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120)

그리고 한 줄 덧붙였다.

[거기서 자면 허리 안 좋아져.]

다른 의미는 없다.

“남자한테 허리만큼 소중한 게 없으니까….”

젊은 사내에게는 더더욱.

그저 그뿐이었다.

다음화 보기

무더운 여름이 이어지고 있다.

“시바, 존나 더워….”

옥탑방에서 맞이한 8월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는 뜨거운 나날이었다.

이 뜨거운 방에서 덜덜거리는 선풍기 한 대로 버티는 건 무리겠다 싶어서 에어컨을 샀다.

한여름에 주문하니까 설치까지 보름 걸리더라.

설치 기사 말로는 그것도 굉장히 운이 좋아서 빨리 된 거라고.

아, 매트리스도 바꿨다.

아무거나 대충 사려고 했다가 진짜 큰맘 먹고 침대는 과학이라 외치는 브랜드에서 주문했다.

내 허리를 위해서? 그것도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줌마를 위해서다.

이제부터 여기서 아줌마랑 열심히 섹스할 텐데 등이 딱딱해서 배기면 곤란하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샀는데.

“벌써 8월도 반이나 갔네.”

어느덧 8월 중순.

한국 대학교 특례 입학까지 고작 3주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지난 한 달 동안 진짜 열심히 살았다.

일주일에 세 번씩 박철수 원장에게서 마법을 배우고,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오후에는 눈을 부라리고 있는 신유정 앞에서 근육을 쥐어 짜냈다.

그러한 노력은 내 상태창에 고스란히 녹아내렸다.

[상태창]

이름: 김도진

성별: 남

나이: 20세

키/몸무게: 167CM / 83.7KG

[근력: 13] [체력: 14] [민첩: 9] [마력: 20]

특성:

상호불가침[2022.06.09]~[2025.12.31]

발설 금지[2022.06.09]~[2025.12.31]

한 달에 키가 3cm씩 자라고 있다.

자지 크기와 더불어 키는 남자의 생명인 법.

성장판에 마력을 엮을 때 다른 어떤 곳보다 많은 양을 투자했다.

덕분에 위로는 자라고, 옆으로는 줄어들어서 점점 더 사람에 근접해가고 있다.

일정 수치에 다다르면 성장 속도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이대로만 가면 입학할 즈음이면 평범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능력치가 여전히 처참한 게 문제네.”

한국 대학교에 입학하는 헌터 지망생들의 스텟 평균은 대략 30 정도.

해마다 다르겠지만 턱걸이 수준으로 입학하는 학생 또한 대략 20에서 25 정도는 된다.

그에 비하면 내 능력치는 여전히 비루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긴 한데….”

지금 내가 보이는 성장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운동을 가르쳐주고 있는 신유정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내 모습에 놀랄 정도.

놀라긴 나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내 몸은 성장 한계치까지 전부 끌어 올린 상태였기에 내가 만든 비술의 힘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직접 체험해 보니 알겠다.

“내가 진짜 말도 안 되는 걸 만들었구나.”

성장 중인 각성자에게 이 비술이 얼마나 사기적인지.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한 달 만에 키가 3cm나 자라고, 고작 두 시간씩 헬스하는 것만으로 지금 같은 능력치 상승을 꾀할 수는 없다.

오직 비술을 건 이 몸뚱어리만이 가능한 기적이었던 셈.

“그래도 부족해.”

문제는 지금 같은 성장세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거다.

이래서야 언제 여자 꼬시고, 언제 떡을 치겠냐고.

적어도 한국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 평균 이상의 능력치까지 끌어 올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수련만으론 힘들겠지.

헌터 또는 헌터를 지망하는 각성자가 성장하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 번째는 수련.

지금처럼 열심히 몸 굴리면 느리지만 착실하게 성장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영약.

가끔 던전에 등장하는 특수한 몬스터는 내단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이걸 가공하여 만든 것이 영약이다.

영약이 품고 있는 기운에 따라 오르는 능력치가 저마다 다르긴 하지만, 약 하나 꿀꺽 하는 것만으로 능력치 상승을 꾀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놀랍도록 간편한 일이다.

그래서 굉장히 비싸고, 물량이 적다.

어지간한 부자가 아닌 이상 살 엄두도 못 내고,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건 절대 불가능하니 패스하고.”

돈, 명예, 명성.

모든 걸 가지고 있던 손시우의 몸으로도 내단이나 영약을 구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런 귀한 걸 이 몸뚱어리로 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마지막 세 번째.

바로 던전 공략 및 몬스터 토벌이다.

헌터는 던전을 공략하고 몬스터를 죽일 때마다 강해진다.

그로 인해서 던전이 생성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헌터는 먼 훗날 닥쳐올 환난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선택받은 이들이고, 던전은 그런 이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시련이 아니냐는 설도 있었지만, 글쎄.

그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놈들이 오히려 세상을 위협하는 빌런이 되는 걸로 봐선 딱히 신빙성이 없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쨌든.

지금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선 던전을 공략해야만 한다는 건데, 문제는 헌터 자격 시험을 통해 면허를 취득한 헌터만이 던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

아직 헌터가 아닌 상태로는 사용하지 못하는 방법 아니냐고 할 수 있겠으나, 다행히 헌터가 되지 않아도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임시 면허다.

헌터 협회에서는 일부 각성자들에게 헌터 자격증을 대신 할 수 있는 임시 면허를 발급한다.

그 일부에 포함되는 게 바로 헌터 전문 양성 기관인 한국대학교에 입학한 대학생들이다.

그들은 입학하는 즉시 임시 면허를 발급받는다.

그래서 유사시 주변이 던전이 발생하거나 몬스터가 출현한 경우, 헌터가 오기 전까지 현장의 지휘권을 취득할 수 있다.

나는 이 임시 면허를 이용해 한국 대학교 입학 전까지 던전을 공략할 생각이다.

입학 전이라 임시 면허가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그것 또한 방법이 있다.

이미 물밑 작업에 들어가기까지 했고, 슬슬 이야기를 꺼내 볼 때가 되기도 했지.

헌터 협회 감찰부 소속 윤지안, 바로 그녀에게 말이다.

* * *

박철수 마법 학원의 특강반.

이곳에 모인 네 사람은 헌터 협회가 엄선하여 뽑은 마법사 유망주 후보들이다.

비유하면 반만 긁었는데 이미 최소 3,4 등은 확정된, 최소 꽝이 아닌 건 확실한 이들.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박철수 원장을 흡족하게 만들 정도로 재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도진 군! 그 마법 시전 속도는 대체…!”

나는 그런 그들을 제치고 원장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왜 자신이 헌터 협회의 눈에 들게 되었는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면, 나는 협회가 나에게 잘 보여야만 하는 이유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바로 어마어마한 시전 속도로써 말이다.

초급 마법사들이 시전까지 10초 걸리는 마법은 내게 3초면 충분하다.

그마저도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 정도지, 마력 배열이 손에 익으면 소수점 단위까지 떨어뜨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전 속도.

그렇다고 무언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완성품 또한 그들보다 뛰어났다.

“쳇.”

빨간 뚝배기 윤민규는 물론이고, 나르시스트 성향이 있는 조동진도 이쪽을 강한 질투가 서린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애쉬 그레이인가 뭐시긴가, 회색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여자 정효린 또한 마찬가지.

근데 얘는 눈빛이 좀 이상하다.

눈에 질투가 서린 건 분명한데 또 다른 무언가가 같이 번뜩일 때가 있단 말이지.

“오늘도 다들 고생했네.”

수업이 끝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똑같은 패턴을 보인다.

조동진은 말없이 가방을 들고 나가고, 정효린은 스마트폰에 얼굴을 고정시킨 채 나간다.

빨간 뚝배기 녀석은 수업이 끝났다 하면 뒤에 서 있는 윤지안에게 다가가 추파를 던진다.

“지안 씨,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요?”

“오늘은 급하게 협회에 들어가 봐야 합니다.”

“아, 그럼 내일은….”

“내일은 간헐적 단식하는 날이라 안 먹을 예정이고요.”

칼과 방패의 치열한 싸움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어디에나 한 명씩 있다.

여자가 싫다는데도 자존심 다 버리고 어떻게든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한 번 따먹으려고 노력하는 놈들이.

평소 같으면 이를 지켜보다가 헬스장으로 갔을 테지만, 오늘은 다르다.

나도 오늘은 윤지안에게 볼 일이 있거든.

“지안 씨.”

“아, 예!”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윤지안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진다.

기분 좋은 미소라기보단, 손님을 상대하는 영업직 사원의 노련한 미소 같은 느낌.

“할 말이 좀 있어서 그런데, 괜찮으시면 커피나 저녁 같이 어떠세요?”

“아…, 하실 말씀이라면…?”

그녀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내가 윤민규처럼 들이대는 건 아닌가 우려하는 표정.

“협회에 부탁드릴 게 하나 있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단숨에 얼굴이 밝아진다.

이거 은근히 자존심 상하네.

“시간도 마침 저녁 시간이니 식사 같이 하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아, 정확히는 협회에서요.”

저거 봐라.

자기가 사겠다고 하면 내가 무슨 오해라도 할 거라 생각했는지 황급히 협회를 뒤에 붙인다.

“예, 그러죠.”

그렇게 짧게 이야기를 마치고 밖을 나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내 팔을 붙들었다.

빨간 뚝배기, 윤민규다.

“하하! 잘됐네요! 저도 마침 협회에 부탁할 게 있었는데 이렇게 된 거, 같이 식사하는 게 어때요, 도진 씨?”

사람 좋은 미소를 장착한 채로 내게 묻는 놈.

그러면서 내 팔을 붙들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꾹꾹 주고 있다.

힘으로 대답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양아치의 행동.

나는 가볍게 팔을 털어 녀석을 떼어놓으며 말했다.

윤민규가 아닌 윤지안에게.

“민규 씨도 할 말이 있으신가 보네요. 나중에 같이 식사라도 한 끼 하셔야겠네.”

그러자 윤지안은 굳은 얼굴로 윤민규에게 말을 전했다.

“협회에 부탁하실 게 있으시다면 연락주십시오. 다만, 오늘은 김도진 씨와 선약이 되었으니 내일 이후로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서는 윤지안.

“어, 저기…!”

윤민규가 다급하게 손을 뻗으며 불러보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아간다.

나는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지나쳤다.

“그럼 다음 강의 때 봐요, 민규 씨.”

이게 바로 재능의 차이란다, 요 녀석아.

패배감에 몸을 부르르 떠는 녀석을 내버려두고 윤지안과 함께 학원을 나섰다.

애초에 식사가 아니라 부탁이 목적이라 대충 근처에 있는 일식집으로 들어와 초밥 세트를 주문했다.

“협회에 부탁하실 게 있으시다고 하셨는데,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예, 하나 필요한 게 생겼네요.”

윤지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첫 수업 이후, 박철수 원장의 무한한 칭찬 폭격과 함께 윤지안의 공세 또한 이어졌다.

육탄공세면 참 좋았겠지만, 그런 건 아니고, 협회에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라, 원하는 게 있으면 가능한 뭐든 들어주겠다 같은 얘기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마법 지팡이 같은 것도 저희는 구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마법 지팡이.

말 그대로 마법사들이 마법을 시전할 때 도움을 주는 기능들이 내장되어 있는 장비다.

마법 시전에 필요한 소모량을 낮춰준다거나, 완성된 마법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시동어 만으로 사용하게 해주는 등 지팡이마다 기능이 제각각 다르다고 알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마법 지팡이도 천만 원은 훌쩍 넘는다고 하던데, 그것마저 구해줄 수 있다고 공언할 정도면 협회에서 나를 얼마나 좋게 보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것도 좋겠지만, 제가 원하는 거랑은 다르네요.”

물질적인 것도 좋지만,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건 나 자신의 성장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그럼 어떤 걸 원하시는지…?”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

“임시 면허가 필요합니다.”

그거면 충분했다.

예상치 못한 부탁에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피어 있던 미소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다음화 보기

“임시 면허라면, 조만간 취득하실 수 있으실 텐데요. 굳이 지금 발급을 원하신다는 건….”

“그 전에 던전에 좀 들어가 보고 싶어서요.”

열심히 살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이 몸뚱어리는 단순히 살을 뺀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될 몸은 아니라는 걸 말이다.

몸을 구성하는 뼈와 근육 자체가 상당히 좋지 않은 편이다.

균형 잡힌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비대칭이 심하고, 좋지 않은 습관들로 인해 골반은 물론이고 신체 전반의 균형이 깨진 상태.

신체의 불균형은 급성장의 비술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후천적인 불균형이야 생활 속의 노력으로 고치는 게 가능하다고 쳐도, 선천적인 불균형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걸 뜯어고쳐 볼 생각이다.

마력을 끌어모아 환골탈태의 비술을 사용해서 직접 조형해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신체를.

“특례입학인 저는 2학기 수업부터 듣게 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마법 학부의 수업은 학부 차원에서 배려해줄 수 있다고 들었지만, 다른 건 아니겠죠.”

이를 얻어내기 위해 준비한 변명 또한 최대한 타당성 있는 것으로 준비해두었다.

한국 대학교 헌터 캠퍼스는 실전 위주의 커리큘럼을 중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말인즉, 2학기부터 그들의 틈에 끼어들게 된 나는 응당 1학기에 거쳐야 할 실전을 한 번도 겪지 못한 상태라는 것.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