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검의 여제 (4) (80/124)



〈 80화 〉검의 여제 (4)

80화.

3.
던전은 전투의 연속이었다.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검귀들이 가로막은 탓이었다.
한데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처음 이상함을 감지한 건 세 번째 검귀들과 조우했을 때였다.


-자격을… 증명하라…


흉흉한 눈으로 노려볼지언정, 그들은 결코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이 공격할 때는  하나였다.
그들이 지키고 선 곳보다  안으로 들어가려할 때.
마치 무언가를 지키려는 듯한 모습.


‘뭐지? 안에 뭔가 있나?’

아무리 눈치 없는 최종택이라도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다그닥- 닥.

-넌… 못 지나간다……


“오우야…”

무장한 군마를 타고 있는 기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온몸이 검게 물든 기사였다.
유일하게 오른손에 든 창날과 눈만이 붉은 빛을 내고 있었는데 제법 위압감이 상당한 놈이었다.
지금껏 봤던 검귀들과는 다른 모습에 이재희가 입을 열었다.

“중간보스 같네요.”
“슬슬 나올 때가 되긴 했죠.”

지금껏 잡은 검귀의 수만 20명 가까이 되니, 중간보스가 나올 법도 했다.
때문에 이재희도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중의적인 물음.
하나 최종택은 그녀의 말뜻을 확실히 이해할  있었다. 지금까지 경쟁하듯 몬스터를 잡아왔으니까.

‘이번에 혼자 잡으면 내가 더 많아.’


그에 대한 최종택의 대답은 뻔했다.


“제가 한 번 처리해보죠.”
“알겠습니다.”


이재희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암묵적으로 진행되던 자존심 싸움보다는 다른 게 더 궁금했으니까.

‘마침 진짜 실력을  번 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


그녀가 느끼기에 최종택은 힘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다.
보고 받기를 올라운더라고 들었는데 아직까지 검술만 쓰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중간보스 정도면 어느 정도 힘을 드러낼 터.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그녀의 눈에 짙은 기대감이 감돌았다.
그 시선이 최종택을 향하는 순간, 그녀는 보았다.

“세 번이면 충분하다.”

당당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절대적인 확신이 담긴 미소였다.


“체위술 상승검법…!”
“…?”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힘을 드러내는군.’


꿀꺽, 침을 삼킨 그녀가 최종택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녀가 봤던 그의 검술은 결코 자신의 검술보다 약하지 아니었다.
그것보다 위단계라면 필히 엄청날 터.
검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뛰어난 그녀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기대되네. 봐두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모든 동작 하나하나 전부 봐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팟!


“…!?”


이재희의 눈이 부릅 뜨였다.
최종택의 팔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순간이동?’

그 생각이  순간.

서걱-!


-어떻…게!


뒤에서 무언가 잘리는 소리와 기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창이 반 토막 난 기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최종택이 서 있었다.
순간이동이 아니었다.


‘내가… 움직임을 놓쳤다고?’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전희.”


검을 허공에서 털어낸 최종택이 휙 등을 돌렸다.
그리곤 천천히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절정에 달하라…”

이윽고 검집에 모두 들어가며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피잉-

 줄기 섬광이 그어졌다.


-일섬(一閃).


이재희가 있던 곳에서부터 기사를 거쳐 최종택의 검집까지.
곧게 그어진 선의 주위로 허공이 갈라지는 듯한 현상이 일어낫다.
오러로 인해 주변이 흐려진 탓에 일어난 착시현상이었다.

-이, 이게 무슨…

그 현상에 기사가 믿을 수 없다는  중얼거렸다.
착시현상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째서 영혼이…!

갑옷을 차지하고 있던 기사의 영혼이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간접적이 아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것. 반쯤 갈라진 영혼이 된 기사가 벙찐 얼굴로 최종택을 바라봤다.
그 얼굴을 마주한 최종택이 검을 살짝 뽑으며 답했다.

“절정에 달하면 분수가 터져나오곤 하지.”
-…?

뭐라는 거지?
그런 표정으로 의문을 표하는 순간, 살짝 뽑혔던 검이 다시 검집에 꼽혔다.

“후희…!”


서걱-

그 중얼거림과 함께 기사의 목이 잘렸다.
약속했던 대로 단  방이었다.

‘…내가 뭘  거지?’


그 믿기 힘든 업적에 이재희가 멍한 얼굴로 내동댕이쳐진 기사의 머리를 바라봤다.
억울한지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있다.
왠지 모를 동정심이 드는 얼굴을 보며 최종택이 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이 애무…! 존나 멋있어.’


자신이 생각해도 이건 너무 멋있었다.
그야말로 만화 속 한 장면.
간지도 간지인데 심지어 공격력까지 심상치 않다. 감탄한 건 그 만이 아닌지, 도도했던 이재희의 얼굴도 바보처럼 벙 쪄있었다.


‘아… 이거 반하면 곤란한데.’

킹쩔  없긴 했지.
최종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내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을 때.


[특이사항이 추가됩니다.]


‘오.’

그녀의 특이사항이 갱신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엿보기 구멍을 사용하자 아까와는 달라진 상태창이 보였다.

[상태 : 의문, 불신, 감탄.]
[특이사항]
[검의 여제]
……
[불감증]
[심치어 처녀라서 뭔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들음.]


“……”

그에 최종택이 이마를 탁 쳤다.

‘아, 이래서 처녀란……  줄을 몰라요.’

검  쓸 줄 아는 놈이라 기대했건만.
최종택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처녀는 비치처녀가 최고네.’

오늘따라 백보아가 그리워졌다.
 심정을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최종택을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이 참 멋졌어요.”
“그쵸?”


그제야 얼굴이 핀 최종택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알건 아는구만.’


…몰라서 멋지다고 한 거 아닐까.


4.

서걱-
그어억!

깔끔하게 그어진 검에 검귀가 두 동강 났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이재희가 맡았던 검귀도 바닥에 드러누웠다.

털썩.


“꽤 많네요.”
“그러게요. 슬슬 보스 방  때도 됐는데.”


이로써 잡은 검귀만 50마리째.
중간보스 이후 30마리나 되는 검귀를 잡아낸 것이다.
심지어 방금 몰려든 검귀의 수만 여덟이다.

‘후우.’

페이스를 생각하면 슬슬 보스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특히 놈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이젠 아주 대놓고 못 지나가게 하려고 하네.’


조금씩 심해지던 길막이 이제는 도를 넘어섰다. 앞으로 몇 발짝만 걸어도 검귀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잡을 건 없었지만, 귀찮은  어쩔 수 없었다.


‘고스트 타입이라 그래도 한방 컷은 안 당하니…’


그렇다고 애무를 자주 사용하긴 부담이 됐다.
결국 체위술로 때려잡다보니 다소 시간이 소모될 수밖에. 이 대목에서 이재희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설마 일대 일보다 일대 다수에서 더 셀 줄이야…’


그녀의 등 뒤로 마법검이 나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신비한 검이었다.
자유의지라도 가진 듯 휘몰아치는 검은 아름다우면서도 파격적이었다.
최종택이 두 마리를 잡을 때, 그녀는 네다섯 마리씩 잡아낸 게 그 증거였다.


‘…대단한 인재야.’


하나 놀란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검술로만 잡으려했는데… 결국 이기어검까지 사용해버렸어.’

은근 승부욕이 강한 그녀다.
같은 검술로만 잡으려했는데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는 그를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스킬까지 사용해서야 간신히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나 그건 일대 다수에서일 뿐.


‘아까 그 기술은… 정말 대단했지.’


무슨 상승기법이라 했던  같은데.
정확히 뭐라 했는지 작아서 들리지도 않고, 들어도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대단한 스킬이었다.
그 상대가 자신이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

‘심지어 저것도 모든 힘을 드러낸  아니겠지.’

자연스레 최종택을 보는 그녀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무조건 영입해야한다.’

그저 영입하면 좋은 인재가 아닌, 필수로 가져와야할 인재라고.
그리고, 자신과도 잘 맞을 것이다.

‘때가 되면  스킬을 밝혀도 되겠어.’

이재희, 그녀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품을 정도로.
한편,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도 고간포나 쓸 걸 그랬나.’


최종택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고간포를 썼으면 분명 이겼을 텐데… 쩝.’


아쉬움에 혀를 차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경쟁에서 밀린 건 아쉽긴 하나,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덕분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으니까.


“드디어 보스네요.”

최종택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난하게 클리어할  같네요.”
“그러게요.”

그런 둘의 앞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투박한 문이었다.
지나가던 쇠를 집어 대충 끼워 넣으면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한데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흔적 때문일까, 아니면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크기 때문일까.


‘뭔가… 좀 들어가기 꺼려지네.’


괜히 압도되는 기분에 최종택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이재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영 들어가기 꺼려지는지 곧장 들어가지 않고 살짝 망설였다.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이상한지 눈썹을 찌푸렸다.

‘왜 이러지?’

겨우 A등급 던전의 보스다.
준 S급 헌터 두 명이 있는 그들이 긴장할 이유는 없었다. 실제로 중간보스도 최종택 혼자 처리하지 않았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쩌적-


거대한 문에 금이 가더니, 이내 지진이라도  것처럼 던전이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최종택과 이재희가 자세를 낮추었다.


“뭐, 뭐죠?”

당황한 최종택이 소리쳤다.
던전에서 지진도 일어난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영문을 모를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그와 달리, 이재희는 묘한 얼굴이었다.


스으으-

“어?”


이내 최종택의 얼굴도 그와 비슷해졌다.
그녀가 차고 있는 검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것이다.
그 빛은 문과 이어져있었다.

띠링-

[‘검의 주인’에 ‘검의 무덤’이 반응합니다.]
[보스 스테이지가 변형됩니다.]
[마력량이 조정됩니다.]

“이게 무슨…”


갑작스레  메시지.
당혹스런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이재희도 당황스러운 건 매한가지인 듯 멍한 얼굴이었다.
그런 둘이 정신을 차린 건, 잠시 후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띠링-

[던전의 등급이 S-급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외적인 상황에 시스템이 반응합니다.]
[이번 던전은 포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회는  번뿐입니다. 포기한 이는 검의 무덤에 다시 입장할  없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미친!”
“……”


 메시지에 최종택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S등급이면 S등급 헌터들도 기피하는 거 아냐.’

 S급 헌터라곤 해도 일단은 A급 헌터다. 그런 것에 비해 S등급 던전은 가히 재앙에 가까운 던전.
브레이크라도 한 번 일어나면 도시가 멸망하는 건 기본이다.
그래도 가망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S-등급이라는 건데…’


S등급 던전은 S등급 헌터들도 클리어를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S-라면 말이 다르다.
A등급보다는 월등하게 어렵지만, S등급에 비하면 확연히 떨어지는 난이도.

‘해볼 만… 한가?’

다르게 말하면 목숨을 걸기엔 애매한 난이도였다.
시선이 저도 모르게 한 곳으로 향했다.

[이번 던전은 포기할 수 있습니다.]


“……”


그 문구가 포기를 권유하는 듯 보이는  착각일까.
실제로 느껴지는 기운도 심상치 않다. 아까는 단순한 불길함이었다면, 지금은 확 피부로 와 닿는다.

‘…진짜 죽을 수도 있을  같은데.’

확률은 대략 반반.
같은 판단을 했는지 이재희의 표정이 딱딱하다.
그 얼굴로 시선을 돌린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

사실 한  빼는 게 맞다.
단 한번뿐인 기회든, 최초 보상이든 목숨이 붙어있어야 뭘 하든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은 그게 현명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터벅.


최종택은 앞으로   나아갔다.


“…입장하실 생각인가요?”

그 물음에 최종택이 우뚝 멈추었다.
휙,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친 그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남자는 빼지 않죠.”
“……”


그 대사를 들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왜 뭔가 성희롱 당한 것 같지?’

분명 멋있는 대사인데… 뭔가 더러운 느낌이 든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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