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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색마-210화 (21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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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가 습격 소동

“물러서지 마라! 자리를 지켜! 저들은 우리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당오독은 지풍을 날리며 화마를 제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가를 나가는 즉시 놈들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기관진식의 안에서 싸워야 해!”

사람들이 다치지 않는 것이 당가가 이기는 것이다.

습격자들을 아무리 많이 죽인다고 해도, 결국 당가가 피해를 많이 입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그래서 당가는 자리를 지켜야했다. 불길이 아무리 거세진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습격자들도 꼼짝 못하게 될 것이다.

“성도에 이렇게 큰 불을 질렀어. 관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불을 끄려고 무슨 수든 쓸 것이다!”

관무불가침에 무림의 일이라고 하기에는 방화의 규모가 워낙 컸다.

아무리 당가 주변에 가구가 많지 않다고 한들, 당가에서 번진 불꽃이 사방으로 퍼지면 성도 전체가 불타게 된다.

당가를 습격한 이들의 불꽃이 일반 민가를 덮친다면, 관에서도 개입할 명분이 선다.

“사천성주가 뭔가 조치를 취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돼!”

“가주님, 위험합니다!”

“흐아아앗!”

당오독은 담벼락 너머에서 날아온 횃불에 지풍을 날렸다. 불씨는 지풍에 금방 사그라들었으나, 잔불이 당오독의 몸에 달라붙었다.

“쳇!”

당오독은 내공을 담은 손으로 잔불을 모조리 털어냈다.

그는 내공으로 불꽃을 막을 수 있었으나, 세가의 무사들은 하나 둘 화기에 다치기 시작했다.

피부가 그을리는 것도 물론이지만, 당가가 자랑하는 무기들이 하나 둘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것에 무사들은 실시간으로 전력이 약화되고 있었다.

“가주님, 암기에 발라둔 독액이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젠장, 머리 좀 썼군!”

불꽃은 사람 뿐만 아니라 도구에도 옮겨붙어 활활 타올랐다. 기관진식의 철제 장치들에도 옮겨붙은 불꽃에 당오독은 이를 갈며 불을 껐다.

그러나 이미 열기로 인해 독액은 일부가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곳곳에 깔린 암기들은 독이 사라져 단순히 날붙이로서의 살상력밖에 없었다.

당문이 암기술이 뛰어난 건 맞지만, 극강의 살상력을 자랑하는 건 당연히 독, 그 중에서도 암기에 묻힌 독이다. 불꽃에 독이 무용지물이 된 이상, 당문은 비수를 날리는 것 이외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습격자들이 담벼락을 넘어오지도 않으니, 이대로 있다가는 가만히 불에 타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감히 당가에 이런 굴욕을 주다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화륵, 화륵.

적들은 집요하게 당가 안으로 방화를 저질렀다. 마치 지금하는 방화 행위가 범법이 아니라는 듯, 그들은 축제를 여는 것 마냥 불을 집어 던졌다.

습격자들의 입장에서, 오늘은 당가가 멸망하는 기념비적인 날이리라.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으아아아!!”

당오독은 전력으로 횃불을 쳐냈다. 아무리 급하게 다녀도 몸이 하나인 사람인 만큼 모든 지역을 다스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형인 당사림이 있다. 그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당가의 사람들을 다독이며 전열을 유지했다.

그리고 당가의 모든 이들이 있다. 한 명이라도 도망친다면 사기가 떨어지겠지만, 당가는 가족과 친지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마교인이라고 할지라도.

"사천당문은 이 정도 불꽃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호기롭게 외친 순간.

"가주!!"

불꽃이 당오독의 얼굴을 덮쳤다.

* * *

"슬슬 나올 때가 되었는데."

뢰마는 화마가 덮친 당가에 괜히 초조해졌다.

당가의 무사들은 한 명도 뛰쳐나오지 않았다.

어지간한 불꽃도 아니고 성도 전역을 밝힐 정도의 불꽃임에도 불구하고, 당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에서 다 타죽으려나? 예나 지금이나 다들 미친 놈들인데?"

집을 전부 삼키는 불꽃에 도망치지 않는 이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불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다.

뢰마 또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불꽃을 일으킬 수 있기에, 불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불이 붙은 지 일 각이 지나도 무사 하나 튀어나오지 않는 당가가 참으로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배신자 하나 쯤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리 가문의 일원으로서 의지가 굳건하다고 한들, 한 명이라도 뛰쳐나온다면 사람인 이상 의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단 한 명만 나오면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게 될텐데. 뢰마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예 벼락을 떨어뜨려야하나...."

진신절기를 사용하여 당가를 습격한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뢰마가, 마교가 저지른 짓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리라.

'아니, 그건 안 돼.'

뢰마는 자신이 화살의 과녁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은 뒤에서 계략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만 할 뿐, 정마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은 뢰마가 아닌 '대공자 주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내가 팽당해.'

뢰마 본인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도 있지만, 대공자 주지의 이름이 퍼지지 않으면 뢰마가 대공자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다.

- 왜 내가 아니라 네가 정마대전의 주축이 된 것이냐!

대공자는 필히 그렇게 화를 낼 사람이다. 자신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에 길길이 날뛸 것이며, 마음 속에 깊이 담아뒀다가 나중에 천마가 되면 뢰마를 십마에서 원로로 내쫓을 것이다.

"그럴 순 없지. 난 아직 창창한 현역인 걸."

뢰마는 손에 튀기는 전격을 거두었다.

"...흥."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이다. 한 번 붙은 불꽃은 비라도 내리지 않는 한 꺼지지 않을 것이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당가를 불태울 것이다.

'언제까지 나서지 않을 셈이지?'

뢰마가 초조함에 짜증이 일어난 순간.

화륵.

불꽃의 움직임이 변했다. 담벼락 전체에 달라붙은 화마는 일정한 높이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뢰마는 쾌재를 불렀다. 사이한 불꽃의 움직임은 분명 자연적인 움직임이 아니다. 세상 어떤 불꽃이 가문의 담벼락처럼 일정한 높이로 활활타오르겠는가.

파지직!

"불꽃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여자! 당가의 무공도 아니니, 사람들이 분명 궁금해하겠지."

하늘로 전격이 번쩍 튀어올랐다. 뢰마의 신호가 사방으로 퍼지자마자 흩어져있던 습격자들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세가 안으로 집어던졌다.

"기름이면 더 활활 잘 붙겠지? 어디 한 번 마음껏 써봐라. 천마신공없이는 힘들 걸?"

콰앙, 쾅!!

세가 안으로 날아든 기름주머니에 불꽃은 점점 흉악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뢰마는 볼에 닿는 열기에 부채질을 하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염마, 가만히 앉아있을 거야? 한 번 보여줘야지. 마공을."

구구구구.

"어서 지옥화염대법을 써! 그리고 만 천하에 공개해! 네가 염마라는 사실을!!"

기름에 타오르는 불꽃이 점차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마귀가 절규하는 듯한 모습에 뢰마는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어라."

예상 외.

기분 좋은 예상 외의 상황이 아닌, 명백한 예상 외의 상황에 뢰마는 계획이 뭔가 틀어졌음을 깨달았다.

화륵, 화르륵.

염마가 힘을 쓰는 것 까지는 예상했다. 당가의 여인이 사이한 술법을 사용하는 것을 성도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 당가에서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그것만으로도 당가는 끝이다.

정마대전이 일어나는 계기로 확전되는 것도 좋겠지만, 사천당가에서 보호하는 자가 염마라고 알려지게 된다면 당가는 정파에서 쫓겨나게 된다.

- 마교에 온 걸 환영하오, 당문이여!

대공자는 두 팔을 벌려 당문을 환영할 것이며, 사천에서 난감한 상황에 처할 당가를 구하기 위한 구조대도 꾸려져 서장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러니까, 염마는 사천당가를 구하기 위해 힘을 사용해야했다.

불꽃을 다스리는 지옥화염대법으로 불꽃을 모조리 자신의 힘으로 다루며 억제하고, 붉은 안광을 뿌리며 '천마신공'을 사용해야했다.

화르륵.

저렇게 정순하고 신성한 느낌마저 드는 불꽃이 아니라, 사람 수 천을 태워버린 지옥같은 불꽃이 타올라야했다!

"...천마신공 없이 이런 힘을 쓴다고?"

눈앞의 광경은 계획과 사뭇 달랐다.

사천당가를 지키는 불꽃의 벽은 담벼락을 태우지도 않고 불타고 있었다. 습격자들이 던지는 횃불을 잡아먹으며 더욱 불꽃의 열기를 가득 채웠다.

"...저건 마공이 아니잖아!"

불꽃에는 영험한 선기(仙氣)가 느껴졌다.

* * *

화륵.

튀어오른 불씨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덮쳤다.

"크아아악! ...응?"

당오독은 자신의 얼굴을 덮은 불꽃에 기이함을 느꼈다. 뜨겁지도 않고, 피부가 타들어가는 고통도 없었다. 오히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상한 피부를 어루만지는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건 도대체...?"

"제 힘이에요."

"서희야!!"

당오독은 화골산우진에서 빠져나온 당서희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상시 발정하던 그녀는 누구보다도 정숙한 자태로 밖으로 나와 힘을 펼치고 있었다.

당서희의 주변에 펼쳐진 불꽃은 신장(神將)처럼 당서희를, 그리고 사천당문을 지키는 듯 굳건히 서있었다. 당서희의 두 배 만큼 거대한 불꽃의 거인은 머리 부분이 소의 뿔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염...제?"

"허상일 뿐이에요."

당서희는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화염의 거인 또한 당서희를 따라 손을 들었고, 곧 화마가 덮친 담벼락의 불꽃은 거인의 손길에 따라 일제히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급급여율령, 축성."

당서희의 말에 불꽃은 담벼락을 따라 새로운 벽으로 변했다. 기존의 담벼락 위에 쌓인 불꽃은 밖에서 던지는 횃불을 막는 또다른 벽이 되었고, 사천당가의 내부를 지켰다.

"서희야, 괜찮느냐...?"

"괜찮아요. 병은...억눌렀으니까."

당서희는 힘겹게 웃으며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고대의 도사들이 허공에 축문을 새겨넣는 듯한 행동에 당오독 뿐만 아니라 당가의 모든 이들은 사방을 뒤덮은 불꽃에 담긴 힘과 의지를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꽃은 당가를 태우는 마귀였으나, 지금은 사천당문을 지키는 수호령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인간이 불꽃을 조종하다니...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괴...물?"

당가의 무사들조차 허탈감을 내비쳤다. 무사들의 중얼거림을 들은 당서희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무사들이 당서희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외감-존경과 동시에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갈!!"

당오독은 사자후를 터뜨렸다.

"서희는 병세를 억누르고 당가를 지키기 위해 힘을 드러냈거늘, 감히 누가 망발을 지껄이느냐! 서희는 당가의 여인이다! 우리의 가족, 핏줄이니라!!"

당오독의 외침에 무사들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설령 신화(神火)를 다루는 선녀라고 한들, 당가에 태어난 이상 당문의 여인이니라!!"

"""선녀!!"""

무사들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사술을 쓰는 자도 괴물도 아닌, 선녀라는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예?"

졸지에 천계에서 내려온 선녀가 되어버린 당서희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 * *

웅성웅성.

구경꾼들이 불꽃의 기이함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무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촌부라고 한들, 불꽃이 담벼락처럼 사천당가를 지키는 듯한 모습을 보면 당연히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다.

- 지금...저 불이 당가를 지키고 있는 건가?

"젠장...!"

뢰마는 일을 그르쳤음을 깨닫고 손가락을 튕겼다.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했다가는 당가가 오히려 좋은 방면으로 상황이 흘러갈 수 있다.

마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불꽃을 조종하여 당가 전체를 아우르는 담벼락을 만들어냈다. 사이한 마기가 느껴지기는 커녕 정순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넘실거리는 불꽃은 더이상 화마(火魔)가 아니었다.

"모두...."

뢰마는 결코 말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꺼내야만 했다.

"쳐라---!!"

서거걱!

뢰마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곱 검의 소유자가 당가의 정문을 향해 쌍검을 휘둘렀다. 두꺼운 정문은 거친 검기에 순식간에 쪼개져 망가져버렸고, 그의 검에는 거칠고 사나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가라, 검담! 가족을 잃은 복수를 하라!!"

"크르르르...!"

일곱 검을 든 자, '검담'이라고 불렀던 자는 포효를 내지르며 당가의 문턱을 넘었다. 칠흑같은 검기를 뿌리는 검담의 움직임에 습격자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검담의 뒤를 따라 달렸다.

화륵, 화르륵.

불꽃의 담벼락은 여전히 당가를 지키고 있었고, 뢰마는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렸다.

"......실패했군."

사락.

뢰마는 자리를 박차고 사라졌다.

* * *

"뢰마, 아니 여자가 도망치고 있군."

나는 전각 위에 올라 포위망을 살폈다. 이시아는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뢰마를 보며 혀를 찼다.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

"비천 하고 싶은 대로."

이시아는 전적으로 나를 지지했다. 내가 무슨 결과를 내더라도 나를 존중하고 내 뜻대로 할 것처럼 보였다.

"네가 나한테 손해를 끼칠 리는 없잖아. 그러니까 하고 싶은대로 해."

"...그럼 잠시."

나는 전각 위에서 이시아와 입술을 맞췄다.

"이 입술이 식기 전에, 뢰마를 범하고 오겠소."

도망치는 여자를 강제로 범한다.

그게, 색마니까.

[작품후기]

지금 범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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