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화 〉 243.사태 파악을 하다-2
"설마...아침에 얘기했던 그 이야기 말입니까?"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대체 그게 어떤 문제를 야기했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분명 야밤에 설향과 자리를 비우고 비무를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분명 자신은 그 상황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그게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청수가 그 이야기를 와전시켜서 수색대 전체에 퍼트렸습니다."
청송은 참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와전이라면?"
순간 불안감이 든 선우는 그에게 재빨리 되물었다.
대체 뭘 어떻게 와전시켰길래 이런 사달이 난다는 말인가?
"장 소협과 설 소저가 서로 연모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야밤에 단둘이 자리를 비워 사랑을 나눴다는 염문설입니다."
"뭐라고요!?"
청송의 말을 들은 선우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에게 되물었다.
이게 대체 뭔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염문설이라니!?
그것도 설향과 말이다.
선우의 표정이 더없이 심각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입단속을 좀더 단단히 시켰어야 했는데.......아니 제가 아예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선우의 반응을 본 청송은 고개를 그대로 푹 숙인 채 선우에게 사죄를 건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허허"
그의 사죄를 들은 선우는 헛웃음을 뱉어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비록 거짓이라고는 하나 공식적으로는 독왕의 제자이자 당가의 데릴 사위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자신에 관한 염문설을 퍼트리다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당가가 우스웠으면
그리고 얼마나 자신이 우스웠으면
이런 개 같은 짓거리를 했을까
게다가 자신은 이미 정혼자가 있다고 공공연히 알려진 몸이었다.
그런 자신이 얽힌 염문설이라면 분명 당가의 명예를 어마어마하게 실추시킬 것이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청송이 어찌하여 자신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하였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런 정신 나간 짓거리를 벌였으니 당연히 굽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해가 되네, 당신이 어째서 허리를 굽혔는지 말이야."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농밀한 살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기껏 차렸던 예의 따윈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이들은 자신을 적대하였다.
그런 이들에게 존칭 따위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싹
그런 선우의 살기가 느껴진 것일까
청송은 온몸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돌 오돌 오돌
딱 딱 딱 딱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고 이빨을 쉴 새 없이 부딪히기 시작하였다.
"청수는 어디있지?"
선우는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청송은 덜덜 떨리는 손을 간신히 들어 한쪽 구석퉁이를 가리켰다.
선우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청수의 모습을 말이다.
양뺨은 어디서 맞았는지 뻘건 속살이 보일정도로 터져나가 있었고 양팔은 기형적으로 꺾여져 있었다.
"쟤는 왜 저래?"
선우는 만신창이가 된 청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그...설 소저께서..저렇게 만드셨습니다.."
청송은 말을 더듬으며 그의 물음에 답하였다.
"설 소저가 착하네."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청수를 본 선우는 생각하였다.
설향이 엄청나게 착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 같으면 결코 저 정도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무림에서는 명예라는 것이 곧 돈과 위세에 직결된다.
명예가 있기에 세가나 문파와 같은 무림 세력들이 신망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신망은 곧 돈과 직결되었다.
그리고 그 돈은 가문의 위세마저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벌어들인 돈으로 수많은 고수들을 양성하고 그만큼 명예를 더욱더 높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 결과물이 바로 소위 말하는 명문대파였다.
결국, 그들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명예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런 명예가 밑바닥까지 실추되었다.
고작 삼대제자의 가벼운 입놀림으로 인해서 말이다.
이는 무림인의 관점에서 보면 죽어 마땅한 죄였다.
아니 죽이는 것도 모자라 부관참시를 가해도 모자랄 정도의 죄질이었다.
그런 중죄를 저지른 죄인을 저정도 선에서 끝냈다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자비로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운적자와 설향이 싸우게 된 거지?"
선우는 그대로 시선을 돌려 청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정말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납작 엎드려도 모자랄 판국에 피해자인 설향에게 검을 들이밀다니 이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청수를 만신창이로 만든 설향 소저께서는 이번 일을 공론화시켜 청성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그의 물음에 청송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당연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일방적인 피해자 신분이었기에 오히려 청수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놓고도 당당히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이번 일을 더욱 키우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장로님들은 모르는 선에서 저희끼리 해결하고 싶었지요."
선우의 물음에 청송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디 용서를 해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만약 이번 일이 공론화 될 경우 사제는 단전이 폐해지고 근맥을 절단당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아미와 청성의 전쟁이 벌어지겠지요.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습니다."
청송은 음울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설 소저가 뭐라고 말하던가?"
선우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용서해준다고 하더군요."
"진짜?"
선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쉽사리 용서할 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추된 것은 그녀 혼자만의 명예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미파의 장문인인 구월신니의 제자였다.
그녀를 모욕한다는 것은 곧 스승이자 장문인인 구월신니를 모욕한다는 것이었고 아미파의 장문인인 구월신니를 모욕한다는 것은 곧 구파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미파를 모욕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말이었다.
그녀가 속한 아미파의 명예까지 실추됐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 그리 독단적으로 용서할 수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신 조건이 붙었습니다."
선우의 물음에 청송은 침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를 포함한 청송의 모든 제자들이 땅에 머리를 박고 사죄를 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송은 온몸을 덜덜 떨며 말을 이었다.
아까 겪었던 모욕과 수치심이 한순간에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허어."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녀의 강단에 놀랐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 정도 사과를 받았다면 어느 정도 유야무야 넘길 수 있을 만한 껀덕지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수색대에 모인 이들은 전부 각 문파를 이끌어갈 동량들이었다.
고르고 고른 기재들만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런 이들 모두 머리를 박고 사과를 한다면 그들은 평생토록 이 수치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아미의 경우에는 불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고 말이다.
선우는 감탄하였다.
그 짧은 찰나에 일을 키우지 않으면서 적절한 사죄의 방법을 생각해낸 그녀의 행보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뒷내용이 궁금했던 선우는 재빨리 청송에게 되물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반발하였지만 어찌어찌 설득을 하여 사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청성의 제자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청송은 말하면서도 무척이나 치욕스러웠는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면서 말을 이었다.
"와아"
선우는 감탄하였다.
설마하니 그 오만하고 자존심이 높은 청성의 제자들이 전부 머리를 박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명문대파의 제자들은 오만하다.
오만 할만 하기 때문이다.
명문대파에서 수학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명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파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자신들의 위상 또한 올라간다고 여기기 때문에 문파에 대해 더욱 각별하였고 문파의 명예에 대해 더욱 민감하였다.
그런데 그런 오만한 자들이 고작 약관 정도밖에 안 되는 여인 앞에서 땅에 머리를 박은 것이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문뜩 선우는 의아함이 들었다.
청성의 모든 제자들이 머리를 박았다면 이미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던가
어찌 운적자가 검을 치켜들고 그녀와 검을 맞대고 있다는 말인가?
"그럼 사건은 일단락 된 것이 아닌가? 어째서 운적자와 설 소저가 검을 맞대고 싸우는거지?"
선우는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청송에게 물었다.
"저희가 머리를 박고 있는 장면을 운적 사숙께서 모두 봐버렸습니다. 그리고 비분강개하여 검을 치켜들었죠."
"사정 설명을 제대로 안 한 거 아니야?"
선우는 의구심이 담긴 물음을 그에게 건네었다.
아무리 운적자가 꼬장꼬장한 성격을 가진 꼰대라고는 하지만 시시비비는 정확히 가리는 성격이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면 결코 검을 빼 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말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 일에 대해선 운적 사숙께서도 설 소저에게 제대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청성에 제대로 보고한 후 정식으로 아미에게 사죄를 건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의 물음에 청송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왜 저렇게 된 건데?"
선우는 중앙 공터에서 강기를 흩날리며 싸우는 설향과 운적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게... 사죄를 하였지만 독단적으로 일 처리를 한 설 소저의 처우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아무리 잘못을 했다해도 청성의 제자를 다치게 한 죄 그리고 청성의 제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긴 죄. 이 모든 죄에 대해서 사과를 받겠다고 하더군요. "
청송은 선우를 바라보며 운적자가 내뱉었던 말을 상세히 전해주었다.
"사과라하면 어떤식의 사과를 말하는거지?"
그런 청송의 말을 들은 선우는 궁금하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대체 어떤 식으로 사과를 받기 원했기에 검까지 빼 들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분명 독단적으로 청수를 징벌하고 청성의 제자들의 사죄를 받은 것은 설향의 잘못이긴 하였다.
어쨌든 명문대파의 제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제자가 속한 문파에게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운적자가 검을 빼 들고 사죄를 요구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충분히 사죄할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관건은 어떤 식의 사죄를 요구했느냐는 것이다.
말 뿐인 사과라면 설향이 저렇게 칼을 빼 들고 운적자와 대치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미파 제자들에게 똑같이 머리를 박고 사죄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의 물음에 청송은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 되는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허어."
청송의 말을 들은 선우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뱉어내었다.
순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코, 역지사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문인의 제자를 추문에 얽혀 명예를 손상시킨 청수와 그런 청수를 독단적으로 징벌한 설향의 죄질이 같을 수는 없었다.
그저 고개 정도 숙이는 것만 해도 충분한 사죄일 것이다.
하지만 운적자가 요구한 것은 도를 넘어도 엄청나게 넘어선 요구였다.
아무리 봐도 알량한 자존심을 챙기려는 수작이 아니던가
시시비비가 명백하다 들었거늘
제 문파에 관계된 일에 대해서는 그것도 아닌듯하였다.
"진심이래?"
선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청송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진심이랍니다."
선우의 물음을 들은 청송은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가 생각해도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청송의 반응을 보며 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이 마주한 상황이 꼬여도 한참이나 꼬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을 더욱 크게 만들기 싫었던 청성의 제자들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운적자의 등장 때문에 말이다.
선우는 청성의 제자들에 대한 연민이 드는 것을 느꼈다.
청수가 저지른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수치심과 모멸감을 참아내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노력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버렸다는 생각을 하니 괜스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선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말을 들어보니 아무리 봐도 청성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억지를 부리면서 설향을 압박하는 운적자의 잘못이 말이다.
물론 그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청성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수많은 제자들이 아미파의 제자들에게 땅에 머리를 박은 채 사죄를 하였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늘 일이 평생토록 기억될 것이다.
그런 기억을 지워주고 싶었을 것이다.
언제나 당당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오늘의 수치를 기억하고 절치부심하여 더욱더 큰 영광을 쫓아야 하거늘
그는 그저 오늘의 수치를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까지 부리면서 말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인 짓이란 말인가?
스르릉
선우는 천천히 옆구리에 매여져 있는 검대에서 검을 뽑았다.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한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