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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703화 (704/1,419)

〈 703화 〉 704.목격자를 만들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허삼관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장삼이 간살범을 몰렸을 당시에는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은 물론이고 도주까지하여 정황상 용의자로 확정짓고있는 상황이 아니었는가

지금처럼 아무런 물증도 없이 용의자로 지목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인 것이다.

"다르긴 뭐가 다르단 말이오?"

이재원은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떼었다.

"간살범으로 몰릴 당시 장삼은 현행범으로 체포당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도주까지 하여 정황상 용의자로 추정되던 상황이지 않습니까?"

"정황상일 뿐 실질적인 증거가 없다는 건 같지 않은가?"

"현행범이라고 말씀드렸을텐데요!?"

"봤나?"

이재원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네에?"

"장삼이 팽지윤을 죽이는 광경을 봤냐는 말일세."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현행범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거지?"

이재원은 재밌다는듯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현행범이란

범행을 실행한 직후나 실행 중에 체포된 범인을 칭하는 명칭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죽은 지 몇 시간이나 지난 팽지윤 옆에 누워있다는 이유만으로 현행범이라고 칭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다.

"본 맹주가 알기로는 현행범이란 범행 직후나 범행을 실행하는 도중 채포된 범인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혹여 본 맹주가 모르는 새 뜻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가?

".....그는 시체가 된 팽지윤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하지만 팽지윤의 사망시각은 처음 발견 시각의 두 시진 전이었지."

"............."

"다시 묻지. 정녕 장삼이 현행범이라고 생각하는가?"

"..........."

허삼관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정곡을 찌르는 이재원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말이 무엇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삼은 현행범이 아니었다.

허삼관 또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애써 부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천무맹의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장삼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릴테니 말이다.

분명 다른 수뇌부들도 자신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욕망이 그득히 들어차 있는 추악함을 감추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재원이 그 불편하기 그지없는 진실을 들춰버린 것이다.

그것도 적나라하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반박을 할 수 있겠는가

어찌 할 말이 있겠는가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말이 없군. 팔복당주. 평소에는 그렇게도 말 많은 사람이 말이야."

허삼관이 입을 다물자 이재원은 비웃음 담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미 그대들과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일세. 이런 상황에서 양심을 세운다해서 무언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말일세."

이재원은 충고하듯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장삼을 범인으로 몬다면 이번 사태를 충분히 가라앉힐 수 있을 걸세. 그는 천무맹을 뒤흔들었던 추악한 간살범이니 말이야."

"............."

"이미 한 번 겪은 일이지 않는가? 그저 반복한다고 생각하게나."

이재원은 부드럽기 짝이 없는 음성으로 유혹하듯 말을 이었다.

그의 죄책감을 덜어주려는듯이 말이다.

"............"

그리고 허삼관은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을 한 것이다.

장삼을 범인으로 몰아 위기를 타개하자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씨익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확실한 공범이구나.'

이제 수뇌부들과 이재원은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서로의 약점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본 맹주는 계방당주의 의견에 찬성하는 바이오. 지금 천무맹이 살아남기 위해선 무림공적인 장삼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벽보에 적힌 내용이 천무맹을 음해하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소."

이재원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는 지 말이다.

".........저는 찬성합니다."

그때 친맹주파인 이대곤이 찬성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저도 찬성합니다."

"찬성합니다."

"대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닙니까? 한 번 더 엎지른다고 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무맹을 위해서라면...."

그러자 수뇌부들이 친맹주파와 반맹주파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찬성을 하기 시작하였다.

대의를 위해서라는 자기변명을 내뱉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애물단지같은 대제자 덕분에 일이 잘풀릴 것 같았다.

다시금 그를 희생해서 천무맹의 안정을 취하는 것이다.

"좋소, 모두의 의견을 수용하도록 하겠소."

이재원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말을 굳이 덧붙이며 말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여야겠소."

"안됩니다."

그때 잠자코 있던 계방당주 차도진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공표를 미루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째서요?"

이재원은 의아한듯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장삼을 범인으로 몰자는 이가 공표를 늦추자하니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공표하기 앞서 모든 게 장삼의 짓이라는 증거를 만들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증거 말이오?"

"그렇습니다."

차도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떼었다.

"장삼의 짓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지 않는다면 천무맹의 공표를 믿지 못하는 이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흐음.......확실히...."

그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틀린 말을 아니었다.

의심병 환자 투성이인 짱개국 답게

중원에는 의심부터 하고 보는 바퀴벌레같은 새끼들 투성이었다.

그런 새끼들을 선동하려면 확고한 증거가 필요하였다.

모든 일의 원흉이 장삼이라는 확고한 증거가 말이다.

"증거를 어떻게 만들 심산이오?"

"목격자를 만들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목격자?"

"그렇습니다."

차도진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꽤나 자신있는 계획이 있는듯 보였다.

이재원은 그런 차도진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떤 꾀주머니로 자신을 감탄시킬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묘안이 있는 것인가?"

"염두해둔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개의치 말도록 말해보게!"

이재원은 다급히 그를 종용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다소 희생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희생말인가?

"네에, 신빙성을 더해주기 위해선 장삼의 악랄함을 강조해둘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흐음."

이재원은 고민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자신이야 상관없었다.

누가 더 죽든 말든말이다.

하지만 이 꼬장거리는 수뇌부들이 그걸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재원은 그대로 결정을 넘겨버렸다.

덤터기를 쓰는 것은 사양이었다.

"............저는 희생을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이대곤이 곧바로 대답을 하였다.

이재원이 무엇을 원하는 지 곧바로 알아차리고 말을 내뱉은 것이다.

"아무런 희생없이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수뇌부들이 너도나도 동조를 하기 시작하였다.

장삼이 희생양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한 시점에서

위선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둔듯 하였다.

'이런 권력에 미친 개새끼들을 봤나.크크크큭..'

그리고 이재원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재밌다는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모든 위선을 던져버리고 개처럼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재밌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솔직해진 것이다.

자신들의 욕망에

그리고 미쳐버린 것이다.

달콤하기 그지없는 권력에 말이다.

이내 회의장에는 광기 어린 개돼지들의 목소리가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결국 허삼관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수뇌부들이 불가피한 희생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고

그 광경을 지켜본 차도진은 생각해둔 계획을 읊조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계획을 듣는 수뇌부들의 입가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꽤나 흡족한 계획인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

"후아아아암"

현무당의 당원인 조준은 크게 하품을 내쉬었다.

갑작스럽게 차출되어 상업지구 근처에서 경계 근무를 서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경계 근무를 서기 전엔 미리 알려주어 잠을 자두게 하는 게 기본적인 배려였지만

갑작스럽게 일어난 긴급상황에 그런 배려조차 받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개같네.'

조준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갑작스레 차출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듯하였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임마."

그러자 옆에 있던 여인이 그를 타박을 하였다.

조준과 마찬가지로 현무당에 속해있는 예화라는 여인이었다.

"졸린걸 어떡하라고?"

"졸려도 티내지마.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야밤에 다른 사람이 어디있다고!?"

조준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타박을 하는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혹시 모르잖아. 언제나 경계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지."

"항상 느끼는 건데 너는 너무 딱딱해. 예화."

"너는 너무 물러터졌어. 조준."

"물러터진게 아니라. 여유로운거야."

"능력은 쥐뿔도 없는 게 무슨 여유야. 그냥 흐리멍텅한 거지."

"능력이 없다니!"

"평무사로 오년이나 굴렀잖아? 그게 능력이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

"내가 진급을 거부한 거야!"

"거짓말 좀 하지마. 저번에도 진급 누락돼서 술처먹는 거 다봤거든!?"

"오늘따라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데! 월경이라도 하는거야?"

조준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오늘따라 예민하게 구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원래 이랬어! 개 자식아!"

두 사람의 말싸움이 격해지기 시작하였다.

"말걸지마!"

조준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버렸다.

말싸움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나 걸지마!"

예화 또한 말싸움을 할 필요성을 못느낀 것인지

마주 소리를 내질렀다.

"............."

이내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야, 조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던 예화가 천천히 입을 떼어 그녀를 불렀다.

"진짜 삐졌어?"

"............."

하지만 조준은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삐진듯하였다.

"후우"

예화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속좁은 남자에 대한 짜증이 섞여있는 한숨이었다.

"속좁은 새끼."

그녀는 다시금 그를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어색한 분위기 보단 대판 싸우고 푸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조준은 여전히 침묵을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와락

예화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 속좁은 남자는 화를 쉽게 풀 요량이 없는듯하였다.

"그만 삐지고 화 풀......."

예화는 옆으로 돌렸던 고개를 다시금 돌리며 입을 떼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전부 이을 수 없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경악스러운 광경에 뇌가 정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지만

조준은 없었다.

대신 그의 몸뚱아리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잘려버린 것이다.

그의 목이 말이다.

'이게....뭐지....대체..이게..뭐지?...꿈인가?..꿈일거야....꿈일 수밖에 없어....제발.....제발..'

그녀는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기도하였다.

부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꿈이기를 말이다.

번쩍

이내 그녀는 눈을 떴고 절망하게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내 뇌정지가 풀린 예화는 찢어질듯한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수 년간 동고동락해온 동료가 목을 잃은 시체가 되었다.

어찌 비명을 내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때 갑자기 목울대에서 차갑기 그지없는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깜짝 놀란 예화는 비명을 내지르다 그대로 멈추게 되었다.

목에 느껴지는 서늘한 한기에 겁에 질린 것이다.

"예화야, 조용히 해야지."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예화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의 모습을 말이다.

"들키면 책임질거야?"

과거 현무당의 조장으로 있었던 남자.

수십 년간 여협들을 간살하여 무림공적으로 선포된 남자.

천무맹의 하나뿐인 제자였던 남자.

장삼이었다.

"오랜만에 보네. 우리 예화?"

장삼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예화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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