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검의 여제 (2) (78/124)



〈 78화 〉검의 여제 (2)

78화.

8.
남자들의 로망을 물어보면 열에 일곱은 그리 대답한다.
드림카!
뚜껑 열린 스포츠카부터 잘 빠진 세단까지.
종류가 다양하지만, 멋진 외제차 하나 뽑는 걸 한 번도 꿈꾸지 않은 남자는 없었다.
최종택, 그도 마찬가지다.

‘이야, 이게 리무진이냐.’


자신이 원하는 드림카는 아니었지만, 재벌 3세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아닌가.
그런 걸 보고 감탄하지 않을 정도로 로망이 작진 않았다.
심지어 리무진을 탈 기회를 얻었다면 더더욱.
기사님이 운전하는 리무진의 뒷좌석에 탄 최종택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와씨 존나 편해. 진짜  하나 뽑던가 해야겠는데.

안락하게 감싸는 시트.
편안하게 뻗을  있는 다리.
캠핑카 저리가라 싶은 도구들.

이 모든  실시간으로 체험한 그가 엄지를 들었다.

‘이걸 혼자 타보네.’


심지어 이재희와 세바스찬과 같이 타는 것도 아니었다.
그를 위해 총 2대의 리무진을 준비한 것.
덕분에 그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생애 첫 리무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왔다.

‘응? 저건…’


집에서 흔히 볼  있는 것.
그래서 이곳에서 보는 게 더욱 어색한 것.


‘와… 무슨 차에 냉장고가 있냐.’


홀린 듯 다가간 최종택이 냉장고 안을 뒤졌다.
안에는 다양한 음식이 들어있었다.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같은 것부터 홍차나 식혜, 녹차와 같은 음료수까지.
그중 최종택이 택한 건 초코아몽이었다.


쭈욱-

빨대를 꽂아 시원하게 마시던 그가 돌연 눈을 크게 떴다.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존나 맛있어.”


리무진에서 마시는 초코아몽은 평소보다 2배는  맛있다는 것을.
그에게서 기분 좋은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걸 먹은 덕일까.
오랜만에 그의 뇌가 활성화되었다.


‘음. 그나저나 대단한 여자였지.’


이재희.
단순히 예쁘고 귀티 흐르는 재벌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외의 복병이었다.


[SS급 스킬 ‘검의 주인’ 보유]

그녀에게서 봤던 SS급 스킬.
여기서 조금 의문이었다.


‘왜 보아  때처럼 가려지지 않는 거지?’

SS등급 이상의 스킬은 볼 수 없는 거라 생각했건만.
지금 보니 그런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같은 등급에도 급이 나뉘어져있는 모양.
이게 말하는 바는 하나였다.


‘…검의 주인보다 보아 씨가 가진 신의 은총이 더 높다는 건가.’

백보아의 능력이 격을 달리한다는 것.
자박꼼에게조차 조금이나마 간섭했을 정도이니 그 힘은 이루 말할 바가 아니었다.

‘역시 보아 씨.’

그리 생각하니 괜히 흐뭇해진다.

‘그나저나 검의 주인이라…… 그 여자도 검을 쓰는 건가.’


SS급답게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은 스킬이었다.
검의 여제라고 붙어 있던 호칭을 생각하면 검술에 특화되어있을 터.


‘정식으로 S급 헌터가 되면 장난 아니겠네.’


그리 되면 구성에만 2명의 S급 헌터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까지 합하면?


‘협회장님   썩겠네.’

그가 우려하던 균형에 금이  터.
하나 조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했다.


‘구성에 원래 S급 헌터가 4명 있었던 거면… 3명이 돼도 문제 없는  아닌가?’


그쯤 되면 이미 5대 길드가 아니라, 정상을 차지해야 맞는 것 아닌가.
애써 균형을 잡는 게 묘하긴 했다.
잠시 생각해보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

고민해봤자 알 방법도 없는 일.
그런 것보다는 다른 쪽이 더 궁금했다.

‘그런데 불감증이면 조금 못 느끼는 건가? 아니면 아예 못 느끼나?’

뇌에  거라곤 그런 것밖에 없는 최종택이었다.




9.
한편 그가 그러고 있을 때.

“……”
“……”


그의 앞에서 달리는 리무진 내에서는 삭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리무진이라는 게 무심할 정도로 딱딱한 자세.
그나마 이재희는 다리를 꼰 채 찻잔이라도 들고 있지, 세바스찬은 신입 회사원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있었다.

“길드장님.”


그때, 세바스찬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왜?”
“실제로 보니 어떤 것 같으십니까.”
“……”

홀짝.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눈을 감고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하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저 사람… 각성한지 얼마 안 된 신인이 맞아?”
“예.”
“…그렇다면 천재네. 지금도 나보다 강해 보여.”
“…그런가요?”


의외의 대답에 세바스찬의 눈이 드물게 커졌다.

‘길드장님이 저렇게 말할 줄이야.’


알려지지 않아 대부분의 헌터가 모르지만, 구성의 간부들은 안다.

검의 여제, 이재희.
그녀가 가진 가능성과 힘을.

사실상 S급의 반열에 든 그녀인 만큼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그런 그녀가 단번에 인정하다니…
그가 놀란 걸 눈치 챘는지 이재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바로 인정하니까 이상해?”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져. 왠지 저 남자한테는 꼼짝도 못할 것 같은 묘한 압박감… 나보다 약한 놈한테 그런 걸 느낄 리는 없잖아?”


그녀의 말에 세바스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남자이긴 합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이재희가 말없이 차를 마시자 그가 슬쩍 말을 덧붙였다.


“거의 S급에 도달한 모습이었습니다. 루키가 불과 몇 달 만에 S급에 가까워진 건 사신 이설 이후 처음입니다.”
“……”


사신 이설.
5대 길드 마스터  가장 늦게 각성한 S급 헌터.
역대 급 천재로 칭송받는 그녀와 맞먹는 성장속도였다.
아니, 속도만 보면 그녀보다 뛰어나다.

“…어떻게든 잡아야 해요.”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예전 구성 길드의 위상을 높이려면 그와 저의 콤비가 필요합니다.”
“……”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세바스찬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자가 과연 길드장님이 가지고 있는 스킬을 눈치 챘을까요?”
“…나를 꿰뚫어보는 무언가가 있었어.”
“눈이 그랬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심리안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할 수도 있는 일.
그러나 이어진 대답은 예상외였다.

“아니, 눈은 아니야.”
“…?”
“하나였는데… 묵직했어. 무언가 길고 굵은 것이 꿰뚫어보는 느낌… 생소한 감각이었어.”
“??”

왜 들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일까.
알쏭달쏭한 대답이 꼭 스무고개를 하는 것 같다. 안경을 툭 올린 그가 생각을 이어갈 때, 그녀의 살짝 들떠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도 검을 쓴다지? 검에 대해서 누가 더 잘 쓰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밌겠어.”
“……”


그에 세바스찬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검의 여제답게 검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하긴, 그러니까 대여해줄 검을 그리 많이 챙겨오셨겠지.’

과연  검 가방을 보면 최종택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그도 내심 궁금해졌다.

10.

“무기요?”
“예. 원하는  골라 쓰시면 됩니다.”


서울 노원에 생성된 던전 앞.
의기양양한 그녀의 얼굴과 바닥을 가득 채운 검들을 보며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필요 없을  같아요.”
“…예?”

이재희의 표정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얼굴에 최종택이 준비해왔던 검을 꺼냈다. 그리곤 위로 살짝 들어 올렸다.

“전 이 무기가 있어서요.”
“…!”

이재희의 눈이 커졌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고고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순수한 아이같은 눈빛에 최종택의 눈이 반짝였다.

‘오?’


이런 얼굴도 썩 괜찮았다.

‘나이도 어려보이고.’


아까까진 분위기 때문에 연상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귀여운 연하처럼 느껴졌다.
하나 그것도 잠시.


“아.”


너무 빤히 바라본 탓일까.
시선을 자각한 그녀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헛기침을 했다.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덤덤하게 말했다.

“권 노아의 작품이군요.”
“예, 뭐…”
“확실히  무기라면… 저희가 대여해주는 무기는 쓸모가 없겠어요.”

확실히 검의 여제라 그런지 여의검의 진가를 단번에 파악했다.
그게 최종택은 내심 신기했다.

‘아무리 봐도 겉으론 그냥 투박한 검 같은데… 뭐 어떻게 아는 거지?’


명품도 많이 써본 사람이 안다고.
검도 많이 수집해본 사람이 잘 아는 건가 싶었다.
하기야 그러니 무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권 노아의 무기를 탐내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름 좋은 검들일텐데 여분으로 하나 챙겨도 괜찮지 않을까.’

무료로 대여해준다는데 수락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음, 혹시 모르니 이거 하나 정도만 챙길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적당한 검을 하나 챙기자 이재희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준비는 끝나셨다면 들어갈까요?”
“아, 예.”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그녀가 던전에 발을 들였다.
그런 둘을 반겨주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 검의 무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위대한 전사들의 혼이 지키는 왕의 무덤입니다.]
[물리적 타격은 먹히지 않으나, 그들에게 검술의 우위를 증명한다면 알아서 소멸합니다.]


“오오…”


지금껏  던전과 다른 특이한 메시지.
다른 건 메시지만이 아니었다.
마치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주변이 피폐했다. 특이한 건 수천 개가 넘는 검이 바닥에 꽂혀있다는 것이다.

‘닉 값 오지네.’


검의 무덤이라는 이름과 딱 들어맞는 풍경.
 위용에 이재희가 감탄을 흘렸다.


“아름답네요.”
“그러게요.”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아름다운 광경이긴 했다.
전쟁의 흔적이 가득한 땅.
그 위에 무덤을 기리듯 수놓아진 닳은 검들을 보자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그어어어-


“…취소.”


그 검이 박힌 무덤에서 웬 반투명한 언데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기괴스럽게 하체부터 일어난 놈이 손을 뻗었다.


턱.


마치 엑스칼리버처럼 쉽게 검을 뽑은 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이내 최종택 일행을 발견하곤 쇤 소리를 냈다.


그으으…


“어우…”


생긴 건 징그럽지 않았다.
마모된 갑옷을 입은 병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눈이 새빨갛게 빛나는 것이 여간 흉흉한 게 아니었다. 웬만한 호러 영화보다 더 무서운 모습.
하나 이들 중 겨우 저까짓 모습에 겁을 먹을 사람은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내가 어? 리치랑  방에서 어? 고간포 쏘고 다 했어!”


피식 웃음을 흘린 그가 여의검을 꺼내며 앞으로 달려갔다.
병사가 멈칫한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리라.
먼저 달려가려다 멈칫한 이재희가 그런 그의 모습에 조용히 생각했다.

‘…음. 정상은 아닌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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