나선다면, 분명 많은 적들이 있을 것이다.”
“네. 당장 천가장과 진가장만 하더라도 육봉이 차고 넘치지요.”
“그래. 다만, 몇 명은 빼야지. 왕소현은 나이가 차서 안 되고, 당서희는 수준차가 나서 안 나간다고 하더라.”
퍼억.
산적 하나의 목이 날아갔다. 나는 입구에서 돌멩이들의 위에 강기로 문구를 남겼다.
“구파일방과 팔대세가. 이곳에서 한 명씩 나온다고 해도 벌써 18명이란다.”
“심지어 마교나 사파도 있죠. 산주봉처럼.”
“그래. 그리고 얼마전에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인데…이번에는 흑백이화로 올릴 것 같지가 않더구나.”
“네?”
“너와 시아도 육봉으로 내리려고 하는 듯 보여.”
무림맹주가 기지를 발휘하여 사람들의 순간적인 불만을 잠재우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무림인들의 불만은 점차 고조되었다.
-구룡 중에 고작 두세명이 육봉, 아니 팔봉에 비벼지는 게 진실이오?
-폭룡 남궁패? 네 이제는 와백봉 선에서 정리 가능하죠?
-그냥 구룡이고 나발이고 다 용 떼버려라. 구룡육봉이 아니라 남녀 통합 순위를 메기자! 박살 날 거면 아예 완전히 박살나야지!
-...아무리 그래도 후기지수 중 으뜸은 남자가 해야지! 도대체 이게 뭐냐!
여인천하에 대한 남자들의 불만!
용봉지회 당시만 하더라도 잠잠했던 불만이 어느새 최고조에 이르르고 말았다.
여기에는 ‘흑백이화’가 다음 용봉지회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여러 문파들의 의견이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하나, 설마 마교 소공녀가 또 나올 것이냐는 것에 대한 의구심.
둘, 여인들이 후기지수 중 ‘최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
셋, 기존 육봉들이 가지고 있는 입지의 불안정성.
“이번에는 백도만의 축제가 될 것 같기도 하구나.”
“그런…. 용봉지회의 전통은 정사마가 함께 어우러져서 화해의 장을 마련하자는 게 아니었나요?”
“걱정하는 거지. 행여나 십상련의 후예가 구룡육봉으로 나타난다면, 과연 이걸 인정해야하는가.”
마교 소공녀, 이시아의 활약조차 탐탁찮게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혹시라도 십상련의 후예가 당당히 흑백 무림을 모두 꺾고 최강의 자리를 차지한다?
단순한 난리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 용봉지회는 상당히 힘들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태극화라는 별호가 태극무봉이 될 수도 있지.”
“괜찮아요. 저는 한 명만 이기면 돼요.”
“한 명? 누구?”
“팽 소저요.”
“.......”
아직 직접 모든 걸 까놓고 만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호적수로 생각하고 있다니, 조금 무서워졌다.
“팽 소저는 혹시 출전하나요?”
“글쎄. 추이를 봐야할 것 같은데….”
이번에 굳이 하북으로 방문하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녀의 출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지난 번 하북 방문 이후, 약 한 달 즈음이 지났다.
달이 한 번 차올랐다가 지고, 다시 차오르는 시기가 얼추 맞게 떨어지고 있었다.
“피를 보게 된다면 참전할 것이고, 아니면 나오지 않겠지.”
“...역시 상공의 아이를 가진 분. 첩실에 대한 투지가 확실하군요….”
“그런 의미는 아니다. ...유월이는 그렇게 투기가 심한 여인이 아니야.”
“알아요. 지난 번에 무당파에 왔을 때 봤으니까요. 단지...음….”
사공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상공이 가슴으로 하는 걸 바라실 때, 제가 아니라 그분을 찾을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된다고 해야할까….”
“둘 다 부를 건데?”
“...네?”
“이번에 너를 데려온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새로운 색공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나는 정사각형을 네 개의 정사각형으로 나눈 뒤, 각 꼭짓점마다 반 원을 그리듯 그림을 그렸다.
"새로운 색공, 사중결계(四重結界)이니라."
"...음양이옥수를 넘어선 새로운 수법이로군요."
사공희는 그림만으로도 내 뜻을 깨달았다.
"저랑 팽 소저를...같이?"
"그래."
"...후후, 기대되네요. 과연 누구의 가슴이 더 상공을 끌리게 만들지."
사공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요. 시간 다 된 것 같으니."
"그래. 안에 들어가자꾸나."
우리는 미약이 충분히 빠져나온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시체에 박힌 검들을 회수하며, 한창 난교가 일어났던 장소로 당당히 발을 들였다.
그곳에는-
"크하하하! 따먹히고 싶어서 안달이 났, 끄윽, 구나!"
"크으윽…!"
도적들을 상대로 힘겹게 싸우고 있는 미녀가 보였다.
"상공, 저 분은…?"
"쉿."
나는 사공희의 가슴을 잡아당기며 몸을 숨겼다.
"...선녀다."
"네?"
"선기가 느껴지는 여인이야."
미인.
아니.
혈교주는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색스러운 여자 순위가 누군지 아느냐? 1위는 첫날밤을 치르는 연인이고, 2위는 처녀다. ...는 3위에 불과하지.
"저 여자에게서...미망인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선녀인 미망인.
"상공. 섰어요. 빼드릴까요?"
"......귀두만 물어다오."
나는 사공희를 내 아래로 누르며, 밖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탁탁탁탁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