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75화 (675/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데이트

지중해식 해산물 요리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요리보다는 치즈버거를 더 선호하고 밥은 그저 죽지 않게 배를 채운다는 개념으로 살았던 나다.

아무리 펜스의 식당 이모님과 하루카에게 음식의 맛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크게 바뀌진 않았지.

하지만 오늘 비로소 알게 됐다.

분위기와 요리, 그리고 거기에 곁들이는 술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러고 있으니까 내가 되게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이네. 항상 너랑 같이 있으면 이렇게 되는 거 같아. 고마워."

내 말에 민희는 웃으면서 말한다.

"고맙긴요. 이런 걸 즐길 수 있게 된 내가 더 고맙죠."

식사 반주로 마신 와인 몇 잔이지만, 민희의 볼이 살짝 발그레해진 게 보기 좋다.

게다가 이 와인은 생각보다 입맛에 맞아서 나도 몇 잔 마셨더니 기분이 업 된다.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마실 수 있겠는데? 기분 좋게?

"아. 정말 맛있는데…. 더 먹으면 이따가 고생할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 포크를 내려놓는 민희.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보다 많이 먹었어. 어우 배불러.

"해산물도 생각보다 좋네. 내가 생각하는 해산물 요리는 낙지볶음, 아귀찜, 해물찜, 쭈꾸미…. 뭐 이런 거만 있었는데 말이지."

"정말 한국 사람이네요.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이야."

"뭐, 한국인 맞지. 평생 보고 자란 게 그런 건데. 아. 이거 남은 거 가져가. 나는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이거 와인도 회귀가 돼요?"

"어…. 될 텐데? 아. 너는 안 되겠다. 너는 제약 해제가 없잖아. 아. 그러면 이거 음식도 안 들어갈 수 있겠네. 한번 해봐."

민희는 수납을 열어 음식을 넣어보려 했지만, 역시 안됐다.

"안되네요."

"그렇겠지. 상점에서 산 물건이나 생성된 물건은 제약 해제 없으면 수납에 안 들어가니까. 그러니까 빨리 스킬 배워. 코인도 많잖아."

"회귀 거의 마스터 했어요.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요."

"그래. 꼭 잠금 해제는 배워 놔. 티어13 되기 전에."

"알겠어요."

결국, 남은 음식은 내가 전부 수납에 넣었다.

다음에 숙련하면서 먹어야지. 아. 지난번에 회덮밥도 아직 남아있을 텐데.

그렇게 가게를 나온 나와 민희. 나는 가게에 바로 상태 성장을 걸었다.

아까 모습 그대로 돌아온 가게. 마치 우리가 저 안에서 식사를 한 건 꿈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혹시 누가 볼까 봐 원래대로 돌려놓는 거예요?"

"응. 여기에 왔는데 이 가게만 멀쩡하면 좀 이상하잖아?"

"신중하네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누군가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럼 귀찮지. 와서 기억이라도 읽으면 좀 그렇잖아."

"그래도 아쉽네요. 근데 언제든 다시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쵸?"

"응. 그렇지."

"그럼 됐어요. 배부르게 먹기도 했으니…. 이제 걸을까요?"

"그러자."

민희는 내 팔짱을 꼈다. 훅하고 다가오는 여자의 향기. 그리고 그 향기는 바닷바람과 함께 섞여 코를 간지럽힌다.

매력적인 여자와 팔짱을 끼고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백사장을 걸으며 푸른 바다를 보니…. 참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1년 전? 아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끔찍했던 삶인데. 이렇게 삶이 피다니.

참 세상사 알 수가 없어. 이렇게 인생이 바뀔 줄이야.

"너무 좋네요. 영화 같잖아."

"그러게. 그런데 남주 인물이 너무 안 좋다. 여주는 완벽한데."

"너무 칭찬이 과한 거 아니에요?"

"음? 나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할 뿐이라고. 자기 객관화가 확실하단 말이지."

"당신 정도면 충분히 보기 좋죠."

"봐봐. 잘생겼다는 말은 안 하잖아. 괜찮아. 나도 큰 기대는 안 했어."

"아니에요. 잘 생겼어요. 나한텐."

"아. 뒷말은 뺐어야지. 게다가 말에 영혼이 없어. 너무 접대용 멘트야."

"이크. 들켰어요?"

장난스럽게 웃는 민희. 그러더니 나를 보고 말한다.

"당신은 한 40대? 그 정도가 되면 지금보다 더 멋있어질 거 같아요. 분위기 있을 거 같아."

"음…. 그래? 그럼 한번 볼래?"

"네?"

"40대가 된 내 모습."

"아아."

"나도 궁금해지네. 한번 해보자."

그렇게 백사장에 서서 스킬을 써본다. 일단 30대 정도로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스킬을 쓴다.

"상태 성장."

오우…. 뭔가가 바뀌는 느낌. 그렇게 내 몸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확인하고 민희를 바라본다.

"뭐 변했어?"

"어…. 글쎄요. 많이 변한 거 같진 않은데."

"그래? 그럼…."

이번엔 40대를 생각하고 다시 스킬을 썼다. 그러자 변한 내 모습을 보고 민희의 눈이 반짝인다.

"오오."

"뭐야. 어떻길래?"

"조금만 더 나이 많게도 가능해요? 40대 후반?"

다시 스킬을 썼다. 그렇게 모습이 바뀌자 민희는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렇게 내 얼굴을 만지며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여자.

그러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키스한다.

얼떨결에 같이 키스는 했는데…. 이 여자 갑자기 왜 이래?

"너무 좋은데요?"

입술이 떨어진 민희는 나를 보며 말한다. 눈빛에서 꿀이 떨어지는 느낌?

"뭐야. 넌 연상 취향이었어? 근데 연상치고는 너무 많은 거 아냐?"

"글쎄요. 그런 취향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당신이 이렇게 되니 되게 근사하네요. 중후한 느낌이야."

"거울이 있으면 좋겠는데. 내 모습을 볼 수가 없네. 잠시만."

"또 생성하려고요? 그거 코인 드는 거 아니에요?"

"어."

"그만 써요. 거울 같은 건 어디서든 볼 수 있잖아요."

"그런가. 근데 궁금하잖아."

"자요. 이걸로 일단 봐요."

민희는 수납에서 손거울을 하나 꺼내서 나에게 줬다.

좀 작긴 하지만 그래도 얼추 모습은 확인할 수 있겠네.

거울 속에 나는…. 뭐라고 해야 하나. 굉장히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내 모습인데 내가 아닌 느낌? 근데 솔직하게 지금 모습보다는 더 낫긴 한 거 같네.

곱게 늙는다는 게 이런 건가?

"자."

거울을 돌려주자 다시 수납에 넣는 민희. 그리고 내 팔짱을 다시 낀다.

"너무 좋다."

진짜 만족스러운 듯한 모습. 의외네. 신기한 여자야.

"그럼 너도 해보자."

"네? 싫어요. 나는 주름 있는 모습 싫어."

"아니. 누가 나이 먹게 한데? 어려지게 한다는 거지. 기억 조금만 읽자."

그렇게 민희의 기억을 읽었다.

스무 살 즈음의 민희. 지금의 농염한 매력과는 다르게 상당히 풋풋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매력적이긴 하다.

"같이 있던 남자 놈들 정신을 못 차렸겠네. 쓴다?"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바로 상태 회귀를 썼다.

어려지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손을 바라보는 민희. 그렇게 그녀는 스무 살 그 시절의 풋풋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시 거울을 꺼낸 민희. 그렇게 어려진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정말 시원한 미소를 짓는다.

해맑고 순수한 진심 어린 기쁨.

그걸 표정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딱 저 표정일 거다.

보고 있기만 해도 걱정 근심이 다 날아갈 것 같은 미소.

"이건…. 정말 꿈 같네요."

"내 눈엔 그렇게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그건 원래의 내가 젊어 보인다는 칭찬인 거에요? 아니면 스무 살의 내가 늙어 보인다는 이야기에요?"

"어…. 뭐지? 뭘 선택해도 까일 것 같은 느낌인데."

"농담이에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그렇게 말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너무 기뻐서 주체를 못 할 정도다.

역시 여자들에겐 나이는 민감하구나.

나야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좋지만, 원래의 모습도 좋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

이건 어느 쪽이 낫다고는 할 수 없는 취향 문제지.

"이렇게 있으니까 아빠랑 딸 같네요."

"어…. 그러네. 연령대로 생각하면 그게 맞지."

"후후. 그럼…. 갈까요? 아빠?"

그렇게 말하고 내 팔짱을 꼭 끼는 민희. 하. 이거 봐라. 나이가 어려져도 여우 짓은 그대로네.

하긴, 속은 민희 그대로니까. 근데 또 어려진 몸으로 저러니 그것도 상당히 매력적이네.

"아빠라고? 약간 위험한 거 아니야?"

"뭐 어때요. 아무도 모르는데. 그리고 진짜 아빠도 아니고."

"그래서 더 위험한 거 같은데. 무슨 원조교제 같잖아."

"왜요? 흥분돼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뭔가 좀 꼴리는 상황이긴 하네.

실제로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약간 나잖아? 묘하게 자극적이야.

그렇게 민희는 내 팔짱을 끼고 가슴을 팔에 꾸욱 누른다.

좋구나. 이러고 걷는 건. 더러운 커플 놈들. 이렇게 좋은 걸 자기들만 하고 다녔단 말이지?

"아. 맞다. 너 뉴욕 가고 싶다 그랬지?"

"네? 아. 그랬죠."

"뉴욕은 지금 아침이 됐을 텐데. 어때. 갈래?"

"그래요. 저야 좋죠."

"그럼 비행 쓰고."

민희가 비행을 쓰자 나도 썼고, 바로 게이트를 연다.

그렇게 넘어가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에 선 나와 민희.

"대체 왜 이런 곳을 저장해 놓은 거예요."

"바보는 높은 곳을 좋아하니까."

그러자 민희는 피식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말한다.

"바보도 아니면서."

"바보 맞아. 사랑에 빠진 바보."

"꺄아악!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그런 말을 하다니!"

"왜. 내 외모랑 딱 맞는 농담이잖아. 니 반응도 딱 나이랑 맞는 반응이었어. 귀엽네."

"으…. 정말. 후우. 소름 돋았어. 아무튼…. 이제 내려가죠. 근데 이대로 날아서 내려가면 너무 눈에 띌 거 같은데."

"당연하지. 투명화 쓰고 블링크 해서 내려가자. 저기 저 벤치 보이지?"

"벤치가 너무 많은데요?"

"어…. 그럼 먼저 가 내가 따라갈게."

그러면서 민희에게 추적을 걸었다.

바로 블링크 해서 벤치로 내려가는 민희.

그런 그녀의 옆으로 블링크 해서 어깨에 손을 짚었고 바로 손을 잡았다.

"근데, 계속 이렇게 투명화를 쓰고 가야 해요?"

"아니. 좀 으슥한 곳에 가서 풀자. 여기서 이러고 풀면 너무 눈에 띄니까."

"그래요."

그렇게 투명화를 푼 나와 민희는 뉴욕 시내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나이든 남자와 딸뻘의 여자가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모습은 상당히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뭐, 상관없지. 지금 우리의 모습은 진짜 모습이 아니니까.

그렇게 센트럴 파크 까지 걸어가니 민희는 신난다는 듯 공원을 뛰어다닌다.

겉모습만 봐선 정말 발랄한 스무 살 여자애 같네.

"저녁은 햇살 가득한 니스에서 먹고, 산책은 아침이 된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하고…. 정말 별별 경험을 다 하네요."

그러면서 해맑게 웃는 민희.

그런 그녀를 보니 상큼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빨리 안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근데…. 이 모습으로 안아야 하나? 이거 괜찮나?

아니 어차피 본 모습이 아니니 도덕적인 문제는 없을 테지만, 체력…. 괜찮은 거야?

발기가 되긴 하나? 아랫도리에 자꾸 신호가 오는 거 보니 될 거 같긴 한데.

하긴, 50대라고 섹스를 못 하는 건 아니지. 게다가 어차피 나는 패시브도 있으니까.

한참을 그렇게 산책한 민희는 다시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내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산책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데…. 조금 쉬고 싶은데요."

그렇게 말하는 민희의 모습은 정말…. 발칙하다. 아주 요망해. 반칙이라고.

"그래? 그럼 쉬러 가야지. 가자."

게이트를 열자 바로 들어가는 민희.

나도 바로 따라 들어가자 민희가 나를 보고 말한다.

"여기는 의정부잖아요?"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의 민희.

"맞아. 여기서 쉬겠다는 뜻은 아냐. 우리가 쉴 곳이라면 한군데밖에 없잖아?"

"아…. W호텔?"

"어. 거기는 저장이 안 돼 있어서. 잠깐 있어 봐. 금방 가서 열어줄게."

"같이 날아가도 되잖아요?"

"그래도 되긴 하는데, 내가 먼저 날아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음…. 그래요. 그러죠. 뭐."

"있어 봐. 금방 열어줄게. 몇 분 안 걸려."

밖으로 나가서 바로 비행으로 날아간다.

해봐야 겨우 20킬로. 몇 분도 아니다. 초 단위로 갈 수 있지.

금방 호텔 방에 도착한 나는 위치를 저장하고 게이트를 열었다.

열린 게이트로 나오는 민희. 그러더니 나를 이쁘게 바라본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되게 오랜만에 온 거 같네요."

"그러게."

내가 소파에 앉고 게이트를 닫자 민희는 약간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 돼서 나를 바라본다.

"성철 씨."

"음?"

"혹시 내가 입어줬으면 하는 옷 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