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96화 (9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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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원이 된 이유

맹주의 인도에 따라 섬 내부 장원으로 들어온 이시아는 바로 전날 자신이 서 있던 곳에 똑같이 서 있는 사공희와 마주 서게 되었다.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리죠. 현자도사 무붕의 제자, 사공희라고 합니다. 아직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상공을 곁에서 평생 모시고 살 아내입니다.”

“그래? 마교 소공녀, 이시아야. 그거 잘됐네. 나를 위해 평생 충성을 바치고 살 비천색마의 주인이 나거든.”

고고고.

다시 물결에 파란이 일기 시작했다. 중재자가 있어도 서로 눈을 부라리며 싸우기 일쑤건만, 당장 중재할 사람도 없으니 서로를 향해 더 날을 세우기 쉬웠다.

저벅, 저벅, 저벅.

둘은 전날처럼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한 걸음을 앞에 두고 서로 마주 섰다.

“상공 앞에서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확실하게 하죠. 소공녀도 상공과 했죠? 음양합일.”

“당연하지. 놈이 애초에 나를 따라서 온 건 나를 따먹으려고 했던 거니까.”

“따먹...흠흠. 그래서 상공께서는 소공녀를 범하셨습니까?”

“아니? 내가 따먹었는데.”

이시아는 고개를 치켜들며 의기양양했다. 사공희는 이시아가 괜히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상공께서 여인에게 범해지다니, 당신이 상공보다 강한 게 아니잖아요.”

“무공의 수위로 따지면 당연히 낮지. 하지만 말이야, 남녀 관계는 밀고 당기는 게 기본이야."

이시아는 고개를 더욱 치켜들었다. 고개가 넘어가다 못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듯했다.

"남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거? 그런 거 짜증 나기만 하고 지쳤어! 어차피 안을 쑤컹쑤컹 하게 될 거, 본론부터 들어가면 어디 덧나니? 괜히 자지가 안을 드나드는 줄 알아? 삽입되었다 멀어졌다 하는 것처럼 남녀 사이도 똑같은 거지.”

“와…. 세상에. 소공녀가 이렇게 변태 같은 사람인 줄 몰랐어요.”

“뭐래. 걸어 다니는 음탕 주머니가.”

이시아는 스스로 말해놓고도 진심으로 억울했다.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도 나, 당신 음탕 주머니 한 번만 만져봐도 돼?”

“훗.”

사공희 자신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부위에 대해 이시아는 명백히 부러워한다. 적어도 가슴만큼은 이시아가 사공희에게 객기를 부리지 않았다.

“제 가슴도, 제 몸도 모두 상공의 것입니다. 만지고 싶으면 상공의 허락을 받으셔요.”

“와, 말하는 것 좀 봐. 어쩐지 그 인간이 내내 내 엉덩이 만져댄 이유가 있었구나. 씁, 나쁜 자식. 내 엉덩이가 이 가슴 대용이었구나?”

“제 가슴과 비교되는 엉덩이라고요? 한 번 만져봐도 될까요?”

“뭐래. 이거 그 색마 전용이야.”

이시아는 자신의 등허리 쪽을 손으로 찰싹 튕긴 뒤, 사공희를 향해 웃었다. 사공희 또한 이시아를 바라보다가 방긋 웃었다.

“우리끼리 싸워봐야 아무 득이 없겠네요.”

“그러게. 서로 감정 상하는 것 보다 서로 돕는 게 더 나아.”

둘은 동시에 내기를 일으켰다. 태극신공과 천마신공이 한 곳에 어우러지는 가운데, 둘은 동시에 서로의 ‘무공’ 경지를 가늠했다.

49 : 51.

사공희가 아주 약간 약했지만, 종이 한 장의 차이는 전투 상황과 사용하는 무기, 그리고 그날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승패를 뒤집을 수도 있는 차이였다.

“비천색마가 너한테 검 두 자루 선물한다더라. 그거 있으면 거의 막상막하겠는걸.”

“예. 지금은 상공께서 주신 검이라고 해봐야 한 자루밖에 없으니까요.”

태극혜검의 어검술은 네 자루를 동시에 사용할 때 가장 강력해진다.

하지만 사공희는 현재 자보검 한 자루만 가지고 있으며, 이시아에 비해 모자란 2만큼의 전력은 무기의 힘으로 메울 수 있었다.

싸아아---

둘은 동시에 기를 잠재웠다. 모처럼 생긴 호적수를 비무로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우리 서로한테 좋은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러게요. 자주 비무를 하도록 하죠. 금방금방 실력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날, 용봉지회에서 싸우면서 진심으로 느꼈어요. 당신과는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고.”

“그렇지? 나도 마찬가지야. 물론 그놈 때문에 질척거리고 복잡한 관계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날의 기억은 잊지 말자.”

둘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나도 마찬가지야."

용봉지회의 결승전에서 함께 손을 맞잡고 이봉을 포기했던 날처럼, 둘은 서로를 인정했다.

“물론 상공은 제 거예요. 제가 먼저 차지할 거랍니다.”

“흥. 스스로 비천색마를 자처한 남자야. 당연히 천마의 것이 되는 게 운명이지.”

“색마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백도 무당파의 장문인이 될 몸으로서, 색마를 물리치고 제 옆에서 꼼짝도 못 하게 가두는 수밖에.”

“천마보다 강한 존재는 반역죄로 다스려서 천산에다가 묶어두고 못 내려오게 막을 건데?”

꽈아아악.

맞잡은 두 손에 동시에 힘이 들어갔다.

“누가 먼저 이기든 시원하게 인정해주는 거다. 알았지?”

“물론이죠. 나중에 울고불고 추하게 바짓가랑이 붙잡고 시녀라도 좋으니 제발 곁에 있게 해달라고하기 없어요.”

“비천색마보다 강해져서.”

“상공을 비무로 쓰러뜨린다.”

둘은 이미 생사결을 비무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내기로 마음먹었고, 그 부분 만큼은 서로 분명히 통했다.

“”그리고 힘으로 범한다.””

짝. 둘은 맞잡은 손을 가볍게 손뼉을 쳤다.

“너한테도 그렇게 얘기했어? 자기보다 강한 여자 있으면 조용히 기둥서방 하겠다고.”

“네. 아예 대놓고 말씀하셨어요. 만약에 제가 당신보다 더 강해진다면, 밥하고 빨래하고 박아주고 다 해주신다고.”

“좋아, 천마가 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

“저도 상공이 해주시는 밥을 삼시 세끼 먹고 싶답니다.”

두 여인은 행복한 망상에 빠졌다.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쪽이든 그를 무공으로써 이겨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천마보다도 강할지 모르는 남자.

무림 맹주보다도 강할지 모르는 남자.

둘은 다시 함께 손을 잡고 장원이 있는 다리 끝을 향해 걸었다.

“나이는 들었지? 정말 21살이 맞을까?”

“반로환동을 하셨든 진짜 21이든 뭐 어때요? 그게 더 좋지 않아요? 적어도 나이든 노인이 젊은척 하는 건 아니니까.”

“...너 뭘 좀 아는구나?”

공감.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길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며, 서로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것이다.

“혹시 위에 올라타 보셨어요? 그때 상공 얼굴, 일그러지면서 뭔가 참으려 할 때 표정이 얼마나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지 몰라요.”

“크으, 알지! 입술 아래를 깨물다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가. 하아, 녀석은 자기 가슴팍 양쪽 유두가 달아올라서 흥분하는 것도 모를 거야.”

"그거 살짝 핥아드리면 엄청나게 좋아해요."

"오오...!!"

두 여인은 한 남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이미 친해질 계기는 충분했고, 서로 숨기거나 속이는 일 없이 정정당당하게 비법을 나누기 시작했다.

“혹시 입으로 해보셨어요?”

“이, 입? 너, 넣어보려다가 너무 턱이 아파서 안 했어. 그냥 윗부분만 조금 핥았는데.”

“그거 목구멍까지 넣어보세요. 처음에는 상공 애를 태우다가, 적당히 혀 뒤로 넘기기만 하면 상공이 머리 잡고 누르시거든요? 그게 진짜 미칠 것 같아요.”

“오, 오오….”

과연 맹주는 알고 있을까? 자신의 별장 안에서 흑백 무림의 미래를 책임질 두 여인의 대화는 어지간한 저잣거리 아낙네들 모임보다도 더 낯뜨겁고 선정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

화기애애 웃던 두 여인은 서서히 목소리를 낮췄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작은 발걸음 소리에 맞잡았던 손을 놓고 서로 거리를 벌렸다.

‘온다.’

‘그년이다.’

둘은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붕공적.

여자와 여자가 친해지는 길은 서로 같은 적을 두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두 분."

무림 맹주의 딸, 독고연.

마침 사공희와 이시아로서는 자신들의 지분을 빼앗을지도 모르는 상대를, 그리고 색마가 취하기로 예고한 상대를 두고 쉽게 친해질 수는 없었다.

모질게. 퉁명스럽게.

이시아는 속으로 칼을 갈며 안개 속에서 걸어오는 여인을 맞이했다. 하지만 사공희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제가 마중을 나가면 되는데….”

“괜찮습니다, 독고 소저.”

사공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독고연에게 다가갔다. 이시아는 벌써 배신이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안개 속에서 드러난 독고연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봐!”

“콜록!”

독고연은 소매로 입을 가리켜 각혈했다. 연보라색 소매가 붉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으나, 그녀는 그것 조차 익숙하다는 듯 힘겹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무림맹에, 어서오세요. 여기는 무림맹 안에 있는 별장입니다. 주변에 지하로 흐르는 강물이 차올라, 사시사철 섬으로 되어 있답니다. 다리에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주셔요. 그리고....”

독고연은 안쪽을 가리켰다. 다리 너머에는 큼지막한 장원이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무림맹, 독고 세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독고연.

이시아로서는 듣기만 하고 생전 처음 보게 된 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처럼 창백했다.

* * *

“이렇게 먼 길 찾아주어서 영광이오, 무붕!”

“제가 다 영광입니다, 맹주님.”

무림 맹주의 집무실에서 나는 맹주와 독대를 하게 되었다.

‘이게 신의의 이름값이지.’

신의의 제자라는 이름 덕분에 맹주는 나를 곧장 자신의 집무실로 초대했고, 나는 덕분에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고 바로 맹주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봉결정전에도 의원으로서 의술을 펼치러 오셨소?”

“예. 마침 지나가다가 들렸습니다.”

지나가던 의원만큼 실력 좋은 의원이 또 없다.

“그런데 맹주님, 저를 따로 이렇게 부른 이유는 혹시-”

“그렇소. 내 딸, 연이에 대한 일이오.”

역시.

'혈세, 혈세, 혈혈세-------!!'

나는 속으로 하늘을 향해 사자후를 터뜨렸다.

“연이라 함은...독고연 소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올해 갓 성인이 된 아이지.”

“.......”

성인 나이 20세. 나라에서 세금을 부과하는 나이다.

여색과 주독에 파묻힌 나도, 죽을병에 앓아누워있던 독고연도 모두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연이는 몸이 많이 약했소. 하지만 무공만큼은 익히는 데 문제가 없었지.”

그렇기에 꽃다운 청춘을 넓게 펼쳐보지도 못하고 맹의 별장, 독고세가에 갇혀 사는 독고연은 새장 속에 갇힌 제비나 마찬가지다.

“내가 어렸을 때보다 더 강하오. 물론 당시 내가 독고구검을 익힌 건 아니지만, 내가 똑같은 환경이었다고 가정해도 연이를 따라갈 수는 없었을 거요.”

나는 그녀가 가진 불치병의 치료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새장 속에 갇힌 새는 날개를 좁은 공간 안에서 상처가 계속 썩어가고 있음에도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붕 의원, 듣고 있소?”

“예. 소저께서 상당한 무공의 고수라는 것까지는 이해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정보를 시시콜콜 푸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내가 알고 있던 바를 되새기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렇소. 연이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지.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열심히 키웠소. 하지만 연이가 10살이 되던 날, 일이 터지고 말았소.”

“무형독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독고연 나이 10살.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하고도 조금 전, 독고연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 독고연은 무형독에 중독되었다.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소. 심지어 그 무형독은 내 아내를 죽인 살수의 짓이었지. 나는 참을 수 없었고, 범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많은 노력을 했소.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따로 있었지.”

“치료.”

“정답이오. 나는 내 아내와 아이가 당한 복수보다 살아남은 아이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고민해야만 했소. 그래서 맹의 인력과 세가의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아이의 불치병을 확인하고자 했지. 하지만 확인할 수 없었소. 그 누구도 병의 원인을 모르더이다.”

“그거야 일반 의원들이 그러한 것이죠.”

나는 자심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고, 맹주는 나를 신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는 신의의 진전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그분의 모든 의술을 모두 머릿속에 가지고 있죠. 제가 고치지 못하는 병은 탈모 말고는 없습니다."

"......혹시 탈모는?"

"아직 제 깨달음이 부족하여 극복하지 못했으나, 만약 탈모를 극복할 수 있다면 제가 당대의 신의가 되겠지요."

동방에서 나는 천마지루를 손에 넣기만 한다면, 나는 전설의 발모제 '자라나라(滋裸拏羅)'를 완성하여 신의가 될 수 있다.

즉, 독고연이 탈모가 아니면 고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환자든...."

나는 목함을 꺼내며 당당히 미소를 지었다.

"제 달궈놓은 장침 한 방이면 모두 회복됩니다."

[작품후기]

육촌장침(성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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