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살 끄니까-177화 (177/450)

EP.177

사양산업 종사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소.

끼익−!

서울에서 조금 많이 떨어져 있다.

경기도를 벗어나진 않는다.

"다 왔어요."

"……."

가평이다.

1시간 남짓이 걸렸다.

안 그래도 지루할 수밖에 없는 차 안에서의 시간을.

'아주 시위를 하는구만.'

불쾌한 아우라를 팍팍 내고 있다.

이 철없는 공주님은 조금 강압적으로 대해야 말을 잘 듣는다.

"이런 한적한 장소는 싫어요?"

"딱히 가리지 않습니다."

"혹시 야외에서 하는 플레이는 좋아하지 않는다던지?"

"!!"

두툼한 허벅지.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듯 탄탄하면서도 꽉 찬 속이 느껴진다.

쓰다듬자 소스라치게 놀란다.

또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양이다.

"운동 말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힘이 좀 들어가도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태연한 척 새침하게 대꾸한다.

보나 마나 심장이 쿵쾅쿵쾅하고 있을 주제에.

'놀리는 재미가 있구만.'

꽤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째서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으니까.

"2인으로 주세요."

"처음 방문하시는 고객분인가요?"

"네."

"그러면 2만 5천 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레일바이크.

글자 그대로 레일(철도)에서 타는 바이크(자전거)다.

진짜 자전거 모양은 아니고 작은 자동차의 형태다.

동력은 수동이지만.

"힘든 게 좋아요? 안 힘든 게 좋아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후회할 텐데."

"신경 쓰지 마시죠."

요즘은 전자동도 있다.

여자들을 데리고 오면 처음에는 재미있다 하면서도, 조금만 지나면 헥헥 대기 때문이다.

'자신이 있나 봐?'

그럴 만한 허벅지의 소유자이긴 하다.

지금은 스커트로 숨기고 있지만, 바지를 입을 때면 힙라인이 터지려 든다.

"출발합니다. 안전 벨트 꼭 착용하여 주시고 즐거운 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근육을 발휘할 시간이다.

철도 위의 바이크가 하나둘 출발한다.

나와 레이첼이 탄 바이크도 페달을 밟자.

'오~!'

수월하다.

이 정도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앞을 향해 나간다.

바이크 안에서도 무표정 컨셉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힘들죠?"

"아니요."

"물 가지고 왔는데 마실래요?"

"당신이 입 댄 게 아니라면!"

40분이 넘는 길이다.

햇볕도 쨍쨍하게 쏟아져서 헬스장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옷차림도 불편할 테고.'

한껏 차려 입었다.

평소에 입지 않는 화려한 옷은 끈덕지게 전신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꿀꺽! 꿀꺽!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목젖의 움직임이 관찰될 만큼 거칠게 페트병 물을 들이마신다.

그것만으로도 패션 잡지의 한 장면이 된다.

사기 같은 외모를 가진 까탈스러운 공주님이다.

"난 당신이 입 댄 것도 괜찮은데."

"그러던가요."

"여기 풍경 예쁘지 않아요?"

"뭐……, 나쁘진 않습니다."

주위의 풍경과 어우러지니 더욱 말이다.

철도가 놓여진 곳은 정말로 전차가 지나가던 길이다.

지금은 폐선이 되었다.

더 이상 안 쓰이게 되었다.

사람이 없으니 자연이 멋들어지게 자라난다.

"정정하겠습니다. 아름답네요."

"그렇죠?"

"저 Forsythia는 좋아하는 꽃인데. 한국어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한국어로는 개나리에요."

"개나리."

운동으로 짜증을 풀었다.

자연 환경도 너무나 예쁘다.

이런 장소에서 대화를 하면.

'데이트가 잘될 수밖에 없지.'

인간은 분위기를 타는 생물이다.

레이첼은 이미 내 덫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센트럴 파크를 둘러볼 때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어요."

"그것도 한국에서 가져다 심은 거에요."

"정말요?"

"의심해요?'

"당신 말은 믿을 수가 없어서……."

아직은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번 물꼬를 튼 이상 시간 문제다.

끼익−!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도착한다.

경각역.

1958년부터 2010년까지는 실제 역으로 쓰이던 장소다.

지금은 굴봉산역으로 이전했다.

철도도 쓰이지 않게 되어서 레일바이크로 활용하고 있다.

"저희는 과거를 달리고 있던 셈이죠."

"Oh……."

"꽤 낭만 있지 않아요?"

"같이 온 사람이 당신만 아니라면."

뒤늦게 부끄러워하지만 늦었다.

이제 와서 대화를 안 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

쪼오옥!

역에는 매표소 대신 카페가 존재한다.

카페 라떼를 한 잔씩 사서 목을 축인다.

그리고 다시 탄다.

레일바이크는 경강역을 찍고 본지점으로 되돌아가는 코스다.

"오는 길엔 몰랐는데."

"네."

"저쪽 강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하네요."

"워터파크가 있거든요."

"워터파크?"

말이 더 많아졌다.

호기심 많은 성격인 그녀는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걸 참 좋아했다.

'내가 니 취향을 꿰고 있거든.'

하루이틀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니 말이다.

투자자에게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휴우……, 이거 상당한 노동이네요."

"워터파크도 갈 거에요?"

"그전에 조금……."

"배 고프죠?"

"네."

여행만큼 그 나라에 대해 알기 좋은 방법은 없다.

직접적인 투자 정보도 전해 듣게 된다.

토독, 톡!

일반인들에게는 별 거 아닌 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돈을 벌거나 지킬 수도 있다.

"뭐해요?"

"배달."

"여기에요? 주소도 없는데?"

"한국에서는 안되는 게 없어요."

치킨을 한 마리 시킨다.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자 주인 아저씨가 알아서 해주신다.

'차후에는 앱으로도 되는데.'

지금은 한국인의 유도리로 가능하다.

조금 기다리자 BBC 치킨이 도착한다.

"배달비까지 붙으니까 가격이 조금 세긴 하네요."

"배달비가 한국에는 없어요?"

"작년까지는."

황금색 올리브로 튀긴 그것 말이다.

창렬이긴 해도 맛은 도저히 억까할 수 없다.

'원래부터 비싼 건 아니었지.'

어느 날을 기점으로 국민 비호감이 되었다.

그것은 바로 2018년 초의 일이었다.

한국신문− 「닭 원가 하락 불구, BBC 등 프랜차이즈 가격 인상」

팩트뉴스− 「“2,000원 더 내세요” 외식업계 배달료 유료화 확산」

'배달료'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사실상 물가가 10% 오른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러면 서민 경제에 타격이 클 텐데……, 국가에서는 어떤 대책을 준비했죠?"

"애초부터 그런 정책이니까."

"?"

소주성.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취지 자체는 정말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언제나 과정이 문제지.'

마음이 너무 급했다.

정책 입안자들이 성과에 급급했던 나머지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배달비.

물건 가격도 당연히 올랐다.

BBC 치킨은 둘 다 해버리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다른 부작용도 있지 않아요?"

"구체적으로는 인플레와 실업률 상승, 기업 이익 감소 등이 있겠죠."

"그래서 증시가 내렸던 거군요."

"맞아요."

실제로 기업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1년만에 최저임금이 16.4%나 올랐으니까.

'심지어 이게 주먹구구식이라.'

사실 그런다고 큰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정부도 아무런 근거 없이 밀어붙인 건 아니다.

문제는 세세한 기준.

지역과 직업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해야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저도 그 부분은 체크를 했는데……."

"경제 지표를 봤죠?"

"네."

"그러니까 속은 거죠."

"?!"

한국 경제는 보이는 것과 다르다.

* * *

충격적인 진실.

'CPI에 집값이 포함 안 된다고?'

한국 증시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말이 아무런 조사 없이 임했다는 것은 아니다.

경제 지표들을 전부 훑어봤다.

그 결과,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증시의 상방을 확신한 것이다.

"그래도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세계적으로 부동산은 하락 추세라서……."

"여긴 한국이니까."

"네?"

자신이 모르는 것들이 있었다.

찬욱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입이 쩌억 하고 벌어진다.

'왜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정책을?'

CPI.

소비자 물가지수를 의미한다.

해당 나라의 인플레이션을 알아보는 척도다.

그것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허점이 있었다.

한국의 인플레이션을 지표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실업률도 좋게 보였죠?"

"자연 실업률에 부합하는 수준이었습니다만……."

"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정규직은 크게 줄었어요. 그것을 공공 일자리와 노인 일자리로 땜빵한 실정이고."

"?!"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실업률은 해당 나라의 경제 상황을 다이렉트로 알 수 있는 중요한 데이터다.

'아니, 그럼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든 거나 다름없잖아.'

그조차 빛 좋은 개살구였다.

눈에 보이는 것과 현실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꿀꺽!

레이첼도 알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투자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하는 사항이다.

일부 정치인들의 장난질.

하지만 한국 정도 되는 나라가 지표를 속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외국인 대주주에게 이중 과세를 부과하려는 법률 추진도 있었어요."

"또 있다고요?"

"하루종일도 말할 수 있는데?"

제대로 당했다.

만약 정말 투자했다면 천문학적인 손실을 떠안았을 것이다.

분노.

황당함.

그보다 더 레이첼의 감정을 지배하는 건 강한 욕구였다.

"외국인 입장에서 어떨까요?'

"괘씸해서라도 돈을 빼겠죠."

"외국인이라서 잘 아네요. 그래서 이번 상승장을 역이용해서 팔아 치울 거라는 게 제 예측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현지의 정보는 현지인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이 이 먼 한국에까지 유학을 온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눈앞의 남자를 잡을 수만 있다면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그런 직감이 든다.

재능이 있는 인재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잡아야 한다.

《레이첼, 네가 결혼에 관심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말씀이기도 했다.

당시에도, 이후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어요.'

월가에서조차 그런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는 있을까?

눈앞의 남자일지도 모른다.

레이첼의 안에서 찬욱에 대한 호감이 점점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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