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무림치매대응반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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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와 동창은 일단 무림이라는 적대 세력이 있으니까 한 배를 타고는 있지만, 언제든지 서로 갈아마시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다. 지금쯤이면 이미 건주여진의 통합이 끝나고 곧 쿤두런 한 칭호를 받는다. 십여년 뒤면 후대에 명청교체기라 칭해지는 전쟁통으로 몰아 넣어질텐데…. 그쪽 관련으로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것 같다. 명대 말이 개막장이긴 하지만 속으로 이렇게까지 곪아 있을 줄이야.
“삼랑께서 황실의 정통성을 세워줄수도, 묻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네요.”
“그러게. 금이라도 왕창 달라고 해 볼까.”
아니면 뭐, 조그마한 자치구라던가. 앞으로 이어질 격동의 시대에 나와 내 여자들이 편히 살아갈 수 있을 만 한 곳으로. 명의 황실이 대대손손 만세에 걸쳐 번창할거라면 뭔가 뜯어낼 만 한 것이 있을것도 같은데. 관직이나 땅을 받아봐야 크게 뭔가 이득일 것 같지도 않고. 당연히 청 조정이라고 지방관이나 지방 토호 세력을 다 때려죽이진 않겠지만 권력을 얻을거면 차라리 그때가서 얻는게 나을판이다. 진짜 그냥 금전적으로 뜯어내고 치울까.
“연이쪽의 정리가 끝나면 다시 정보를 한 번 맞춰봐야겠네.”
그렇게 말을 하고 보니 이쪽으로 접근하는 연이의 기색이 느껴졌다. 저쪽도 끝났나보네.
“오라버니! 앗. 다들 왜 옷을 입고 있어?”
“일하는 중이잖아. 그리고 신투도 달고 와 놓고서는.”
연이는 무영신투를 달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들어왔다. 연이가 정한 지하토굴의 규칙에 따라 다들 벗고 있었다면 제법 민망할 뻔 했다.
“하나만 해 오라버니. 신투야 주선이야?”
“…그냥 신투로 하자.”
아무래도 이름을 막 부르기는 나이드신 분께 좀 부담이 되네.
“흐으으응…. 그래?”
“언니, 여기 우리가 확인한거 정리했어요.”
“아, 고마워 화란아. 고생했어.”
“고생은요.”
연이가 신투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자 화란이가 정리 해 놓은 책을 내밀었다. 연이는 책을 펴서 처음부터 눈으로 쓱쓱 흝으면서 말을 이었다.
“주선. 신투가 좋아 주선이 좋아? 확실히 이야기 해 봐.”
“아무래도, 이름이 낫겠네요. 저 혼자 별호로 불리는것도 어색하고.”
“거 봐. 들었지?”
“그래, 알았다. 그나저나 그쪽에서는 뭐 좀 나온거 있어?”
“주선아.”
“네, 문주님. 여기, 저희쪽도 정리 해 왔습니다.”
신투…. 에라. 왔다갔다 헷갈리니까 그냥 앞으로는 나도 주선이라고 불러야겠다. 연이가 교통정리를 해 줬고 본인도 민망하다니까. 하여간 주선이가 품 속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서 내쪽으로 건네 줬다. 여기는 거의 다 가득찼네.
“문서화 된 정보의 대부분은 사천 무림 문파들의 동향이나, 주요 인물의 행보, 이 외에 사천 무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세력들에 대한 정보들인데…. 헐, 세상에 오라버니 무공이 황실거라고?”
“아직 확정은 아닌데 그럴 가능성이 높다네.”
“황실에 없는것도 후반부라며.”
“그건 그런데…. 너무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서.”
“에이…. 남경이 영왕의 난하고도 연관이 깊은데, 아버님께서도 무림맹 남경지부에서 근무하시다가 얻으셨다며.”
사실 시기적으로는 좀 뒤긴 하지만, 지리적으로는 딱 들어맞는 상황이긴 하다. 거기서 흘러나왔다면 오다가다 아버지가 저자에서 손에 넣었어도 말은 되는거지.
“내 무공은 그래 그렇다고 치고.”
“그렇다고 칠게 아니지!”
“지금 이야기 해 봐야 소용 없는거잖아. 동창을 배제하고 황실을 직접 만나서 협상을 할 수도 없는거고.”
지금의 황실은 아마도 동창의 철저한 감시하에 있을거다.
“그거랑 연관된 일이 있거든.”
“뭔데?”
“주선아 이야기 좀 해줘. 난 이거좀 보게.”
“네 언니.”
뭐 벌써 언니야.
“아, 주선이는 어디까지 아는거야 우리 일?”
“으응? 내가 다 이야기 해 줬어. 기반을 가지고 정보를 흝어야 우리한테 필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는거잖아.”
으으으음…. 뭐, 연이의 판단이니 그렇다고 치지만 너무 쉽게 우리 일을 오픈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오라버니가 유하를 인질로 잡을거라며. 그럼 다 알아도 괜찮은거지 뭐.”
“알았다 보던거나 봐라. 주선. 설명해봐.”
“아, 네. 태감에게 보고 전인 문서철에 있던 내용인데, 노평대장공주를 움직이기 위해 동창이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평대장공주라…. 자윤, 예전에 너한테 찾아왔던 인물이라고 했던가?”
노평대장공주. 세종의 딸이라고 했다. 왜 여기서 그 이름이 나오는거지?
“네, 주공. 직접 천마신교로 찾아 왔었던 사람이에요.”
“흐으음…. 움직이기 위해 손을 썼다?”
“일단 저희가 확인한 보고서의 내용에는 노평대장공주의….”
“줄여서 노평공주라고 하자. 현 황상의 대고모님이신건 다들 알고 있으니.”
“네, 하여간 노평공주의 정확한 행방은 파악이 안된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단지 남경에 있는것으로 추정한다고.”
“근거는?”
“노평공주 직속의 금의위가 남경에 머문지 제법 오래 되었다고 하네요.”
대체 수도는 북경인데 남경에 뭐 그리 먹을게 많아서 그러고들 있는지.
“그런데, 동창이 왜 노평공주를 움직이는거지? 굳이?”
일단 자윤이에게 찾아갔을때는 동창이랑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고 봐야될텐데. 그 사이에 뭔가 갈라선건가?
“화란아, 혹시 노평대장공주에 대해서 태감놈에게 캐내볼 수 있겠어?”
“곧 죽을것 같은 상태긴 한데…. 자윤언니?”
“같이 갔다 오자.”
“아, 가는김에 여기서 남경이나 북경까지 정보를 전달하는게 얼마나 걸리는지도 확인 좀 해 줘.”
“그거라면 아마 하루 이틀 사이에 들어갈 거에요.”
“그렇게 빨리?”
“전서구도 있고, 동창 직속으로 파발만 담당하는 조직도 있으니까요.”
이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천에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하기사. 정보의 귀중함을 몸소 알고 있는놈들이니 신속정확한 정보망의 확보에 목숨을 걸었겠지. 그걸 지들끼리 아귀다툼하는데 써먹어서 문제지만.
“그럼 좀 부탁해.”
“아, 오라버니. 그건 잠깐 기다려. 그 태감 금방 죽는것도 아니잖아. 걔 이름이 뭐야?”
“정송이라고 하던데요.”
“으음…. 왠지 낯익었었는데 아는 이름은 아니네…. 하여튼 곧 죽을것 같다면서?”
“네 언니.”
“그럼 조금만 기다려. 더 확인할 내용 있는지 정리해서 한꺼번에 물어봐야지. 다 못 캤는데 죽으면 아깝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연이와 화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벌한 이야기를 나눈다. 음. 이게 무림의 상식이겠지. 하물며 두 사람은 외당이라는 무력조직에 몸 담았었으니까.
“아무튼, 노평공주는 일단 확실하게 동창이랑은 노선이 갈라졌다고 봐야겠지?”
“그럴것 같아 오라버니. 이런경우는 보통…. 암살아닐까?”
“아, 사천의 무림을 쓸어내는 과정에서 혼란을 빙자해 노평공주를 보낸다?”
일리는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으음….
“그런데 노평공주가 남경에 있다면 필시 내가 추정하기로는 이 ‘금천황룡공’을 찾는걸텐데….”
금천황룡공의 후반부를 가지고 있던 ‘주수’가 남경에서 죽었다고 한다면 그걸 찾기위해 거기를 뒤지고 다니는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동기적으로도 무종황제 사후에 아버지인 세종황제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한 추적이라고 본다면 타당하긴 하다.
“걔들이 어떻게 손을 쓴지는 모르고?”
“네, 문주님. 다만 추정해보자면, 노망독을 강제로 해독해 버릴 수 있는 기운이라면 동창의 ‘은룡보국신공’이나, 문주님이 익히신 ‘금천황룡공’밖에 없으니까요. 그걸 흘렸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시기는?”
“문주님이 사천의 문파들에게 해독약을 전달한 직후입니다.”
그렇다면 그 놈들이 그 안에 담긴 기운을 어쨌든 확인했다는 거겠지. 기존 동창이 다루던 기운과는 다른기운이었고…. 그걸 노평공주쪽에 흘려서 움직이게 만든 다음에 사천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명확하게 노평공주를 치겠다, 그런 내용은 없었고?”
“네. 태감 정송의 판단이 아니라 해독약에 대한 내용을 상부에 올리고 상부의 판단으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끝이 노평공주의 암살이었을 것 같긴 한데, 아직 섣불리 속단하기는 이를것 같다. 이것도 정송에게 캐내 볼 목록에 추가.
“그 노평공주를 한 번 만나보긴 해야겠군.”
“공식적으로 방문하지는 않을것 같습니다만….”
“그거야, 방법을 찾아 봐야지. 아마 무림첩을 돌린것과 연계해서 필시 우리 장원 주변으로 동창의 인물이 깔릴 계획이 있었을 것 같은데. 맞나?”
“네. 그렇습니다.”
노평공주에게 이쪽의 정보를 흘렸다면, 내 주변으로도 동창 사람이 쫙 깔릴 예정이었을거다. 그래야 노평공주가 접촉해오면 납치를 하든 암살을 하든 할 테니까. 혹시나 내가 가지고 있는게 정말 ‘금천황룡공’이라면 그것도 반드시 동창이 해결해야 할거고. 그나마도 ‘금천황룡공’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던게 다행이었다. 동창도 혹시 이게 아닐까 아리까리 하던 순간에 내가 선빵을 쳐버린격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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