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002 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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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은 대기업의 말단에 속하는 직장에 취직했을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며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부모님의 유산을 노리고 친척과 사촌이라 주장하는 인간들이 나타났었지만, 법대로 진행한 결과 친인척이란 작자들은 욕설과 함께 나타났을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게 부모님의 유산을 온전히 지켜낸 환인에게 상처는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인간관계에 관심이 없는 환인에게 자신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인간은 길가의 개미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아무튼 삶의 목적성과 방향성을 알려주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환인의 삶은 더욱 무감각해졌다.
26년을 살아오며 딱히 하고 싶은 것이나 이루고 싶은 것을 찾지 못했던 환인이었다.
유일한 목표라고 할 수 있던 것은 자신을 그 어떤 대가나 보답 없이 키워준 부모님을 모시는 것.
그런데 그런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목적성, 방향성, 목표.
모든 것을 잃은 환인은 잠깐 방황했지만, 부모님이 생전에 남긴 뜻에 따라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자 했다.
어렵지는 않았다.
과묵한 척을 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가끔 웃어주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호의를 보여준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깨달은 환인이다.
여기에 생전 부모님의 행동을 따라 하고 부모님이 가르쳐준 대로 행동하면 문제는 없었다.
아주 가끔, 사람들이 기겁할 행동을 저질렀기에 친한 사람들은 `와, 이 자식 사이코패스 아냐?` 반우스갯소리를 하긴 했지만 평가는 나름 좋았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한 지 3년째 되던 날.
환인은 이런 자신을 두고 인간 껍데기라고 평가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흥미 있는 것도 없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인간 껍데기.
그랬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이 닥쳐온다면 그냥 ‘죽는구나.’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준.
죽음에 무덤덤하다고 해야 할 거다.
그랬는데 어쩌다 이상한 곳에 떨어졌고, 어쩌다 본 적도 없는 괴물의 생명을 빼앗았을 때 환인은 처음으로 감정의 고조를 느꼈다.
발바닥에서부터 전해져온 생명의 단절. 손바닥에서 흘러들어온 생명의 가벼움.
환인의 마음속에서 씨앗이 싹텄다.
“……음.”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 환인은 일단 지구로 돌아가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녹색 괴물 세 마리를 죽이고 약간의 감정 고조 상태를 이어가던 환인의 머릿속에 귀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연관 지어 목표라는 것을 생각해냈기 때문이었다.
가족도 없고 친구라 부를만한 사람도 없다. 딱히 지구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향수를 지금이라면 알 것 같았기 때문에 정한 목표였다.
척 봐도 실현 가능성이 한없이 바닥에 가까운 목표. 하지만 처음으로 목표를 세웠다는 것에 마음이 살짝 고무되는 것을 느낀 환인은 주머니 속의 금화를 만지작거렸다.
‘전이, 아니면 전송?’
환인은 지식을 위해 여러 장르의 소설을 읽었는데 그중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판타지 소설도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던가 오즈의 마법사라던가.
금화를 줍고 이상한 세계에 떨어졌다. 즉 금화는 차원 이동의 매개체이고, 자신은 그 매개체를 건드려서 차원 이동을 한 것이다.
또한 금화는 화폐로써 존재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화폐가 있다는 것은 문명도 있다는 것. 문명이 존재하고 차원 이동도 존재하니 이 세계 어딘가에 마법사도 있지 않을까.
마법사를 찾아서 금화에 대해 묻는다면 다음에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제로 지구 귀환.
소전제로 마법사의 수색.
당면한 목표는 이곳, 밀림에서 생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목표라고 생각한 환인은 일단 녹색 괴물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세우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현 상황은 최악이었다.
‘걱정이 태산이라는 것은 이런 상황에 어울리겠지.’
걸음을 옮기는데 불편할 정도로 쌓인 낙엽과 부엽토.
가슴 높이까지 자라 시야와 함께 체력을 빼앗는 수풀.
날씨는 조금 더울 정도이니 문제는 없다. 밤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겠지만 녹색 괴물을 죽이고 챙긴 넝마 가죽도 있고 작은 나무에서 이파리를 모아 잠자리를 만들어 추위를 피하면 된다.
불을 피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겠지. 불을 싫어하는 맹수라면 피하겠지만 호기심이 많은 쪽이라면 불을 보고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노숙이라면 살아생전 아버지를 따라 비박biwak을 여러 번 다녀봤기에 거부감은 없다.
이것들 외에 기타 자잘한 문제를 세자면 두 손으로 꼽아도 부족할 지경이지만, 현시점에 매우 중대한 문제는 역시나 식량과 물의 수급이었다.
그리고 밀림에 서식 중인 정체 모를 괴물과 틀림없이 존재할 맹수도.
꾸르륵
위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배에서 난다.
이 이상한 장소에 떨어진 것도 5시간 전이다.
그전에 먹은 거라곤 몇 잔의 술과 이온 음료, 자그마한 초콜릿이 전부였으니 사실상 점심을 먹고 10시간 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여기가 지구였다면 식량과 물의 확보는 적어도 당장 급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침 이슬로 입술을 축여도 되고 나무 열매 등을 찾아서 먹어도 될 테니까. 초근목피라는 말도 있고.
하지만…….
끼요르르르
“…….”
머리 위로 보라색의 뿔 달린 새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다.
여기는 지구가 아니다.
물론 뿔 달린 새는 지구에도 몇 마리 있긴 하다. 코뿔새라던가 호로새라던가. 하지만 저렇게 드릴처럼 나선형의 뿔을 가진 학 사이즈의 보라색 새는 없다.
적어도 환인의 기억 속에는 없었다.
즉 지구의 상식과 지식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란 전제를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환경이 전혀 다른 데서 오는 질병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넘어가고 노숙하다가 짐승이나 괴물의 습격을 받는 것은 대책 마련으로 대처한다고 해도.
뭘 먹으면 될지 알 수가 없다.
“불에 굽는다면…….”
고개를 돌려 무성한 덤불에 난 500원 크기의 주황색 열매, 환인은 동그란 구슬에 돌기가 무수하게 난 형태의 열매를 돌도끼로 툭툭 건드려보며 중얼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불에 굽는 것도 안전하다 할 수 없다. 미지의 화학 반응을 일으켜 치명적인 독이 생성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물도 그렇다.
식수원을 발견한다고 해서 안심할 게 아니다. 물에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고 그게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지 않나.
해외여행을 나갔다가 현지의 물 마시고 배앓이를 하는 일도 있는데 세계 자체가 다르다면?
물리법칙은 지구와 비슷한듯하니 간이 여과장치를 만들거나 불을 피워서 물을 끓이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생전 아버지와 함께 종종 부시 크래프트를 해본 환인이기에 흙탕물을 여과할 수 있는 간이 여과장치나 토기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괴물이 서식하는 숲에서 부시 크래프트라니.
그 정도면 자살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환인은 보이지 않는 칼날이 턱 아래까지 들어온 기분을 느꼈다.
26년을 살며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숲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많은 생각거리로 포화가 된 환인의 머릿속이었지만,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숲속에서 일단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할 생각으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현재 손목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간은 오전 1시 17분.
이곳에 처음 떨어졌을 때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봄에 해가 지는 시간은 대략 7시 전후이니 한국과 시차를 따졌을 때 대략 8시간 정도.
한국과 8시간 시차가 나는 위치라면 본초자오선이 되는 경도 0°다. 세로로 영국과 아프리카가 이어진다.
‘여기에 기온을 대입해본다면…….’
중부 아프리카의 밀림, 혹은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등의 원시림.
……일리가 없지.
만에 하나, 천만에 하나를 가정해 녹색 괴물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토착 원주민이라 치자.
수 시간 동안 환인이 이동한 거리는 짧게 잡아도 20km는 넘을 거다.
환인의 상식에 높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가 직경 20㎞를 뒤덮을 정도의 밀림은 적어도 유럽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리카는 가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으니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프리카 4~5월의 대낮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는다고 들었다. 위치에 따라 40도에도 이른다.
여긴 그 정도로 덥지는 않다. 습도도 높은 편인 듯 하고.
‘결국 이곳은 지구가 아니라는 가설에 힘을 실어줄 뿐이군.’
잠시 딴생각을 하며 밤을 보내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던 환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위치에서 야영하기에 괜찮은 장소는 없었다.
앞으로 1시간 정도면 숲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일 것이다. 야행성 짐승이 출몰할 가능성도 있으니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이 최우선 사항.
불확실성에 기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숲을 얕보는 미련한 짓이다.
‘돌아가야겠어.’
환인은 오면서 보아둔 장소, 20분 전의 장소로 되돌아가며 생명이 넘쳐흐르는 듯한 밀림을 살폈다.
숲에 생명은 많았다.
식물이나 소동물, 곤충 등 숲을 구성하는 요소는 지구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바닥을 조금만 파보면 (금색 비늘달린)지렁이를 비롯해 두더지를 닮은 동물이나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애벌레가 튀어나왔고, 덤불을 돌도끼로 툭툭 건드리면 이상한 빛을 뿌리는 파리떼와 확실하지 않지만 순간이동 하듯 사방팔방에서 반짝이는 하루살이들이 날아올랐다.
불행 중 다행이랄지 녹색 괴물과 조우한 뒤 다른 괴물이나 맹수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맹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환인은 좋지 않은 징조로 여겼다.
이족보행에 도구를 다룰 줄 아는 그 녹색 괴물들이 짐승을 쫓아내거나 사냥해서 구역을 장악했다는 것으로도 해석되니까.
‘그 괴물 세 마리는 전부 수컷이었지.’
볼품없지만 수컷의 생식기가 사타구니에 달려있었다. 행동거지와 도구 등을 생각해봤을 때 암컷은 안전한 모처에서 번식에 힘을 쓰고 있을 터.
상황을 유추해볼수록 이래저래 좋지 않은 생각만 머릿속을 차지한다.
위안으로 삼을 것은 도시인 특유의 체취를 지우기 위해 부엽토 위를 한동안 구르고 옷에 흙과 나뭇잎을 치덕치덕 바른 것일까.
“후우.”
목표한 장소에 도착한 환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기 몸통보다 더 굵은 나무뿌리를 짚었다.
9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움직였더니 은근히 피로가 올라온다.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였다면. 정장이 아니라 운동복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자신만 인식 가능한 작은 표식을 주기적으로 남긴 환인은 그 표식을 더듬은 덕분에 미리 점 찍어둔 거목을 수월히 찾았고 즉시 잠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어른이 20명은 있어야 감쌀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나무다.
지상에 드러난 뿌리도 사람만큼 굵었고 무성했기에 그사이에는 성인 남자가 몸을 구겨 넣을만한 장소도 있었다.
환인은 그런 나무 틈 중 한 곳에 나뭇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수북이 깔고 그 위에 녹색 괴물을 죽이고 노획한 가죽을 깔았다.
가죽에도 흙과 풀을 문질렀지만, 냄새를 다 지우기는 무리였는지 바닥에 깔아둔 넝마 가죽에서 누린내와 불쾌한 지린내가 물씬 풍겨 목과 코를 자극한다.
여기에 풀과 나무의 풋내까지.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은 천국이었군.”
코와 목을 자극하는 냄새에 기침이 나올 것 같았지만, 환인은 억지로 참으며 정장 코트를 벗고 몸을 틈새에 집어넣었다.
자연히 쪼그려 앉은 자세가 되었지만, 생존 앞에서 편안함은 사치일 뿐.
품에 돌도끼를 끌어안고 진회색 코트로 몸 앞을 덮으니 그럭저럭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
여태껏 긴장하고 있었던 걸까. 이렇게 있으니 오늘 하루 겪었던 일이 떠오르며 모두 피로가 되어 몰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허기와 갈증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소매의 커프스를 뜯어 셔츠 안감에 깨끗이 닦은 후 입에 머금고 혀로 굴리니 침이 조금씩 생겨난다.
‘이것도 응급처치일 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으니 최대한 버틴다고 해도 이틀이 한계겠지. 움직일 힘이 그나마 있을 때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나을까.’
숲에 꽤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500원 동전 크기의 열매가 생각난다.
과즙이 많아 보였으니 먹는다면 허기와 갈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
이대로 허기와 갈증에 시달리다 굶어 죽느냐, 아니면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정체 모를 열매를 먹느냐.
양자택일하라면 후자를 고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죽음뿐이지만 후자는 그래도 살아남을 확률이 있으니까.
그나마 먹는 문제는 자신이 고를 수나 있지, 대기에 해로운 성분이 존재한다면 속수무책이다.
중세와 근현대, 신대륙의 원주민을 가장 많이 죽인 것은 침략자가 아니라 침략자의 몸에 묻어있던 병균이라고 하지 않던가.
괴물…… 몬스터도 살고 있으니 몬스터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고.
“큭큭.”
환인은 실소를 흘렸다.
마지막으로 웃었던 게 언제였지?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꼬옥 안아주셨을 때였나.
마치 폭탄 밭에 맨몸으로 서있는 기분이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생존에 문제가 많은 환경이지만 죽기 전까지는 발악해봐야지.
환인은 계속 흘러나오려는 실소를 코트 자락에 얼굴을 묻어 막고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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