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450)

"광주를요?"

"부산도 괜찮고. 김포에서 비행기 타고 갈 거니까 원하는 곳으로 말해."

고민.

긴 눈썹이 꿈틀거린다.

어느 쪽이 나을지 생각하는 듯하다.

'이렇게 선택권을 주는 척.'

어느 쪽을 가든 여행의 목적은 이룰 수 있다.

선택지를 준 건 혼란을 시키기 위함.

기초적인 사기 수법이다.

대상의 의지대로 고르는 것 같지만 실상은 피대상자에게 놀아난다.

진짜 목적은 장거리 여행이다.

밤이 늦으면 자연스럽게 1박 2일 일정이 될 수 있다.

"광주가 날 것 같아요."

"왜?"

"딱히 기준이 있는 건 아닌데 굳이 따지면 음식?"

"그건 맞지."

미식의 도시.

그런 미사여구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전라도 음식이 맛있다.

여행에서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즐거운 상상을 하며 가고 있지만.

'시발.'

오랜만에 운전하는 차.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 만만찮다.

소라는 창밖의 풍경만 구경을 하고 있다.

"너는 정말 눈치가 없구나."

"갑자기 왜 시비에요!"

"하 그런 게 있어."

답답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귤을 까서 입에 넣어주지는 않을지언정.

'최소한 허벅지는 만지게 해줘야지.'

남자가 운전하는 이유의 90%는 허벅지를 만지게 해주기 때문인데.

그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있다.

"아, 선배 저 물어볼 거 있는데."

"물어줄 거야?"

"네?"

물어주면 더 좋고.

물론 19금적인 부분을 물어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배가 말한 커뮤니티 들어가 봤거든요?"

"한국 주식 갤러리."

"이상한 곳 같아요."

"이상하지."

불만 어렸던 표정.

잠깐 인생을 빌리는 사태 때문에 유야무야해졌지만 원인은 짐작이 간다.

'보통 사람이 들어가면 충격 받아.'

워딩이 세다.

다루는 화제도 일반적이지 않다.

그렇다 보니 안 좋은 사이트라는 인식이 있지만.

"여성에 대한 혐오성 글들이……."

"크흠!"

"오빠도 그런 사이트 하는 거 아니죠?"

실제로 맞는 소리다.

인터넷상의 이상한 자료들은 대부분 디시에서 독을 풀었다.

"어제 엄청 올랐던 태양광도 절대 안되는 사업이라며 비꼬던데요?"

"음."

"솔직히 정신병자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

불편한 화제도 자주 거론된다.

딥웹 정도는 아니지만 딥한 사이트인 건 사실이다.

'내가 왜 엄마한테 들킨 듯한 기분을 느껴야 돼 증말.'

그런 것이 주식 투자자에게는 필요하다.

희로애락.

인간의 솔직한 감정이 필터링 없이 올라온다.

"너 다른 주식 사이트 해?"

"참고하는 곳은 좀 있어요."

"거기서 증시 폭락할 거라고 하면 뭐라 그래?"

"포, 폭락이요?"

냉정한 타입.

그런 소라도 PTSD가 오는 단어가 있다.

'첫사랑의 강렬한 추억이 잊혀지지 않는 거지.'

흑형급으로 큰 음봉에 쑥 뚫리고 말았다.

트라우마가 안 생긴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보통 그런 얘기 하지도 않고, 하는 것도 실례일 것 같은데."

"그런 거야."

"네?"

주식 시장에서 돈 꼴아본 사람이 어디 소라뿐일까?

아니, 소라는 약과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가정 파탄 나고, 집 날아가고 그거 다 실화 기반이다.

'민감한 화제는 피하려고 하지.'

그것이 사회성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지켜야 할 선이지만.

"그런 가식이."

"말조심하는 게 가식이에요?"

"그래. 주식 시장에서는 불필요한 것이야."

특히 한국 주식 시장은 민감하다.

증권사들이 리포트를 낼 때 매도 의견을 내지 못할 정도다.

'내면 욕 존나게 먹거든.'

오성전자 같은 인기 주식은 항의 전화에 업무가 마비된다.

그래서 좋은 말만 할 수밖에 없다.

나쁜 소식도 최대한 우회적으로 전한다.

그것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환희에 가득 차서 부정적인 소식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거지."

"설마 지금 정말 폭락해요?"

"아니……."

그런 것이 디시에는 다이렉트로 올라온다.

실제로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다.

'그런 게 필요해.'

주식 시장은 심리의 싸움이다.

폭락론도 회피할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마주하다 보면 하나의 정보로 인식하고, 투자 아이디어로 활용할 수 있다.

"약간 그런 느낌이지. 섹스할 때 처음에는 긴장되고 흥분되는데 나중에는 스포츠처럼 즐기는 거. 너 스포츠 좋아하니?"

"시발아."

소라에게는 공감대 형성이 덜 되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끼익−!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도착한다.

김포공항.

국내선을 이용하기에는 가장 좋은 공항이다.

"아까 폭락하냐고 안 하냐고 물었지?"

"뭐……."

"봐봐. 사람 많잖아. 실물 경제는 훌륭하다는 증거야."

공항 내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어깨 부딪히는 걸 조심해 하며 다녀야 한다.

'반대로 폭락론만 보다 보면 실수하기 좋은 것 중 하나가.'

방구석에서 세상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여행지 사람 많아!

스타벅스 사람 많아!

세상은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여행을 가고, 돈을 쓰는 것도 경제 공부의 일환이다.

"렌트카도 벤츠인데 꽤 싸게 빌렸거든. 중고차 가격이 싸다는 거야. 중고차가 인플레이션 데이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인 거 알지? 즉, 인플레가 적은 건강한 경제라는 거지."

"그렇구나……."

"실생활에서도 투자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갈 수 있어. 봐봐. 이곳 공항도 그렇고."

우리가 투자하는 기업들.

당연하게도 실제로 있는 회사들이다.

그 회사들이 어떤 곳인지 직접 보는 것도 중요하다.

토독, 톡!

항공권 예약.

사이트를 훑어보면 나오는 항공사들 대부분이 증시에 상장 되어있다.

이 항공사의 사업 구조가 어떠한지.

직접 타보는 것보다 알기 좋은 방법은 없다.

"LCC에 타보자."

"네."

"괜찮아? 대한항공 퍼클에 안 타도 되겠어?"

"그런 부르주아 아니거든요? 기왕 번 돈 소중하게 쓰고 싶고."

기특한 소리를 해댄다.

LCC.

저비용 항공사의 줄임말이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메이저 항공사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싸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다.

"좁지?"

"그러네요."

"타보니까 무슨 생각이 들어?"

"이렇게 꽉꽉 채워서 태우면 돈은 잘 벌겠다는 느낌?"

LCC 항공사 중 하나인 티웨이항공에 탄다.

좁은 내부를 보고 가성비를 착안한 건 훌륭하지만.

'50점.'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은 고스란히 나간다.

박리다매가 가능한 여행 성수기에는 특수를 누린다.

반대로 비성수기.

돈을 별로 벌지 못한다.

게다가 회사에 위기가 닥치면.

"LCC는 회사 운영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거지."

"그렇겠네요."

"실물 경제에 민감하게 주가가 움직여. 그 부분을 참고해서 매수를 하면 좋겠지."

비행기 자체가 작다는 것도 있다.

승객을 태울 때는 어떻게든 꾸겨 넣지만, 만약 화물 운송을 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래서 코로나 때 화물 운송으로 전환한 대형 항공사들과 달리 LCC 항공사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지.'

이러한 정보들.

직접 항공기를 타봤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소라와 투자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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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이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왔다.

"세상 좋아."

"돈은 들었지만요."

공항에 도착한다.

소라로서는 조금 아쉬운 감정이 남는 모양이다.

"왕복 생각하면 10만원은 나갈 것 같은데……."

"아까워?"

"쫌."

"그러니까 Flex지."

미리 예약했으면 절약할 수 있었다는 둥.

그런 고민은 여행지에서 하는 게 아니다.

선글라스를 쓴다.

오늘 하루는, 가능하면 내일도 신나게 만끽하면 된다.

'캐리어가 없는 게 옥의 티로구나.'

1박 2일을 티내지 않기 위해 안 들고 왔다.

드르륵 하는 재미를 맛보지 못한다.

"스튜어디스 누나들 예쁘다. 스튜어디스는 아시아나가 갑인데."

"선배랑 동갑인 거 아니에요?"

"닥쳐."

다른 재미를 맛보면 된다.

여행지에서 여자를 빼는 것은 아쉬운 노릇이다.

스튜디어스들.

그 이상으로 반반한 앞으로는 더 색기가 흘러넘칠 여자와 함께 있다.

"예쁘면 다 누나야."

"그럼 저도 누나에요?"

"어쭈."

베시시 눈웃음을 짓는다.

평소에 웃음기는 커녕 쌀쌀 맞기만 하다 보니 더 감개가 무량하다.

자연스럽게 잡히는 손.

여행을 오면 누구라도 개방적이게 된다.

"택시 타고 가자. 오빠가 낼 테니까."

"선배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Flex야."

"많이 벌었나 봐요?"

"물량 정리하면 좀?"

기분적인 것도 있다.

꼴고 가면 세상 만사가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벌고 가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래, 돈은 써야 제맛이지.'

회귀 직후.

통장에 돈은 커녕 당장의 생활비도 쪼들렸다.

그런 생활도 이제는 안녕할 수 있다.

"선배 저 배고픈데."

"그럼 밥을 먹으러 가야지."

"어디 아는 맛집 있어요?"

'맛집? 비루한 생각이구나."

"?"

하루종일 핸드폰을 두들겨 찾아내는 가성비 좋은 음식점.

그런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끼익−!

인류는 돈을 쓰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다.

광주의 상무지구.

서울로 따지면 강남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급 음식점들도 번화가인 이곳에 많다.

"대충 비싼 곳을 가면 되는 게지."

"싼 곳도 맛있는 곳 있을 텐데……."

"싼 곳 중에도 맛있는 음식점이 있다. 하지만 비싼 음식점은 무조건 맛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이다.

저 가격에 누가 삼?

귀찮은 일 질색인 부자들의 시간을 절약해준다.

그런 곳은 대개 중심가 근처에 있다.

가장 북적이고, 사람이 많을 만한 곳을 가면 된다.

『상무관』

적당히 한 곳 찾아 들어간다.

내부에 손님도 많고, 창 너머로 본 식탁 상차림도 풍부했다.

"뭐 먹을래?"

"점심 특선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가성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직도 서민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구나."

그만큼 셀 수밖에 없다.

메뉴판을 본 소라가 현실과 타협을 한다.

'그릇의 크기가 커져야지.'

사치.

나도 썩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도 그럴게 온갖 거 다 해보면 도리어 무욕해진다.

하지만 할 때는 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치를 경험하지 않으면, 사치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메뉴판』

점심특선 20.000원

굴비정식 20.000원

어찬 50,000원

성찬 70,000원

진수성찬 100,000원

소비자 말이다.

혹은 호구.

어째서 이렇게 비싼 가격을 주고 식사를 하는 걸까?

"시켜보면 안다는 거지."

"알 수 있을까요?"

"아주머니 여기 진수성찬 2인분이요."

"와……."

얼떨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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