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검의 여제 (3)
79화.
1.
파앗!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엄청난 속도였다.
풀발로 인해 S급이 된 민첩에서 나온 속도는 사람이 반응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으니까.
하나 놈은 달랏다.
쉬익-
검이 놈의 목에 닿기 직전.
까앙!
놈이 다급히 검을 들어 살짝 틀었다.
그러자 최종택의 검이 빗길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마치 그게 당연한 검로였던 듯 자연스런 움직임.
그 움직임의 끝을 장식하는 건 일방적인 카운터였다.
‘어?’
상당한 검술이었다.
웬만한 헌터도 영락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하지만,
‘어림도 없지.’
그는 웬만한 헌터가 아니었다.
고개를 숙여 피해낸 그가 왼손으로 검을 뽑으며 휘둘렀다. 흔히 알려진 발도술과는 조금 다른 모습.
까앙!
“어쭈?”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손쉽게 막아낸다.
승부욕이 생긴 최종택이 더욱 스피드를 높였다.
“가위치기! 측위!”
양손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휘둘러진 검이 놈을 압박했다.
휙- 깡!
왼손이 막히면, 곧장 오른 손을 휘둘렀다.
오른 손이 막히면 자유로워진 왼손을 움직인다. 그 매끄러운 움직임에 조금씩 페이스가 최종택에게 넘어왔다.
“체위술 가위치기!”
서걱-
이윽고 첫 정타가 먹힌 순간.
촤악-
마치 가위와 같은 선이 놈의 갑옷에 새겨졌다.
수많은 몬스터를 도륙 냈던 기술.
하나 공격을 성사시킨 최종택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그어어어-!
‘확실히 고스트라 그런지 잘 안 먹네.’
오러를 씌웠는데도 불구하고 별 타격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기세가 한층 더 흉포해졌다.
‘74 정도는 되어야겠어.’
내부에 피해를 입혀야할 듯했다.
판단을 마친 그가 다시 검을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퍽!
“억!”
예상치 못한 앞차기가 들어왔다.
한데 파워가 상상이상이었다.
순식간에 10m가량 밀려난 거리에 최종택이 혀를 찼다.
‘고간포를 쓸 수만 있었으면 저 새끼 한 방인데……’
언뜻 단단해 보이는 저놈도 결국엔 고스트 타입.
마법에 약한 놈의 체질상 고간포를 쏘면 순식간에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지금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재희의 눈이 신경 쓰여서는 아니었다.
‘이번 던전은 검술만으로 승부한다!’
그저 그의 똥고집이 깨어난 것이다.
나름 검술에는 자신 있던 그다. 겨우 검귀에게 검술에서 밀리는 건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다시 땅을 박차려는 순간.
후웅-!
“음?”
이재희가 그의 앞을 스쳐지나갔다.
최종택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 속도였다.
아니, 오히려조금 더 빠를 정도.
단숨에 검귀에게 파고든 그녀에게서 한 줄기 섬광이 터져 나왔다.
서걱-!
그어어!
놈의 갑옷에 깔끔한 선이 그어졌다.
육체가 있는 몬스터였다면 필히 두 동강이 났을 만한 일섬.
하나놈은 멀쩡했다.
멀쩡하다 못해 고통을 모르는 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러왔다.
“제 2장.”
그때, 그녀의 검이 춤을 추었다.
매화가 피어나듯 사방에 흩뿌려진 오러가 아름답게 허공을 수놓았다.
그럴 때마다 한 줄기 섬광이 그어졌고, 쇠와 쇠가 맞닿는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채앵! 챙! 챙-
‘오… 꽃잎이다.’
왜 최종택이 말하니까 이상해보일까.
하여튼 감탄할 법한 광경이었지만, 그저 가만히 넋 놓고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언뜻 보면 우세인 듯 보이지만 검귀가 대부분 막고 있는 상황.
결정타가 없었다.
스윽.
이윽고 검귀가 뒤로 살짝 발을 뺐을 때.
‘지금이다!’
최종택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날카롭게 벼린 검을 뽑은 그가 냅다 놈의 사각을 베었다.
그어어!
허를 찔린 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지금부턴 그의 페이스였다.
“딱 대.”
흐름을 잡은 최종택이 곧장 검을 휘둘렀다.
파바박! 팍!
사방에서 내리꽂히는 묵직한 쌍검술에 정신을 못 차리던 검귀가 이내 몸을 감쌌다.
그리곤 냅다 최종택을 향해 돌진했다.
투우소와 같은 돌진에 최종택이 혀를 차며 몸을 뺐다.
그리고 그 순간.
빠악!
대각선에서 날아온 이재희가 드롭킥을 날렸다.
그억!
그대로 나자빠진 검귀.
놈이 일어났을 땐 이미 앞뒤로 둘러싸인 상태였다.
“……”
최종택과 이재희의 눈이 마주쳤다.
그 직후, 둘이 동시에 움직였다. 최종택이 먼저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간 검을 막으면, 뒤에서 이재희가 머리를 노렸다.
검귀가 몸을 구르면 최종택이 막아섰고, 이재희가 검을 뽑았다.
파앗! 챙!
허공에 수놓아지는 수많은 꽃들.
그 사이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매끄럽게 움직이는 둘의 연계는 하나의 춤과 같았다.
그아아아아!
그 화려한 무대의 상대역이 된 검귀가 감격에 젖은 비명을 내질렀다.
비참한 몰골이었다.
마모된 갑옷은 뜯겨나가있고, 몸 곳곳은 처참하게 일그러진 상태.
그런 놈을 베면서도 최종택은 감탄했다.
‘이렇게 잘 맞는 팀은 처음인데…’
그간 제법 많은 파티를 했지만, 이토록 합이 잘 맞는 파티는 처음이었다.
빈틈을 정확히 노려준다.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채워주고, 자신이 활약해야할 때는 욕심 없이 뒤로 물러난다.
‘연계란… 이런 건가?’
이토록 흥분되는 사냥이라니.
아니, 이건 사냥이 아닌 합을 겨루는 무술과도 같이 느껴진다. 묘한 흥분 속에서 최종택과 이재희가 춤을 추었다.
털썩.
이윽고 춤이 끝났을 때, 검귀는 무릎을 꿇었다.
처음과는 많이 다른 얼굴이었다.
무덤에 온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듯 흉흉한 빛을 내던 눈은 허망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스으으-
그에 비례하듯 놈의 몸이 옅어졌다.
하체부터 옅어지던 놈이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최종택이 그제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었다.
‘확실히 빡세네.’
여태껏 상대해왔던 몬스터와는 달랐다.
그저 짐승과도 같던 놈들과 달리, 정말 무사와 겨룬 느낌.
피지컬 자체로는 평범할지언정, 놈이 다루는 검술은 비범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이 정도면… 보스는 어느 정도일까. 보스도 전사인 건가?’
역시 A등급 던전.
지금까지 들렸던 던전과는 질부터가 달랐다.
천천히 가슴에 손을 얹었다.
‘……’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이건 순수 검술로 검귀를 잡았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일까, 아니면처음 제대로 맞춰본 합에서 오는 쾌감일까.
감상에 젖고 있을 때, 이재희가 당당한 얼굴로 옆에 섰다.
“제가 말했죠?”
그녀에게서 자부심에 찬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저희는 최강의 팀이 될 거라고.”
“……”
그 말에 최종택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불감증과 자박꼼의 조합이라… 으음, 최강이긴 하네.’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유를 찾았다.
2.
그 후로도 전투는 계속되었다.
다만, 처음과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지키는 검귀의 수도 많아진 탓이다.
챙! 채앵!
때문에 그들은 한 사람당 최소 한 놈씩을 맡아야했다.
지금도 그랬다.
“체위술… 가위치기!”
그어억!
앞을 가로막은 검귀의 옆구리를 베자 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힐끔 옆을 보니 이재희도 선방하고 있는 상황.
‘확실히 강하긴 하네. 검술만 사용하는데 나도 질 수 없지.’
그게 이유였다.
아무리 검귀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어도, 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
그녀도 검술만 사용하는데, 먼저 스킬을 사용하면 지는 기분이었다.
단순한 객기는 아니었다.
그어어-
서걱-!
‘어딜 내 앞에서 뒤치기를…!’
더는 놈들이 위협적이지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몬스터라 생각해서 얻어맞기도 했는데, 무사라고 생각하고 싸우니 수월했다.
그가 가진 체위술의 등급은 S등급.
‘검술간의 대련이라면 꿇릴 게 없지.’
오히려 압도할 수 있었다.
침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는 검귀를 보며 최종택이 가소롭다는 듯 손을 까딱였다.
도발이 통한 걸까.
-건방……진…
비록 한 글자씩 끊기긴 해도, 놈에게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망자의 목소리가 이러할까 싶은 음색이었다.
그 듣기 힘든 음색을 들려준 것에 보답하듯 최종택이 자신의 기술을 맘껏 뽐냈다.
“체위술 가위치기! 정상위! 그리고 측위!”
-크어억!
단번에 세 경로에서 휘몰아치는 검에 검귀의 검이 튕겨졌다.
허공에서 덤블링한 검이 놈의 발 앞에 꽂혔다.
-으으… 나안…
털썩 무릎 꿇은 놈의 목소리가 떨렸다.
등은 검사의 수치.
그렇다면 온갖 경로를 개통당한 그의 모습은 무엇일까.
참을 수 없는 치욕을 겪은 듯 부르르 떨던 검귀가 이내 울분을 토해냈다.
-나안…! 그런 괴상한 거에… 당하고 싶지 않아…!
동시에 폭발적인 기운이 터져 나왔다.
띠링-
[검귀가 현실을 부정합니다.]
[죽고 난 후에야 겪게 되는 치욕 속에서 검귀가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와 함께 뜨는 메시지.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검귀의 몸을 휘감았다. 그에 최종택이 감탄하며 검을 찔렀다.
“변신? 어림도 없지!”
-커허억…!
사아아-
웅장하게 치솟던 기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 속에서 검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비친 최종택의 입가가 씨익 올라가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건 그때였다.
“체위술, 74…!”
쩌적-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놈의 멘탈에서 나는 소리인지, 가슴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퍼버벙!
-크아아아악!
깨달음을 얻어가던 전사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단어 표현 그대로 무너졌다.
고스트임에도 엄청난 피해였는지 이내 가슴이 뻥 뚫린 검귀가 볼품없이 쓰러졌다.
-말도 안…
검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충혈되었다.
엄청난 데미지였다.
내부에 가득했던 기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
이윽고 놈이 사라진 순간.
“크으… 지렸다. 역시 마무리는 74지.”
멋지게 등을 돌리고 있던 최종택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이재희를 찾았다.
그 모습이 꼭 또래 여자아이에게 자랑하려고 으스대는 꼬마 같았다.
하지만 뿌듯한 눈빛이 그녀를 향하는 순간.
파앗!
그를 반긴 건 화려하게 핀 벚꽃과 그 안에서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에 최종택이 아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런 멋진 모습을 봐야하는데……’
이제는 멋진 것과 추한 것을 구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최종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