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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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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 우어어엉─
짐승인지 새인지 모를 울음소리가 어두침침한 숲을 꿰뚫는다.
아파트만큼 높이, 그리고 빼곡하게 자란 나무. 눅눅하고 축축한 낙엽 더미의 느낌과 도시에서는 좀처럼 맡기 힘든 비린 흙냄새.
인적이라고는 전무한 천연 원시림 그 한복판에 양복 차림으로 서 있던 환인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우산처럼 펼쳐진 잎과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자그맣게 보인다.
“…….”
환인은 손에 쥔 것으로 시선을 주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화 한 장.
땅에서 기묘한 빛을 내던 금화를 줍고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 콘크리트 숲의 뒷골목이 울창한 숲속으로 변해버렸다.
주변 환경이 180도 변해버린 불가사의한 상황은 평범하거나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면 패닉에 빠졌을 테지만…….
주위를 둘러보던 환인은 거무죽죽한 땅에 찍힌 정체불명의 발자국을 발견하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발자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짐승의 발자국도 아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정체불명의 짐승이 호전적이라면…….
주머니에 금화를 집어넣은 환인은 묵묵히 호신용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았다.
콰직!
그리고 단단하기가 참나무에 버금가는 2m 길이의 나뭇가지를 발견, 얇고 가느다란 끄트머리는 밟아서 부수고 특수합금 멀티툴로 잔가지를 적당히 쳐낸 뒤 몽둥이로 다듬기 시작했다.
삭, 서걱, 드득, 드득.
멀티툴의 나이프를 무기로 사용한다는 선택지도 있다. 백금금 합금으로 내마모성이 강철의 100배나 되니 무기의 역할도 충분히 수행해낼 수 있겠지.
그러나 멀티툴의 디자인 특성상 결합부가 쉽게 부서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무기로 쓰는 것은 자제할 생각인 환인이었다.
찰칵.
멀티툴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적당히 완성된 몽둥이를 휘둘러본다.
부웅─ 우우웅─
급조한 것 치고는 묵직한 파공성이 울려 퍼진다.
무게중심이 끝에 몰려있는지 손아귀에 부하가 많이 가해지지만,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흉기라고 부르기에는 조잡한 몽둥이를 두어 차례 휘둘러본 환인은 몇 년간 다녔던 검도장의 기억을 떠올리며 재차 자세를 잡고 제대로 몽둥이를 휘둘러보았다.
웅─ 우웅─ 후웅─
정면 후리기. 좌우면 후리기. 빠른 동작 치기.
“…….”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없다면 고통이라는 객관적인 정보라도 알아야 자신을 대입해 생각할 수 있다며 부모님이 끊어준 검도장의 기억.
기술점을 얻기 위함이 아닌 상대를 때려눕히기 위한 기술만을 익히려 해서 결국 검도장 사범에게 쫓겨났지만, 몇 년간 익혔던 기술은 아직 몸에 배어있었다.
잠시 몸을 움직이며 잠들어있던 기억을 깨운 환인은 나무 몽둥이를 강하게 움켜쥐고 말없이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낙엽 더미를 밟으며 간간이 땅 위로 돌출된 굵은 나무뿌리를 피해 걸음을 옮기던 환인은 이 상황을 설명할만한 그 무엇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자각몽은 몇 번 꾼 적이 있다. 그렇기에 이게 자각몽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하고 있는 환인이다.
오감을 이토록 선명하게 자극하는 숲의 존재가 자각몽일 리가 없으니까.
술에 취해서 헛것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뉴스를 탈 정도로 망해가는 전? 직장을 보며 몇 잔 마셨지만 애초에 도수 낮은 칵테일이었으니까.
이곳에 오기 직전의 기억도 뚜렷하다.
어째서,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런 밀림에 떨어지게 된 걸까.
짙고 날카로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가슴께 높이까지 자란 수풀을 젖히자 길의 흔적이 나타났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사람이 다니며 생긴 길 같지 않다.
사람은 길이 없는 숲을 걸으면서 앞을 가리는 가지와 수풀을 자연스럽게 쳐내고 치운다. 그렇게 수십 명, 수백 명이 오가면서 땅을 밟고 나뭇가지를 치우다 보면 오솔길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짐승 길인가?
‘짐승 길도 아니다.’
짐승의 길은 이보다 더 낮고, 더 좁고, 얼핏 봐서는 길로 보이지 않는다.
환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보았던 정체불명의 발자국.
몽둥이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천천히 길에서 멀어진다.
그 족적足?은 유인원과 비슷했지만, 발가락은 더욱 길었다. 무엇보다 유인원의 발가락은 인간처럼 다섯 개가 보통인데 그것은 네 개뿐.
‘발가락 네 개인 유인원이 있던가.’
발자국의 주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런 숲속을 맨발로 돌아다닐 문명이라면 마주쳤을 때 폭력이 오갈 가능성이 크다.
그것을 직감한 환인은 가급적 그 발자국의 주인을, 생겨난 오솔길을 보면 한둘이 아닐 것이 분명한 그것들을 피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푸스스스─
수풀이 작게 흔들리는 소리와 찌륵거리는 풀벌레 소리가 사라진 것. 그리고 미묘하지만 불쾌한 냄새가 주변을 떠돌기 시작한 것을 눈치챈 것은 그 순간이었다.
“…….”
푸스스. 푸스스슷.
짧게 여러 번 흔들리는 수풀. 환인은 천천히 멀어지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언가가 수풀을 건드리고 있는 거겠지.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정체불명과 조우를 앞둔 상황은 사이코패스 아니냐는 소리를 가끔 듣던 환인이라 해도 긴장되었다.
천천히 가까운 나무를 등지고 선다. 성인 남성 세 명이 팔을 벌려야 겨우 껴안을 수 있을 만큼 두꺼운 나무다. 뒤에서 공격받는 것은 충분히 막아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환인은 풀숲을 젖히며 나타난 세 명, 아니 세 마리의 괴물을 목격한 순간 그 즉시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질주했다.
키익?
캬악! 캬오옥!
케에엑! 케에엑!!
뜻밖의 생물과 마주쳐서 잠시 굳어있던 녹색 피부 괴물들도 괴성을 지르며 환인을 뒤쫓기 시작했다.
환인은 도주하기 직전 짧은 시간 동안 이족 보행 괴물의 특징을 확인했다.
꼬챙이가 아닐까 싶을 만큼 빼빼 마른 팔다리. 그에 비해 과할 정도로 나온 아랫배. 10살 남짓한 키.
지옥도의 아귀를 현실로 꺼낸다면 저 녹색 괴물을 빼닮았으리라.
그리고 나무로 만든 조악한 창과 돌을 쪼개서 만든 구석기 시대의 돌도끼.
환인은 그걸 본 순간 정면에서 붙는다는 선택지는 제외했다.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 상황이다. 확실한 것은 문명과 멀리 떨어진 숲속 오지라는 것. 싸우다 상처를 입기라도 하면 생존 가능성이 불투명해진다.
‘달리기는 빠르지 않을 거다.’
끼야아악!
키요오오옷!!
환인의 예상대로 녹색 괴물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부실해 보이는 두 다리로 용케 쫓고 있지만, 보폭을 비롯해 신체적인 능력의 차이 덕분에 달리기 속도는 비교할 수 없었던 거다.
환인은 질주하면서 한 번씩 뒤를 힐끔거려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괴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저건 뭐지? 동물인가? 아니면 밀림 오지의 원주민?’
무두질조차 모르는 듯 거칠고 뻣뻣한 가죽으로 아랫도리만 가린 괴물들의 우둘투둘한 녹색 피부, 거기에 상어처럼 날카로운 치열과 피처럼 붉은 눈의 면상은 아무리 보아도 인간이 아니었다.
성인이라 해도 겁먹기 충분할 만큼 끔찍한 외모였지만, 환인은 겁을 먹는 게 아니라 어떻게 죽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죽여도 법에 저촉될 일은 없겠지.’
처벌받는다 하면 재물손괴죄, 혹은 희귀동물보호법 위반 같은 걸로 벌금을 내는 정도일까.
키갸갹! 키헤엑!
크헥! 크갸!
“후우, 후우. 후우욱.”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시끄러운 가운데 자신보다 더 헐떡거리는괴물들의 숨소리가 선명하다.
구두가 전력 질주에 약간의 지장을 주고 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평소 기초 체력 단련은 꾸준히 해왔기에 이 정도 달리기라면 20분은 지속할 자신 또한 있다.
그러나 저 괴물들은 20분까지 가지 않아도 체력이 다 떨어질 것이다. 그전에 추격을 포기할 수도 있겠지.
‘…….’
발밑을 주의해서 달리며 손에 쥔 몽둥이의 감촉을 되새겼다.
빈손도 아니다. 체급의 차이는 물론 체력의 차이도 확연히 드러난다.
환인은 자신을 죽이려는 듯이 살기를 뿌리며 쫓는 괴물을 살려서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때리려는 놈은 자기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좌우명이니까.
환인은 발밑을 주의하며 뒤쫓아오는 괴물과 거리를 확인했다.
체격이 (비교적) 좋은 한 마리가 가장 앞서 쫓고 있고 두 마리는 조금 뒤처져 줄지어 쫓는 중이다.
판단을 내렸다.
저 앞에 유달리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 환인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나무를 피하는 척 잽싸게 나무 뒤에 숨은 뒤 나무 몽둥이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숨을 고르며 대기한다.
……탁탁탁탁탁…!
키야아아……!
괴물의 뜀박질 소리와 괴성이 점차 가까워진다. 그 소리를 들으며 팔에 적당히 힘을 준다. 그리고 잠시 후.
키에엑!
“흡!”
더러운 침을 뚝뚝 흘리며 나무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녹색 괴물을 향해 뛰어들어 머리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부우웅 터엉!!
양손으로 잡은 몽둥이에 안면을 가격당한 녹색 괴물은 머리가 직각으로 꺾인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충격에 눈알이 빠지고 가격당한 이마가 몽둥이 모양으로 움푹 팬 괴물은 침을 질질 흘리며 사지 경련을 일으킨다.
으직.
무표정으로 괴물의 목을 짓밟아 부러트린 환인의 심장이 울렁이듯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생명을 뺏는 감각에 오한이 피부를 달리지만, 환인은 곧바로 죽은 녹색 괴물이 쥐고 있던 거무죽죽한 돌도끼를 집어든 뒤 재차 나타난 두 번째 괴물을 향해 투척했다.
훙훙훙!
균형이 나쁜 돌도끼는 나무창을 쥔 녹색 괴물의 머리 위를 지나 숲속으로 사라졌다.
키히?
하지만 환인은 아쉬워하지 않고 갑자기 날아온 도끼에 놀라 굳은 녹색 괴물에게 달려가 엉거주춤 내민 나무창을 한 손으로 잡아당겼다.
키갹?!
반사적으로 나무창을 움켜쥐고 힘을 준 녹색 괴물이었지만, 힘과 체중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나무창째로 딸려온 녹색 괴물은 환인이 의도한 대로 땅에 엎어졌고, 환인은 훤히 드러난 녹색 괴물의 뒤통수에 몽둥이를 내려쳤다.
뻐걱!
자비 없는 공격에 녹색 괴물의 후두부가 눈에 보일 정도로 함몰되었다.
두 번의 타격에 몽둥이도 빠직 소리를 내며 반쯤 부러졌지만, 환인은 1초의 머뭇거림 없이 몽둥이를 버리고 1m가량 되는 나무창을 꼬나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마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키, 키엑?!
비교적 체력이 약해 달리기가 느렸던 마지막 녹색 괴물은 덕분에 동족이 환인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전부 보고 말았다.
그런 녹색 괴물의 눈에 환인이 사신처럼 보인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키헤에엑!
들고 있던 나무 꼬챙이를 내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한 녹색 괴물을 보며 환인은 눈을 빛냈다.
처음 보는 생물이었기에 사고방식이 괴물 같지 않을까 했지만, 죽음 앞에서는 평범한 동물과 다를 게 없었던 것이었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녹색 괴물의 뒤를 삽시간에 따라붙은 환인은 괴물의 등을 목표로 손목 스냅을 이용해 회전을 먹여 찔렀고.
푸욱
나무창은 그대로 녹색 괴물의 명치를 관통했다.
끄……르르륵.
녹색 괴물은 피가 끓는 신음을 내면서 가슴에 삐죽 솟아난 나무창 끄트머리를 잡고 덜덜 떨었다.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돌려 사신을 보려 했지만…….
“…….”
환인은 자비 없이 녹색 괴물을 나무창째로 내동댕이쳤다.
생명을 빼앗았다는 흥분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잠시 숨을 고른 환인은 자신이 죽인 세 마리의 괴물을 무감정한 눈으로 살피며 중얼거렸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군.”
공감 능력이 아무리 일반인들과 이질적인 환인이라도 이쯤 되니 황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퀴퀴한 느낌이 드는 뒷골목에서 금화를 주웠다고 이러한 괴물이 있는 곳으로 전이되다니. 이게 말이 되나?
혹시 꿈인가 싶었지만 수 분에 걸친 달리기와 살인의 흥분으로 쿵덕거리는 심장은 모든 것이 현실이고 사실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
흥분을 빠르게 식히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한 환인은 죽은 세 마리의 괴물 시체에서 넝마 같은 가죽을 챙긴 뒤 근처 나무를 감고 있는 덩굴을 잘라 가죽을 적당히 묶었다.
그리고 괴물의 시체를 울창한 수풀 속에 숨기기 시작했다.
괴물에게서 나는 냄새는 끔찍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 만큼 후각이 좋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숨겨둔다면 괴물의 동족에게 발각되는 것은 상당히 늦춰질 터.
전투 흔적을 대충 지운 환인은 괴물을 찔러 죽인 나무창을 살펴보았다.
“……피 냄새는 곤란하지.”
나무창은 촉 부분이 좀 뭉개졌을 뿐이었다. 칼로 다듬으면 다시 쓸 수 있겠지만, 녹색 괴물의 붉은 피가 너무 많이 묻었다.
가죽으로 닦아낸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악취를 풍길 것이다.
나무창을 집어던진 환인은 처음 투척했던 돌도끼를 떠올리고는 던진 방향을 뒤졌다. 그리고 커다란 나무에 멀쩡히 박혀있는 돌도끼를 발견하곤 의아함을 느끼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형태는 외날이었는데 자루가 되는 거무튀튀한 것은 물론이고 날을 담당하는 검회색의 돌 또한 환인의 기억 어디에도 없는 재질이었다.
팍!
시험 삼아 적당히 힘을 주고 나무를 찍어봤더니 생목이 세모꼴로 한 뼘이나 파여나갔다.
그럼에도 돌도끼에는 어떠한 손상도 없다.
“자루와 날을 묶고 있는 끈도 식물 재질이 아닌 것 같고…….”
어쨌든 무기로 유용할 것 같다. 리치가 짧은 것이 마음에 걸리니 나무창이나 몽둥이를 하나 더 만드는 것도 좋겠지.
돌도끼를 챙긴 환인은 퀴퀴한 냄새와 더불어 누린내가 나는 가죽 넝마를 짊어지고 잰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괴물과 조우한 곳에서 머물 수도 없는 노릇.
‘낮에 활동하고 있던 것을 보면 야행성은 아닐 테고, 손에 사냥감을 쥐고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사냥이나 정찰을 나온 거라고 봐야겠지.’
그럼 우선은…….
짧게 판단을 내린 환인은 괴물이 왔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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