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12화 (51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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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장면

수납 안에 먹기 좋게 갈무리된 소 한 마리가 있다는 건 몹시 행복한 일이다.

그냥 생각만 해도 좋다. 고기 상태는 뭐 따로 말할 필요도 없지. 해체되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다 봤는데.

구워 먹을 생각을 하면 벌써 입에 군침이 돈다.

거기에 승미세안 네 여자가 먹으면서 좋아할 걸 생각하면 입에 저절로 미소가 걸린다.

근데 아직 할 일이 조금 남았다. 청평도 가봐야 하고 미국행 비행도 해야 하니까.

수원은…. 아. 거기도 가긴 해야 하는데. 굳이 성연과 신영을 만날 필요는 없지.

하지만 기억 조작이 문제없는지, 부작용은 없는지에 대해 확인은 해야 해.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래. 한 번에 다 하자. 오늘 싹 돌고 기분 좋게 소고기 구워 먹는 거야.

먼저 청평부터 빠르게 날아간다. 동두천에서 청평까지의 거리 45킬로미터.

블링크 없이 날아가도 15분. 블링크 쓰면 역시 10분 컷.

탐지에 걸린 기척들이 느껴지자 한시름은 놓았다. 일단 뜬금없이 전멸당해있거나 그렇진 않네.

그렇게 공중에 떠서 천리안과 투시로 청평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러다 목격한 진영이와 서현이. 섹스하고 있는 두 사람.

투시를 배울 때부터 기대했던 장면이지만, 갑자기 그런 모습을 봐버리자 살짝 당황해버렸다.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 둘의 모습을 지켜본다. 와. 씨…. 이거 맨날 장난식으로 관음이라 그랬는데.

진짜 관음 변태가 되어버렸네. 이젠 장난이 아니게 되어버렸어.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쟤들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동생이나 여동생의 섹스를 훔쳐보고 있는 느낌이다.

근데 가장 웃긴 건 지금 진영이와 하고 있는 서현이. 내가 쟤랑 해봤다는 거겠지.

그래서 기분이 더 이상하다. 뭔가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는 느낌.

그러면서도 왜 시선을 떼지 못할까. 나 참. 진짜 변태인가 보네.

근데 이런 상황에서 시선을 돌릴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내가 이러고 있는 건 아무도 모르잖아? 들킬 리도 없고 들킬 수도 없지.

서현이는…. 애초에 이쁘장한 애였다.

그러니 이런 세상인데도 살아남았고 나한테도 안 죽었지.

그런 여자애가 마트로, 물류센터로, 여기 청평으로.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 그래도 많이 안정됐는지 미모가 많이 피어올랐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게 가장 큰 이유일 거다.

진영이. 쟤도 착한 놈이니까 서현이에게 잘해줬겠지. 하긴 전에 꽃밭 만들어 놓은 거 보면 지극정성이긴 한 거 같던데.

서현이 쟤도 상당히 파란만장한 삶이었잖아? 내가 본 쟤의 인생만 해도 그렇다.

웬 채찍 쓰는 미친놈에게 같이 살고 있던 친구들을 모두 잃고 나중에는 불법 침입한 놈들에게 당하기도 했었지.

결코, 순탄한 인생이 아니었다. 자살 안 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준 게 대단할 정도잖아?

그러니 저렇게 행복해지면 좋은 거다. 당연히 좋은거지.

아쉽거나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든다. 나는 이미 나만의 여자들이 있으니까.

만약 내가 벙커에 있는 여자들이 없었으면 저들의 모습이 상당히 눈꼴 시렸겠지.

어딜 내가 침 발라 놓은 여자를! 이러면서 진영이를 족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진심으로 둘 사이를 축복해 줄 수 있어.

게다가 둘이 진짜 사랑하고 서로를 아끼며 죽고 못 살아야 NTR이 가능해지지.

순애의 끝은 NTR의 시작이잖아?

그렇게 생각해 본 다음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으. NTR이라니. 싫어. 내 취향은 아냐.

전에 유정 형수에게 느꼈던 것. 그런 건 잠깐 뇌 신경이 에러가 났던 거야.

솔직히 왜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머리에서 지우자.

생각해보니 남이 섹스하는 걸 이렇게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는 건 처음이다.

물론 야동 같은거야 많이 봤지만, 거기는 전문 배우들이잖아.

카메라 앞에서 연출된 장면들이고.

그렇기에 진영이와 서현이의 섹스는 뭐랄까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지극히 날것의 행위. 하지만…. 뭐랄까. 야하긴 야했지만, 아름다운 느낌도 있었다.

아마 쟤들 각각의 사정을 전부 알고 있기에 이런 느낌이 드는 거겠지.

그래서 아까 남동생이나 여동생의 섹스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 거고.

어쨌든 서현이의 몸매를 보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조금씩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보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 그러니 그만 보자. 어휴.

근데 진영이 저놈 생각보다 크네. 새끼. 제법이야.

어쩌다 보니 야한 장면을 직관하게 돼서 그런가?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근데 사실 내려가지 않아도 상관없잖아? 저들에게 딱히 볼일이 있는 건 아니다.

잘살고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긴 했다.

참 이상하단 말이지. 청평 사람들을 마주하는데 조금 부담스러움이 느껴진다는 게.

왜 그럴까? 왜 부담스럽지?

공중에 떠서 차분하게 생각해본다. 이유가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걸 거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얼추 그럴듯한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들은 내가 불안정했던 시절을 안다. 그게 걸리는 거야.

미친놈 같았던 내가 승희를 만나고 나서부터 그나마 안정적으로 되었었다.

물론 아직도 미친 건 맞겠지. 정상인은 확실히 아니니까.

하지만 승희 이전에는 진짜 심했다. 멘탈적으로 정말 엉망진창이었던 나날.

그렇기에 그 모습을 알고 있는 이들이 약간 거북한 거야. 그거 말고는 더 생각나는 게 없다.

지울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에게서 내 기억을 모두 지워볼까?

근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저들이 모이게 된 원인 자체가 나 때문인데.

내 존재가 지워질까? 어떻게든 공백이 남을 수밖에 없을 거 같은데….

게다가 그 양은 어마어마할 거다. 사람도 많고.

쉽지 않은 일이겠지. 무리다. 차라리 다 죽이는 게 더 빠르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죽인다고? 저들을? 글쎄. 모르겠다. 하면 하겠지. 근데 맨정신으로는 못하겠네.

확신도 못 하겠고.

그래. 이유를 또 하나 찾았다. 이들이 거북한 이유를.

이들을 보면 갈팡질팡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싶다가도 번거로움을 느낀다.

방치하고 싶다가도 또 은근슬쩍 끼어든다.

신경을 안 쓸 수도 없고 쓰자니 귀찮다.

보호해주며 끼고 살기는 어렵고 무시하자니 신경 쓰이고.

복잡하네. 복잡해. 아마 내가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겠지. 그정도로 그릇이 크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원인을 알아내니 조금 개운해졌다. 아. 시원하네.

그냥…. 지금이 딱 좋은 것 같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

내가 저들에게 얽힐 필요는 없다. 저들도 내가 없이 잘살고 있잖아?

그냥 이렇게 지켜보기나 하자. 저들이 영 답이 없는 상황이 되면 그때나 조금 끼어들자.

저들의 기억을 일일이 지울 수는 없지만…. 서서히 잊히게 만들 수는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들의 숫자나 세어본다. 음. 열아홉 명. 맞네.

됐어. 그냥 이런 식으로 하자. 그게 가장 낫겠네.

조금 더 지켜보다가 바로 수원으로 순간이동 했다.

할 일이나 마저 하자. 복잡한 생각은 적당히 하고.

대호 그룹의 벙커. 그 안에서 나타난 나는 바로 성연과 신영의 모습부터 확인한다.

일단 잘 있긴 하네. 그럼 여기도 큰 문제는 없지.

근데 운동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성연은 웬일로 운동을 안 하고 자신의 스마트 폰을 바라보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뭐지? 왜 저렇게 심각해? 작동도 안 되는 스마트 폰을 보고 저렇게 심각해, 할 필요가 있나?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 뭘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뭐 저 여자는 됐고, 신영이는 뭐하나? 책 읽나?

뭔가를 읽고 있는데 쟤도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심각한 책인가? 표정 되게 진지하네.

생각해보니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와도 저 여자들에게 뭔가를 할 수가 없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 밤중에 다시 와야지. 다들 잘 때.

다시 순간이동.

바다 위에 나타난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태평양 한복판. 저 멀리에 보이는 섬들.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

방향을 가늠하고 동쪽을 향해 비행한다.

이제 반 조금 안되게 왔지? 앞으로 5일. 열심히 날아보자고. 더 줄일 수 있으면 좋고.

바다 한가운데 열을 지어있는 섬들.

그래. 그래서 열도지. 알류샨 열도.

열도. 참 재밌는 지형들이다. 판과 판의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해서 솟구쳐 오른 섬들.

여기 알류샨 열도도 그렇고 일본 열도도 그렇고 다 같은 맥락이다.

예전엔 지도 어플에 위성사진 켜놓고 세계 지형 보면서 구경 많이 했는데.

그걸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되는 날이 오다니.

세상일 참 몰라.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

여기가 조금만 더 따듯했다면 이런 곳에 다들 이주시켜서 살게 했어도 됐을 텐데.

진짜 아무도 안 오는 곳이잖아? 망망대해 한복판이니까.

근데 여긴 너무 싸하다. 무리야.

아니지. 사계절이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곳이 더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 년 내내 따듯한 지역으로 가서 산다면 겨울이 그리워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아닌가? 추위가 그리워지다니…. 개소리일까? 모르겠네.

그렇게 비행을 마친다. 오늘도 깔끔하게 1,000킬로미터의 비행.

거리가 확확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앞으로 이렇게 네 번. 그러면 어메리콰에 도착할 수 있겠지.

진짜 궁금하다.

중국, 일본, 러시아는 다 확인했다. 내 눈으로 직접.

물론 일본 본토를 직접 가진 않았지만…. 적당히 기억으로 뒤져봤으니까. 실상도 얼추 알고.

근데 미국은 가늠이 안 된다. 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지.

허무하게 황무지로 변해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뭐, 그거야 도착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일단 지금은 미국 생각할 때가 아니다. 오늘의 일과를 마쳤으니…. 집에 가서 소고기를 구워 먹을 시간이야.

하루카 고 계집애 때문에 요 며칠 소고기 생각이 간절했었지.

아. 젠장. 하루카도 봐야 하네. 빨리 보고 가자. 어차피 순간이동 한방이니까.

현 위치를 저장하고 바로 홋카이도로 이동한다.

탐지로 위치를 확인하고 바로 천리안과 투시로 하루카를 살핀다.

아. 목욕하고 있네. 오늘 여러모로 타이밍들이 좋은데?

음. 좋군. 좋아. 근데 됐다. 보는 건 그만하자.

지금은 소고기가 먼저야. 카멘사마 그놈이 안 왔으면 됐어.

그렇게 순간이동을 써서 벙커로 돌아왔다.

"아빠 왔다!"

그렇게 외치며 거실로 나가니 여자들이 풉하고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아빠면 안 되는데."

승희가 살짝 에로 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러네. 아빠면 좀 그렇지.

"남편 왔다?"

"주책이야."

짤막하게 한마디 하는 세아. 쟤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네. 뭐, 또 흐물흐물하게 녹여주면 또 그런 모습 되려나?

"암튼, 이것 봐라. 짜잔."

수납에서 소고기를 꺼내자 다들 뭔가 하고 봤다가 깜짝 놀란다.

"헉. 이거 뭐에요!? 뭐야 이거!? 무슨 고기가 이렇게 많아요?"

미나가 깜짝 놀라면서 가까이 붙어 고기를 살펴본다.

미나뿐만이 아니다. 다들 이정도 양의 고기가 쌓여있는 건 처음 보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기 더미를 바라본다.

"소 한 마리 분량이지. 자. 우리 이거 구워 먹자."

"세상에…. 대체 어디서 이런걸 가져온 거예요…."

그러면서 미나는 고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래. 이 소고기들은 그런 마력이 있다. 나도 아까 겪어봐서 알지.

뭐라고 해야 할까. 소고기라는 단어와 이렇게 쌓여있는 양을 보면 그 비용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진다.

게다가 우리는 이 맛을 알잖아. 이게 잘 구워져서 우리 입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

꿀꺽

침 넘기는 소리가 유독 크게 나서 보니 안나다.

바로 옆에 서 있었기에 똑똑히 들렸어.

자기도 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란 데다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보면서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다시 고기 쪽으로 돌아가는 시선. 재밌네. 안나도 저 정도일 줄이야.

"이걸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까?"

"숯불구이?"

반사적으로 대답한 미나. 그리고 다들 표정이 아련해진다.

"크. 역시 미나야. 음식에 대한 예의가 있어."

숯불 구이라니. 정답이다. 송미나.

"근데 우리 숯이랑 석쇠가 있나? 그런 그릴…. 뭐 그런 것도 없지?"

"없죠…."

"그럼 있어 봐. 내가 가서 금방 마트 털어올게. 너넨 먹을 준비하고 있을래?"

내가 말하자 다들 재빨리 먹을 준비를 한다.

심지어 이런 거 하기 은근히 귀찮아하는 세아마저도 그 움직임이 재빠르다.

역시. 소고기 앞에서는 게으름이란 있을 수 없지. 암.

"근데 그럼 밖에서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미나의 질문. 생각해보니 그렇네. 실내에서 숯불을 피울 수는 없잖아?

"밖에서 먹지 뭐. 날도 좋은데. 야외에서 소고기…. 미쳤네."

여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누가 보면 가속화 쓴 줄 알겠네.

"아. 오빠. 혹시…. 채소도 있어요?"

"채소? 아. 맞다. 여기."

그러면서 받아온 식량도 다 주방에 꺼내놨다.

정 부장이 센스가 좋아. 알아서 채소도 잔뜩 챙겨줬으니까.

이러니 잘해줄 수밖에 없어. 사람이 그런 거거든. 이렇게 신경 써주면 당연히 고맙지.

그럼 나도 빨리 마트 털고 와야지. 이럴 때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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