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84화 (68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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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됐든 녀석들의 대응이 빠른 건 나에게 나쁜 일은 아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오히려 빨리 알아봐 주면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주변을 살피고 있던 세 놈은 신중하게 한참을 지켜보더니 바로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나타난 한 명의 남자와 아까 살려줬던 생존자 네 명.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또 나타나는 열 명 정도의 정장 입은 녀석들.

생존자들은 그 남자 한 명을 이끌고 자신들이 있던 쪽으로 향한다.

그런 그들을 따라가는 정장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녀석들이 멈췄다.

저기는 아마 세아가 깐 스킬 사용 불가 지대의 경계일 거다. 내가 대충 그렇게 맞춰서 깔라고 했으니까.

거기에 멈춰선 남자는 한걸음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뒤로 나온다.

그러더니 생존자들에게 뭐라고 지시했고 그들은 다시 아까 처음에 왔던 남자 셋이 있는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가온 정장 열 명.

녀석들은 수납을 열더니 폴리스 라인 같은 걸 치기 시작했다.

아마 스킬 사용 불가 지대의 영역을 확인하는 거겠지?

그동안 남자는 하늘로 조금 올라가더니 주변을 살펴본다.

저 녀석은 나를 찾는 건가?

근데 내가 아직 저 안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거 같다.

별로 심각한 모습은 아니야.

하긴,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밖에 있으니 저런 자신감을 보이는 걸지도 모르지.

어쨌든 호라이즌 녀석들의 대응은 참 맘에 든다.

내가 예상했던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는 놈들.

그래. 치밀한 계획이나 머리 많이 쓴 전략도 상대가 받아줘야 보람이 있는 거다.

내가 몇 수 앞을 내다본 계책을 써도 상대가 좆도 신경 안 쓰고 무지성으로 밀고 들어온다면 어이가 없어지겠지.

기껏 준비해놓은 게 헛수고가 되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선 저놈들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게 맞다. 머리가 돌아간다는 소리.

정장 녀석들이 폴리스 라인을 치면서 스킬 사용 불가 지대의 크기를 어느 정도 표시하자 남자의 표정은 조금 복잡해졌다.

겨우? 라는 표정과 이럴 리가 없는데? 라는 표정.

그렇긴 하지. 패시브를 덜 찍은 거라면 모를까 패시브로 증가하는 스킬의 범위는 내 마음대로 조작할 수가 없다.

원의 지름을 직접 재보지 않아도 일부 크기만 알면 어느 정도 크기가 될지는 가늠이 되겠지.

그러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다.

고작 티어23 정도의 크기니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

근데 저 녀석은 대체 뭘까? 뭔데 저렇게 개폼을 잡는 거지?

어차피 저놈도 Q&A나 원트가 있을리는 없다.

7인의 위원회도 아직 못 찍었는데 저놈이 있을 리가 없지.

아…. 혹시 저놈이 그랜드마스터?

그럴 리는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추적은 걸어놓는다.

음…. 이런걸 생각하면 슬슬 감정도 찍어야겠네.

예전에는 감정이 좋은 걸 알았어도 반사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감정을 배우고 패시브 화 시키면 반사 당하지 않고 쓸 수 있겠지? 추적처럼?

아…. 이놈의 스킬 욕심은 마흔다섯 개를 가지고 있어도 사라지질 않네.

진짜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아마 모든 스킬을 다 찍어도 욕심은 계속 나지 않을까? 조합이 될 테니까?

어쨌든 계속 지켜보는데…. 따로 특별한 건 없다.

일단 방주에 잠시 드리워졌던 위협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 거야.

관련된 놈들은 싹 다 죽였으니까.

아니지. 결국은 호라이즌 놈들을 싹 다 쳐 죽이기 전까지는 위협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지.

여기 괌에 있던 놈 중에도 잠깐 빠져나갔던 놈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아니면 필립 그놈이 정보를 어디에다가 공유해 놨을 수도 있고.

근데 다른 위원회 놈들에게도 아직 공유하지 않은 정보를 다른 곳에 보관해놨을 거 같지는 않은데.

뭐가 됐든 확신하면 안 되지.

이놈들이 방주 위치를 알고 나를 훔쳐보고 있었을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잖아?

어쨌든…. 녀석들이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모르겠다.

언노운에 대해서는 녀석들이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제는 그놈이 어떤 경로로 여기를 알아냈는지 몹시 궁금해하겠지.

아마 왜 아프리카나 러시아 쪽이 아니고 여기를 쳤는지도 의아해할 거다.

뭐가 됐든 경계는 조금 삼엄해지긴 할 거야.

근데 뭐…. 나는 상관없다. 당장 내 존재가 들통난 건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방주의 방어도 조금 신경 써야겠네.

막연히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크게 당할 뻔했잖아?

한번 들통나버렸으니 두번 당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 않으려면 대비를 좀 하긴 해야겠는데….

방주를 통째로 뜯어다가 다른 위치로 옮길 수는 없나?

스킬을 조합해서 어떻게 해보면…. 음. 안 되겠네. 그건 무리야.

그런 짓을 하느니 그냥 호라이즌 놈들을 박살 내는 게 더 빠르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밑에 남자가 있는 곳에 내가 아는 얼굴들이 나타났다.

레이놀드와 앤더슨, 그리고 밀러.

미라지 오션의 회장과 아프리카 담당, 러시아 담당.

위원회 한 명이 당해서 직접 온 건가?

대통령은 안 왔네? 하긴, 대통령이 함부로 여기저기 나다니는 짓은 안 하겠지.

클로에 에반스 그 여자는 이름뿐인 위원회라 안 온 거 같고.

아. 그럼 저 남자가 위원회에 신입으로 온 놈인가? 어디. 대화를 한번 들어봐야겠네.

잠시 지켜보며 녀석들이 말하는 걸 들으니 저놈이 신입이 맞는 거 같다.

메튜 브라운이랬나? 암튼 그런 이름이었던 녀석.

녀석은 Q&A로 찾아서 추적 안 걸길 잘했네. 이렇게 알아서 나타나 주다니.

어쨌든 회장, 아프리카, 러시아 녀석은 신입에게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지만, 딱히 만족스러운 대답은 못 듣고 있다.

그도 그럴게 저 신입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뭘 아는 게 있어야 대답을 해주지.

어쨌든 회장 저놈은 언노운의 짓인 거 같다는 소리를 들으니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다.

하긴 녀석은 영국에 있던 놈들이랑 크라켄 본부가 탈탈 털렸으니 저럴 만하지.

게다가 지금 이 상황은 그거랑은 비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위원회 한 명이 죽었다는 건 자신들도 당할 수 있다는 소리니까.

다들 표정이 좋진 않은 모습.

여기 더 있어 봐야 더 뭔가를 얻을 수도 없기에 녀석들은 신입만 남기고 금방 돌아갔다.

그럼 나도 여기 계속 있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저 신입 녀석도 추적은 걸려있으니까.

틈틈이 한번씩 확인하면서 녀석이 알아낸 것만 점검하면 되겠어.

이거 참…. 감시하기 편해서 좋네. 역시 추적은 신이야! 이만큼 좋은 게 어딨겠어?

바로 순간이동을 쓰고 방주로 향했다.

위기는 넘겼다고는 하지만 이런 일이 또 있을 수도 있잖아?

한번 당한 걸 또 당하면 그건 무능이고 무책임이지.

진작에 대비를 못 했던 건 어쩔 수 없다. 지금이라도 잘해야지.

인터폰을 들어 사람들을 호출한다.

정 부장, 승규 형, 민희, 아키까지.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을 부르자 의아해하면서도 바로 오는 사람들.

내 방으로 순간이동 한 민희는 나를 보고 매력적이게 웃었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부른 걸 알고 차마 내게 안기진 않았다.

민희만 먼저 부를 걸 그랬나? 약간 아쉽네.

"무슨 일로 이렇게 아침에 왔습니까? 성철 씨 답지 않게?"

정 부장이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는 맞장구 치지 않고 일부러 무게를 잡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정 부장은 아니다.

"어이쿠. 심각한 일인가 보네요. 말씀하세요. 들을 준비 됐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괌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줬다.

그들이 방주를 지켜보고 있던 것, 당장이라도 습격할 수 있었다는 것, 만약 그랬다면 방주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

전부 다 말하니 다들 얼굴이 굳는다.

뭐…. 그들로써는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긴 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외부의 침략을 받아 궤멸한 다음 몰랐다고 해봐야 아무 소용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래서 말인데요."

내 말에 모두 집중하는 네 사람.

"근처까지 다가온 사람은 아키가 어느 정도 탐지해 낼 수 있을 거예요. 너 지금 티어 몇이지?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건 20이었는데."

"23."

"조금 더 숙련에 박차를 가하셔야겠어요. 방어 조장님."

내 말에 약간 울컥하는 거 같았지만 그걸 내색하진 않았다.

쟤도 긁는 맛이 있다니까. 아마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더 그런 거겠지.

하지만 쟤는 고지식한 만큼 신중하기에 막 감정을 표출하거나 하진 않는다.

암튼 재밌는 여자야. 상대하는 맛이 있어.

"어쨌든 티어23이면 스킬 반경 증가 17이고…. 탐지 거리는 대충 1.6킬로미터 정도 될 거에요. 적어도 그 안에 들어오는 건 크게 문제 되지 않아요. 방주에서 외부 작업이 있나요?"

"거의 없지. 있어도 아키 씨에게 확인은 받고 나가니까."

시설 담당인 승규 형의 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한다.

"그래요. 그럼 상관없죠. 어쨌든…. 가까이 오는 적은 아키가 탐지를 쓰고 있다면 걱정할 것은 없어요. 문제는…. 원거리에서의 천리안과 투시인데."

"천리안의 범위가 어떻게 돼?"

승규형의 질문.

천리안의 범위라고? 근데 그건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일단…. 제 기준으로는 몇십 킬로미터도 가능해요. 백 단위도 가능할 거 같은데요?"

"그래서야 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아? 성철이 네 기준으로 삼으면 우린 막을 방법이 없어."

"그건 그래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야죠. 저 같은 놈만 정찰하는 건 아니니까. 적어도 반경 10킬로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놈들은 잡아낼 수 있어야 해요."

"어려운 걸 주문하네."

"어쩌겠어요. 죽지 않으려면 해야죠. 아무튼,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아. 그런 건 안 돼요? 레이더 뭐 그런 거?"

"글쎄. 그건 한번 확인해 봐야겠네."

"뭐든 방법이 있을 거예요. 집음기라던가, 열화상 카메라라던가, 뭐든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알겠어. 성철이 네가 하라면 해야지. 어차피 우리의 안전이랑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승규형이 말하자 정 부장과 민희가 웃는다.

근데 아키 얘는 왜 안 웃어? 혼나야겠네.

"아무튼, 신경 좀 써주세요. 그리고…. 아키 너는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아. 자리 비켜드릴까요?"

정 부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 부장과 승규 형, 민희.

혹시나 아키랑 둘이 남는다고 민희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살짝 눈치를 봤지만, 그런 건 없었다.

음.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쉬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모두가 전부 나가고 아키와 나랑 둘만 남은 방.

그녀는 약간…. 수줍어하고 있다. 얜 또 왜 저래. 왜 갑자기 수줍어해?

"스킬 뭐 더 배웠어?"

"내가 무슨 스킬이 있었는지 다 기억해?"

"대충? 절멸 트리에 게이트 트리, 투명화, 비행, 반사, 보호막, 데미지 감소, 괴력에 수납, 테이밍도 있었지? 탐지랑 동물 탐지 있었고?"

"어떻게 그런 걸 다 외우지? 내가 한 번만 말하지 않았어?"

"뭐…. 바둑 같은 거지. 프로 기사가 자신이 뒀던 바둑을 첫수부터 끝날 때까지 전부 외우는 느낌? 물론 그 정도로 천재는 아니지만."

"뭐든 나에겐 대단해 보이는데."

"아무튼, 뭐 뭐 더 배웠어?"

"코인 탐지랑 추적, 축소."

"그래? 마침 잘됐네. 딱 배웠으면 했던 것만 배웠잖아? 추적을 배웠으면 마킹도 배웠어?"

"응."

"안 그래도 축소는 배우라고 하려 그랬는데. 마스터는 아직이지?"

"응. 아직 못했어."

"그래. 빨리 마스터 하고 나노화까지 배워라. 그래야 바깥 탐색을 하지."

"바깥 탐색?"

"너에게 부담이 너무 커지는 건 알지만 아까 이야기를 들어서 너도 느낄 거야. 마냥 이 안에 있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 그러니 니가 주변을 돌아보긴 해야 해. 그러기 위해선 나노화가 필요하고. 이렇게. 축소."

나는 축소를 썼고 공중에 떠서 아키의 얼굴 앞으로 향했다.

손톱만 한 크기가 된 나를 보는 아키.

"탐지 때문이지? 나도 그것 때문에 축소를 배운 거야."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축소를 풀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그래. 그건 그렇고…. 축소 마스터 하면 잠금 해제 배워."

"잠금 해제?"

"어. 그걸 배우면 제약 해제라는 패시브가 생길 거야. 그러면…."

내 이야기를 전부 듣는 아키는 흥미로운 표정이 된다.

"그게 그쪽이 가진 강함의 비결이야?"

"그렇게 거창할 정도는 아니고. 근데 다양한 효과가 생기는 건 맞아. 배워둬."

"그래…. 알았어."

그렇게 아키랑 대화하는데…. 자꾸 얼마 전에 했던 짓이 생각난다.

알몸의 아키. 보기 좋았지. 물론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몸에 흔적도 남지 않았고.

또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금방 사라졌다.

짜릿하긴 했지. 하지만 그것보단 제대로 아키를 안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음…. 근데 쉽지 않겠지? 에휴.

"혹시."

그렇게 혼자서 야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키가 말한다.

"왜?"

"나랑 대련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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