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235.누가 누구랑 잤다고?
"저....청수야, 얼마나 큰 비밀이길래 자리까지 옮기는 거야?"
청성파의 속가제자인 이경선은 청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기다려봐. 이게 장소가 중요해. 장소가"
그런 이경선의 물음에 청수는 의미 모를 말을 지껄이며 입을 열었다.
이경선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대체 할 말이 뭐길래 장소가 그리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의 의문이 더더욱 커지기 시작하였다.
한편 청수는 이경선이 의문을 품든 말든 개의치 않고 장소를 옮겼다.
`왜 이렇게 안 보여!`
그는 짜증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장선우의 치부를 널리 알려야 했건만 그 이야기를 들어줄 아미의 제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수는 인상을 잔뜩 쓰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멀지 않은 곳에 아미의 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청수는 천천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는 그대로 멈춰 섰다.
"경선아, 그거 알아?"
그는 이경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청수는 말에 은밀히 내력을 실어 아미의 제자들에게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아마 그들은 마치 이야기를 엿듣는 것과도 같은 착각에 빠져들 것이다.
"뭘?"
"이건 내가 청송 사형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청수의 입이 다시금 나불거리기 시작하였다.
***********
"흐흐흐흐"
청수는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오늘만 해도 다섯이나 되는 아미파 제자들에게 염문설을 흘렸다.
물론 그와 동시에 청성의 제자들에게도 소문을 흘렸고 말이다.
이제 장선우가 매장당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계획대로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오늘 밤은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오싹
무언가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기운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가기 시작하였다.
꿀꺽
청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등골을 오싹하게 한 기운의 정체가 살기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당황한 청수는 재빨리 옆구리에 있는 검대에 손을 올렸다.
어떤 공격이 들어와도 대비할 수 있게 말이다.
"뒤로 도세요."
그때 뒤편에서 청아하기 그지없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천천히 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그는 볼 수 있었다.
파르르하게 머리를 깎은 여인이 살기가 가득 담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그녀의 모습을 본 청수의 낯빛이 흑색으로 바뀌어버렸다.
********
"당신인가요? 그딴 헛소문을 내고 다니는 사람이?"
운혜는 청수를 노려보며 차가운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헛 소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오."
그녀의 물음에 청수는 재빨리 발뺌을 하였다.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발뺌하지 말아요. 당신이 소문을 퍼트리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청수의 발뻄에 운혜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산길에서 설향에 관한 염문설을 듣고 재빨리 막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그녀였다.
막사로 돌아온 그녀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염문설을 흘리고 다니는 자를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소문의 근원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미의 제자들이 묵고 있는 막사 근처에서 나불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청력을 집중하여 내용을 들어보니 역시나 선우와 설향에 대한 염문설이었다.
그 내용을 들은 설향은 분노하였다.
굳이 아미파의 제자들이 묵고 있는 막사 근처까지 와서 나불대는 이유가 뭐겠는가?
대놓고 소문을 내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화가 난 그녀는 그대로 청수의 뒤를 밟았고 이내 인적이 드문 곳에 다다르자 그를 붙잡게 된 것이다.
"난 헛소문을 낸 적 없소."
운혜의 말을 들은 청수는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까 분명 설향 사저와 장 소협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뻔뻔한 태도에 운혜는 분노하며 소리쳤다.
현장을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저리 뻔뻔하게 나온다는 말인가?
"물론 하였지요 하지만 그건 사실이지 헛소리가 아닙니다."
"뭐라!"
청수의 말을 들은 운혜는 발끈하며 그에게 소리쳤다.
"설 소저와 장 소협은 서로 연모하는 사이입니다."
"거짓말 마세요!"
"어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청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사저가 장 소협을 본 날은 고작 일주일이 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어찌 연모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운혜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작 일주일도 보지 않은 사람과 어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인가?
"흐흐흐 출가를 하셔서 그런지 몰라도 남녀 간의 정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 봅니다."
그녀의 반박에 청수는 조롱기 어린 말로 그녀를 희롱하였다.
그의 말 속에는 남자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비구니 따위가 뭘 아냐는 듯한 조롱이 담겨있었다.
"남녀 간의 애정에는 시간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저 서로 간의 끌림이 중요할 뿐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엔 설 소저와 장 소협은 서로 운명적인 끌림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니 야밤에 단 둘이 사라진 거겠지요."
그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채 운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 물론 이미 출가를 하신 아미의 제자분께서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는 가벼운 실소를 지으며 말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운혜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어떻게든 자신을 조롱하려는 모습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말…. 다하셨습니까?"
그녀는 살기 어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다 한 것 같습니다."
청수는 얄밉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잘됐네요."
스르릉
말을 마친 운혜는 천천히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들어 청수를 향해 겨누었다.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그녀가 검을 꺼내 들자 청수는 당황한듯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먼저 검을 꺼내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말로 그녀를 조롱하기는 하였지만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한 청수였다.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저는 모욕을 당하였고 그 모욕을 되갚아줄 요량입니다."
"지금 들어 올린 그 검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아시는 것입니까?"
청수는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문파 간의 충돌은 금지였다.
이는 떠나오기 전부터 정한 수색대만의 규칙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그 규칙을 어기려고 하고 있었다.
맨손도 아니고 진검까지 들면서 말이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청성과 아미의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하게 바뀌게 될 것이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청수의 물음에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고심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신가 봅니다."
설향의 말을 들은 청수는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사실 깊은 고심은 하지 않았습니다. 고심할 가치도 없을 정도의 일이라서 말입니다."
그의 비웃음에 운혜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고작 말하는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고심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운혜는 불가의 제자답지 않은 거친 언행으로 그에게 말하였다.
"뭐라!"
운혜의 신랄한 말을 들은 청수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수도없이 그녀를 희롱하던 그였지만 막상 자신이 희롱당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말 다하셨습니까!"
청수는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네, 저도 다한 것 같네요."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운혜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상큼했던지
청수는 마음속 깊은 곳에 분노가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스르릉
분노에 찬 청수는 그대로 검대에 매여져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들어 앞에 있는 운혜를 겨누었다.
"그 말 후회 안 할 자신 있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청수와 운혜는 서로에게 검을 겨눈 채 대치를 하였다.
둘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
청수와 운혜의 대치는 상당히 길어지고 있었다.
대치를 시작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검만 겨누고 있을 뿐 누구 하나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서로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탓이었다.
`틈이 안 보여.`
운혜를 노려보던 청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녀의 자세에서 틈이라는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놀리는 맛이 있는 멍청한 여자라고 생각했건만 무공에 있어서는 결코 얕볼 수 없는 여자인듯하였다.
청수는 눈을 희번덕 뜬 채 그녀가 틈을 보이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비슷한 수준의 고수 사이에서는 한순간의 틈만으로도 승부가 나기 때문에 답답하다고 하여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 섣부름이 목숨을 앗아갈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두 사람의 검이 동시에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먼저 움직인 이는 청수였다.
순간적인 빈틈을 잡아낸 그는 미련없이 손을 뻗어 그녀에게 검을 휘둘렀다.
쇄애애애액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챙
운혜는 곧바로 검을 들어 올려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그의 검을 막아버렸다.
칼날이 부딪히면서 금속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챙
재빠르게 검을 회수한 청수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챙
운혜는 날아드는 그의 검을 튕겨내고는 그대로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챙
청수는 튕겨내진 검을 회수한 뒤 그대로 늘어뜨려 방어를 하였다.
챙 챙 챙
청수와 운혜 사이에 쉴 새 없이 많은 공방이 오가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의 공방은 누구보다 치열하였다.
청수와 운혜 모두 절정이라는 경지에 다다른 이들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승패가 나지 않았을뿐더러 검기(劍技) 또한 비슷하였기에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아악!"
갑자기 운혜의 비명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틈을 보인 운혜가 청수에게 일격을 허용하였다.
손등을 검면으로 얻어맞은 것이다
운혜는 손등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그대로 검을 놓아버렸다.
척
그리고 목에는 금속 특유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이긴 것 같소만?"
청수는 오만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으득
그의 말을 들은 운혜는 이를 갈았다.
"고작 이정도 실력으로 내게 도전했던 것이오? 참으로 우습구려. 내가 그대를 검면으로 후려치지 않았다면 손이 잘릴 뻔 했다는 것을 알기는 아시오?"
청수는 그런 운혜를 쳐다보며 신이 난 듯 주절거리기 시작하였다.
한 끗 차이로 난 승부라지만 결국 이긴 것은 자신이었다.
신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미의 수준도 알만한 것 같소. 장문인의 제자라는 여자는 남자에게 홀딱 빠져 음행을 저지르지 않나. 삼대제자라는 작자는 정치적 상황도 고려치 않고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지 않나. 가관이구려."
청수는 운혜를 한껏 비꼬며 모욕을 주기 시작하였다.
"사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청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니긴 뭐가 아니오? 만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남자와 그 짓거리를 하는 음탕한 여인이 아니오?"
청수는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분명 선을 넘어도 완전히 넘어버리는 발언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승리의 달콤함이 그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개자식!"
운혜는 그를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욕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그녀였지만 그의 얄미운 행태에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온 것이다.
"허허, 부처님을 가슴에 품고 있는 불가의 제자가 입이 참으로 더럽구려. 장문인이 아시면 슬퍼하시겠소."
그녀의 욕설에도 불구하고 청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분명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운혜는 청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후회? 무슨 후회를 말이오!"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퍼트린 것에 대한 후회를 말입니다."
"아니 내가 언제 틀린 말을 했소? 설소저와 장소협이 한밤중 사라진 것은 사실이지 않소? 물론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누가 봐도 음란한 짓을 하지 않았겠소?"
"제가 당신에게 온 것은 당신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였습니다. "
운혜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오?"
"기억하세요. 그 기회를 차버린 것은 당신입니다."
그녀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니?
누가 자신을 죽인다는 말인가?
싸늘
갑자기 등 뒤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북풍한설을 정면에서 맞은 듯한 싸늘함이었다.
"야"
그리고 이내 뒤편에서 싸늘함을 넘어서는 거대한 한기가 풍기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청수는 온몸에 닭살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온몸이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청수는 온몸을 벌벌 떨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너 재밌는 소리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한 번 더 지껄여봐. 누가 누구랑 잤다고?"
청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