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674화 (67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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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추적을 지켜본 건 잘한 거 같다.

뜻밖의 정보도 얻었고 시간도 잘 보냈잖아?

뭐…. 그렇게 중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보는 좋은거지. 뭐가 됐든 좋은 거야.

근데 아프리카가 그거 밖에 안 남았다고?

그럼 아프리카 왕 음바야 같은 게 갑자기 짠하고 나타날 확률은 거의 없는 거네.

내가 마지막으로 인구 체크를 했던 게 4억 정도였었으니까….

그럼 그 인구는 미국과 중동 쪽의 인구인가? 아. 인도도 아직 제법 남았지.

남미도 완전히 다 죽인 건 아닐 거고.

얼추 숫자는 맞는 거 같은데…. 물론 남은 인구는 중요하다. 어쨌든 다 코인으로 환산 되는 거니까.

하지만 이미 코인을 잔뜩 모아 놓은 놈이 숨어있을 수도 있으니 마냥 안심할 수는 없네.

아직 음바야의 야망은 죽지 않았어.

악랄한 미국놈들의 일방적인 학살에 분개한 아프리카의 수호신,

아프리카의 왕! 음바야가 간다!

어휴. 지랄하네. 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어.

암튼 한국 시간으로 6시가 됐다. 으! 드디어! 드디어 6시야!

이제 슬슬 민희가 퇴근하겠지? 퇴근해야 하는데.

숙련하던 것을 멈추고 방주로 순간이동 했고 바로 민희를 찾아본다.

아직 보안실에 있는 여자.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을 하더니 바로 순간 이동한다.

그리고 내 방에 나타나는 민희.

"여기 있었네요?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나도 방금 왔어. 널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그렇게 말하자 민희는 씨익 웃으면서 나에게 안긴다.

"이렇게 보면 참 젠틀한 남잔데."

"음?"

"아니에요. 당신 난봉꾼이라고요."

아…. 민희의 이런 말은 참 무서워. 마치 뭐든지 다 알고 있다는 말투잖아.

하지만 쫄면 안돼. 이 여자가 뭘 알고 있던 지금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거나 다 감당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만약 정말 아니다 싶은 말이 있으면 이 여자는 속으로 끙끙거리기보단 당당하게 나에게 말할 테니까.

아마…. 이런걸 믿음이라고 하겠지. 신뢰라거나.

"갈까?"

"저녁은 먹었어요? 나 배고픈데."

"아. 저녁 시간이긴 하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흐음. 글쎄요. 방주의 식사가 워낙 잘 나와서 별로 생각나는 건 없어요."

"하긴, 그렇겠다. 방주에서 나오지 않는 것도 있나? 나오기 힘든 거?"

"당연히 많죠. 다행히 생선 양식이 가능하긴 하지만 해산물 요리는 턱없이 부족하긴 해요. 사실 이정도로도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해산물이라. 해산물 요리 좋아해?"

"막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가리거나 하진 않아요. 맛있는 요리면 뭐든지 좋죠."

"그래? 그럼…. 지중해로 가볼까? 음…. 시간도 나쁘지 않네. 비행 써."

"네?"

"게이트."

아직 저장해둔 니스의 게이트를 열었다.

어딘지도 모르지만 내가 연 게이트라 그런지 비행을 쓰고 망설임 없이 게이트를 넘어가는 민희.

나 역시 비행을 쓰고 넘어가자 민희는 바로 탄성을 지른다.

"어머. 이뻐라."

프랑스 니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지중해.

하늘에 떠서 그런 바다를 바라보는 민희의 표정은 몹시 행복해 보인다.

크. 그래. 이 맛이지. 이런 모습 보려고 이런 걸 하는 거지.

"갈까?"

서로 손을 잡고 바닷가로 향했다.

아름다운 바다색, 그림 같은 해안도로,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건물들. 비록 상태는 안 좋지만.

"정말 좋네요. 이렇게 이런 걸 구경할 수 있게 될 줄이야."

"그치? 자 그럼…. 저녁을 먹어볼까?"

"여기는 완전 한낮인 거 같은데."

"어. 여기 시간으로는 오전 11시일걸?"

"이렇게 시차를 느끼다니. 느낌이 이상하네요."

"그렇지. 자. 그럼 맘에 드는 가게를 찾아볼까?"

그렇게 손을 잡고 걸으며 멀쩡한 가게를 찾는다.

근데…. 생각보다 다들 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어느 정도 깔끔하게 남아있으면 적당히 분위기만 내려고 했는데…. 이건 좀 너무 심하네.

하긴,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면 건물 같은 건 상태가 나빠지는 건 한순간이니까.

유리창이 깨지고 그 틈으로 먼지와 쓰레기가 잔뜩 들어간 건물들은 어떻게 답이 없다.

게다가 그 틈으로 파고든 식물들. 이래서야 영 분위기가 안 사네.

"과거 모습을 알고 있으면 상태 회귀라도 쓰는데."

"꼭 과거 모습을 알고 있어야 해요?"

"일단은 그렇지. 과거로 돌리고 싶어도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면 돌릴 수가 없잖아?"

"그렇긴 하네요. 그럼 보통 과거는 어떻게 알죠? 아. 기억 읽기?"

"어. 보통은 그걸로 원하는 과거를 보고 정보를 얻지. 그걸로 상태 회귀를 쓰고."

"건물은 기억 읽기 안 돼요?"

"음? 한번 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해봐요."

"될까? 기억이란 건 사람만 있잖아? 건물이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싸이코메트리 같은 거 몰라요?"

"싸이코메트리? 뭐야 그게?"

"사물이나 사람의 기억을 읽는 초능력 같은 거죠. 당신이 하는 기억 읽기랑 다를 게 없어요."

"아 그래? 그게 그런 이름까지 있는 거였어?"

"그럼요. 인간의 상상력은 얼마나 대단한데요."

"으음. 사물의 기억을 읽어본 적은 없는데."

그러면서 맘에 들긴 하지만 잔뜩 엉망이 된 가게 앞에서 건물에 손을 대고 스킬을 써본다.

"기억 읽기."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기억 읽기는 오로지 사람용인 거야. 사물에는 역시 적용이 안 돼.

"안되네."

"아쉽네요. 어쩔 수 없죠."

"잠시만."

생각해보면 안 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아직 스킬 조합을 안 해 본 게 있어.

상태 회귀를 조합한 다음에 이걸 다른 거랑 섞어볼 생각을 하진 않았잖아?

한번 해본다. 해보는 건 금방이니까.

"원트."

스킬 조합을 누르고 상태 회귀와 기억 읽기를 조합해본다.

과연…. 될까?

['사물 기억 읽기' 스킬이 조합되었습니다. 스킬을 배우는데 5억 코인이 소모됩니다. 배우시겠습니까?]

"어?"

"왜요?"

"떴어."

"네? 뭐가요?"

"사물 기억 읽기."

"어머."

사물 기억 읽기라니…. 이건 뭐 존나 좋은 거잖아?

물론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물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부 알아낼 수 있다.

마치 블랙박스 같은 거지. 세상 모든 사물이 블랙박스가 되는 거다.

미친 스킬이네. 존나 활용도가 높아.

시체도 하나 남지 않는 이 세상에서 이런 스킬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있는 거지.

당연히 배운다. 5억 코인이 빠져나갔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만하지.

정보의 가격으로 5억이면 존나 싼 편이잖아? 활용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한데.

"고마워. 이게 다 민희 덕분이야."

그러면서 민희를 꽉 안아줬다.

영문도 모르고 내가 안았지만 역시 나를 안아주는 그녀.

"바로 해봐야지."

그렇게 안고 있던 민희를 놔주고 건물의 기둥에 손을 대고 바로 스킬을 써본다.

"사물 기억 읽기."

나는 건물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속으로 취소했다.

마치 세상에 이 건물과 나만 있는 느낌.

그렇게 서있는 나는 머릿속으로 이 건물의 과거를 상상해본다.

그러자 마치 건물이 상태 회귀에 걸린 것처럼 빠르게 과거로 되감겼다.

빠르게 변하는 낮과 밤.

안에 자라고 있던 식물이 사라지고 망가졌던 탁자들이 고쳐진다.

노숙자? 아니 생존자? 어쨌든 사람들이 빠르게 들어왔다 나가고 사라지고 다시 들어오고를 반복한다.

뭔가 먹을 걸 찾아보려고 드나든 사람들인가? 어쨌든 그들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과거로 돌아가는 건물.

깨졌던 유리가 다시 원상복구 됐고 건물의 상태가 전체적으로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가득 찼다.

아. 세상이 망하기 전으로 돌아왔구나.

이 가게는 제법 인기가 좋았나 보네. 사람들이 가득 차있는 거 보면.

속도를 조금 늦춰봤다. 그러니까…. 일상과 같은 속도로.

아. 그래도 되감기 중이네. 이번엔 되감기 말고 제대로 기억이 흘러가게 해봤다.

그러자 나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게 바깥에 서 있게 되었다.

수많은 관광객. 왁자지껄 한 분위기.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신기한 느낌이다. 사람의 기억을 읽을 때와는 다른 시점.

이건 건물이라서 그런가? 그 안에 나도 있게 된 게 특이하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가 주름까지도 훤히 보일 정도. 당연히 만질 수는 없고.

하긴, 만질 수 있으면 그것도 사기지. 암튼…. 그래. 이정도면 됐어. 이정도면 얼마든지 원래대로 돌릴 수 있겠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민희가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돌아왔어요?"

"어? 어. 왜 이렇게 손을 꼭 잡고 있어?"

"당신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었으니까. 걱정했잖아요."

"뭘 걱정을 해.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아…. 잠깐. 내가 혹시 이러고 얼마나 있었어?"

"30분 넘게요."

"아. 진짜? 으. 미안하네. 기껏 데이트하러 와서 상대를 멀뚱멀뚱 서 있게 하고."

"알면 됐어요. 당신이 하는 일이니 크게 막 걱정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고요."

"미안해. 그럼…. 사과의 뜻으로 내가 멋진 걸 보여줄게."

그리고 민희와 함께 뒤로 물러섰다.

"상태 회귀."

내가 말했고 건물은 아까 내 기억에서처럼 빠르게 회귀하기 시작한다.

세상이 망하기 전, 한창 잘나가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 가게.

그리고 그걸 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 민희.

크크. 여기 또 상태 회귀의 사기성을 맛본 여자가 하나 또 늘었네.

이건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지. 장담할 수 있어.

"세상에…."

"자. 들어가실까요?"

손을 내밀자 민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는다.

아무도 없는 가게. 하지만 실내는 방금까지 사람들이 한 50명은 있었던 거 같은 느낌이다.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은 나와 민희.

"아. 이 집은 손님이 왔는데 종업원이 나와보지도 않아."

그러면서 일어나 메뉴와 접시, 식기를 가져와 그녀의 앞에 놔준다.

그런 나를 보고 웃긴다는 듯 입을 가리고 웃는 민희.

"어…. 메뉴를 줘도…. 불어인데요?"

"아. 그러네. 그럼 내가 시킬까?"

"아니…. 시킨다고요? 누구한테? 안에 누구 있어요?"

민희의 반응은 조금 새롭다.

뭐랄까. 항상 도도하고 뭐든지 다 알 것 같은 여자였는데 이렇게 보니 되게 순진한 모습이야.

"뭐, 사람은 없지만 시키면 다 나오지. 아. 그럼 내가 메뉴 설명해줄게. 보자…."

메뉴를 민희 쪽으로 하고 하나하나 짚으면서 설명해준다.

"이건 생선 살이 들어있는 피쉬볼. 이건 굴 요리. 이건 문어가 들어있는 해물 요리네. 이건 빵에 절인 엔쵸비를 올린 거고…. 엔쵸비? 엔쵸비면 멸치 아냐?"

"맞아요. 멸치."

"음…. 또 보자. 이건 새우 파스타. 이건 참치 마리네? 마리네가 뭔지는 모르겠네. 이건 홍합요리고…."

어차피 번역으로 술술 읽히는 거지만, 민희가 나를 보는 눈빛은 뭔가 기분 좋은 느낌이다.

'이 남자. 멋진데?' 이런 표정. 아.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으쓱하네. 스킬 빨 이면서.

"너무 많아서 고를 수가 없네요. 음…. 일단 이 새우 파스타로 할게요. 익숙한 거로 먹어야지."

"아. 생각해보니 고를 필요가 없다. 내가 바보 같았어. 잠시만."

그렇게 말하고 짧게 중얼거린다.

"위시."

위시는 정말…. 만능 스킬이다.

여기 가게 이름을 붙이고 메뉴에 있는 요리를 말하자 그 요리가 그대로 나왔으니까.

민희가 말한 새우 파스타를 시작으로 내가 말했던 메뉴들이 전부 다 탁자 위에 놓이자 민희는 놀란 얼굴로 나를 말린다.

"이렇게 많이 내놓으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다 먹으라고?"

"뭘 다 먹어. 하나하나 맛만 보면 되지. 어차피 남은 건 수납 안에 넣어 두면 되잖아?"

"아아. 맞네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러면서 웃는 민희.

그래. 어쩔 수 없지. 우리는 낭비와 사치에 익숙하지 않은 소시민이잖아.

아무리 민희가 의사였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자. 어떻습니까? 맘에 드시는지요?"

"물론이죠. 보기만 해도 행복하네요. 당신도 멋지고."

그러면서 이쁘게 웃어주는 민희. 아. 좋네. 이 미소는 중독적이야. 헤어나올 수가 없어.

"아. 맞다. 와인. 근데 이건 해산물이잖아? 내가 전에 준 와인은 레드 와인이지? 해산물은 화이트 와인이랑 먹는 거 아냐?"

"보통은 그렇죠?"

"그럼 화이트 와인 좋은 거 말해봐."

"화이트 와인은 별로 아는 게 없어서…. 그냥 여기 메뉴에 있는 거 해도 될 거 같은 데요?"

"아 그래? 비싼 게 좋은 거 아냐?"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알겠어. 그럼 잠시만."

메뉴판에서 화이트 와인으로 적혀있는 걸 위시로 생성해냈다.

음. 색이 이쁘네. 맘에 들어.

"자. 됐다. 그럼 먹자."

"정말…. 당신이랑 있으면 이 세상이 망한 거 같지가 않다니까요."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웃기는 일이지."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민희는 또다시 웃는다.

즐겁네. 이제 데이트를 시작한 참인데 이정도로 즐겁다니.

너무 좋아서 공중제비라도 돌 수 있겠어. 근데 그것도 별로 어려운 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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