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검의 여제 (1)
77화.
7.
-길드의 위상을 알려거든 건물을 봐라. 그 크기가 길드의 위상이다.
어느 길드로 갈지 고민하는 헌터 유망주들에게 많이들 하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건물이 크다는 건 그만한 자본력과 수입이 있다는 소리니까. 당연히 헌터에 대한 지원도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구성 길드는 단연 톱이라 볼 수 있었다.
“와… 진짜 겁나 크네.”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길드 건물을 지니고 있으니까.
눈앞에서 직면한 최종택이 감탄을 넘어 경악할 정도.
천랑이랑 서리 길드도 크다고 느꼈는데, 이건 뭐 비교도 안 되는 사이즈였다.
까마득한 크기에 최종택이 혀를 내둘렀다.
‘이건 뭐 대기업 아니냐? 아, 대기업 맞지.’
그것도 세계적인 대기업이다.
왜 사람들이 대기업, 대기업 노래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저리 크고 세련된 길드에 들락거리면 얼마나 폼 나겠는가.
그렇게 건물의 크기에 압도되어있을 때였다.
“오셨군요.”
“아.”
사무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잘생긴 남자가 보였다.
안경과 정장이 잘 어울리는 냉미남.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집사의 표본에 최종택이 반가운 얼굴을 했다.
‘어? 쟨 나보다 작은 새끼잖아?’
몽마 때 잔뜩 허세를 잡고 사라졌던 남자.
그때는 재수 없게 느껴졌는데 이런 곳에서 보니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에 가까이 다가오던 세바스찬이 흠칫했다.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 압박감이군.’
묘한 기운이었다.
분명 자신보다 약한 건 확실한데, 이상하게 압박되는 느낌. 마치 어릴 적 골목 형을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다른 마스터들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는데… 뭔가 있는 건 확실하군.’
눈매가 가늘어진 그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게 뭔지는 앞으로 확인하면 될 일, 지금은 길드장에게 데려가는 게 더 중요했다.
“모셔오라는 길드장님의 명을 받았습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지요.”
“그래요.”
그렇게 안으로 들어선 최종택은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내부가 더 작살나네.’
외관도 엄청났는데 내부는 그 이상이었다.
블랙이 돋보이게 인테리어를 했는데, 그래서인지 더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고급스러운 깔끔함이 이런 건가 싶다.
그중엔 잘 교육 받은 직원들의 태도도 한몫 했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복도를 걷는 내내 직원들의 공손한 인사를 받는 게 괜히 재벌집 도련님이 된 기분이었다.
묘한 감상이 들었다.
‘뭔가 이런 대우를 받는 건 처음인데……’
사실 그 정도 되는 헌터면 대우받고 살 법하다.
명색이 S급 유망주이니까.
실제로 협회에서도 많은 지원과 대우를 해주지 않은가.
하나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대우를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래서 성공하고 봐야한다는 건가.’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색함과 뿌듯함이 공존하는 기분에 절로 어깨가 으쓱여졌다. 그런 대우 속에서 도착한 곳은 꼭대기 층이었다.
‘무슨 43층이나 되냐 건물이…’
심지어 펜트하우스라 그런지 꼭대기 층이 가장 넓다.
한데 방은 몇 개 없었다.
기껏해야 3~4개 정도 되는 방 중 한 곳 앞에 선 세바스찬이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곧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무뚝뚝한데도 감미로운 목소리.
그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절경에 최종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운동장처럼 넓은 사무실의 한쪽 면이 통째로 유리창이 아닌가.
‘미친, 저건 한강을 보려는 거야, 구름을 보려는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야경 하나는 끝내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종택 씨.”
그 중심에서 나지막한 인사를 건네는 여자였다.
딱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구성의 이재희…’
저 여자가 구성 회장의 손녀이자, 5대 길드인 구성 길드를 이끄는 수장이라는 것을.
풍기는 포스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날카로운 눈매와 특유의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 때문일까. 아니면 왕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분위기 때문일까.
‘와씨… 역시 재벌 3세는 뭔가 다르구나. 귀티가 난다.’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기운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신기했다.
‘구성 길드장은 S급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다른 길드장들한테 전혀 안 꿇리네.’
최종택이 그녀를 살펴보듯, 이재희도 그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데 시선이 조금 묘했다.
마치 다른 세계의 생명체를 보는 듯한 시선.
잠시 흠칫하던 그녀는, 최종택이 자리에 앉는 순간 원래의 무뚝뚝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미리 얘기했던 대로 저희는 오늘 던전을 갈 겁니다.”
‘오우, 빠꾸 없네.’
쓸데없는 말들은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뱉는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이런 방식이 더 편했다.
“들어가기에 앞서 브리핑을 하려하는데 괜찮습니까?”
“예.”
“우선 저희가 갈 던전은 A급 던전입니다. 아직 미개봉 던전이고, 생성된지 얼마 안 된 던전이라 정보가 많지는 않습니다.”
한데 시작부터 너무 화끈하다.
그 화끈함에 최종택이 진심으로 놀랐다.
‘쉬벌, A급을 이렇게 쉽게 들어간다고?’
A급 던전은 B급 던전과 차원이 다르다.
마력의 양부터 난이도, 브레이크 시 현대에 미치는 피해까지. 모든 점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만큼 그 수 자체가 많지 않았다.
단순히 능력치가 높다 해서 A급 헌터가 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던전 브레이크 한 번에 도심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으니까…’
B급 헌터인 그가 아직 A급 던전을 가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협회에서도 A급 이상은 구하기 힘들어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걸 저리 지나가듯 가볍게 말하다니.
심지어 미개봉 던전이란다.
얼마나 자본력이 대단한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감탄하는 사이 브리핑은 계속 이어졌다.
“던전의 이름은 검의 무덤. 마력의 파장이나 이름으로 추측해보건데 저희는 검귀들이 나오는 던전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
“참고로 검귀란 이런 몬스터들입니다.”
그러며 손가락을 튕기자 왼쪽 벽면에서 스크린이 비춰졌다.
마치 자동차 극장에 온 듯 틀어지는 영상.
웬만한 극장부터 거대한 스크린에서 초고화질로 나오는 영상에 압도된 최종택이 멍한 얼굴
을 했다.
깡! 카앙!
그어어어-!
갑옷을 입은 반투명한 검사들.
마찬가지로 군마를 타고 있는 반투명한 기사들.
그 외에도 데스나이트와 같은 몬스터들이 헌터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한데 그 모습이 몬스터라기보다는 사람에 가까웠다.
“현재까지 A등급 던전에서 나온 검귀들이죠. 그들이 내뱉은 마력의 파장과 이번 던전의 파장의 종류가 비슷합니다.”
“아…”
“검귀는 일종의 고스트.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 정도 되는 헌터라면 오러로 피해를 줄 수 있을 겁니다.”
그 후로도 설명은 계속되었다.
검귀들의 약점부터 어떤 식으로 공략해야하는지. 검귀 던전의 종류가 보통 몇 가지가 있는지 등등.
간단하게 요약하면서도 핵심은 전부 들어있는 설명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와씨… 맞는지 아닌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너무 자세한데?’
협회 브리핑을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날. 하나 그때의 브리핑도 지금 그녀가 하는 브리핑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이건 정보의 질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브리핑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 가보도록 하죠.”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늘 나오는 마정석과 몬스터 사체, 그리고 보스에 대한 모든 권리를 최종택 씨, 당신에게 위임하겠습니다.”
“…예?”
“또한 무기와 장비들도 대여해드리도록 하죠. 웬만한 무기는 대부분 갖춰져 있을 겁니다. 그 후로도 모든 지원, 모든 던전에 대한 권리를 모두 주겠습니다.”
“어어…”
갑작스런 말에 반박하기도 전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지금 협회에서도 저희와 비슷한 지원을 하는 걸로 압니다. 이건 S급으로 유망한 당신에게 있어 당연한 권리이죠.”
“……”
…그런가?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정말 당연한 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우 받는 게 맞긴 한데…’
이건 좀 도를 넘지 않았나.
웬만한 S급 헌터들도 이 정도 대우는 안 받을 것 같은데.
그녀가 결정타를 날린 건 그때였다.
“다만 협회와 저희의 차이점은 그 질과 양. 계약금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적으셔도 됩니다. 그 대가로 당신이 해주는 것은 하나.”
“……”
“우리에게 소속되는 것. 그거면 됩니다.”
꿀꺽, 침이 넘어갔다.
저 말의 뜻은 눈치가 없는 그라도 알 수 있었다.
‘미친, 사실상 이름만 갖다 쓴다는 거 아냐.’
그의 이름을 가져오는 것.
자신의 소속이라고 세간에 공개하는 것.
그저 그것만 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모든 지원을 해준다는 뜻이다.
파격적이다 못해 미친 조건.
‘존나 멋있어. 역시 재벌……’
이것이 재벌 3세의 품위였다.
입이 떡 벌어져서 멍하니 쳐다보자 그녀가 슬쩍 허리를 폈다. 여유롭게 다리를 꼰 그녀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 3번의 기회가 있으니까요.”
“아…”
“세 번 던전을 돌 동안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재촉하지 않는 여유까지.
그녀의 귀티가 흐르는 얼굴과 맞물리자 엄청난 포스가 흘러나왔다.
‘아아… 고고하다…’
정연아는 그녀에 비하면 풋내기일 뿐이었다.
‘이 정도면 구성 가야되는 거 아닐까.’
오죽하면 순간이나마 그런 생각이 들었겠는가.
그게 표정으로 드러난 걸까.
슬며시 미소 짓던 이재희가 나직하게 말했다.
“아참, 이걸 말씀 안 드렸네요.”
“뭐죠?”
설마 이거 말고 더 있나?
무슨 말이 이어질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의 작은 입이 벌어졌다.
“저번 던전 때 보니 파티원과의 실력이 맞지 않는 것 같더군요.”
“아, 그건…”
반박하려던 그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 확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반박할 수가 없네.’
어지간한 던전에서 도움 되는 건 확실하나, 서큐버스와 같은 강적을 만났을 땐 그저 걸림돌이 될 뿐이라는 걸.
그게 내심 신경 쓰였는데 이재희가 그걸 정확히 캐치했다.
그리곤 악마처럼 달콤하게 속삭였다.
“당신에게도 격이 꿇리지 않는 파티원을 구해드리죠.”
“…그게 누구인가요?”
최종택의 시선이 자연스레 옆에 서 있는 세바스찬을 향했다.
깐깐해 보이기는 하나, 실력은 확실했다.
구성의 유일한 S급 헌터이니까.
‘꼭 저 남자가 아니더라도 구성이라면 강한 헌터가 많겠지.’
도제 강혁진. 마술사 차은혁.
바람의 검객 이지훈.
한국에서 유명한 구성 길드의 A급 헌터들.
저 중 하나만 팀으로 둬도 훌륭하다 할 수 있는 멤버진이다.
격이 맞으려면 최소 저들 중 하나일 터.
‘누구일까.’
수락할 생각은 크게 없었지만, 궁금하긴 했다.
그 기대 앞에서 그녀가 자신을 가리켰다.
“…?”
뇌정지가 이런 걸까.
순간 생각이라는 게 멈춘 최종택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접니다.”
“……”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너무 당당해서 머리를 긁적인 그가 엿보기 구멍을 사용해봤다.
그제야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재희]
[성별 : 여]
[나이 : 22]
[등급 : A]
[레벨 : 42]
[능력치]
[근력 : A (50 / 100)], [민첩 : S (10 / 100)]
[체력 : A (20 / 100)], [마력 : A (60 / 100)]
[상태 : 흥미로움]
[특이사항]
[검의 여제]
[S급의 문을 직전에 둠.]
[구성 회장의 손녀]
[구성 길드 마스터]
[완벽주의자]
[불감증]
……
[S급 스킬 ‘절대검술’ 보유]
‘미친… 그냥 거의 S급이잖아?’
그녀의 능력치가 준 S급 수준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스킬 대부분이 S급이었는데 그중에는 SS급도 하나 있었다.
왜 알려지지 않은 건지 의문일 정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단순한 재벌이 아니었잖아?’
재벌 아가씨를 보는 시선에서 5대 길드의 마스터를 보는 시선으로.
그 시선을 마주한 이재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시죠.”
“어? 둘이서요?”
“예. 저희 둘이서만 들어갑니다. 다른 인원은 저희와 격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며 먼저 앞으로 나선다.
당당한 그녀의 뒤를 바라보던 그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둘…?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인데.’
그 순간, 떠올랐다.
‘에이, 불감증이라잖아. 그럴 리는 없겠지.’
불감증이라고 선명히 박혀있던 그녀의 특이사항이.
동시에 아쉬웠다.
‘아… 근데 공략하기 힘든 상대일수록 공략하는 맛이… 아앗. 재벌 3세는 안 돼.’
최종택이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본성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는 조커와 같은 모습으로. 그걸 지켜보던 세바스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하는 거지?’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