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무림치매대응반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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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은 좀 풀리셨어요?”
“괜찮다니까.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어?”
“심마는 위험한거에요.”
살짝 땀이 흐른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올렸다. 땀같은건 안 흘릴 수도 있는데 우리애들은 점점 나랑 관계를 가질 때 기운을 다 흩어버리고 관계를 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쪽이 더 기분이 좋다는 것 같다. 불쑥불쑥 튀어나가서 집을 부술 걱정도 없고.
“하아아으응….”
“노곤하면 한 숨 자 둬.”
“그럴까요. 간만에 주인님을 독차지 했는데.”
린이가 나긋하게 웃으면서 안겨 들었다. 토굴 안에 있으니 시간을 알 수가 없네.
“삼랑, 잠깐 괜찮으실까요?”
“어, 화란아.”
천이 슬쩍 들리면서 화란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옷을 입고 있는걸 보아 쉬러 온 건 아닌것 같았다.
“캘 수 있는 정보는 다 캔것 같아요.”
“고생했어. 거기 그….”
목 덜미에 피가 튀어 있다.
“왜요? 뭐 묻었어요?”
“목에.”
“이런, 닦는다고 닦았는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내 앞에서 벗고 있는건 괜찮고 그런건 부끄러운건가. 하여간. 내가 린이하고 뒹구는 동안에 고생을 했을테니 얼른 나가봐야지.
“린이는 쉬고 있어.”
“아니에요 주인님. 화란언니도 고생했는데 같이 들어야죠.”
“별 고생은 안했어. 금방 줄줄 실토하더라구. 내용이 많아서 오래 걸린거지.”
“환관들 독하다던데 그것도 옛말인가봐.”
몸에 묻은 관계의 흔적들을 내공으로 날려보내고 벗어놓은 옷을 적당히 걸쳐 입었다. 방에서 나와 거실로 가니 자윤이도 이미 나와 있었다.
“고생했어.”
“고생이랄 것도 없었어요.”
“그래도.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일텐데.”
“자윤언니나 제가 있는데 왜 삼랑이 그런걸 해요? 서로 잘 하는거 하면 되는거지.”
별 소릴 다 한다는 듯 화란이는 빙긋이 웃으며 깔개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미리 준비해 둔듯 작은 협탁 위에 차까지 놓여져 있어 찻잔을 하나 들고 호로록 들이 마셨다. 아, 그전에 화란이도 자윤이도 한 번씩 안아주고 엉덩이를 토닥거려줬다.
“자, 그래서. 뭘 그렇게 많이 토해놓은거야?”
“음…. 일단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 따로 적어 두긴 했는데요.”
화란이가 내미는 책을 들고 한번 끝까지 파라락 흝었다. 빈책이었는데 거의 절반가량 차 있었다. 여기 책임자로 파견되어 있던 놈이라 그런지 아는것도 많은 것 같았다.
“연이언니하고도 따로 이야기 해서 다시 정보를 추릴게요. 먼저, 지금까지 무림을 좀먹어온 암약 세력은 동창이 맞아요.”
“아….”
“왜 삼랑을 죽이려고 한 건지 그런건 당연히 모르고 있더라구요.”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무슨 거창한 출생의 비밀이 있고 막 이래서 날 죽이려고 생각하진 않았을거다. 그냥 놈들이 뭔가, 뭔가 진행을 하는 과정에 걸리적거리는 돌부리처럼 튀어나와 있어서 죽일 생각이었겠지.
“그건 일단 크게 중요한 내용이 아니니까 넘어가고. 동창이 하고 있었다는 그 암약에 대해서 좀 알아 둘 필요가 있을것 같은데.”
“그 부분 역시 연이언니가 수집한 자료와 제대로 대조해서 넘겨드리긴 할텐데…. 삼랑의 무공까지 포함해서 다 얽혀 있는 내용이에요.”
“이거? 역시 동창과 연관이 있는건가.”
아마도 동창의 무공과 연관성이 있을거라고 추측하긴 했는데.
“동창과 연관이 있다고 해야 할지…. 조금 믿기 힘드신 이야길 수도 있는데요. 황제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인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황제?”
“동창이 무림을 약화시키고, 고수들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온 것은 알고 계신바 대로 그들이 한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동창의 창설때부터 고민하던것은 무림인의 제압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지. 상대를 약화시키는것과 내가 강해져서 상대를 제압하는건 다른 분야지.
“동창의 무공 ‘은룡보국신공’은 그것을 위해 창안된 무공입니다. 명이 안정된 이후 각지에서 본격적으로 무림세력이 조정의 지배권을 위협했고, 동창이 설립된것이 비단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황실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무림에도 관여하기 시작했죠.”
“그건 다 아는 이야기고. 그래서 그 ‘은룡보국신공’이 내가 익힌 반쪽짜리 무공이란건가?”
“아뇨 그것과는 좀 달라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황제만이 익힐 수 있는 독문 무공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그것도 태조로부터 내려온.”
“어째서지?”
황제만의 무공이 있을것이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홍무제. 명 태조 주원장은 그 스스로 선봉에서 반란군을 이끌었을 정도로, 타고난 무골이었다. 그 당시에도 존재했던 온갖 무림세력, 군벌 세력들을 압도적으로 때려잡을 수 없었다면 그만한 세력을 이룰수도, 건국초의 강력한 황권 성립도 이룰 수 없었을거다. 그를 따르는 측근들도 그렇지만, 그 자신에게 타인을 압도하는 무력이 있었다고 생각해야겠지.
“동창의 은룡보국신공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그것 뿐이라고 하네요.”
“그렇다고 해서 이게….”
“그에 관한 이야기도 있어요.”
효종황제와 장황후의 소생으로 태어난 무종 정덕제. 효종이 후사가 없어서 골머리를 썩다가 무종을 낳은건 좋다. 그런데 실 역사에서 단순히 입을 잘못놀려 허위사실 유포로 쓸려 나간걸로 알려진 정왕. 그녀의 딸인 궁녀 정금련이 효종의 자식을 낳았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다는거다.
“무종황제께서는 ‘위무 대장군 진국공 주수’ 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계셨죠. 그 이름이 숨겨진 형제의 이름이에요 ”
그 친구가 또라이였던건 유명한 이야기다. 현대에서 배우는 명나라 말 개막장의 한 축이니까. 아 그래서 대체 무공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거야.
“궁녀 정금련이 ‘주수’를 궐 밖으로 내보낼 때 황제의 무공 ‘금천황룡공’이 궐 밖으로 나가며 실전된것입니다. 정통성을 가지고 황실의 계승자로 돌아오기를 바래서였어요.”
그렇게 나간 주수는 어찌어찌 황제와 연이 닿아서 반절은 주고 반절은 줄까 말까 장난을 치다가 영왕과 함께 손을 잡고 난을 일으켰다. 물론 익히 알려진대로 영왕의 난은 깔끔하게 진압당했다. 금천황룡공이 밖으로 흘러나갔어도 황제가 해당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시간에 작성해서 후계자에게 넘겨주면 될 일. 크게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는데.
글쎄 이 정신나간 양반이 그만 뭘 하다 뒈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란 잘 진압하고 북경가는길에 물에 빠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거다. 그런걸 보면 이거 자체를 제대로 수련해서 고수가 되진 못했던것 같다. 나야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이걸로 고수가 된거고. 하여간 후계자를 정하는 과정도 수월한건 아니었기때문에 어버버버 하다가 실전된 상태로 죽은건 확실하다.
“새롭게 즉위한 황제는 방계였기때문에 즉위초부터 정통성논란에도 시달리고 여러모로 진통이 있었어요. 어쨌거나 즉위한 이상 정당한 황제였기에 동창은 금천황룡공에 대해 보고를 했고, 가뜩이나 빈약한 정통성때문에 심한 불안에 빠진 황제는 동창을 닥달해서 본격적으로 무림을 좀먹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동창도….”
“동창이 왜?”
“황제에게 직접적으로 덤비지 못하던게 명목상이나마 금천황룡공때문이었는데 황제에게 공식적으로 그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동창의 행보도 점차 거침없어지기 시작한거죠.”
제어할 수단이 없는 힘은 폭주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세종 가정제도 완전 개막장이었으니까.
“동창은 조정에 반기를 들 계획도 갖고 있더라구요.”
“전개로 보자면 그게 자연스럽겠지.”
아 또 골치아파진다. 난데 없이 반란이라.
“어쨌거나 바로 친게 답이었군. 그래서 그 친구는 무슨 태감이래?”
“사례감 소속의 병필태감 아래 직속으로 있는 오태감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병필태감 바로 아래면 동창의 이인자쯤 되는 위치다. 사천 무림을 몰살시키는 나름대로 큰 프로젝트다 보니 직접 내려 온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노망독의 하독법이라거나, 이런저런 중요한 정보들이 많이 있어요. 이미 저희의 움직임도 알고 중앙으로 기별을 보냈다고 하네요.”
“재빠르게 움직였네.”
“주인님이나 우리의 노출은?”
“보고는 들어왔지만 삼랑에 대한 정보 외에 우리는 구체적으로 퍼지진 않은것 같아. 아, 린이 너는 빼고.”
“으응…. 난 전면에서 활동을 했으니까.”
독의 하독법이라. 그러고 보니 그와 관련된 것도 미스테리였지.
“하독법은 뭐래? 중독 시킨 방법은?”
“동창의 ‘은룡보국신공’으로 하독하면 된다네요. 독은 보관하고 있다가 하독 직전에 동창의 요원이 지령과 함께 활성화를 시켜 준다고….”
그런방식이었군. 하독법을 노출하지도 않고 동창요원들은 주렁주렁 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나름의 안전한 방법이다. 그걸로 활성화를 시키고 나면 무색무취무미로 바뀐단 말이지. 흐음. 아마 내가 ‘천지환원기’로 부르는 기운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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