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09화 (209/568)

--------------------

사천당가 습격 소동

인간은 원초적으로 폭력적인 것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괜히 삼대 구경거리 중 하나가 물구경, 불구경, 그리고 싸움구경이라고 하는게 아니다.

특히 중원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림 세력들의 싸움은 가까이서 보면 피해를 입기 십상이지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이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또 없다.

"아 글쎄, 사천당가에 피해를 입은 자들이 피의 복수를 부르짖는다는 구만!"

"그래? 내가 들은 건 그냥 색마들이 당가를 덮친다는 거였는데?"

"멀리서 구경이나 해보자고."

야심한 밤.

사람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당가를 습격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있는지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며, 과연 당가가 이길 지 습격자들이 이길 지 저마다 승패를 점치고 있었다.

"쯧."

당가에서 쫓겨난 무사, 육삼은 당가의 불행을 구경거리 삼는 이들이 영 아니꼬왔다.

비록 자신이 정량 이상의 독을 사용하는 바람에 당가에서 쫓겨났다고 하지만 그에게 당가는 자신의 자랑 거리 중 하나였다. 중소문파에 들어가 나름 당가의 무인이었다고 거들먹 거릴 만큼, 그는 당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단전을 폐하라고 했다면 자신도 습격자들과 함께 당가를 습격했겠으나, 육삼은 당가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신체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습격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직접 당가 안으로 들어가 습격자들을 상대하지도 않았다. 이른바 구경꾼이 되기로 한 것이다.

"응?"

코에 찌르는 이상한 냄새에 육삼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는 개구리를 바싹 구워 꼬치에 끼워둔 작은 소녀가 묵묵히 사천당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야, 너도 구경하러 왔니?"

"...네."

소녀는 개구리 뒷다리를 뜯어먹으며 사천당가를 가리켰다.

"지금 저기 뭐하는 거예요?"

"당가에 복수하러 온 사람들이 복수를 하는 거지. 무림의 일이야. 우리같은 양인들은 관여했다가 크게 다칠 걸?"

"당가에 대한 복수...."

소녀는 몹시 침울해보였다.

"당가는 정말 나쁜 사람들일까요?"

"글쎄다. 적어도 착한 사람들은 아니지."

"왜요? 그들은 독을 연구했을 뿐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다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

육삼은 쓰게 웃었다. 그는 자신의 팔을 걷었고, 그의 팔은 한쪽의 색이 검게 침착되어 있었다.

"옮는 거 아니니까 놀라지 마라. 예전에 당가의 독에 의해 다쳤고, 치료하면서 남은 흔적이니까."

"...당신도?"

"뭐, 나야 자업자득이지만."

육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슬슬 습격자들이 움직일 기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일에는 업보라는 게 있는 거지."

"업보.... 당가는, 바뀌어야 하는 걸까요."

"내가 당가 사람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

화륵.

갑자기 어둠이 밝아졌다. 눈을 아프게 하는 불빛에 육삼은 자신이 헛것을 보나 싶어 오한이 들었다.

"...미친 거 아냐?!"

습격자들은 당가를 포위하는 거로 모자라, 당가의 담벼락에 불을 붙였다.

정문을 부수고 문파의 현판을 짓밟으며 생사결을 펼치는 전형적인 습격이 아닌, 명백히 '몰살'의 의지가 담긴 악의 섞인 방화였다.

"미, 미친...! 이건 진짜 전쟁을 하자는 거 아니야!"

육삼은 행여나 불길이 튈까봐 급히 몸을 숨기려했다.

"꼬마야, 여긴 위험해! 어서 도망...?"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소녀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그 사이.

성도의 어둠을 밝히는 화마(火魔)가 당가를 뒤덮기 시작했다.

* * *

사천당가가 화마에 휩싸인 그 시각.

섬서, 서안의 객잔 마당은 열기로 가득 차올랐다.

"후우, 대단한데?"

마검비는 땀에 절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앞에는 붉은 무복의 매화검수 둘이 지쳐 쓰러져있었다.

"하아, 하아. 과찬이시오...!"

"역시 천하는 넓군.... 검의 길은 끝이 없어."

두 청년은 한쪽 무릎을 꿇을 채, 바닥에 꽂은 검에 온몸을 지탱하며 호흡을 골랐다. 꼴사납게 쓰러지지 않은 모습이야말로 '화산'다웠다.

"너희는 강해. 앞으로 장래가 정말 기대되는 검사들이야."

마검비는 인자한 눈빛으로 두 청년을 칭찬했다. 흑과 백을 떠나, 같은 검의 길을 걷는 동료로서 젊은 고수들의 성장을 칭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30년 정도 더 수련하면 지금의 나를 뛰어넘을 지도 모르겠네. 후훗."

"30년...."

두 매화검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그들의 육신에 깃든 화산의 정신이 몸을 반듯하게 곧추세웠다.

"매화검수 자우양, 패배를 인정하오."

"매화검수 자청하, 검각주의 가르침에 감사드리오."

와아아아아!!

두 청년의 시원한 패배 인정에 구경하던 이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주변 공터에는 누구 하나 다친 사람 없이, 누구 하나 피해를 입지 않고 비무는 아름답고 멋지게 끝났다.

역시 검각주야! 크으, 전대 천마가 검각주에게 반해서 검마로 데려갔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군!

마인만 아니었으면 검후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아니! 그녀가 섬서를 위해 해준 업적을 생각하면 섬서검후라고 불러야 할 테지!

마검비랑 결혼하고 싶다...!!

"후후후."

마검비는 웅성대는 군중들의 말소리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낮게 웃기만 하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20년만 젊었어도.'

20년 전의 자신은 두 매화검수보다 약했다. 만약 자신이 20년만 늦게 태어났거나 저들이 20년 먼저 태어났다면, 마검비는 눈앞의 두 매화검수와 좋은 관계를 맺어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아."

하지만 그녀는 검으로 너무 빠른 성장을 해버렸다.

여인으로서-아니 무인으로서 동경할 수 밖에 없는 누군가의 검을 본 뒤로, 그녀와 검을 논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검을 수련하다보니 너무나도 강해져버렸다.

- 천마님? 왜 저를 버리시는 건가요?

- 끙...! 나보다 검으로 강한 여자는 싫소!

자신을 검마로 끌어들인 전대 천마는 검으로 패배한 뒤 검마를 등한시하게 되었다. 이미 몸도 마음도 마교에 내던졌던 그녀는 고작 '남자보다 검이 더 강하다'는 이유로 천마에게도 버림받고 말았다.

마음을 줬던 전대 천마의 아들인 현대의 천마도 마찬가지.

"...나를 정녕 검으로 꺾을 남자는 없단 말인가?"

마검비는 갑자기 허탈하고 속상해졌다.

천하에 남자가 이리도 많은데, 왜 하필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검사는 오직 한 명 뿐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게 왜 하필 여자란 말인가!

'검담은 오지도 않고.'

검 좀 쓴다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마검비와의 비무를 포기했다. 마검비도 이미 가정이 있는 남자를 상대로 검으로 협박하여 남자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본인을 쓰러뜨릴 자, 얼마든지 도전하라!"

마검비!! 마검비!! 마검비!!

마검비는 사람들의 환호성에 은은한 미소로 화답하며 자리를 떠났다.

처음에는 색마들을 쓰러뜨려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나중으로 가서는 오라는 색마는 오지도 않고 마검비와 비무를 하려는 이들만 차고 넘쳤다.

마검비 본인도 싫지 않았다.

혹시나 자신을 이기는 남자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다리에 매달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를 놓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마검비, 올해 나이 마-

"오셨습니까, 검각주."

객잔에는 검각의 옷을 차려입은 두 명의 여인이 그녀를 맞이했다. 검을 쓰는 이들은 아니지만, 같은 뜻을 함께 하기로 한 두 백도 후배의 배웅에 마검비는 언짢아졌던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예의가 참 바르구나."

"선배님에 대한 기본이지요."

"각주님, 매화검수들은 어땠습니까?"

"강하긴 한데, 검에 잡념이 많더구나."

마검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 살포시 앉았다.

"스스로 강해질 생각보다 '저 녀석보다 더 강해야 한다'는 집념이 강해. 그걸 이겨내지 못하면 서로가 서로의 발전에 저해가 될 아이들이다."

"서로가 서로의 목표가 되어버렸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젊었을 때야 선의의 경쟁이지만, 나중에 나이를 먹고 나서도 과연 그게 선의의 경쟁이 될 지 모르겠구나."

마검비는 두 후배들이 올리는 술잔을 받았다.

"후우, 이제 섬서에서도 슬슬-"

달칵. 마검비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곳곳에 숨어있던 검각의 여고수들이 검을 뽑아 불청객을 향해 검을 겨눴다.

"정해진 시간 이외에 찾아오는 자들은 반기지 않는데?"

"하하, 마검비시여. 이 놈을 잊으셨다면 실망입니다."

객잔을 찾아온 남자는 술을 흔들며 미소지었다.

"설마 그대는-"

"옛 이름은 버렸습니다. 지금은 청창살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이구려. 여기 앉으시게. 이 아이들은...."

"마검비 님. 제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일어나셔야 할텐데, 죄송하지만 이야기는 가면서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청창살의 무례한 말에 검각의 여인들이 모두 흉흉한 기세를 끌어올렸다. 마검비 또한 그다지 기분은 좋지 않은 듯 술을 가볍게 들이켰다.

"술 맛이 떨어졌구나. 네가 가져온 술이 부디 이 술보다 더 깔끔하기를 바란다. 아니면 너를 안주거리로 삼아야 할테니."

"검담."

마검비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검담이라는 자가 사천당가를 치기 위해 색마들을 모집했다는 소문입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당가에 복수를 하고, 당가의 미녀를 범하겠다고 하더군요."

"......아하하하!!"

마검비는 배를 잡으며 깔깔 웃었다.

"감히 이 놈이 나를 무시하고 사천으로 갔다 이거지...?"

쩌적, 쩌저적.

귀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마검비는 벗으려던 외투를 다시 챙겨입었다.

"내가 직접 간다. 사천당가가 습격당한다고? 마침 잘됐어. 섬서 색마들을 모조리 죽였으니, 이제 사천의 색마를 죽이러 가자꾸나."

"""예, 각주!"""

마검비는 검각의 무리와 사천배후성의 무리를 이끌고 사천으로 향했다.

* * *

"이상한 화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서희네 집 활활 타고 있었군."

나와 이시아는 비고의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메케한 연기가 당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고, 바깥에서 횃불들이 당가 안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니었군. 이거, 당가를 철저히 몰살시키려고 하는 거다."

"이...미친...."

이시아는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게 마교 짓이라고 퍼지는 순간...."

"정마대전 발발이지."

뢰마의 행동은 생각보다 더 급진적이었고, 더 과격했다.

당가에 대한 피의 복수를 천명하더라도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정도가 있는데, 뢰마는 적정 선을 넘다 못해 아예 선에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당가의 무사들은...씁.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나."

"집에 불이 나는데 적의 습격을 기다리고 있으면 불에 타죽기만 하겠는데."

세가는 가문의 자산이다. 온갖 기관진식이 깔려있고 독액이 넘쳐난다고 한들, 불꽃에 전부 타버리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다들 불 끄느라 정신이 없어."

정문을 부수고 들어오거나 담벼락을 뛰어 넘어오는 자들을 마비시키거나 중독시켜 쓰러뜨리려고 벼르고 있던 무사들은 급히 물을 가져와 횃불에 끼얹거나, 아니면 모포 같은 걸로 불을 향해 휘두르며 불을 끄기에 급급했다.

"염마를 상대로 염마 집에 불을 질러서 능욕을 하다니, 이런 막되먹은 습격이 다있나?"

"그게 누구 아기집에 불질러넣고 할 소리예요?"

아래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당서희, 염마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확실히 난리가 났긴 했네요. 이거 분명 대공자가...."

"그 새끼가 허락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지."

이토록 과격한 짓을 뢰마가 단독으로 저지른다? 절대 그럴 리 없다. 뢰마는 굳이 따지자면 지극히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이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의 정도'를 알고 있다.

뢰마 단독 행동이라면 천마가 뢰마를 십마에서 제명하는 거로 해결될 문제이나, 뢰마가 '대공자'의 명령을 받고 움직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차기 천마가 될 지도 모르는 자가 사천당문을 불태워 없애버렸다. 백도 무림 전체가 긴장하게 될 것이며, 당문의 멸망은 정마대전의 시발점이 된다.

"대공자가 갑자기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나중에 직접 잡아다가 족쳐보면 알겠지만, 일단 이거 수습부터 하자. 염마, 뭐 좀 해봐."

"공주님, 저 이래봬도 화경 고수거든요?"

당서희는 두 손을 합장하듯 붙였다.

내게 꼼짝도 못하고 다리를 벌리지만, 이시아에게 미친개 타구봉으로 두드려 맞듯 맞기도 했지만, 당서희는 명백히 '사천 최고 고수'라고 봐도 무방한 존재였다.

"마침 주인님께서 양기도 불어넣어주셨으니, 저는 지금 최강이랍니다."

"흐흥, 자신감 넘치네?"

"물론이죠. 그야...."

화륵.

당서희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저는 지금 비천염마니까요."

당가를 덮친 화마가 하늘로 높이 치솟기 시작했다.

[작품후기]

비천여-엄마

가운데 늘여서 불러주는 게 포인트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