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450)

한 끼에 10만원.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겸 지갑을 연다.

드르륵!

밑반찬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다.

식사의 코스명대로 상다리 부러지게 반찬 그릇이 쌓인다.

'광주는 이런 맛에 오는 거지.'

서울은 이미 상업화가 다 되어서 원가 계산을 철저하게 한다.

1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인심.

이 정도 찬거리는 귀찮더라도 챙겨준다.

그런 정이 남아있는 곳이 지방 음식점이다.

"육회가 그냥 반찬으로 나와요?"

"음."

"새우장도 있다! 나 이거 좋아하는데."

"호들갑이 심하구나."

찬거리만 먹어도 배가 부른다.

하지만 나 인간 이찬욱은 아직 배가 고프다.

'이런 비싼 식사는 배를 채우려고 시키는 게 아니야.'

마음을 채우기 위함이다.

보기만 해도 풍족해지고, 마음 따듯해지는 그런 광경.

"우와……."

"먹자."

"이거 어떻게 먹죠? 살아있어요!"

메인 메뉴가 하나둘 올라온다.

첫 타자는 랍스터.

그것도 잘 삶아서 새빨갛게 된 게 아니다.

갈색이다.

조리되기 전.

아니, 생으로 즐기는 별미다.

'꼭 잘 먹는 애들이 살아있는 거 따지더라.'

소라가 탱글탱글한 랍스터 회의 살점을 입에 가져다 넣는다.

눈이 똥그랗게 떠지는 반응은 볼 만하다.

"선배 이거 먹어봐요, 먹어봐요!"

"먹고 있어."

고급 음식.

평소에는 먹을 일이 없는 것.

그런 부담스러운 음식들을 먹다가.

'숨을 돌릴 때 먹는 것이 반찬이지.'

익숙한 음식 말이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상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다.

쪼옥!

새우장.

랍스터와 비교하자 살점이 물렁하다.

장으로 절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단맛도 확실히 덜하다.

"정말이네?"

"랍스터 먹다 새우장 먹으니 못 먹겠지?"

"선배 저 저거."

"그래, 니 다 먹어."

랍스터의 마지막 살점을 야무지게 해치운다.

바로 다음 타자.

큼직한 보리굴비와 김이 솔솔 나는 하얀 쌀밥이다.

"살점만 젓가락으로 떼서 조근조근 씹어봐."

"네!"

"맛있냐?"

진심으로 맛있다는 반응.

숙성을 거친 참조기는 입안에서 뭉개기만 해도 감칠맛이 폭발한다.

'딸려 나오는 육회랑은 비교가 안되지.'

비교하며 먹으면 더 즐거운 식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비싼 상차림은 환상을, 소비욕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경험.

역치가 높아지게 만든다.

인간 사회에서 사치와 향락이 더 커져 가는 이유다.

꼴꼴꼴~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차갑게 식은 참이슬을 한 병 시켜서 잔에 따른다.

"마실래?"

"아뇨……."

"술 못한다고 했나?"

"사실 못하는 건 아닌데 소주는 맛이 없는 것 같아요."

음식점의 주류 메뉴판.

취향에 맞는 술이 없었다.

그럴 때에는 의외로 소주가 해답이다.

'소주가 맛없는 술인 건 맞아.'

희석식 소주는 빈말로도 좋은 술이라고 할 수 없다.

여러가지 술을 마셔보면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더 알게 되는 부분도 있다.

한 지역에서, 나라에서 유명해진 술에는 반드시 이유가 따른다.

"니가 소주 먹는 법을 몰라서 그래."

"그냥 취하려고 마시는 거 아니에요?"

"이래서 술은 어른한테 배우라는 거지."

우리나라 음식은 자극적이다.

그리고 감칠맛이 매우 강하다.

'숙성과 발효가 거의 당연하다시피 하니까.'

김치만 봐도 세계적으로 없는 음식이다.

야채를 숙성하는 경우는 있지만, 야채에 동물성 재료를 첨가하는 경우는 없다.

식물성+동물성 재료의 발효.

고작 반찬 주제에 메인디쉬를 뒤덮을 만한 수준의 강한 감칠맛을 가진다.

"입안이 지금 짜지?"

"굴비가 짜서."

"그럴 때 소주로 입안을 씻어내는 거야."

다른 음식들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쓰는 간장과 된장은 물론이고, 서양에서는 향신료인 마늘이 우리나라에서는 평범한 야채 취급을 받는다.

'그렇게 음식 맛이 강하니까.'

소주는 그런 한국 음식과 곁들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소위 말하는 깔끔한 맛!

음식 맛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받아."

"그럼 딱 한 잔만."

"아 존나 비싸게 구네!"

"알았어요. 마시면 될 거 아니야."

역시 밀어붙여야 말을 듣는다.

마지못하다는 듯 잔을 받아든 소라가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린 채 소주잔을 비운다.

'적당한 도수도 그렇고.'

증류주는 대개 40도 이상.

소주를 20도 전후로 희석시킨 건 원샷에 최적화한 것이다.

"크으~!"

"그러고 나서 다시 음식을 먹어봐."

"네."

"맛이 선명하게 잘 느껴지지?"

입안에 묻어있던 음식물이 씻겨나간다.

약간의 쓴맛과 감미료의 단맛.

강하고 복잡한 맛으로 피로해진 미각 세포를 다시 깨운다.

'그런 상태에서 맛이 강한 음식을 또 먹는 거지.'

중독성.

어른들이 소주를 몇 병씩 비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국 음식과 찰떡 궁합으로 사이클만 맞추면 계속 들어간다.

"한 잔 더!"

"그래, 잘 마시네."

칭찬은 원숭이도 춤추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능력으로도 본다.

꼴꼴꼴~

소주 1병을 반씩 노나 마신다.

점심으로는 딱 이 정도의 취기가 적당하다.

'본인이 취해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신발을 신을 때 휘청이는 몸.

허리를 잡아주자 고맙다는 듯 베시시 웃는다.

그대로 길거리로 나간다.

행인들에게는 누가 봐도 커플 사이로 보일 것이다.

남자는 끼고 있는 여자에 따라 신분이 상승한다.

돈, 명예, 다음으로 괜히 여자가 붙는 게 아니다.

'지방이 하나도 없네. 이게 다 위로 올라갔다는 거 아니야.'

내 여자라는 사실을 과시하며 돌아다닌다.

꼭 잡은 허리는 그립감이 어쩜 그리 좋을 수가 없다.

한 번 더 포옹을 하고 싶다.

아니, 그 다음.

어쩌면 오늘 여행에서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저씨 호텔, 아니 저쪽 산 많은 곳으로 가주세요."

"거긴 뭐 아무것도 없는디?"

"네."

"뭐, 나시야 돈 받응께 좋제~."

택시 뒷좌석에 탑승한다.

소라는 알딸딸한지 고개를 내 쪽으로 숙이고 있다.

'진짜 보쌈 마렵네.'

허리에 감은 손을 조금 내린다.

딱딱한 골반뼈 아래로 급격하게 경사가 진다.

뽕 하나 없는 진짜 몸매.

여러 여자를 안아봤지만 촉만으로 최상급의 예감이 드는 건 처음이다.

'아니, 두 번짼가……'

즐기는 사이에 도착한다.

기사 아저씨의 말대로 아무것도 없는 첩첩산중이다.

"여기……, 어디에요?"

"산."

"보면 알거든요."

택시에서 내린 소라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행인 만큼 관광지에 올 수도 있지만.

'썩 등산을 하기에 좋아 보이는 장소는 아니지.'

미개발 구역.

그렇다고 웅장한 자연이 느껴지는 산맥도 아니다.

광광객들에게 인기가 없다.

"너 어떤 주식으로 돈 벌었는지 기억 나?"

"선배가 멋대로 걸었을 뿐인데."

"어쨌든."

"알아요. 태양광 아니에요?"

그럼에도 온 이유는 투자 여행이다.

항공사가 그러했듯 태양광에도 당연히 실체가 있다.

그러니까 계획이 세워지고, 천문학적인 돈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저거 다 뭐에요?"

"나무지. 산이잖아."

"아니……, 다 죽어있잖아요."

시들어있다가 아닌 죽어있다.

그렇게밖에 보일 수 없는 광경.

소라에게는 조금 충격이 클 수도 있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이다.

여행지를 특정하지 않았던 건 어딜 가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된 거에요?"

"그걸 몰라?"

"당연히 모르죠. 아무것도 안 듣고 왔는데."

"듣지는 않았어도 투자는 했잖아."

"네?"

소라가 입을 꾹 다문 채 산을 감상한다.

풍경이 감동적이어서도, 술에 취해서도 아니다.

어이가 없기 때문.

아름드리 나무들이 베어져 쓰레기처럼 널부러져 있다.

'민둥산이라.'

그 나무들이 있었을 곳.

허허벌판이 되어 태양광 패널들로 가득 차있다.

술을 확 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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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에요?"

술이 확 깬 소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

'멀쩡한 산을 왜.'

죽은 산.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그런 곳이라면 개발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 중 하나다.

자연 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돼있다.

"왜 하필 여기에요?"

"그거야 이곳이 일조량이 좋기 때문이지. 대표적인 곡창지대잖아. 너 사회 시간에 졸았어?"

"아니, 그건 당연히 아는데……."

모르긴 몰라도 나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잘했을 것이다.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아니, 눈을 돌리는 거지.'

현대 사회는 정보의 접근성이 높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백악관 자료도 훑어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기관들.

전문 투자 회사들보다 조금 늦을 수는 있어도 질적인 차이는 없다시피 하다.

그럼에도 정보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 이유가 사실 별 게 없다는 이야기다.

"왜 굳이."

"멀쩡한 산을 미냐고?"

"네……."

"국책 사업을 활발히 하다 보면 다소의 부작용이 따르는 거지."

정부 정책.

큰 돈이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되는 사업이다.

천문학적인 수준의 거액이 한 번에 시장에 공급된다.

'그게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쓰이면 오죽 좋겠냐만은.'

민간 기업들은 사업을 장기간 검토한다.

하지만 정부는 5년이라는 임기가 있고, 그 안에 빠듯하게 결과를 내야만 한다.

일조량 높은 곳이 어디지?

이곳 뿐만 아니라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 대규모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고 있다.

"사업성을 무시하고 결과를 내는데 초점을 맞추면 일어나는 현상이야."

"무시한 정도가 아닌데요?"

"음."

"본말전도 같은데……."

자연을 위해 자연을 파괴한 광경.

정부도 이런 것을 원하진 않았을 것이다.

돈 내는 사람 따로 있고, 실행하는 사람 따로 있다.

그렇다 보니 손발이 안 맞는다.

'원래 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있는 일이다.

이번 정권만 특별히 바보 짓을 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투자 관점.

이러한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할지.

"미리 조사를 하고 투자를 한다면 돈을 벌 수 있는 게지."

"그게……, 정당한 수익일까요?"

"왜?"

"솔직히 땅에 버린 세금을 주워 담은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사실 과거의 나도 알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확신을 가지고 더 크게 베팅했을 뿐.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긴 하지.'

친환경은 물론 필요하다.

지구 온난화를 늦추고, 소중한 자연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거라고는 믿기 힘들다.

소라의 말도 이해는 되지만.

"그게 투자자야.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직업이지."

"도의적으로 옳지 않아도요?"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

누군가는 선악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혹은 정치적인 선입견으로 공격할 수도 있다.

'알 바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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