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2화 〉 703. 저희가 지목할 용의자는 장삼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구긴 채 언성을 높였다.
산동성 전역에 대자보가 붙여졌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각 지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맹주를 음해하는 내용이 적힌 벽보가 방방곳곳에 붙여져있다고 말입니다!"
제갈찬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으드득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이를 거칠게 갈기 시작하였다.
참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분노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용의자는! 용의자는 특정된 것이오!?"
"아쉽게도.......특정하진 못하였다고 합니다!"
"목격자가 없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산동성에 사는 이들만 수천 수만이오! 그런데 어찌 단 한 명의 목격자도 없다는 말이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이재원은 시뻘개진 얼굴로 제갈찬을 노려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용의자 특정은 물론이고 목격자조차 찾지 못하는 무능력함에 답답함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송구합니다."
"내가 원하는 건 사과가 아니오! 내가 원하는 건 해결책이란 말이오!"
".........."
제갈찬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대답이 없는 것이오? 말하라는 말이오! 범인을 잡아오겠다! 목격자를 찾아오겠다 말하라는 말이오!"
이재원은 핏발 선 눈빛으로 제갈찬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들은 왜 대답이 없소? 어서 해결책을 제시하시오! 천무맹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꼴을 이대로 방관할 셈이오!?"
이내 이재원은 침묵을 하고 있는 수뇌부들을 둘러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
하지만 수뇌부들은 여전히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방법 따위를 그들이 알고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가리를 다물고 있지 말고 뭐라도 뱉어내란 말이야!"
이내 이재원은 험악하기 그지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머리 끝까지 차오른 화가 그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킨 까닭이었다.
움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온몸을 살며시 떨기 시작하였다.
거칠기 짝이 없는 이재원의 어투에 기가 죽어버린 것이다.
"맹..맹주....진정하시는 것이.."
이대곤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맹주가 과하게 흥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정? 지금 진정이라고 하였소!?"
이재원은 핏발 선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소? 무려 이십여년 동안 쌓아올린 명성이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대는 머리가 모자른 것이오? 아니면 생각이 없는 것이오?"
이재원은 한없이 비아냥 거리며 이대곤을 타박하기 시작하였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대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맹주에게 필요한 것은 분풀이 대상이 되어줄 욕받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성적인 사고가 마비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체 당신네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오? 파벌싸움하거나 뇌물이나 받아처먹을 줄만 알지. 제대로 하는 게 무엇이란 말이오?"
"맹..맹주! 말이 심합니다!"
그때 수뇌부 중 하나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아무리 맹주라도 그 수위가 무례할 정도로 높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모욕적이라고 생각하오?"
"당연하지요!"
"모욕적인 줄 알면 가서 일좀 처하시오! 뇌물을 받아처먹든 파벌싸움을 하든 신경 안쓸테니까! 벽보를 붙인 범인을 잡아오란 말이오!"
"............'
"다들 위기감이 부족한 것 아니오? 정마대전이 코앞에 있는 이 상황에서 천무맹의 명성이 땅에 떨어진다면 제대로 된 준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이재원은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지금 천무맹이 마교에게 선전포고를 하였음에도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정의구현 단체라는 거대한 명성이 있기 때문이오! 그 명성 자체가 명분이 되기 때문이란 말이오! 그런데 그 명성이 땅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소? 우리는 명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오!"
아마 천무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교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면 지금과 같은 지지를 얻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참혹한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전쟁으로 인해 손익에 대한 냉정한 계산이 전쟁을 꺼리게 만들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천무맹의 경우는 달랐다.
그들이 선전포고한 것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정의 구현 단체라는 명성이 무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명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명성에 금이 가려고 하고 있었다.
명분이 사라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뇌부들의 태도는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남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명분을 잃는다면 정마대전에 참전을 약속했던 이들은 하나둘씩 천무맹을 떠날 것이고 알게 모르게 지원을 해주던 이들 또한 지원을 끊어버릴 것이오! 정의가 없는 천무맹에게 지원할 가치를 못 느낄테니 말이오! 정녕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이오?"
이재원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아..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이재원의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너도나도 부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또한 그런 최악의 상황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라면 대책을 내시오!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책을 말이오!"
이재원은 강조하듯 말을 이었다.
지금 필요한 실질적인 대책이었다.
모든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효한 대책 말이다.
"..........맹주."
그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계방당주 차도진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뭐라!?"
그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번 사태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차도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그게 무엇인가!?"
이재원은 다급히 그에게 되물었다.
무슨 묘안을 생각해냈는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론에는 여론으로 맞서는 게 정석이 아니겠습니까?"
차도진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여론을 형성하지요."
와락
차도진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 새끼는 자신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듯하였다.
범인을 잡지 않는 이상 여론을 반전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여론을 반전시킨다한들 범인들은 다시금 음해를 시작한다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범인을 잡는 일이오! 여론을 반전시킨다고 한들 범인을 잡지 않는다면 또다시 본 맹주를 음해하려고 들것이 뻔하다는 말이오!"
이재원은 답답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흔들리지 않는 여론을 형성하면 될 일입니다."
이재원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차도진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여론?"
"그렇습니다. 어떤 공작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인 여론을 형성한다면 범인을 잡지 못한다고 하여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차도진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런 여론을 어떻게 형성한다는 말이오?"
이재원은 한층 누그러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묘수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벽보를 붙인 용의자를 특정해버리면 됩니다."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어찌 용의자를 특정한다는 말이오."
이재원은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말같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차도진의 개소리에 짜증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목격자가 없어도 범인은 얼마든지 특정할 수있습니다. 맹주."
차도진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목격자 없어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다니? 용의자를 꾸며내어 지목하지 않는 이상 그런 게 가능할 리 만무하지 않소?!"
이재원은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목격자가 없이 용의자를 특정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누명을 씌워서 지목을 하지 않는 이상
무리인 것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맹주."
차도진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뭐라?"
"용의자를 인위적으로 만든 후 특정시키는 것입니다. 세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또 다시 마교 핑계를 대자는 것이오?"
이재원은 회의적인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이거나 민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을 때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 바로 마교팔이였다.
마교가 언제고 중원을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반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재원은 회의적이었다.
마교팔이는 효과적이긴 하나 너무나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이미 알 사람은 전부 아는 방법이기에 이대로 쉽사리 넘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가 용의자로 지목할 대상은 마교가 아닙니다."
이재원의 말을 들은 차도진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떼었다.
"아니, 그럼 대체 누구를 지목하자는 말인가?"
이재원은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되물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천무맹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고
명성을 가진 곳은 마교 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목할 대상이 마교가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저희가 지목할 용의자는 장삼입니다."
차도진은 차가운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장..장삼?!"
차도진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당혹스러운듯 말을 내뱉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이었다.
장삼이 누구란 말인가
천무맹의 명예를 위해 희생시킨 자신의 장제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장삼을 다시금 범인으로 몰자니?
"장삼이 용의자라면 대다수 사람들은 충분히 납득을 할 것입니다. 무림공적인 그는 천무맹을 적대할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으며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악명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거처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완벽한 범인이 어디있겠습니까?"
차도진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장삼은 완벽한 용의자였다.
무림공적이라는 명분
수 많은 아녀자를 간살했다는 악명
더불어 행방을 아무도 모른다는 상황까지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져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범인이 될 수 있겠는가
"............."
한 편 그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입을 꾹 다문 채 멍을 때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차도진에 주장에 넋이 나가버린 탓이었다.
저게 대체 무슨 말인가
자신의 대제자를
천무맹의 명예를 위해 희생시킨 장삼을
용의자를 만들어 특정시켜버리자니
이 말인즉슨 민중들을 속이고 거짓된 명예를 얻자는 말이 아니던가
'천잰데?'
이재원은 감탄하였다.
차도진의 발상의 전환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모든 죄를 장삼에게 뒤집어씌우고 여론전에서 승리할 생각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좋다! 이거 좋아!'
이재원의 입매가 슬그머니 호선이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차도진의 말대로라면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민중은 개돼지였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입장을 바꾸는 것이 비일비재한
병신들인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명분과 악명을 갖춘 용의자를 제시해준다면
대다수가 납득을 하고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새끼 존나 천재인데?'
이재원은 차도진을 흘깃 바라보며 감탄을 하였다.
이렇게 똑똑한 새끼인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새끼는 정마대전 끝나면 군사를 시켜야겠군.'
이재원은 생각하였다.
정마대전이 끝나는 즉시 저 새끼를 총군사 차리에 올려놓겠다고 말이다.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나쁘지도 않을 것....."
"말도 안됩니다!"
그때였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허삼관이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얼굴에는 어마어마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저...저...시발새끼....말을 끊어?'
이재원은 노골적으로 표정을 구기기 시작하였다.
딴지를 거는 허삼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무맹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런 부정한 일을 저지른다는 말입니까!"
허삼관은 의견을 제시한 차도진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의 눈빛에는 차도진을 질타하는듯한 감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니, 그럼 달리 방도가 있소?"
이재원은 차가운 음성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벽보로 인해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희생양을 삼지 않는다면
천무맹은 회생이 불가할 정도의 타격을 입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 그런 꼴을 가만히 두고본다는 말인가
"방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해도 그런 부정은 용납할 수 없소! 천무맹의 창립 이념이 무엇이오? 오직 협을 위해 살고 협을 위해 죽는 협의 실현이 아니오? 그런데 어찌 그런 추악한 짓을 저지른단 말이오!"
허삼관은 열변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흥분했다는 증거였다.
"우습구려."
이재원은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뭐라!?"
"당신은 이미 장삼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소? 그런데 이제와서 왜 착한 척을 하는 것이오?"
"그...그게 무슨!"
"당신 뿐 아니라 맹주인 나는 물론 여기있는 모든 수뇌부가 장삼을 희생양으로 삼아 여론을 잠재우지 않았소? 그런데 이제와서 못한다고 하니 코웃음밖에 안나오는 구려."
이재원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허삼관의 안면은 사색이 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