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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426화 (426/813)

〈 426화 〉 420 린덴 폐촌

* * *

“유르파,돌려드리겠습니다.”

하늘 기사단이 마도 병기를 써준 덕분에 아낀 공간 진동 폭탄 주머니를 돌려주자 유르파가 적잖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응…….조금 아쉽네.타락한 바르둘의 시체가 재로 변해 사라지다니,그만한 강함에 융합 특징이면 시체만으로도 상당한 가치였을 텐데 말이야.=

「진짜로.우리 마차를 부순 보상금을 몸으로 갚게 해야 했는데 아까워.」

기운을 차렸는지 유르파의 어깨에 앉아있던 환연이 그 이야기에 공감하며 입술을 삐죽 내민다.

=마차의 복수를 갚은 걸로 만족해야지 뭐.죽어버린 놈을 되살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이제 어쩔 거야?마차 새로 구할 거야?」

=도령이 마차를 새로 구한다고 하면 구하겠지만……보통 마차는 마음에 안 들걸?그 마차는 진짜 세상에 하나뿐인 주문 제작 마차였잖아.=

=그래도 설계도도 있고 예비용 부품도 많으니까 도시의 대형 공방이라면 다시 만들 수 있지 않겠니?=

=대형 공방이라면 알소프나 프라버 정도에만 있잖아요.알소프는 잠재적인 적대 도시고 그렇다고 일정을 되돌려서 프라버로 돌아가는 것도 어떨지…….=

=흐음.=

「우응….」

「현재 목적지는 영도라고 했고 다음 목적지는 플라비우스들의 국가인 히스론드죠?히스론드는 다들 날아다니기 때문에 마차 관련 제작 기술이 낮은 편이에요.히스론드에서 그만한 마법 마차를 만들기는 어려울 거예요.」

「뭐야.그럼 최소 몇 달은 그냥 비상이랑 다른 애들 타고 다녀야 하는 거야?」

여자친구들의 대화가 점점 마차에 집중되는 상황에 환인은 작게 손뼉을 쳐서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우선 막사로 돌아가지.”

그리고 미로=라드하의 막사로 자리를 옮긴 뒤 그녀들에게 변화한 핏빛 위상석을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해서 핏빛 위상석이 적청색 위상석으로 변화한 거다.백려강의 말에 따르면 이런 위상석은 한 번도 발현되지 않았다는 걸로 판단되는데,다들 어떻게 생각하지.”

적청색 위상석을 받아든 안느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나도 그동안 여행으로 이런 게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어.율이 언니는?본 적 있어?=

=나,나도 이런 건 처음 보는데?세상에,타락한 바르둘의 위상석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재생이랑 맑은 정신 두 가지 효과라니……이게 학계에 알려지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거야.=

=효과가 중요한 것만 들어갔네요.위상석 등급만 높았다면 정말 하나로 성 한 채는 살 수 있었겠어요.=

=그래도 유례가 없는 혼합 위상석이니까 대도시의 비술사 조합에 가져가면 금화 몇백 닢에 매입해줄 거야.=

적청색 위상석의 크기는 여자 엄지손가락 정도. 2급에서3급 사이밖에 안 된다.귀중한 회복 계통의 위상석이라지만 크기가 작아 원래는 금화 몇 닢 정도였던 것.

그랬던 것이 몇백 닢이라니.안느는 부담감에 적청색 위상석을 돌려주며 말했다.

=이건 역시 도령이라서 그런 거지?=

=응.성자라는 신분이랑 명성이 제값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거야.우리가 따로 가져갔다간 위조품이라거나 사기라고 의심당할걸?=

성자라는 건 정말로 어디에서나 통하는 프리패스 우대권이군.

그것도 이런 세계니까 통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환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합색 위상석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하고,마차에 관한 것은…….”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결정을 내렸다.

“당분간은 마차 없이 다니도록 하지.설계도가 있다 해도 같은 마차를 제작하려면 몇 주는 걸릴 테니까.”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영도를 향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니오네브레스 시간 기준으로 영도의 초대를 받고 벌써 반년이 넘었다.이 세계의 이동이 어렵다는걸 고려해도 이 이상 지체되면 안 될듯하니 이제부터 서둘러야겠지.

그렇게 대화를 일단락지은 환인은 여자친구들에게 쉬고 있으라고 한 뒤 전술용 아공간 주머니를 반납하기 위해 막사를 나섰다.

이실리테와 안느가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붙었지만,쉬라고 해도 듣지 않을 게 분명했기에 환인은 그녀들과 함께 미로=라드하가 있다는 지휘 막사로 향했다.

=아,성자님.혹시 어디 가시는 길이십니까?=

그리고 중간에 미로=라드하와 마주쳤다.

“아닙니다.빌린 물품과 물자를 반납하기 위해 라드하 부대장님을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다행이군요.마침 저도 성자님께 용무가 있던 참이었습니다.괜찮으시다면 제 막사로 가실까요?=

“그러지요.”

나가자마자 다시 천막으로 돌아온 환인은 천막에 들어서자마자 미로=라드하가 허리를 꾸벅 숙이는 걸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성자님께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만 받게 되어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하늘 기사단을 대표해 성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리저리 미룰 처지가 아니었으니까요.라드하 부대장의 처지는 이해합니다.”

=후우,면목이 없습니다…….=

결전 병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게 어지간히 충격이었나.

그렇게 한차례 감사와 사과를 올린 미로=라드하는 좀 전에 본시?市와 통신 연결을 했다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백중강 영주 대리님께 보고를 올렸습니다만,가능하다면 성자님과 통신하시길 바라셨습니다.수락해주신다면 곧바로 통신 환경을 마련해드릴 텐데……어,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쩐지 조금 전부터 자신의 눈치를 심하게 살피더라니.

환인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미로=라드하는 살았다는 얼굴로 재빨리 자신의 집무용 책상에 통신 감도 조정용 깔개와 통신 보조용 수정구 받침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군용 통신 수정구를 올린다.

=이쪽에 앉으시지요.=

그녀가 가리키는 의자에 앉으니 미로=라드하는 빠르게 통신 수정 연결을 시도한 뒤 옆으로 세 발자국 정도 떨어져 각이 살아있는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사령부 직통 회선인가.’

빛이 들어온 수정구를 잠시 응시하고 있으니 몇 초 후 수정구 상단에 환영 판이 생성되며 백중강의 귀여운 아기 펭귄 머리가 떠올랐다.

저 머리는 언제 성인 펭귄이 되는 걸까.

[성자님.제 말이 들리십니까?]

“예.잘 들립니다.”

환인의 화답에 백중강은 눈에 보일 정도로 미소를 지으며 꾸벅,머리를 숙였다.

[먼저 타락한 바르둘을 일찍이 발견하신 데 더해 퇴치까지 해주신 것에 감사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설마 권역 외곽에 그러한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었을 줄은 정말이지…….]

“운명이 이끌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흐름이었습니다.”

[예?운명 말씀입니까?]

자신이 알류겔 호숫가를 따라 알소프로 향하는 중에 마주쳤던 괴물 고릴라,그 고릴라의 둥지에서 발견한 린덴 촌락 사람들의 시체와 상소문을 발견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알려주자 백중강이 면목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프라버가 몇 달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여파 거기까지 미쳤을 줄이야…….]

“이외에도 여러 촌락과 마을이 희생당한 것 같으니 조사 후에 생존자를 찾아 적절히 조처해주시면 기쁠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영주 대리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생존자를 찾아 도시 차원에서 구제 정책을 펼치겠습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적어 옆으로 내미는 백중강.하얀 여자 손이 다가와 그것을 받아 가고 백중강이 조금 아쉽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른 사심 없이 혹시 하는 마음에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다시 프라버로 돌아오실 계획은……없으시겠지요.]

“예.영도의 초대장을 받고 시간이 너무 흘렀습니다.지금도 늦은 것 같아 영도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할 생각입니다.”

그러시군요,작게 중얼거린 백중강은 만면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이야기한다.

[제 본심을 말씀드리자면 타락한 바르둘의 껍질과 함께 프라버로 돌아오셔서 위협을 해결해주신 데 대한 보상과 부산물의 처분 비용도 받아 가시고 마차도 새로이 구해드리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약간의 움직임도 없는 환인의 표정에 쓰게 웃은 백중강은 대신이라며 말을 이었다.

[바쁘신 분께 감히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라드하 부대장에게 들었습니다.전술용 물자 수송 가방을 빌리셨다고요.사용 소감이 어떠셨는지 물어보아도 괜찮을까요?]

“얼마 써보지 못했지만 보관량만큼이나 무게 감소와 보존 효과도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다행이군요.비록 사용감은 있으나 보존과 관리에 공을 들이기도 했고,성자님만 괜찮으시다면 그것을 보상으로 드릴까 합니다.]

백중강의 이야기에 유르파의 얼굴이 가장 먼저 놀람에 물들었고 미로=라드하의 얼굴도 비슷해졌다.

환인도 전략 물자로 분류되는 대규모 수송 가방은 재료 문제로 이제 만들기도 어렵다고 유르파에게 들은 것이 생각났다.

대용량의 물자 수송용 아공간 가방 제작에는8급 위상석이 사용된다.

그런데8급 미궁도 거의 없다시피 한데다 거기까지 내려가는 것 자체도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그러한 이유로 근 십여 년간 새로 제작된 물자 수송용 아공간 가방은0에 가깝다.

그런데도 환인이 거의 강탈하다시피 빌렸던 물자 수송 가방은 새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마수의 진화체인 진수의 뱀가죽으로 만들어 외관도 고급스러운데다 다중 주인 각인 기능에 손상 수복 기능도 있으며 약간이지만 보존 기능도 들어있고10m*10m*6m사이즈의 용량에70%무게 감소 효과까지.

금화로는 거래가 안 되는 물건이다.

“이런 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주는 거라면 거절했을 환인이었지만 이번에 해낸 일은 그의 객관적인 판단 기준에도 큰일이었다.

직업자 정도의 강함을 가진 키메라를 대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타락한 바르둘.악명높은 로아팅스 정글을 빠져나와 멸망시킨 촌락만(알려지기로)네 곳에 마을이 하나다.

만약 지금 해치우지 않았다면 스노우볼이 굴러가 프라버가 몰락했을지도 모르는 일.

백중강은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부디 사양하지 말고 받아달라 재차 이야기했고,환인은 두 번 거절하지 않고 보상을 받아 챙겼다.

예의상 거절은 한 번이면 충분하니까.

부산물을 처분하는 대로 대금을 행정관 계좌에 입금해주겠다고도 들었지만 환인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키메라화하며 오염되고 더러워진 몸뚱이였는데 타락한 바르둘에 의해 재차 촉수화해버렸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거대화한 괴물의 퇴치 증거 역할 그 이상은 하지 않겠지.

그날,새 막사를 제공받은 환인 일행은 다다음날까지 이틀을 푹 쉬었다.

여자친구들은 전부 쌩쌩했지만 환인은 개미굴 공략에 여자친구 공략에 타락한 바르둘 공략까지 진행하느라 쌓인 피로가 보통 이상이었기 때문.

특히 마지막 보스전에서 중급 정령 강령의 신체 강화를 한도까지 끌어낸 여파가 컸다.

이대로 비상을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하면 몸이 골병 들 거라는 안느의 진단에 일행은 휴식을 결정했고,이틀을 푹 쉬며 컨디션을 원래대로 되돌린 뒤 알소프를 향해 출발하려 한 환인 일행은…….

「우와.마차가 되살아났어!」

=어,어떻게 된 거지?=

린덴 촌락에 도착하기 전과 다름없이 말끔해진 마차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알고 봤더니 유르파가 설계도와 예비 부품을 가지고 하늘 기사단과 함께 도착했던 인부 중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을 데리고 마차의 수리를 진행했던 것.

=그때 이야기하다 보니까 잘하면 수리할 수 있겠다 싶더라구.자기들이 개미굴에 들어가 있는 동안 인부 씨들의 솜씨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거든.그래서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시도해봤는데 수리가 잘 됐어.전부 여기 있는 작업반장씨 덕분이야.=

=아,아닙니다.설계도가 워낙 세밀하고 세심했던데다 부품이 거의 새 마차를 조립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했기 때문에…….=

“우리만이었다면 마차는 절대 되살릴 수 없었을 테니 여러분 덕분이 맞습니다.”

딱히 마차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환인이었지만 여자친구들,특히 안느와 환연이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티를 내지 않고5금화를 꺼내 작업반장에게 감사비와 수고비로 쥐여주었다.

=히익?!너,너무 많습니다!=

“이 마차를 수리하면서 보고 알게 된 것이 있을 겁니다.그것에 대한 비밀 유지 부탁을 겸해서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십시오.”

=아…….=

비자룩스에서 얻은 이 마차는 임세희가 지구의 지식을 첨가해가며 만든 것이다.

이 마차를 구성하고 있는 기술이 퍼져나간다면 자신은 몰라도 임세희에게는 좋지 못한 일일 터

작업반장은 환인의 서늘한 눈빛에 잘은 모르지만 마차를 수리하며 알게 된 몇 가지 기술은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어놓겠다고 다짐하면서 벌벌 떨리는 손으로 금화를 받았다.

“마차 수리에 참여한 다른 분들의 입단속도 확실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예.약속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혹시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까지 마무리 지은 환인은 기뻐하는 얼굴로 마차에 짐을 싣고 있는 안느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간절히 바라면 하늘이 도와준다던가.

마차가 부서진 게 슬퍼서 눈물을 글썽거렸을 정도였다.그 정도로 마음이 강했으니 유르파가 마차를 수리할 생각까지 한 것일 테지.

=도령~!=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안느에게 환인도 웃는 얼굴로 손을 작게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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